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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호진(胡軫): 동탁(董卓) 휘하의 최일류장수

by 중은우시 2020. 1. 2.

글: 이치아(李治亞)


삼국연의의 명장 여포는 최고의 사나이이다. 일여이조삼전위(一呂二趙三典韋), 사관오마육장비(四關五馬六張飛). 그러나 역사상 여포는 당시 천하제일의 명장이 아니었을 뿐아니라, 심지어 동탁의 수하들 중에서의 제일명장도 아니었다. 여포는 유용무모(有勇無謀)했고, 자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망쳤다. 동탁 수하의 제일명장은 마땅히 호진(胡軫)이 되어야 한다. 그는 아주 용맹하지만 싸울 때는 비교적 성급한 편이다. 소설에 나오는 장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포는 계속하여 호진의 뒷다리를 걸어서 방해한다.


첫째, 여포의 분노. 당시 손견(孫堅)에게 서영(徐榮)이 패배한 후, 잔여부대를 모아서 거현(渠縣, 지금의 하남성 여주시)으로 물러나 지키고 있던 양인(陽人)과 합친다. 동탁은 진군태수(陳郡太守)이자 양주(凉州)사람인 호진을 총사령관(대도독)으로 삼고, 여포는 기병대장(기장)으로 삼아서 보병 수만, 기병 오천을 데리고 나가 공격하게 한다. 이에 대하여 여포는 마음 속으로 분노한다. 자신이 호진의 아래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여포는 호진을 미워했을 뿐아니라, 동탁까지도 미워하게 된다. 당연히 호진도 여포에 대하여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두 서로를 소 닭보듯 하게 된다.


둘째, 여포의 교란. 전투에서 겁나는 것은 대오가 단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호진과 여포도 그러했다. 두 사람은 비록 모두 재능이 있지만, 서로 화목하지 않았다. 그들과 대진한 것은 대명이 자자한 손견이었다. 손견은 동탁도 겁을 내는 인물이다. 대군이 양현(梁縣)에 도착한 후, 사람도 피곤하고 말도 지쳤으며 날도 어두워졌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그 자리에서 숙영하며 말에게 음식을 먹이고, 날이 밝은 후에 공격을 감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여포등 병주의 장수들은 고의로 '성안의 적들이 이미 도망쳤으니 마땅히 바로 추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를 잃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호진으로 하여금 밤을 새워 공격하도록 부추긴다. 호진도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그 말을 듣자 바로 쫓아간다. 전투에서 패하자 호진은 아주 화가 난다. 그러나 여포는 멈추지 않는다. 피로가 극에 달해 앉아서 쉬면서 이제 씻고 잠을 자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여포는 다시 유언비어를 퍼트린다: "성안의 적들이 빠져나왔다." 놀란 사람들는 갑옷과 무기를 버리고 황급히 도망친다. 해가 밝고나서 호진이 살펴보고나서 화가 난 나머지 무기를 들고 손견과 결전을 벌이고자 한다. 그러나 이미 수하들은 제대로 싸울 상황이 아니었다. 원기를 크게 상하고 대장 화웅이 죽는다.


셋째, 여포의 수하로 세월을 보내게 된 명장. 호진이 패전하자 동탁은 일방적인 말을 듣고 호진이 제대로 지휘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여, 호진의 직무를 모조리 박탈한다. 이때 서량의 또 다른 명장인 왕윤(王允)이 여포와 연합하여 동탁을 죽여버린다. 호진은 여포의 수하로 지내면서 우울하게 세월을 보내게 된다.


넷째, 동탁사후 이각, 곽사의 난이 일어나고 왕윤과 여포는 대권을 장악한다. 호진은 조정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보고 암중으로 반군에 투항한다. 원래 그는 바로 서량의 명장이다. 그때 동탁수하의 대장 서영(徐榮)은 조정에 투항한다. 그러나 그는 이각, 곽사, 호진의 내외협공을 당한다. 서영은 앞뒤로 적을 맞이하게 되니 혼자서 버티지 못하고 결국 전쟁터에서 전사한다. 호진의 최후는 아주 극적이다. 사서에 따르면, 호진은 사례교위를 맡고 있을 때, 수하중 사례좌 풍익(馮翊)과 공조 유은(遊殷)은 깊은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풍익은 핑계를 잡아 유은을 무고하고 그를 처형하게 한다. 유은이 죽은 후, 호진은 매일 밤 유은이 꿈에 나타났다. 그후 중병을 얻고, 밤에 한숨도 자지 못한다. 이렇게 한달여간 계속하다가 결국은 죽고 만다.


당연히 호진은 스스로 잘못때문에 죽은 것이다. 그는 정치적인 안목도 없었다. 그러니 무슨 고첨원촉(高瞻遠矚)이랄 것도 없고, 더더구나 심모원려랄 것도 없었다. 동탁의 시대흐름을 역행하는 조치를 거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보니 아무도 중용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조정을 위하여 큰 공헌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