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중국4대고탑: 산서홍동(山西洪洞)의 비홍탑(飛虹塔)

by 중은우시 2019. 9. 27.

글: 고건가원(古建家園)


중국에 현존하는 탑은 2000여개이고, 종류도 아주 많다. 현존하는 4대고탑은 각각 숭악사탑(嵩岳寺塔, 하남 등봉 숭악사), 비홍탑(산서 홍동 광승사), 석가탑(산서 응현 불궁사), 천심탑(千尋塔, 운남 대리 숭성사).




비홍탑은 산서 홍동현 동북부 곽산(霍山)의 광승사(廣勝寺)에 있다. 한(漢)나라때 건축되었으며 전신은 아육왕탑(阿育王塔)이며, 현존하는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한 유리탑(琉璃塔)이다. 동한 환제(桓帝) 건화원년(147년), 승려는 이곳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아육왕탑을 세운다. 이 탑은 당시 중국 경내의 19개 불사리탑(佛舍利塔)중 하나였다.




광승사의 당시 이름은 구로사사(俱盧舍寺)였다. 절안에 탑이 있어어 아육왕탑원(阿育王塔園)이라고도 불렀다. 아육왕탑원은 불교의 흥쇠에 따라 여러번 흥하고 폐했다. 당대종(唐代宗) 대력4년(769년), 분양왕(汾陽王) 곽자의(郭子儀)가 이 곳에 온다. 그는 보탑에 심각한 갈라진 틈을 보고 새로 지을 것을 주청드리고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다.



현재의 탑은 명무종(明武宗) 정덕11년(1516년)에 착공하여 가정6년(1527년)에 완공된다. 12년에 걸쳐 완공된 것이다. 명희종(明熹宗) 천계원년(1621년) 경사(京師)의 대혜화상(大慧和尙)은 다시 비홍합의 저층(底層)에 위랑(圍廊)을 만든다. 천계2년(1622년) 저층에 위랑탑 평면팔각형을 증축한다. 청나라 강희34년(1695년) 임분분지에 8급지진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탑은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는다.


탑은 평면이 팔변형이다. 13첨(檐)의 누각식 불탑이고, 높이는 47.6미터이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점점 좁아지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탑의 각 층의 처마는 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형태는 마치 송곳과 같다. 저청이 목회랑(木回廊)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청전(靑磚)으로 쌓아서 만들었고 각 층에는 모두 처마가 나와 있다. 남쪽 입구부분은 쌍층의 귀수좌(龜須座) 1간과 십자헐산정(十字歇山頂)이 두드러진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었고, 비율도 조화롭다. 마치 하나의 소형누각과도 같다. 탑신이 오색찬란하여 비온후의 무지개와 같다고 하여, '비홍탑'이라는 명칭을 얻는다.


탑찰(塔刹)은 보병식(寶甁式) 동주(銅鑄)이고, 항륜(項輪)은 철주(鐵鑄)이고, 유소(流蘇)는 녹색유리(琉璃)이다. 각층은 모두 유리 처마가 나와 있고, 칠색의 유리로 장식해 놓았다. 유리로 된 목조구조를 본뜬 두공(斗拱)과 연판(蓮瓣)이 격층으로 있다. 3층부터 10층까지는 각층에 모두 불감(佛龕), 문동(門洞)과 방심(枋心)을 만들고, 안에는 부처, 보살, 동자상을 놓아두었다. 문동의 양측에는 상감유리반룡, 보주등을 장식한다.


탑신 제2층에는 평좌를 설치해 놓고, 유리로 난간, 망주를 만들었다. 평좌의 위에는 부처, 보살, 천왕, 제자, 금강등의 상이 있다. 제3층의 동, 서, 남, 북의 사면에는 공문(拱門)이 있고, 각 면의 정중앙에는 유리로 만든 사대천왕상이 있다. 정남천왕상의 양측에는 명왕가룡유리상이 있다. 정북측은 봉황이 가운데 있고, 두 금감이 갑옷을 입고 집승을 밟고 양측에서 협시(脇侍)하고 있다.


제2층 이상의 탑신의 외부는 모두 유리방목구건(仿木構件)을 상감해놓았다. 각층의 처마아래에는 모두 유리화조(花罩)와 수련주(垂蓮柱)가 있다. 그리고 옥우(屋宇), 누각(樓閣), 정대(亭臺), 각주(角柱), 불감, 화훼, 인물, 상봉(翔鳳), 사(獅), 상(象)등의 유리구건이 있다. 한층에 한 세트의 도안이 있는데, 형식이 다양하다.


비홍탑은 5개의 부처사리가 있는 탑이다. 또한 지금까지 발견된 공장(工匠)이 제관(題款)을 남기고,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한 유리탑이다. 그것은 일찌기 이곳에 소장되어 있었던 <조성금장(趙城金藏)>, 수신묘원대벽화(水神廟元代壁畵)와 합쳐서 "광승삼절(廣勝三絶)"이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