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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중국상고시대의 3대호수

by 중은우시 2019. 7. 18.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의 호수는 청해성의 청해호(靑海湖)이다. 수역면적은 4,583평방킬로미터로, 2위인 강서성의 파양호(鄱陽湖)는 최대수역면적이 약 4,000평방킬로미터이다. 그러나, 세계 호수랭킹을 따지ㅈ자면 이 두개의 호수는 모두 30위밖에 놓인다.


세계에서 면적이 가장 큰 어미지향(魚米之鄕)으로 아시아 동부에서 세계최대의 계절풍영향지역에 강우량이 충분한데, 중국은 왜 세계에서 손꼽히는 큰 호수가 없을까? 이는 과학적인 법칙에도 맞지 않는 듯하다.


사실상, 주라기의 초기 조산운동이 시작된 후, 제3기말기 인류가 출현할 때까지, 중국지역의 화북지역, 준가르분지, 타림분지, 사천분지등의 지역에는 전후로 거대한 호수가 형성된 바 있다. 다만 지질의 변화로 호수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그런 호수가 존재했었다는 것은 그저 추리일 뿐이다. 역사상 그들 호수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역사기록에 나오는 진정으로 존재했던 중국의 세계적인 호수는 최소한 3개이다: 운몽택(雲夢澤), 저야택(猪野澤), 나포박(羅布泊). 운몽택과 나포박은 모두 많이 들어본 거대한 호수일 것이다. 우리는 고대의 전적에서 이들의 이름을 자주 접했었다.


운몽택은 전성기에 수역면적이 26,000평방킬로미터에 달했다. 현재 동정호(洞庭湖)의 10배이다.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동정호는 고대 운몽택의 잔적(殘跡)이다. 운몽택은 고대 중원문명이 남천하는 과정에서 그 호안(湖岸)을 계속 개발하여, 호수면적이 축소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나포박은 타림분지 동부의 저지대이다. 역사에서 알려진 최대면적은 16000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다만 비교적 일찌감치 소실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은 그 후에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


상고시대에 하서주랑의 동부지구에는 기련산의 수계에서 발원하는 석양하(石羊河)라는 강이 있었다. 당시 기후조건은 현재와 달랐고, 석양하는 큰 강이었다. 강물의 끝은 저야택에서 모여 거대한 호수를 이루었다. 당시 이 호수의 면적은 약 16,000평방미터였고, 청해호의 3밴가 넘는다.


인류가 계속 발전하면서 고대 동아시아는 화하문명기로 접어든다. 그리고 하, 상, 주등 봉건제국가가 들어선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각종 자원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다. 진,한시기에 이르러, 중국지역은 대통일국가가 형성되는데, 국력이 전례없이 강성해지고, 경제는 발달하며, 인구도 급격히 팽창한다. 이 기간동안 중원왕조는 서북유목민족의 침략을 받아서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한무제때, 중원왕조는 유목민족과 자웅을 겨룰 실력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121년, 곽거병을 보내 하서주랑을 수복한다. 흉노세력은 막북으로 쫓겨났다.


당시 하서주랑지구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흉노가 권토중래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한무제는 이곳에 수만의 대군을 주둔시킨다. 이들 부대의 보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들 군대는 이곳에서 개간을 하여 농사를 짓는다. 석양하의 물을 끌어들여 관개를 한다. 흉노는 유목이 위주였기 때문에, 개발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한왕조는 선진적인 농경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석양하의 물은 메마른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용도로 끌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원래 완만하게 쇠퇴하던 저야택은 급격히 면적이 종전의 30%이하로 축소된다. 그리하여 청해호와 비슷한 크기의 호수로 된다. 이때는 서해택(西海澤)으로 불리웠다. 다만 이와 동시에 이곳의 인구도 증가하기 시작하고, 점점 서북지구의 중요안 양식공급지가 된다.


당나라에 이르러, 국토가 전례없이 넓어지고, 이곳에는 수십만명이 거주하게 된다. 인구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더욱 만은 경작지를 필요로 했고, 더 많은 관개용수를 필요로 했다. 그리하여, 저야택은 더욱 축소되어 수십개의 자그마한 호수만 남게 된다.


명청시기, 중국의 인구는 2억을 넘어선다. 당나라에 비하여 배가 넘었다. 그래서 저야택 부근의 개간면적도 점점 더 많아진다. 분열된 호수의 잔적은 개간과정에서 점점 더 잠식되고, 결국은 청토호(靑土湖) 하나만 남게 된다. 지금의 무위시 민근현 경내에 있음. 면적은 원래의 백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청토호도 계속하여 면적이 축소되고 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살마들은 석양하의 상류에 홍애산댐을 건설한다. 이 댐이 완공된 후, 석양하의 유량은 격감한다. 다만 부근의 용수량은 늘기만 했고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청토호와 부근의 지하수는 계속하여 과도하게 이용되고, 결국 1년이후 청토호는 완전히 말라버린다. 사막화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은 작은 못만 남아 있다.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던 큰 호수는 지금 사막 속의 별 볼일없는 오아시스로 남게 된 것이다. 인류의 발전은 자연생태를 파괴한다. 수천년 역사를 보면 사회발전으로 인한 생태악화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난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