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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초기)

중화민국시대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중국유학생들

by 중은우시 2019. 5. 18.

글: 소웅설역사(小熊說歷史)


"책임, 명예, 국가"는 미국 웨스트포인트군사학교의 교훈이다. 이 학교는 미국에서 많은 군사가를 배출했다. 예를 들어, 아이젠하워, 맥아더, 퍼싱, 패튼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얘기하려는 사람은 웨스트포인트가 배양한 미국인이 아니라, 민국사상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중국유학생들이다.


1. 온응성(溫應星)


광동인. 그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미국에서 두 개의 학교를 다녔는데, 버지니아군사학원과 웨스트포인트군사학교이다. 그는 최초로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한 중국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웨스트포인트의 우수학생이었다. 군사이론은 반에서 2위, 동기들 중에서는 성적이 82위였다.


2. 진정갑(陳廷甲)


광동 번우(番禺)사람이다. 그는 온응성과 함께 버지니아군사학원에서 공부했고, 얼마 후 웨스트포인트로 전학한다. 학교에서 그는 체조에 뛰어나 교장의 인정을 받는다. 아쉽게도, 그는 체조시연때 부상을 입어서 학업에 지장을 받는다. 그리하여 동기들 중에서 성적이 뒤쳐진다. 귀국후에는 황포군관학교 편찬위원 및 군사고문등의 직위를 맡는다.


3. 왕갱(王賡)


강소 무석 사람이다. 그는 국내에서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한다. 그가 처음 미국에 가서 들어간 대학은 웨스트포인트가 아니라 미시간대학, 컬럼비아대학 그리고 프린스턴대학이다. 그곳을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 웨스트포인트에 들어간다. 그리고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할 때 왕갱은 성적이 12위였다. 저는 전도양양한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처는 민국재녀로 유명한 육소만(陸小曼)이다.


4. 조림생(曹霖生)


상해 사람. 1916년 웨스트포인트에서 공부한다. 그도 전설적 인물이다. 군계에서 상계로 다시 교육계로 옮겼으며, 각각에서 성공을 거둔다. 대단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5. 왕성지(王成志)


항주 사람. 현대를 기준으로 보면 그는 이과(理科)의 천재이다. 미국에서 그는 MIT, 하버드에서 차례로 공부한다. 이 두 학교는 모두 미국에서 최고의 대학들이다. 그리고 웨스트포인트에서 공부할 때 그의 수학에서 성적이 1위였다.


6. 장도홍(張道弘)


안휘 사람. 이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장인은 유명한 인물이다. 바로 민국시대에 대명이 자자한 대군벌 단기서(段祺瑞)이다. 그의 웨스트포인트에서의 성적은 보통이었고, 하마터면 유급할 뻔했다. 다행히 다음에 재시험을 봐서 통과한다. 그의 성적은 보통이었지만, 그의 관료로서의 생애는 장인인 단기서의 도움으로 순조로웠다고 할 수 있다.


7. 왕지(王之)


호남인. 1928년 웨스트포인트에서 공부한다. 그러나 왕지는 이들 졸업생들 중에서 비교적 잘 지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귀국후 그는 송자문(宋子文)의 세경총단(稅警總團)에서 일하고, 나중에 태평양연합군사령부의 연락관으로 일하면서, 미주리전함에서 일본군의 항복의식에도 참여한다.


8. 안박생(顔朴生)


상해 사람. 부친 안혜경(顔惠慶)은 민국시대의 외교관이다. 안백생도 뉴욕에서 출생했고, 1937년 웨스트포인트에서 공부한다. 졸업후에 그는 외교관으로 일한다. 부친의 가업을 이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