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당)

당왕조의 처참한 최후

중은우시 2019. 3. 21. 16:48

글: 황석신문망(黃石新聞網)


모두 알고 있다시피, 역사의 발전은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승하는 과정에서, 문명의 진보가 있을 뿐아니라, 왕조의 교체도 일어난다. 사실상 매번 왕조교체때마다, 대다수의 경우에는 아주 잔혹한 전쟁과 궁중투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패배한 측은 침중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 중국고대역사의 기나긴 흐름 속에서, 일찌기 휘황했던 통일왕조라 하더라도 쇠락을 피할 길이 없었다. 매번 왕조가 막을 내릴 때면, 무수한 생명이 왕조와 함게 순장된다. 설사 강성했던 당나라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나라는 중국역사상 가장 휘황했던 강성한 왕조였다. 지금까지도 당나라는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많은 중국계는 당인(唐人)으로 불리고 있다. 당나라는 중국역사상 문화가 가장 찬란했던 시기이다. 당나라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자태는 만방내조(萬邦來朝)의 국제적인 지위를 확립시킨다. 또한 당나라의 백성들은 높은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안사의 난 이후, 당나라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가장 가슴아픈 일은 바로 당나라가 멸망할 때의 비참한 운명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도 그 때를 읽어보면 처참하기 그지없다고 느껴진다.


당나라말기, 두 갈래의 세력이 내외에서 쇠락을 가속화시킨다. 이 300년 가까이 존속했던 강성한 왕조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렵게 만든다. 내부의 환관권력독점은 이미 더 이상 심해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당나라 후기의 여러 황제들은 모두 환관이 세우고 끌어내렸거나 죽였다. 이 시기의 당나라의 황권은 이미 권위라고는 없었다. 그리고 외부에는 군벌혼전할거로 중앙정부는 이미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 버렸다. 당왕조는 명목상으로 통일왕조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와해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저 누군가 시작하기만 하면, 이 국가는 순식간에 와해될 지경이었다. 그런 사람이 마침내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바로 주온(朱溫)이다.


주온은 기실 보통 농민출신이다. 고대에 왕조말기의 난세가 되면, 백성들이 가장 힘들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게 되어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에 들어가서 먹고 산다. 여인은 그저 몸을 팔아 노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온도 이 길을 걷는다. 그는 군사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금방 두각을 나타낸다. 그의 실력과 지위는 계속 올라가고 마침내 북방 최대의 군벌세력이 된다. 주온은 지항할거군벌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현상에 만족하다가는 안개처럼 흩어져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새로운 주재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새로운 게임규칙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주온은 자신이 본받을 인물을 생각해낸다: 조조. 그는 민감하게 의식한다. 비록 천하가 곧 혼란에 빠질 것이지만, 당왕조는 그래도 명목상의 정통이다. 백성들오 여전히 당왕조를 그리워한다. 자신은 이런 역량을 이용하며 ㄴ된다. 그러면 큰 자원을 획득하여 다른 세력을 평정할 수 있을 뿐아니라, 동시에 자신에게 더 많은 명성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리하여, 당소종(唐昭宗)은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괴뢰황제가 된다. 이때 주온은 자신의 세력은 주로 하남에 있고, 당소종은 멀리 장안에 있어서 통제하기 불편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하여 주온은 당왕조의 도성을 낙양으로 천도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하면 당소종을 통제하기 편리했다.


당왕조의 천도후, 주온은 당소종을 따라 옮겨온 환관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병력을 보내어 환관들을 모조리 목졸라 죽인다. 이는 당소종에게 겁을 확실하게 주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당소종에게는 악몽이었다. 이렇게 하여, 당나라의 환관권력독점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주온의 이런 조치는 부지불식간에 환관세력을 제거하게 된다. 그후 주온은 자신의 신복을 파견하여 당소종을 감시한다. 황권은 철저히 그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이때 천하의 군벌들은 마침내 주온에게서 조조의 그림자를 본다. 그들은 분명히 알았다. 이렇게 계속 내려가면 천하는 언젠가 주씨의 것이 될 것이라고.


그리하여, 각로의 군벌들이 빈번하게 연락하고, 당소종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함께 주온을 토벌하려 한다. 그러나 이들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 주온의 수단은 그들보다 악독했다. 각로제후에게 출병의 명목을 주지 않기 위하여, 주온은 직접 부하를 보내 궁안에서 나이 겨우 38세의 당소종을 시해한 것이다. 고대에 군주를 시해하는 것은 엄중한 범죄이다. 그러나 주온은 대수롭지 앟게 여겼다. 이렇게 황제를 죽여버린 것이다. 그후 주온은 당소중의 아홉째 아들인 이축(李柷)을 새 황제로 옹립한다. 그가 당애제(唐哀帝)이고, 당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그리고 철저한 꼭두각시였다.


투쟁의 성과를 한번 더 공고히 한 후, 주온은 새로운 잠재적 적수를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당소종의 다른 아들들이다. 확실히 주온은 그들에게 부친을 죽인 원수이다. 아마도 기회만 닿으면 복수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주온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는 모양을 갖추어 다른 아들들을 모두 식사자리에 초대한다.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연출하듯이. 그러나 술기운이 어느 정도 오르자, 주온은 간사한 웃음을 드러낸다. 주온의 술잔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신호로, 일시에 잠복하고 있던 병사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당소종의 모든 아들을 죽여버린다. 당애종은 이런 광경을 보고도 그저 눈물만 흘릴 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심복대환을 제거한 후, 주온은 아예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밀어부치기로 한다. 그의 찬위를 반대하는 자들을 일망타진한다. 그리하여 주온은 조정에서 당왕실에 충성하는 삼십여명의 대신을 모두 붙잡아 백마역(白馬驛)으로 끌고 간다. 이들은 당왕조의 고굉지신들이고, 충절지사들이다. 이들은 차가운 바람과 비가 몰아치는 날에 그들과 일가족은 모조리 피살된다. 주온의 사병들은 그들을 죽인 후 모두 황하에 던져 넣는다. 일시에 황하의 물이 빨간 색으로 물들 정도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주온은 마침애 그의 일생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한다. 907년, 주온의 핍박하에 당애종은 정식으로 황위를 주온에게 선양한다. 이렇게 하여 나라를 세운지 289년만에 대당왕조는 막을 내린다. 주온은 이 가련한 망국의 군주도 그냥 놔두지 않았다. 당애종도 결국 주온에게 독살당한다. 죽었을 때 나이가 겨우 16세였다. 그러나 주온이 반평생 일궈서 얻어낸 황위에서 그다지 오래 즐기지는 못한다. 겨우 4년후에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칼을 맞고 죽는다. 그가 건립한 후량(後梁)은 단명정권이었다. 오대십국의 난세는 이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