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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삼국)

지도로 보는 삼국(三國): 12장의 지도로 본 군웅세력의 변화

by 중은우시 2019. 1. 31.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동한말기에 정국은 안정되지 못했다. 외척이 권력을 농단하고, 환관이 권력을 장악한다. 전쟁은 수십년간 지속되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요역과 병역의 부담이 무거워진다.


184년, 장각이 태평도를 창립하고,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연주, 예주의 8개주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군은 머리에 노란색 두건을 쓰고 있어서 황건군이라고 불렀다.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정부는 각지에서 의군을 모집했고, 동탁, 조조, 유비, 손견등이 모두 참가하여 황건적을 진압한다.





황건적의 난 이후, 대장군 하진은 환관과의 투쟁에서 패배하여 죽고, 동탁이 그 기회를 틈타 낙양으로 온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정을 장악한다. 동탁이 통제한 지역은 주로 경성 낙양과 장안 부근이다.


190년, 관동 각주군의 정부관리들은 상의하여 동탁을 토벌하기로 한다. 원소를 우두머리로 추대하여, 동탁을 토벌한다. 반동탁군의 세력은 3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산조연군(酸棗聯軍)은 연주(兗州), 예주(豫州)의 양로인마이고, 하내연군(河內聯軍)은 기주(冀州)의 인마이며, 노양연군(魯陽聯軍)은 형주(荊州)인마이다(역사상 18로제후는 없었다)




192년, 동탁이 부하에게 피살당한다. 다만 이때는 동한황제가 이미 통제력을 상실했고, 각지의 군웅들이 속속 자립하다. 조조, 원소, 도겸, 공융, 공손찬, 장양(張揚)등이 북방에 있었고, 남방에는 유언(劉焉)등 할거세력이 있었다.



194년, 원소가 최대의 세력이 되고, 원술도 강남의 넓은 땅을 점거한다. 유비는 마침내 서주(徐州)를 가졌고, 군웅중 하나가 된다




196년. 원소가 공손찬을 병합하여 실력이 크게 늘어난다. 조조는 천자를 데려가서, 허창으로 천도한다. 이후 조조는 황제를 끼고 제후들에게 명을 내린다; 유비는 여포를 받아들였으나 오히려 암산당하여, 소패(小沛)로 간다; 강남의 손책은 거병하여 처음에는 원술에게 병력을 빌려 패업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한다.




198년,  조조는 전후로 동탁의 잔여세력과 서주에 있는 여포를 제거하며 실력이 급증한다; 손책도 지역을 확대하여 이미 강동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200년,  공손찬, 장양이 원소에게 멸망당한다; 원술은 조조등 연합군에게 멸망당한다; 손권은 손책의 뒤를 이어 강남에서 이미 패자가 된다. 원소는 조조와 쟁패하나, 관도지전에서 패배하면서 조조가 천하통일의 우세를 확립하게 된다.




207년, 조조는 몇년간의 시간을 들여 원소의 잔여세력을 완전히 소탕하여 북방을 통일한다. 유비는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유표에게 투신한다. 나중에 삼고초려를 거쳐, 제갈량을 모사로 데려온다.



208년, 적벽대전으로 손유연합군이 승리를 거두고, 유비는 마침내 자신의 땅을 갖게 된다.



215년, 유비는 서천을 취하고, 조조는 한중을 차지한다. 손권은 남방을 통일한다. 적벽대전의 성과로 손,유는 형주를 나눠갖는다. 이렇게 하여 삼국정립이 기본적으로 형성되었다




263년, 조위의 사마소는 촉을 공격하여 촉한이 멸망한다. 2년후 사마소는 병사한다. 아들 사마염은 서진을 건립한다. 280년, 서진이 동오를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한다. 이렇게 하여 삼국시기는 끝이 나고, 진나라시대로 들어간다.




서진 태강2년(281년) 국토면적은 543만평방킬로키터에 달한다. 강역은 북으로 산서, 하북 및 요동을 가지고 남흉노, 선비 및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으로는 바다에 이르고, 남으로는 교주(지금의 월남북부)에 이르고, 서로는 감숙, 운남에 이르러, 하서선비, 강, 저와 이웃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