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이광요(李光耀) 사후의 싱가포르

by 중은우시 2019. 1. 18.

글: 수무(水無)


2017년 6월 싱가포르 '제일가정'이 이광요의 고거(故居)를 두고 말싸움을 벌였다. 현임 싱가포르 총리 이현룡(李顯龍)이 동생들과 서로 공격을 했다. 이위령(李瑋玲), 이현양(李顯揚)은 이현룡이 부친의 유언을 어기고, 고거를 이용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이현룡은 이현양의 처가 직접 부친의 최종유언작성에 관여해서 여러 의문이 있다고 맞받았다. 이렇게 저속한 유산분쟁과 후계자다툼으로 번져갔다.


2017년 6월 18일, 이광요의 막내아들 이현양은 이광요 고거를 철거한 후의 계획은 잠시 없고, 누나 이위령이 거기에서 여생을 보낼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이광요 고거 풍파가 5일간 지속된 후, 이현양이 집 철거후에 어떻게 토지를 처리할 것인지의 문제에 대하여 처음 의견을 밝힌 것이다.


현재 이광요이 차남인 이현양은 이광요 고거의 소유자이다. 2015년 3월 이광요가 사망한 후, 장남인 이현룡은 같은 해 시가로 고거를 동생 이현양에게 양도했다. 조건은 쌍방이 각자 집 시가의 절반의 금액을 자선기구에 기부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장래 고거배상 혹은 재개발로 인한 수익으로 인한 여하한 분쟁도 막기 위함이었다.


"내가 집을 산 것은 부모의 바램을 이루어주기 위함이었다. 이는 나의 유일한 목적이다. 나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만일 집을 성공적으로 철거한다면, 이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이현양의 말이다. "누나는 아직 거기에 살고 있다. 여생을 거기에서 마칠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전에 이현양과 이위령은 성명을 발표해서, 부친 이광요는 2013년 12월 17일 유언을 남겼는데, 구마례로(歐馬禮路, Oxley Road) 38호의 고거를 철거하는 것이 그와 부인의 공동바램이라고 했다. 다만 두 사람은 부친의 유언에 따라 고거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장애에 부닥친다. 이현룡이 고거를 기념관으로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영웅식의 숭비로 이광요의 영광을 소비하려는 것이고, 개인숭배는 부친 이광요가 생전에 결사반대한 것이다.


이광요는 2013년 12월 17일의 유언을 통해, 그가 사망한 후, 딸 이위령은 계속 고거에 거주할 수 있게 하라고 했다. 만일 딸 이위령이 계속 거주하려고 한다면, 집은 이위령이 이사나간 후에 즉시 철거하라는 것이다.


2017년 6월 14일, 이현양과 이위령은 개인 SNS에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형(오빠)가 없는 곳이 없다." 이현룡이 직권을 남용하여, 부친이 남긴 정치적 유산을 소비한다고 비난한다. 그들은 이현룡에 대하여 '신뢰를 잃었다'며, 싱가포르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다. 이현양은 심지어 이현룡이 '국가조직'을 이용하여 자신을 상대할까봐 우려했다. 그리하여 미래에 자신이 부득이하게 싱가포르를 떠나야할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이에 대하여 현임 싱가포르 총리인 이현룡은 이렇게 말한다: 의회구성원이 부친에게 건물보존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드린 후, 부친은 이미 생각을 바꾸었다고. 건물철거의 조항을 유언에서 삭제하는데 동의했다고. 그런데 왜 철거조항이 다시 부친의 최종 유언에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6월 16일, 이현룡은 공개성명을 발표하여, 부친이 생전에 7개 판본의 유언을 남겼고, 최종 판본은 돌연 제수 임학분(林學芬)이 직접 참여하였다고, 그리고 이 유언은 짧은 24시간내에 성급하게 초안되었고, 국회와 나머지 사람들에게 통보되지 않았다고. 이현양이 왜 황급히 부친에게 유언을 고치도록 요구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또한 여동생 이위령은 부친이 그녀에게 두배의 유산을 주기로 약속했는데, 최종판본 유언에는 세 자녀가 균분하도록 바뀌었다고 토로했다.


이현양은 페이스북에 이현룡이 거짓말을 한다고 직접 말한다.


이현양은 이현룡이 거짓말투성이이며, 형이 한편으로 국회에서는 이광요의 건물철거에 대한 입장이 여러 해동안 변함이 없다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이광요의 뜻을 존중해달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비밀위원회를 만들어, 유언의 최종판본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다. 이현룡은 차라리 부친의 유언을 어길 지언정 집을 남겨두려고 한다. 이것은 단지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2015년 3월 23일, 91세의 싱가포르 국부 이광요가 사망한다. 마침 싱가로르 건국 50주년이 되는 해였고, 이현룡이 이끄는 인민행동당은 "회구온전패(懷舊溫情牌)"를 내걸었고, 싱가포르 매체도 전혀 질리지 않고 이광요의 소박한 모습의 사진을 방송하며, 싱가포르의 휘황한 역사에 대한 TV프로그램을 방송했다. 같은 해 거행된 선거에서 인민행동당은 전승을 거두었고, 89석의 의석중 83석을 차지하며, 득표율은 69.86%에 이른다.


이광요의 장례식은 이씨가족 3대가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좋은 기회였다.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는 사람은 이현룡의 아들 이홍의(李弘毅)뿐아니라 이현양의 장남 이승무(李繩武)도 있다. 이 가정분쟁의 진실한 원인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같다.


이현룡이 아들 이홍의는 불가피하게 가정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든다. 이전에 그는 관심을 그다지 받지 못하고 있었다.


2006년, 이홍의는 래플스초급학원에서 '이광요수학과학상"등 3개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그리고 공공서비스위원회 해외우수장학금을 받아, 미국 MIT에서 경제학을 공부한다. 싱가포르장학금의 조건에 따라,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구글에서 제품매니저로 일했고, 그 후에 싱가포르 자통신발전국에서 일한다.


6월 15일, 가족들의 질책에 대하여, 이홍의는 개인 SNS에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정치에 흥미가 없다." 네티즌들은 속속 지지를 표시한다.


이현룡의 아들 이홍의 외에 이현양의 장남 이승무도 마찬가지로 관심을 받고 있다. 이승무는 과수석으로 옥스포드대학을 졸업한다. 이는 싱가포르유학생이 옥스포드에서 거둔 최고의 성적이다. 그는 또한 '터키'세계변론대회에서 최우수변론상을 받는다. 2012년 "필리핀"세계변론대회에서는 독립심사위원이 된다. 스탠포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번 분쟁에서, 이승무는 부친의 편에 선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올렸다; "지금까지, 나는 최대한 싱가포르 정치와 인연을 맺는 것을 피해 왔다. 그러나 이번은 예외이다....최근 몇년동안 나의 직계친족은 권력남용이 상황이 갈수록 엄중해지는데 대하여 우려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홍의와 마찬가지로, 이승무도 마찬가지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이씨 제3대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싱가포르에 불리하다. 국가는 가정보다 커야 한다."


다만, 싱가포르에서 가정과 국가, 공과 사의 분계선은 아주 모호하다. 이씨가족과 싱가포르정부간의 관계를 나누기는 아주 어렵다. 이번 분쟁에서 이광요의 역할이 '부친'인지 아니면 '개국총리'인지 불분명하다.


총리를 맡은 이현룡을 제외하고, 이씨가족 구성원들도 일부 독점기업과 중요부서의 요직을 맡고 있다. 이광요가 총리직무를 사임한 후, 계속하여 싱가포르정부투자회사(GIC)>의 주석을 맡았고, 91세의 고령이면서도 이광요는 여전히 GIC의 고급자문역을 맡고 있었다. 이현룡은 부친의 뒤를 이어 GIC의 주석을 맡아 계속하여 국가의 경제명맥을 장악하고 있다.


2002년, 이현룡의 둘째부인인 하정(何晶)은 정부가 지배하는 테마섹을 넘겨받았고, 1년만에 회사의 주주에 대한 이익보상율을 3%에서 46%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여러번 포브스 글로벌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랭킹에 들어가곤 했다.


작은 아들 이현양은 싱가포르 통신기업 "싱가포르통신"의 CEO를 맡고 있다. 해외시장확장을 통하여 회사이익을 2배나 증가시킨다. 현재는 싱가포르민항국 주석을 맡고 있다. 이현양의 처인 임학분은 싱가포르의 저명한 경제학자 임숭야(林崇椰) 교수의 딸로, 캠브리지대학 법률학과를 졸업했다. 싱가프로 스탠프도로펌을 창업하고 이사를 맡고 있다.


싱가포르는 정치가 청렴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경제명맥을 정부가 장악한다. 많은 정치가들은 사업 경험이 있다. 혹은 핵심기업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이광요정권이 강권정치에 불만을 있더라도 그가 사망한 후, 거의 모든 싱가포르사람들은 자원하여 검은 넥타이를 매어 이 정치거인을 애도했고, 그가 싱가포르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감사했다.


만일 동남아에서 생활해보면 아주 명확하게 싱가포르와 다른 동남아국가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태국, 월남과 말레이시아등의 국가에서는 현지인들이 거의 계속하여 외국인들에게 조심하라고 일깨워준다. 몸에 귀중품을 가지고 다니지 말고, 절도나 강도를 대비하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있을 때는 법률이 가혹한 도시국가에서 비로소 마음을 놓고, 가장 기본적인 안위는 걱정하지 않게 된다.


2016년 이광요의 사망 1주기때, 이위령은 일찌기 오빠 이현룡을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1개월만에 100여건의 기념활동을 하다니, 이는 이현룡이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목적을 '왕조건립'에 있다고 비판했다. 이현량, 이위령 두 사람은 이현룡이 '이광요의 가치관'을 배신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광요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정치왕조를 건립하는데 관심이 없다. 싱가포르도 관심이 없다. 우리는 가장 우수한 사람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성공할 기회가 가장 높아진다." 비록 이씨 제3대중에 아직 정치에 참여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광요는 일찌기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들이 흥취가 있다면, 나는 그들이 정치적 재능이 있으면 하고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이씨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광요의 이념에서, 우수한 유전자는 우수한 후손을 배양한다. 이씨가족은 거의 엘리트가정이 대표이다. 이광요와 처는 영국 캠브리지에서 만났고, 처 가옥지(柯玉芝)는 영국 캠브리지대학 법률학과의 1등영예학위를 받았다고, 처음으로 1등영예학위를 받은 여성이다. 3자녀도 모두 양호한 교육을 받았고,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모두 좋은 성적을 냈다.


이광요의 '우수한 유전자'론도 타격을 받은 적이 있다. 장남 이현룡이 첫째부인 황명양(黃明揚)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낳았는데, 황명양이 둘째아들 이의붕(李毅鵬)을 낳은 후 3부남에 심장병으로 별세한다. 이의붕은 백화병(白化病)과 자폐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이 도와주어 겨우 학사학위는 받았지만, 공중에 나타나는 일은 드물다. 수시로 소문이 도는데, 황명양은 '완벽한 가정'을 위하여 '수퍼베이비'를 낳을 임무를 완정하지 못하여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것이다.


이광요가 죽은 후, 이현룡은 동생들과 자주 이광요의 정신유산승계를 놓고 분쟁이 일어났다. 다만 이광요의 유산이 무엇인가? 설사 친아들딸이라고 하더라도 부친의 진정한 생각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광요가 만든 엘리트노선은 이번 가정분쟁으로 인하여 동요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저 이번 사태로 사람들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누가 엘리트인지를 어떻게 판단하는가?


대다수의 싱가포르 민중들이 보기에, "제일가정"이 공개적으로 페이스북에서 싸우는 것은 자랑스럽지 못한 일이다. 이광유에 대한 감정이 충만한 중노년층과 비교하면, 젊은 층은 싱가포르의 미래에 더욱 관심이 있다. 과거가 아니라.


싱가포르의 과거는 휘황하다. 다만 지금 많은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누가 싱가포르를 이끌고 새로운 도전을 극복할 것인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일찌기 어느 싱가포르의 젊은 학생이 탄식한 것처럼: "싱가포르는 운이 너무 좋다. 다만 우리가 영원히 이렇게 운이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