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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역대미국주중대사의 에피소드: 조지 부시

by 중은우시 2016. 3. 21.

글: 요가(曜歌)


1973년, 미중 양국은 서로 연락사무소를 개설했다. 명목상으로는 대사관보다 급이 낮지만, 미중관계의 민감도나 중요성으로 인하여 모택동은 이렇게 평가했다: 연락사무소는 대사관보다 대사관이다.


1974년 9월 조지 부시는 포드 대통령에 의하여 주중연락사무소 대표가 되러 제1대 대표인 데이비드 부르스의 후임이 된다. 원래 포드는 부시를 영국 혹은 프랑스에 대사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것은 외교가로서는 이상적인 곳이다. 그러나 부시는 의외로 당시 미국인들이 보기에 멀고 신비한 중국을 선택한다.


부시는 나중에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영국대사로 나가는 것은 누구나 탐내는 자리이다 그러나 중국은 더욱 도전적이었다. 중국은 막 굴기하고 있었고, 미중관계는 앞으로 몇년내에 관건적인 시기로 들어갈 것이다. 이는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다. 나중의 역사는 증명한다 부시의 안목이 뛰어났다는 것을 그는 예상외의 선택으로 결국 성공했다.


1974년 10월 21일 부시부부는 베이징으로 온다. 건국문외 외국대사관구역에 있는 미국주중연락사무소대표의 관저로 들어간다. 처음에 부시가 외출할 때는 호화로운 크라이슬러 승용차를 탔다. 1개월도 되지 않아 그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다. 황사가 심한 날에는 마스크를 쓰고, 많은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북경의 길거리와 골목을 편안하게 오갔다. 그는 테니스를 좋아했고, 국제구락부의 테니스장에 자주 나타났다. 나중에 테니스를 좋아하는 중국지도자 완리(萬里)와 게임을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테니스친구가 된다. 매번 일요일이면, 부시 부부는 숭문문교회(崇文門敎堂)로 가서 예배를 드렸다.  


1976년 여름, 부시의 아들 조지, 닐과 마빈 그리고 딸 도로시는 베이징으로 와서 여름을 보낸다. 도로시는 심지어 8월 18일 자기의 생일날 숭문문교회에서 세례를 받는다. 부시는 자신의 <북경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중국의 다음 대 지도자를 보기를 희망했다. 그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다만 모두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정력이 약간 과잉이었다. 정치적인 직관은 나에게 말한다. 이 일의 재미있는 점은 일을 최대한 많이 해야하고, 최대한 많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1975년, 그는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 리셉션을 거행한다. 미국국무원은 이번 활동의 경비를 주지 않아서 그는 자신의 비용으로 이번 이벤트를 연다. 그 결과 제1회 미국독립일북경리셉션이 순조롭게 거행되고 참가자는 500명가량이 된다. 부시의 희망은 헛되지 않았다. 1974년 모택동이 키신저를 접견할 때, 접견에 참석한 부시에게 따로 인사를 한다: "너는 반드시 나를 보러 와야 한다." 1975년 12월 1일 미국대통령 포드가 중국을 방문한다. 부시는 이 기회에 모택동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여러번 등소평을 만난다. 모택동이 포드와 회견할 때, 부시가 미국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이미 공표되었다. 그래서 모택동은 회견에 참석한 부시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승진했구나." 이어서 포드 대통령에게 말한다. "우리는 정말 그가 떠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부시는 이임전에 중국지도자들과 작별할 때, 등소평이 그를 만난다. 그리고 점심식사에 초대한다. 부시는 중국정부에서 그가 중앙정부부장으로 가는데 불만이 있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등소평은 그에 대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동하고 부시에게 말한다: "네가 언제 다시 방문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환영할 것이다. 설사 중앙정부부장의 신분으로 오더라도 우리는 환영한다." 이어서 하는 농담에 부시는 깜짝 놀란다. 등소평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너는 나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냐?" 말을 마치고 부시를 향하여 신비롭게 웃었다. 부시는 급히 아니라고 부인한다.


1977년, 부시는 개인신분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역사적으로 티벳을 참관한다. 그의 수행원중에는 82살된 원로기자 로웰 토마스를 데려갔다. 부시일행이 '티벳혁명전람관'을 관람할 때, 벽에 로웰 토마스의 사진이 있었다. 설명원은 부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미국중앙정보부의 간첩이다. 부시는 아주 난감했다. 그래서 설명원에게 묻는다: "너는 무슨 근거로 그가 간첩이라고 하느냐?" 해설원은 그 자리에서 로웰 토마스가 쓴 책 <이 세계의 밖에서>를 꺼내서 설명한다: "이것은 토마스 부자가 1950년 티벳에 와서 활동한 후에 쓴 책입니다. 보고난 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습니다." 부시는 책을 받아들고 계속 참관했다. 그날 부시는 책을 수행인원에게 건네주면서 말한다. 토마스에 대한 지적은 근거가 있다. 나는 예전에는 몰랐다. 중국측 인원이 말한다.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역사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방문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이 세계의 밖에서>에서 토마스는 자신이 티벳에서 활동하기 전에 어떻게 정부부서와 연락하고 임무를 받았는지를 적었다. 티벳에 도착한 후 티벳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무장항거하도록 선동한 일을 상세히 언급했다.


그후 부시는 계속 승진하여 백악관에까지 들어가서 중국에서 지명도가 가장 높은 미국주중대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