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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송휘종)

송휘종이 송흠종에게 양위한 경위

by 중은우시 2019. 1. 4.

글: 문재봉(文裁縫)


사료기록에 따르면, 송휘종에게는 32명의 아들이 있다. 그 중 조환(趙桓)은 장자(長子)이며, 적자(嫡子)이다. 그는 유일한 황후 소생의 황자이다.

기런 혁혁한 출신으로 인하여, 출생때부터 조환은 표준적인 후계자의 길을 걷는다. 먼저 왕에 봉해지고, 다시 태자로 세워진다. 착실하게 후계자로서이 수업을 받으면서 송휘종의 뒤를 잇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아들에 대하여 송휘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간의 관계는 아주 좋지 못했다. 많은 갈등과 틈이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원인으로 이들 부자는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을까?

옛날 유방의 말을 빌리자면, "불류아(不類我)!"라는 것이다.

현재의 말로 하자면, "이 아이는 나를 닮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송휘종은 취미가 많은 황제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외에 이 황제는 뭐든지 할 줄 알았다. 금기서화(琴棋書畵), 취랍탄창(吹拉彈唱) 기마축국(騎馬蹴鞠), 품차음식(品茶飮食), 심지어 골동품감상까지, 이 황제는 모두 전문가였다.

송휘종은 이런 것들을 좋아할 뿐아니라, 이들 분야에 아주 깊은 조예를 지니고 있었다. 감히 '대가급'의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예를 들어, 새를 그릴 때, 송휘종은 아주 자세히 관찰했다. 그는 이런 것까지 알았다. 공작새가 대에 오를 때면 왼쪽발을 먼저 내딛는다는 것을. 지금까지도 미술대학의 과목에서는 이 사례를 들어서 얘기하곤 한다.

비록 부친은 이런 것들을 좋아했지만, 이들 분야에 태자 조환은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삼조북맹회편>에 따르면, 태자 조환은 혼자 방안에 앉아서 어항 속의 물고기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한번 보면 하루종일 앉아 있었다. 다른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아무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를 보면, 이 무료하고 재미없는 아들을 송휘종은 절대 좋아하지 않았을 것같다.

이런 일을 제외하고도, 태자 조환의 여러가지 생활습관은 부친과 정반대였다.

예를 들어, 송휘종은 호화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고, 연회를 즐겼다. 그러나 조환은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호화스러운 연회를 즐기지 않았다.

사료 기재에 따르면, 반드시 출석해야하는 황실연회, 제사활동, 명절주연등을 제외한 나머지 연회에는 태자가 핑계를 대고 가지 않을 수 있으면 가지 않았다. 설사 억지로 참가한다고 하더라도, 태자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송휘종등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흥을 깼다. 이렇게 오래되니 황제도 태자를 연회에 참가하지 말도록 하게 된다.

그리고, 송휘종은 여색을 즐겼다. 재위때 궁안에는 도처에 미녀가 깔려 있었고, 황제는 매일 그녀들과 즐기며 놀았다. 이와 반대로, 태자 조환은 여색을 아예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는 시끌벅적한 미녀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조환이 등극한 후, 즉시 성지를 하나 내리는데, 바로 6000여명의 궁녀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들 미녀들은 모두 궁중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송휘종은 도교를 좋아했고, 매일 장생불로를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태자 조환은 불교를 좋아하여, 매일 청심과욕(淸心寡慾)의 생활을 보내면서 장생불로라는 황당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욕했다.

당연히 태자가 욕한 것은 사기치는 가짜도사들이다. 그러나 무형중에 자신의 부친에게도 밉보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쨌든 도사들이 사기꾼이라면, 그들을 믿는 황제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이렇게 하여, 부지불식간에 태자와 황제의 틈은 점점 벌어지게 되고, 골은 점점 깊어지게 된다. 결국 한 사람의 도움으로, 이 부자는 철저히 결렬된다. 그는 바로 송휘종이 가장 총애하던 아들인 태자 조환의 셋째동생 운왕(鄆王) 조해(趙楷)였다. 

송휘종이 이 아들을 좋아하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때문이다. 류아(類我)! 즉 나를 닮았다는 것이다.

사료 기재에 따르면, 조해는 '작은 송휘종'이다. 그는 송휘종과 같은 취미와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송휘종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조해도 좋아했고, '청출어람'의 면모까지 있었다.

그외에 조해는 재능이 뛰어나서, 일찌기 '장원'을 하기도 해서, 송휘종이 괄목상대한다.

원래, 송나라에는 이런 명문의 규정이 있다. 황실자제는 과거에 참가할 수 없다고. 목적은 그들이 '근수루대선득월(近水樓臺先得月)"해서 '여민쟁리(與民爭利)"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쨌든 황실자제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고, 그들이 출생하면 이미 돈, 권력, 재물이 따라왔다. 그런 상황이니 과거에 참가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다른 황실구성원들은 흥미가 없지만, 조해는 흥미가 많았다. 그는 과거시험에 참가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재능과 실력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생각을 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조해는 가명을 이용하여 과거시험에 참가한다. 시험관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하에서 자신에게 얼마의 점수를 주는지 알고 싶었다. 시험을 치른 후, 조해는 이 일을 부황 송휘종에게 말씀드린다.

이치대로라면 황자가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르게 되면, 다른 황제같은 경우 황자를 한바탕 혼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험지를 찾아서 찢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송휘종은 신기한 일을 좋아하는 황제이다. 그는 그 말을 듣자,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동의한다. 송휘종도 보고 싶었다. 자신의 황자가 도대체 얼마의 점수를 받게 될지.

며칠이 지난 후, 예부 관리가 시험채점을 마쳤다. 송휘종은 특별히 명을 내려 먼저 방을 내걸지 말고, 과거응시생들의 시험지를 자신에게 가져와보라고 한다. 친히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송휘종은 시험답안지를 열어본 후 크게 기뻐한다. 왜냐하면 첫번째 나온 것이 바로 자기 아들의 답안지였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조해가 바로 이번 과거의 장원이라는 것이다.

황자가 전국에서 1등을 차지하다니, 그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놀란 나머지, 황자의 스승들을 불러모은다. 그리고 그들에게 보여준다. 이번 과거시험 장원의 글이 어떠한지. 스승들은 읽어보고나서, 글이 아주 좋다고 말하며, 장원이 될만하다고 한다.

송휘종은 가가대소하며 말한다: "너희들이 알아맞춰봐라. 이걸 누가 썼는지?"

스승들은 얼굴에 의문을 품고 말한다: "바로 XX가 쓴 게 아닙니까. 시험답안지에 그가 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송휘종은 크게 웃고나서 말한다: "아니다. 이것은 삼황자가 쓴 글이다." 

말을 마치고 그는 삼황자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과거시험에 참가한 것을 얘기해준다. 

스승들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삼황자가 장원을 하다니. 정말 재주가 뛰어나구나. 그들은 즉시 황제에게 축하의 뜻을 전하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청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이상 삼황자를 가르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삼황자 조해가 장원이 되었지만, 관례에 따라, 그는 과거에 참가할 수 없는 사람이므로, 송휘종은 그의 성적을 취소하고, 2등 방안을 장원으로 올려준다.

비록 아들이 장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 사건을 거치면서, 송휘종은 더욱 조해를 좋아하게 된다. 그후 크고 작은 연회에 이들 부자는 모두 같이 모습을 나타낸다. 각종 상사(賞賜)에서도 당연히 조해가 빠지는 법이 없었다. 조해는 당년의 팔현왕인 셈이다.

그외에 이 삼황자를 위하여 송휘종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관직을 하나 내려준다. 황성사도지(皇城司都知).

이 임명은 남다르다.

황성사는 황성의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이다. 청나라의 구문제독과 유사하다. 이 부서의 장병은 모두 황제의 호위무사들이다. 그들은 황제의 안위를 지키고, 황제신변을 보호하는 마지막 보루였다.

이를 보면, 황제가 조해를 황성사도지로 임명한 것은 어느 정도 '취옹지의부재주(醉翁之意不在酒)"의 의미가 있다.

그리하여 송휘종의 이런 거동은 황궁내의 후계다툼을 불러오게 된다. 조해와 태자의 관계는 바로 미묘해지기 시작한다.

당시에 어느 대신도 알 수가 없었다. 송휘종이 후계자를 선택할 때 명정언순(名正言順)하게 태자를 고를 것인지, 아니면 총애하는 삼황자를 고를 것인지.

만일 천하가 태평하다면, 그리고 송휘종이 선위(禪位)하지 않았다면, 이 황위가 마지막에 누구에게 갈 지는 정말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송휘종의 선위로 이 황위는 태자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어쨌든 태자에게 전위하는 것이 명정언순하다. 더욱 큰 동란도 일으키지 많는다.

그러나, 눈앞에서 황위가 형에게 넘어가는 것을 보고 조해는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그는 놀라운 거동을 하게 된다. 한번 싸워보려고 한 것이다.

사료 기재에 따르면, 선위하는 그날 밤, 송휘종은 태자에게 즉위를 요구하고, 태자 조환은 결사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온다. 그는 몰래 몇몇 시종을 데리고 황궁으로 들어가 부황을 만나려고 했다.

이치대로라면 조해는 어림군의 총사령관이므로, 그가 진궁하고자 하면 어림군이 감히 막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송휘종이 특별히 명을 내려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성지가 있으므로, 어림군은 조해를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조해는 황궁으로 들어가지 못하자, 어림군과 한동안 말다툼을 벌인다. 그래도 어림군이 들여보내주지 않자, 조해는 어쩔 수 없이 낙담한채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조해가 비록 입궁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이런 거동은 조환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셋째동생의 행동을 들은 후, 조환은 불안에 빠진다. 그는 잘 알고 있다. 황제라는 것은 네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다. 만일 셋째동생에게 양보하여 즉위하게 되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그리고 중국역사의 일관된 전통에 따르면, "폐태자(廢太子)"는 어떤 지경에 처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차라리 내가 하는게 낫겠다.

그리하여 셋째동생의 '어시스트'로 태자 조환은 마침내 즉위에 동의하고, 황제가 된다.

선화7년(1125년) 십이월 신유일, 송휘종은 태자에게 황위를 선양하고, 조환이 황제에 오르니 바로 송흠종이다. 연호를 '정강(靖康)"으로 고친다.

이제, 선위는 마침내 이루어졌고, 새 황제가 정신을 차리고 금나라의 공격을 막아내야할 차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