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한)

누란(樓蘭): 한나라에 맞섰던 실크로드의 소국(小國)

중은우시 2018. 12. 28. 22:16

글: 풍장안량(風長眼量)





청해장운암설산(靑海長雲暗雪山)

고성요망옥문관(孤城遙望玉門關)

황사백전천금갑(黃沙百戰穿金甲)

불파누란종불환(不破樓蘭終不還)


이것은 당나라초기 왕창령의 저명한 변새시(邊塞詩)이다. 어떤 사람은 기이하게 여길 것이다. 당나라때 누란이 아직 남아 있었단 말인가? 당연히 없다. 그러나 누란은 한나라때 일지기 한나라의 악몽중 하나였다.


누란이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사기>이다. 위치는 현재의 신강 파음곽릉 몽골족자치주 약강현의 북쪽이다. 나포박(羅布泊)의 서북쪽이다. 공작하(孔雀河)의 하도를 따라 남쪽으로 7킬로미터를 가면 나온다. 누란국은 기실 크지 않았다. 서역36국 중에서도 면적이 아주 큰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란의 지리적 위치는 실로 너무 중요했다. 누란은 한나라가 하서사군으로 나가는 중요한 지점이다. 북으로는 흉노가 있고, 서로는 서역이다. 만일 흉노가 누란을 장악한다면, 중원과 서역으로 모두 진격할 수 있다. 물러나면 대막에서 지킬 수 있다. 특히 한나라와 서역간의 정치경제적 연결을 끊을 수 있다. 생각해보라. 서하가 하서를 점령하면서, 북숭과 서역의 통로를 차단한 결과가 어떠했는지.


한나라는 전반에 70년간 힘을 기르고, 서역에 대하여 무슨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한무제때, 병력이 강해지고, 국고가 충실해지자, 기회가 온 것이다. 한무제는 서역과 통하려는 위대한 구상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란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중요한 교통요지에 높이 1미터의 쇠난간이 가로막고있으니 어떤 수레도 지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누란은 계속 흉노에 신복(臣服)해왔다. 하나라에 대하여는 흉노라는 배경이 있으므로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 한무제가 장건을 파견하여 서역의 대월지(大月氏)와 연락하여 흉노를 치는 건을 논의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나라 사신을 보내면 보내는 만큼 모두 누란국에 의해 막혀버린다.


처음에 누란은 한나라사신을 그저 냉대했다. 상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누란왕은 흉노에 알렸다. 한나라사신이 누란에서 가로막기만 하면, 누란왕은 바로 흉노에 그 사실을 알리곤 했다.


이것들만 가지고 죽을 죄라 할 수는 없다. 한무제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은, 한나라사신단을 누란왕은 그저 살찐 돼지로 보았다는 것이다. 거핏하면 살인을 저지르고 물건을 빼앗았다. 토비굴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무제는 천고일제가 되고 싶었고, 체면을 극히 중시했다. 누란이 천하인의 앞에서 그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버리니,어찌 그냥 있을 수 있겠는가? 한무제는 대노한다. 경주(敬酒)를 안 마시겠다면 벌주(罰酒)를 내리는 수밖에.


이는 그저 누란의 안목이 근시안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한나라가 흉노만은 못하다고 하더라도, 큰 나라여서 작은 누란이 버텨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한무제는 대군을 파견하여 누란을 토벌한다. 코끼리를 보내서 여우를 밟아버리게 하면, 여우는 금방 코끼리의 상대가 안되는 것을 자각하고 바로 잘못을 뉘우치고, 신복하게 된다.


누란이 주군을 바꾸었다. 흉노가 가만히 동의할 리가 없다. 역시 병력을 보내서 위협한다. 누란왕은 머리가 아팠다. 두 대국들 중 누구에게도 밉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누란은 할 수 없이, 재수없는 왕자 한 명을 흉노에 인질로 보낸다. 누란의 뜻은 아주 분명하다: 나는 '중립'을 원한다. 두 어른들게서 살게만 해달라.


아마도 역사의 관성때문이겠지만, 누란과 흉노는 항상 같은 입장이었다. 이광리가 대완을 정벌할 때, 누란은 흉노의 지시를 받아, 한군을 기습한다. 다행히 한군이 적시에 발견하여, 샛길로 빠져서 누란을 멸망시킬 수 있었다. 누란왕은 사정한다: "노신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흉노로부터의 압력이 너무 컸습니다. 소국이 대국의 사이에서 그저 말을 들을 수밖에 없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한무제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이해하고 누란왕을 풀어준다.


노왕이 죽은 후, 새왕을 세워야 했다. 한나라에 인질로 잡혀 와 있던 왕자를 귀국시켜 왕위를 승계하려 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누란왕자는 거절한다. 한나라는 경제도 발달하고, 물자도 풍부했다. 귀국하면 제대로 갖춰있지가 않다. 한나라에서는 방법이 없었고, 할 수 없이 새로운 왕을 찾는다. 생각지도 못하게 새 왕도 금방 죽고 만다. 이때 흉노는 기회를 잡았다고 여기고, 흉노에 인질로 잡혀 있던 왕자를 급히 누란으로 돌려보내 새 왕으로 앉힌다. 한무제는 그 소식을 듣고 중간에 가로채려고 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한다. 다행히 그 후에 한나라와 흉노간에는 큰 전쟁이 없었다. 누란도 중간에서 골치아픈 일이 없었다.


그러나, 신왕은 흉노와 아주 가까웠다. 한나라가 누란에게 백룡퇴사막지역을 한나라사신들에게 주어서 음용수를 제공하게 하라는 명령을 거절한다. 한나라는 대노하여 사신을 보내 질책한다. 누란왕은 흉노를 등에 없고 한나라에 대하여 냉대한다. 한소제가 즉위한 후, 명신 부개자(傅介子)를 누란, 귀자(龜玆)등의 소국으로 보낸다. 이들은 암중으로 한나라사신의 노선을 흉노에게 알리고, 그 결과 한나라사신들이 납치되어 살해당한다. 부개자는 대노한다. 그리하여 곽광에게 이 소국을 없애서 위명을 세우자고 건의한다. 처음에 선정된 곳은 귀자였다. 곽광은 거리가 너무 멀다고 여겼다. 누란이 가까우니 그곳부터 쳐서 양식을 마련하려고 했다.


부개자는 중원의 특산물을 가지고 몇 대의 수레를 끌고 누란으로 간다. 누란왕은 돈을 보자 눈이 벌개진다. 강탈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부개자가 더 빨랐다. 칼질 몇번에 게임을 끝이 난다.


누란국이 한나라에 정복되고, 그 후에 한나라에 있던 왕자가 돌아가 새로이 왕에 앉는다. 한나라의 신하국이 되고 국명도 선선(鄯善)으로 바꾼다. 신왕은 내가 즉위한 후에 흉노가 와서 나를 죽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한나라는 한참 생각한 후에 누란에 군대를 주둔시키겠다고 한다. 한군은 누란에 주둔할 뿐아니라, 옥문관에서 누란에 이르는 연도에 봉수대를 만든다. 흉노와 서역제국을 토벌하는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후 한나라가 점점 쇠락하하고, 위진 및 전량(前凉)시기에 누란은 서역장사(西域長史)의 치소가 된다. 동한이후, 당시의 타림강 중류의 강이 물길을 바꾸었기 때문에, 누란은 심각한 물부족에 시달린다. 비록 한때 엄청난 인력과 물력을 들여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하도를 준설하기까지 하면서 누란의 물부족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역시 자연을 이기지는 못했다. 누란성은 물부족으로 버려지게 된다. 북위가 선선국을 멸망시키면서, 누란국은 철저히 멸망한다.


누란국은 한나라때 어쩔 수없이 장두초(墻頭草)였다.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서풍이 불면 동쪽으로 쓰러졌다. 겉으로 보기에 입장이 없는 것같았다. 실제로 이런 소국에게 입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생존하는 것이 가장 큰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