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기래(起來)! 불원주노예적인민(不願做奴隸的人民)!
파아문적혈육축성아문신적장성(把我們的血肉築成我們新的長城)
중화민족도료최위험적시후(中華民族到了最危險的時候),
매개인피박착발출최후적후성(每個人被迫着發出最後的吼音)
기래(起來)!기래(起來)!기래(起來)!
아문만중일심(我們萬衆一心), 모착적인적포화(冒着敵人的炮火), 전진(前進)!
모착적인적포화(冒着敵人的炮火), 전진(前進)!전진(前進)!전진(前進)! 진(進)!"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는 인민들이여.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새로운 장성을 쌓자.
중화민족이 가장 위험힌 때가 되었을 때
모든 사람은 마지막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우리는 한 마음이 되어, 적의 포화를 뚫고, 전진하자.
적의 포화를 뚫고, 전진하자, 전진하자, 전진하자."
모두 알고 있다시피, 이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가사이다. 국가의 원래 명칭은 <의용군행진곡>이고 저명한 희극가인 전한(田漢)이 1935년 2월 창작한 영화극본 <풍운아녀>의 주제가이다. 인민음악가인 섭이(聶耳)가 곡을 붙였다.
1949년 9월, 북평(北平, 북경)에서 제1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개최되어, 중화인민공화국중앙인민정부의 수립을 준비했다. 국가를 토론할 때, 마서륜(馬敍倫)은 일찌기 군중들 사이에 불려온 <의용군행진곡>을 국가로 삼자고 건의했고, 참석자들이 만장일치로 찬동했다.
1966년 2월, 강청(江靑)과 그의 일당은 전한이 쓴 경극 <사요환(謝瑤環)>의 구절을 문제삼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그를 '반당반사회주의'의 대독초(大毒草)라고 규정한다. 1966년 12월, 전한은 체포되어 감옥에 드어가고, 1968년 12월 10일, 전한은 감옥에서 한을 품고 참혹하게 죽는다.
전한이 타도된 후, 그의 작품도 '독초'가 되어 비판받고 금지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각종 장엄한 경우에 연주해야 했다. 그래서 이런 기이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당시의 국가는 곡만 있었고 가사가 없었다. 연주만 할 수 있지 부를 수는 없었다. 이것은 '사상유례없는' 괴이한 일이었다.
'사인방'이 분쇄된 후, 여전히 문혁때 '극좌사상'의 영향으로 일부 사람은 국가가 이미 새로운 역사시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의용군행진곡>의 가사는 이미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섭이의 곡에 새로 가사를 채워넣자고 주장한다. 1978년 국가가사를 개정할 것에 대한 가 제5기 전인대 1차대회에 상정되고, 대회에서는 국가정집소조(國歌征集小組)를 구성한다. 최종적으로 이환지(李煥之)등이 쓴 가사를 대회대표단에 올려서 국가를 수정한다
당시, 대표들이 신국가가사를 토론할 때 두 가지 의견이 있었다: 하나는 찬동하는 것으로 신가사는 기세가 웅위하고 고도로 개괄되어 있으며, 모주석의 기치와 당의 영도를 찬양하고, 공산주의의 내일로 향하자는 기본내용이 있어서 아주 좋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가사의 내용, 문자운율이 모두 다듬어져 있지 못해서, 억지로 끼워맞춘 느낌이어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두 가지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했지만, 국가가사를 수정해야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 국가를 수정하는 것은 이미 고칠 수 없는 일이 된 것이다. 그래서 국가정집소조는 반대의견을 무시하고, 신국가가사를 대회에 올려서 통과시키기로 건의한다. 1978년 3월 5일, 제5기 전인대 제1차대회는 거수표결의 방식으로 신 국가가사를 통과시킨다. 신국가의 작자는 "섭이곡(聶耳曲, 집체전사(集體塡詞)"라고 표시한다. 가사전문은 다음과 같다:
전진(前進)! 각민족영웅적인민(各民族英雄的人民)!
위대적공산당(偉大的共産黨), 영도아문계속장정(領導我們繼續長征)
만중일심분향공산주의명천(萬衆一心奔向共産主義明天)
건설조국(建設祖國), 보위조국(保衛祖國) 영용지투쟁(英勇地鬪爭)
전진(前進)!전진(前進)!전진(前進)!
아문천추만대(我們千秋萬代), 고거모택동기치(高擧毛澤東旗幟)
전진(前進)!전진(前進)!전진(前進)! 진(進)!
전진하라, 각 민족의 영웅인 인민들이여.
위대한 공산당, 우리를 이끌어 계속하여 장정을 한다.
한 마음으로 공산주의의 내일을 향해 달리자
조국을 건설하고, 조국을 보위하는데 영웅적으로 투쟁하자.
전진하라, 전진하라, 전진하라.
우리는 천추만대, 모택동의 기치를 높이 들리라.
전진하라, 전진하라, 전진하라.
1982년 12월 4일 제5기전인대 제5차대회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국가에 관한 결의>에서 <의용군행진곡>을 중화인민공화국국가로 회복시켰다. 1978년 3월 5일 제5기 전인대 제1차대회에서 수정통과시켰던 중화인민공화국국가에 대한 결의를 폐지한 것이다.
국가개사사건은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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