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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골동

일본에 있는 10개의 중국 문화재

by 중은우시 2018. 11. 15.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중국문화는 주변국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일본, 월남등의 국가는 중국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만일 중국을 제외하고, 어느 국가가 중국문화재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을까라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바로 일본이다. 근대이래 열강이 침략하여 중국문화재가 외국으로 많이 유출되었는데, 그중 중국의 문화재를 가장 많이 가져간 나라는 바로 중국문화를 잘 아는 일본인들이다.


10. 이적(李迪)의 <홍백부용도(紅白芙蓉圖)>






가치: 송(宋)나라때 화조화(花鳥畵)의 최고명작


세상으로부터 공인받은 남송원체 화조화의 최고수준의 작품이다. 원래는 원명원(圓明園)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해외로 흘러나간다. 일본동격국립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


9. <무준사범상(無準師範像)>





가치: 송나라때 인물화의 대표작


남송시대에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다. 송나라 초상화의 대표작이다. 명청이전의 인물초상화는 모두 이것만 못하다. 소장지는 경도(京都) 동복사(東福寺)이다.


8. 맹호식인유(猛虎食人㔽)





가치: 상주(商周)시기 청동기의 정품.


맹호식인유는 중국 상나라말기의 청동기진품이다. 호남에서 출토되었으며 문양과 장식이 복잡한데, 사람과 짐승을 주제로 하여 괴이한 사상을 표현했다. 근대에 일본으로 흘러들어갔으며, 소장지는 경도 천옥박고관(泉屋博古館)이다.


7. 목계법사(牧溪法師) <관음원학도(觀音猿鶴圖)>





가치: 송나라대 선종화(禪宗畵)의 대표작


이 그림은 3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송나라 선종화의 극품이다. 고대에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으며, 경도의 대덕사(大德寺)에 소장되어 있다


6. 왕희지(王羲之)의 <상란첩(喪亂帖)>





가치: 서성 왕희지의 원본에 가장 가까운 모본(摹本)


당나라때의 모본 <상란첩>은 왕희지의 진적에 가장 가까운 당나라모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해지는 바로는 감진대사가 일본으로 건너갈 때 가져간 것이다. 진당서예작품중 극품이다. 타이페이 고궁박물관의 진관지보인 <쾌설시청첩>, 고궁의 비보 <신룡난정서>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것으로 가치를 따질 수조차 없다. 고대에 일본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궁내청(宮內廳)이 소장하고 있다.


5. <소상와유도(瀟湘臥遊圖)>





가치: 남송 산수화의 제일신작(第一神作)


당시 이 그림의 가치는 <계산행려도>와 <부춘산거도>봐 높았다. 청나라말기에 일본의 소장가 기쿠치 세이도(菊池惺堂)가 얻었고, 현재 동경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4. 요변천목차완(曜變天目茶碗)





가치: 차완은 송나라 흑유(黑釉)의 건잔(建盞)(복건 건양요)에서 나왔고, 송나라때 사람들이 차를 마시던 것이다. 현재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많은 자기조각중에서도 유사한 것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요변천목차완은 두 개가 있었다고 한다. 일본으로 전해진 후, 즉시 왕공귀족들이 앞다투어 차지하려는 보물이 되는데, 그중 하나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가지고 있었는데 본능사의 변때 깨진다. 남은 하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로부터 전해내려온 비보인데, 나중에 삼대장군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가스가노 쓰보네(春日局)에게 하사한다. 소장지는 동경 정가당문고(靜嘉堂文庫)이다.


3. 나전자단오현비파(螺鈿紫檀五絃琵琶)





가치: 비파는 일반적으로 4현이다. 이것은 세상에 전해지는 유일한 오현짜리 비파이다. 이 악기는 아주 화려하고, 당나라의 나전상감기교가 극치를 보여준다. 세계에 현존하는 대당성세의 번화함을 보여주는 문물중 가장 전형적인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에 일본으로 흘러들어갔으며, 일본의 성무천황(聖武天皇)이 소장했다. 그가 죽은 후에는 생전에 쓴 적이 있던 보물은 모조리 나라의 동대사(東大寺)의 정창원(正倉院)에 보관했다. 일본 황실 소장의 가장 진귀한 보물이다. 소장지는 궁내청 정창원 북원이다.


2.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 오첩(五帖)





가치; 이 경권서는 세상에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경권이다. 그리고 아마도 세상에 전해지는 유일한 서위(西魏)의 묵적이다. 가치는 계산할 수조차 없다.


당나라때 일본으로 흘러들어갔으며, 이 권은 서위 대통16년 도오호(陶仵虎)가 쓴 것이다. 글자는 콩만한 크기이고, 서예는 북위의 스타일이다. 소장지는 경도의 지은원(知恩院)이다.


1. 한왜노국왕금인(漢倭奴國王金印)





가치: 분명하게 왜국은 한나라의 부속국임을 밝혀준다. 중일외교사상 가장 진귀한 문화재이다.


<후한서.광무제본기>와 <후한서.동이전>에는 "건무 중원2년(57년) 왜노국은 조공을 바치러 왔고, 사람을 시켜 자칭 대부(大夫)라 한다. 광무제는 인수(印綬)를 하사했다." 이 금인은 나중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되었는데, 1784년, 큐슈의 후쿠오카에서 수치(秀治)와 희평(喜平)이라는 두 농민이 밭을 갈다가 우연히 발견한다. 금인의 인면은 정방형이고, 변의 길이는 2.3센티미터, 인대의 높이는 0.9센티미터이고, 대위에는 사형뉴(蛇形鈕)가 있다. 통체의 높이는 약 2.2센티미터이다. 위에는 "한왜노국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소장지는 후쿠오카시박물관이다.


한왜노국왕금인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본은 금인을 발견한 후쿠오카 지하도(志賀島)에 금인공원(金印公園)을 만들었다. 지하도의 동쪽에있는 바다에 접한 도로변에 높이 10미터의 백색 석비가 서 있는데, 위에는 "한왜노국왕금인발광지처"라고 적어 놓았다. 석비의 곁에는 목비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곳에서 후한(현재의 중국) 광무제가 수여한 노국(현재의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사자에게 금인을 수여한 곳이고, 우리나라 역사상 중요한 곳이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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