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화/중국의 골동

흑석호(黑石號): 그릇때문에 발생한 선박침몰사건?

중은우시 2014. 5. 29. 23:40

글: 도몽청(陶夢淸)

 

 

 

 

중국도자기와 금은기를 가득 실은 "흑석호"가 회항했다. 만일 사고가 없다면, 선원들이 가족들과 다시 만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에서 출발한지 20여일만에, '흑석호'는 불행히도 침몰한다. '흑석호'는 왜 바닷 속으로 침몰했을까? 망망대해에서 흑석호는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한 것일까> 천재인가, 인재인가? 이야기는 한 개의 신비한 마갈어완(摩羯魚碗)에서 시작된다.

 

"흑석호"에 실린 이 그릇은 중국당나라때의 장사요(長沙窯)에서 생산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바로 이 그릇때문에 '흑석호'는 불행히도 침몰하고 말았다고.

 

이 그릇의 도안은 아주 특별하다. 그릇의 가운데에는 흉악한 마갈어가 그려져 있다. 마갈어의 꼬리는 짙은 갈색의 유색가운데 숨어 있다. 대가리는 흉맹스럽게 머리와 꼬리가 뾰족한 아랍범선을 들이받고 있다. 마갈어는 불교에서의 신어(神魚)이다. 용의 머리에 물고기의 꼬리를 가졌으며, 큰 바다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고 한다. 도안에서 마갈어가 들이받아 전복시키는 그 배는 바로 '흑석호'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아랍범선이었다.

 

이것은 놀라운 우연의 일치이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해진다. 설마 신비스러운 가운데, 이 신비하고 괴이한 그릇이 '흑석호'의 침몰이라는 비참한 운명을 불러온 것일까?

 

민간에는 이런 해석이 내려오고 있다. 불교의 이야기에서 불효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미란(彌蘭)인데, 이 배에 탔다. 그래서 부처는 마갈어를 보내어 이 배를 전복시킨 것이다. 그 후에 미란을 붙잡아서 지옥에 보내어 고생하게 만든다. 이 해석에 따르면, 마갈어는 권선징악의 화신이다. 사실이 정말 그러할까?

 

전문가에 따르면, 마갈어는 일반적으로 길상(吉祥)의 상징이고 사람들이 장식에 쓰는 것은 이를 통하여 은혜와 보호를 받고자 하기 위함이다. '흑석호'에 실린 장사요 가운데, 이런 마갈어문양이 들어간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마갈어도 그리고 아랍범선도 그린 그릇은 '흑석호'에 단 1개뿐이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고기와 배의 기괴한 구도가 아니라, 그릇 가운데에는 꼬리를 감춘 갈색의 유약이 있다.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장인의 실수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 갈색의 유약부분은 일종의 예술표현방식이고, 마갈어는 신비한 미지의 세계에서 돌연 출현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 갈색이 유약부분은 제작과정의 실수라고. 장사요의 그릇은 일반적으로 그릇의 가에 4개의 반월형 유약을 바른다. 그들은 원형의 그릇주위와 조합되어 중국전통문화에서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을 나타낸다. 이 그릇에 많은 갈색유약부분이 나타난 것은 이 그릇의 가에 반월형유약을 바를 때, 장인의 손이 미끄러져셔, 유약을 많이 발랐기 때문에 현재의 이런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고의로 그렇게 했건, 아니면 의외의 실수이건, 이 꼬리를 감춘 갈색유약부분은 어쨌든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 괴이한 그릇때문에, '흑석호'는 사고를 만나 바닷속에 가라앉게 된 것이라고. 당연히 이것은 일종의 소설이다. 전문가들은 '흑석호' 침몰의 원인을 이 그릇 하나에 돌리지 않는다.

 

'흑석호'가 침몰한 장소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하단의 무리동이라는 작은 섬 부근이다. 배가 침몰한 위치는 개략 해면에서 17미터지점이고, 그곳에는 큰 흑색 암초가 분포되어 있다. 침몰선에서 개략 150미터 떨어진 곳에서 전문가는 큰 흑색 암초를 발견한다. 그리하여 전문가는 배가 흑색암초에 부딛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전문가는 발견초기에 그 배를 '흑석호'라고 명명한 것이다.

 

당나라때, 아랍상선은 이미 계절풍을 이용할 줄 알았다. 엔진이 없는 범선을 몰고 먼 바다를 항해한 것이다. 그러나, 나침반이 없던 당나라때, 원양항해는 위험이 많았다. 태풍을 만날 수도 있고, 방향을 잃을 수도 있고, 암초에 부딛칠 수도 있다. 그중 어느 하나만 만나도 아랍상선에게는 치명적이다.

 

나침반이 발명되기 전에, 중국고인들은 북극성을 관찰해서 방향을 구분했다. 당시의 아랍인들도 전통기기로 북극성과 다른 별의 위치를 측정하여, 배의 지리적인 위치를 추산했다. 경험있는 아랍의 항해가들은 갈고리로 바닷속의 바닥진흙을 건져내어 바닥진흙의 색깔로 항해장소를 판단했다. 또한 어떤 사람은 항해도에 근거하여, 육지와 도서간의 표지물로 항로를 식별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태풍을 만나거나 나쁜 날씨를 만나면, 항로를 판별하지 못하여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당나라때의 해상비단길의 항로를 비교해서, 전문가들은 무리동섬의 부근의 '흑석호'는 이미 통상적인 항로를 많이 벗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이렇게 항로를 벗어났기 때문에, '흑석호'는 방향을 잃고, 잘못 몰아서 암초가 있는 해역으로 들어서고 불행히도 암초에 부딛친 것일 것이다.

 

만일 '흑석호'가 흑석암초에 부딛쳐 침몰한 것이라면, 그 악운은 그저 천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전문가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흑석호'가 침몰한 원인은 그다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천재의 배후에는 남모르는 '인재'가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인도네시아의 팔렘방이다. 중문으로는 거항(巨港) 혹은 구항(舊港)이라 부른다. 고대 수리비자야왕국의 발원지이다. 무시(Musi)강가에 있는 수리비자야는 당나라때 해상무역강국이었다. 송나라때는 삼불제(三佛齊)라고 불렀다. 이곳은 '흑석호'가 침몰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이다. 만일 사고가 없었다면 흑석호는 광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박할 두번째 큰 항구가 바로 이 곳이었을 것이다.

 

어떤 전문가는 흑석호는 아마도 해적을 만났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수리비자야 부근은 자바에서 말래카까지의 일대에 해적이 많이 출몰한 지역이기 때문이다.중국의 사서에서도 <서한서.외국전>에서 이미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이 이 곳에 도착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중의 하나는 해적이라고. 그래서 아마도 '흑석호'는 이곳에서 해적을 만났을 수 있다. 그래서 전투가 벌어지고, 그 결과 양쪽이 서로 싸우다가 결국 침몰하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해적이 빈번하게 출몰하는 수리비자야왕국은 불교가 성행한 곳이라는 점이다. 이곳의 국왕과 백성은 모두 불교를 숭상했다. 그리하여 농후한 불교적 분위기였다. 많은 중국의 스님들이 이곳으로 와서 인도산스크리트어를 배웠다. 이곳은 인도로 유학가는 전초기지역할을 했다.

 

중국 동진때 법현화상은 처음 수리비자야로 온 중국스님이다. 법현이후, 당나라때의 의정화상은 671년에 이곳에 와서 인도어를 배우며, 인도로 유학갈 준비를 한다. 인도에서 불경을 얻어서 돌아올 때 의정은 역시 이 곳을 들른다. 수리비자야국왕의 자금지원하에 불경을 번역했고, 무시강변에서 10년간 머문다.

 

불교가 발달한 수리비자야왕국은 사람들을 겁먹게 하는 일면도 있었다. 당나라때의 저작을 보면, 수리비자야의 서북쪽에 "국민들이 아주 난폭하다"고 적혀 있다. 해상의 선박은 이곳을 지날 때면 두려움에 젖는다. 두려운 원인은 송나라때의 <제번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수리비자야 항구는 아주 발달했다. 외국선박이 오면, 수리비자야의 선박은 뒤쫓는다. 선박이 항구로 들어가지 않으면 바로 행동을 취하여 무력으로 선박이 항구로 들어가게 한다.

 

수리비자야왕국은 무역을 촉진하기 위하여, 왕왕 강제수단을 썼다. 강제로 지나가는 선박이 항구로 들어와 무역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매번 외국선박이 지나갈 때면, 수리비자야는 강대한 무장선박을 내보내의 추적감시한다. 일단 선박이 항구로 들어와 무역을 하지 않으면, 이들 선박에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관례에 따라, 아랍상선인 '흑석호'에는 무장인원과 무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운이 좋았다면, 비둘기를 통하여 서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 장비는 소수의 해적을 상대하는데는 충분하고 문제없지만, 만일 수리비자야의 강대한 해군을 만난다면, 아마도 겁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침몰한 상황으로 추측하면, '흑석호'는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황급히 도망치다가 급한 나머지 암초가 많은 무리동해역으로 들어섰고, 이곳에서 불행히도 암초에 부딛친 것이다.

 

천재건 인재건, 모두 우리의 추측일 뿐이다. 마지막 결과는 모두 '흑석호'는 회복불가능하게 침몰해버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