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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골동

노근재(盧芹齋): 문화재해외유출범의 일생

by 중은우시 2022. 7. 4.

글: 도소을(圖小乙)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소을입니다.

최근 저는 성룡의 영화 <십이생초(十二生肖)>를 다시 보았습니다. 영화에서 얘기하는 것은 제크가 사방을 돌아다니며 "원명원"의 십이생초중 잃어버린 마지막 4개의 수수(獸首)를 찾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소을이 소개하려는 사람은 문화재를 회수한 영웅이 아니라, 반대로 문화재를 팔아먹은 "매국노" 노근재입니다.

 

1880년, 노근재는 절강성 호주시(湖州市)의 한 보통농민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적지 않은 백성들은 아편에 중독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노근재의 부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편에 중독되어, 노근재의 부친은 하루종일 기력이 없었고, 정신도 맑지 못했습니다.

 

노근재가 12살이 되었을 때, 부친은 아편흡입과다로 사망합니다. 그후 모친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해 버립니다. 이는 그의 어린 시절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깁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노근재

그 후 노근재는 혼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는 현지의 유명한 후보인 장씨집안에 일꾼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기민하고 눈치도 빨라서, 금방 장씨집안의 어린 주인 장정강(張靜江)에게 인정을 받아, 장정강의 곁에서 일하게 됩니다.

 

점점 두 사람의 관계는 좋아지고, 비록 주종관계이기는 하지만, 항상 함께 했습니다. 장정강은 매일 노근재를 데리고 밖을 다녔을 뿐아니라, 그에게 공부할 기회와 시간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장씨집안의 큰어른은 장정강을 위해 프랑스 상무외교관의 관직을 얻어줍니다. 프랑스로 가야 하는데, 노근재는 장정강을 따라 프랑스로 가게 됩니다.

 

이 기회에 그는 세계에 대하여 알게 됩니다.

 

노근재는 프랑스에서 장정강의 생활을 보살펴줄 뿐아니라, 프랑스의 선구적인 사회환경과 현지의 풍토인정을 살피게 됩니다.

 

장정강은 당시 프랑스에서 통운회사(通運公司)를 열고, 골동품거래를 했습니다. 노근재는 장정강을 따라 문화재에 대한 감상능력과 지식을 쌓게 됩니다. 그는 골동품의 가치와 상업기회를 발견하고, 이때부터 문화재를 매매해야겠따는 생각을 갖데 됩니다.

 

얼마 후, 장정강은 귀국하여 직접 신해혁명에 투신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노근재는 장정강에게 자신은 이곳에 남아서 일을 하고 싶고 귀국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장정강은 그의 뜻을 존중했고, 약간의 돈을 남겨준 후 귀국합니다.

 

이때부터, 노근재는 골동품매매사업을 시작합니다. 20세기초, 중국에서는 여러번의 전란이 발발했고, 그중 적지 않은 도둑들은 혼란을 틈타 많은 골동품들을 훔쳐서 부호들에게 팔았습니다. 그중에 많은 부호들은 골동품을 가지고 외국으로 가서 생활하면서, 전란을 피하려 생각했습니다.

 

이건 노근재에게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신은 골동품관련 지식도 있고, 현지도 잘 압니다. 그리고 이들이 급히 골동품을 매각하려는 심리를 이용하여, 노근재는 저가로 적지 않은 희귀한 골동품들을 매입하고, 고가로 유럽시장에서 매각합니다.

 

가격차이로 노근재는 큰 돈을 법니다.

 

장사가 커질수록, 명성도 커집니다. 노근재가 매매하는 문화재의 수량과 그의 수입은 몇배로 증가합니다. 심지어, 당시의 유럽의 골동품계에는 모두 이 중국에서 온 '전문가'를 알고 있었고, 그를 "Mr. Loo"로 불렀습니다.

 

일찌기 어떤 사람이 통계를 낸 바 있습니다: 중국에서 잃어버린 문화재중 최소한 절반은 노근재의 손을 거쳐 판매되었다고.

 

그뿐아니라, 노근재의 애정생활도 정말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노근재는 사업을 크게 일으키기 전에, 파리에 골동품점포를 하나 개설합니다. 점포를 열고 있는 동안 옆집인 모자가게의 여주인을 알게 됩니다. 이름은 올가입니다.

 

자주 만나다보니 두 사람은 감정이 생겼고, 연애를 시작합니다.

 

기실 올가는 한 부호의 비밀정부였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이에는 딸이 있었는데 이름은 마리 로스입니다.

 

몇년후, 노근재는 올가와 결혼하겠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자금줄이 필요했고, 다른 한편으로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올가를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해관계를 고려한 후에 그녀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결정을 내립니다.

 

자신의 15살된 딸 마리 로사를 노근재에게 시집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올가가 보기에 이렇게 하면 자신은 사랑하는 노근재와도 함께할 수 있고, 옛정인으로부터도 계속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스토리는 TV드라마에서도 나오기 힘들 것같습니다.

 

그러나 노근재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그녀의 말에 동의합니다.

 

마리 로사는 당시 모친의 결정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한때는 집을 떠날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친이 끝가지 고집하자, 세 사람은 난감한 방식으로 함께 살게 됩니다.

 

결국 결혼후의 마리 로사는 노근재에게 호감이 생기고, 전심전력으로 주부의 역할을 다 했습니다. 노근재와의 사이에 4명의 딸을 낳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친과 남편과의 애매한 관계는 이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이는 마리 로사를 점점 정신분열로 몰아갔습니다.

 

부득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치관이 왜곡된 삼각연애였다고.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인지 노년의 노근재는 국내의 혁명사업에 자금지원을 시작하고, 중국학생들의 유학에 자금을 지원합니다. 

 

일본군이 중국을 침공한 후, 그는 바로 애국활동에 나섭니다. 회사의 전체 인원을 동원하여 2000프랑을 중국의 난민과 부상자들의 치료를 위해 기부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노근재는 문화재를 해외에 판매하면서 번 돈으로 중국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문화재를 밀거래했다는 점은 노근재의 일생에서 지울 수 없는 오점입니다. 최종적인 결과는 국가에 큰 손실을 끼쳤습니다.

 

노근재는 일찌기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이 문화재를 거래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귀국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찌기 절필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확실히 아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들 국보라 해외에 유실된 원두(源頭)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1957년, 노근재는 폐암으로 스위스의 한 병원에서 사망한다. 향년 77세이고, 결국 끝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