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황소)

황소(黃巢): 반인류의 식인악마

중은우시 2018. 10. 29. 18:13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지금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가을이다. 국화가 활짝피는 좋은 계절이 도래하면, 국화시를 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많은 사람들은 황소의 그 유명한 두 수의 '국화시'를 이런 류의 작품 중에서 상상(上上)으로 칭송한다. 그것이 '혁명포부'와 '전투성격'을 나타낸다고 보고, 그것을 물건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얘기한 최고의 작품이라 칭송하며, '자고영웅진해시(自古英雄盡解詩)"라는 황당한 결론까지 끌어내곤 한다.


황소의 두 국화시는 확실히 잘 지은 착품이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외웠다. 그 당시 황소는 최고의 긍정적인 이미지의 인물이었다. <수호전>에서 송강의 반시를 읽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너같은 오합지중이 감히 황소를 대장부가 아니라고 비웃다니 가소롭구나. 그러나 나중에 책을 많이 보게 되니 황소 배후의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그의 이 두 국화시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황소는 염상(鹽商) 출신이다. 소금이라는 것은 항상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고, 서한 상홍양(桑弘羊)의 <염철론>이후 국가의 전매상품이 된다. 황소의 직업은 밀수와 무장밀수를 기반으로 하는 지방의 소규모세력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잘 되었다. 어쨌든 소금은 폭리사업이니까. 돈을 어느 정도 모은 후, 그는 호쾌하게 현지의 영웅호걸들과 어울리고, 어느 정도 명성을 얻게 된다.


그의 문장실력은 괜찮았다. 그는 5살때 조부와 시를 같이 지었다고 한다. 아마도 신동에 속했던 것같다. 아마도 평소에 그는 호붕구우(狐朋狗友)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고, 글공부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서인지 관방의 자료에는 그가 "글을 약간 안다(粗通文墨)"고 적어놓았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여러번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실 필자의 생각에 그에 대하여 '글을 약간 안다'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만일 약간 안다면 그렇게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국화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그는 후세의 홍수전같은 낙방수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고대에 과거에 여러번 응시했다가 떨어진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재자 축지산(祝枝山)도 7번이나 연이어 낙방했고, 대재자 당백호도 마찬가지로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 그리고 좌종당 등등이 있다. 그래서 이것만 가지고 황소에 대하여 '글을 약간 안다'고 평가하는 것은 안될 말이다.


황소는 여러번 과거에 낙방하고 난 후에 먼저 왕선지(王仙芝)의 농민군에 가담한다. 나중에 왕선지와 결별한다. 여러번의 기복을 거쳐서 나중에는 세력이 커지게 된다. 그리하여 당나라황제를 장안에서 쫓아내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다. 그리고 국호를 "대제(大齊)"라 한다.


중국의 <이십사사>에서 이 황소만이 "고골흡수(敲骨吸髓)"라는 네 글자에 적합하다. 그는 진주(陳州)를 공격하는 1년동안, 기계화방식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분쇄하여, 인육으로 군량을 삼는다. 이것은 중국에서 세계역사상으로도 유일무이한 경우이다. <구당서>의 기록에 따르면, "적(황소)는 진군을 삼백일 포위했고, 관동은 일년간 농사를 짓지 못한다. 사람들은 굶주려 벽과 담에 기대어 있고, 적은 포로로 잡은 사람을 먹었다. 하루에 수천을 죽인다. 적은 절구를 거석으로 수백개 만들어 살아있는 사람을 집어넣은 후 부수었고, 뼈와 함께 먹었다. 그 해독이 이렇게 컸다."


이전에 역사를 읽으면서 매번 도성(屠城)에 관한 내용을 보면, 아주 잔혹하고 인간성이 없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 선전에서 손자를 데리고 있고, 아이들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상상해보곤 한다. 그들 짐승같은 자들이 어떻게 이런 아이들의 놀란 눈을 보고서도 칼을 내려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 황소는 나이가 많고 적고를 가리지 않았다. 어린아이까지 포함하여, 그들이 발명한 기기에 집어넣어 육장을 만들었다. 도성은 그들에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인육군량'의 일은 현재 거의 모든 황소에 관한 글에서 언급된다. 그것만으로는 무슨 깜짝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그런 글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내가 이 일을 알게 된 것은 아주 뒤의 일이다. 이렇게 피비린내나는 역사에 대하여 지금도 어떤 사람은 황소를 악인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은 신기할 것도 없다. 필자는 초기에 역사서에서 이에 대하여 '지주계급의 오멸(汚蔑)'이라고 적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제는 황소를 농민의거군의 지도자로 포장해야 하고, 고난을 겪는 인민을 구해주는 인물이고, 지주게급통치를 뒤집어 엎은 영웅이물이라고 해야 했기 때문이다.


막 거사했을 때, 황소는 확실히 "황왕기명(黃王起兵), 본위백성(本爲百姓)"(황소가 거병한 것은 원래 백성을 위한 것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운다. 그러나 장안에 진입한 후에는 "며칠간 머무르며, 대거 노략질을 한다. 시장을 불태우고, 온 거리에서 사람을 죽인다. 황소는 이를 막지 못한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다시 마음을 바꾸어 관청을 도우기 시작한다. 그러자 황소는 대노하여 장안에서 온 성의 사람을 죽이는 짐승같은 일을 저지른다. 역사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황소는 백성들이 관군을 도우는데 분노하여, 병사들이 도살하게 놔둔다; 피가 흘러 강을 이루었고, 이를 세성(洗城)'이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천하에 이름난 유명한 도시 장안은 이 겁난을 당한 후 다시는 힘을 회복하지 못하고, 더 이상 중국수도의 자격을 갖지 못한다.


역사인물에 대하여, 자고아래로 모두 포폄이 있다. 사람들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다만 황소에 대한 평가는 기이하게도 일치한다. "소적(巢賊)", "거구(巨寇)", "도비(盜匪)", "미용미인(亹茸微人), 추포패류(萑浦敗類)"등등이 그에게 붙은 라벨이다. 여기에 근현대에는 '식인악마'라는 신조어가 붙는다. 황소는 확실히 나쁜 놈이다. 후세에만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도 그러했다. 그 어느 후안무치한 문인도 그를 칭송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 정사이건 야사이건 전설이건 민요이건 그는 항상 히틀러보다도 더 악마인 최고의 반인류쓰레기이다.


단지 한번의 특수한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았던 시대이다. 그 "혁명무죄(革命無罪), 조반유리(造反有理)"의 시대에 정치적 필요때문에, 그는 돌연 "당말 농민의거의 위대한 영수"라는 새옷을 입게 된다. 그리고 '굳건한 혁명가"로 되어 이미지가 180도 바뀌어 버린다.


어떤 글에서는 황소가 이런 짓을 한 것은 모두 그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을 때라고 한다. 만일 그가 성공적으로 정권을 건립해서 천하를 통치했더라면, 절대로 "황소가 팔맥만을 죽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인육군량'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대하여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설사 황제가 그에게 황위를 선양해주더라도 그는 미친 듯이 날뛰었을 것이다. 역시 사람을 먹었을 것이다. 그는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사회에 보복한다. 마음 속의 마귀가 마귀의 일을 벌이게 한 것이다. 그래서 황소는 마귀이다. 악마이다. 그래서 '전무후무한' 그런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아 뭐라고 쓸 말이 없다. 적합한 말ㅇ르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


만일 황소가 없었더라면 당나라는 조용히 눈을 감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역사법칙으로 본다면, 대당제국은 이미 끝이 보였다. 그러나 이런 소금장수인 황소에게 끝장나다니 마음 속으로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어떤 사람은 황소에게 화상을 그려주었다. 말로는 "일푼의 문사, 이푼의 상인, 삼푼의 호걸, 사품의 폭도"로 그렸다고 한다. 내 생각에 폭도라고만 말하는 것은 너무 가볍다. 너무 옅다. 소걸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단어를 그에게 쓰는 것이 아깝다. 상인이라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의 사업이라는 것은 되면 가져오는 것이고 안되면 뺴앗아오는 것이다. 도적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일푼의 문사라는 것은 그의 두 수 국화시가 있으니 인정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