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황소)

황소(黃巢)의 최후

중은우시 2014. 8. 26. 23:30

글: 장손옹문군(長孫雍文君)

 

1. 이극용(李克用)이 진주(陳州)를 원조하여, 황소를 격패시키다.

 

황소는 진주를 공격하는 동시에 주위 수십개 주를 점령한다. 진주성 아래에서 반란군은 매일 '인육건량(人肉乾糧)을 먹으면서 윤번제로 공성을 했다. 300여일의 악전고투를 거쳤지만, 조주(趙犨)가 지키는 진주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조주는 시시때때로 성머리에 나타나서 담담하게 지휘를 하곤 했다. 그리고 반란군에게 욕을 몇 마디 한다. 황소는 분노를 금치 못했고, 이를 갈았다. 조주의 껍질을 벗겨서 생으로 먹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했다. 그러나 매일의 전투는 그저 같은 결과였다. 반란군에 사상자만 계속 나는 것이다.

 

성밖에 있는 황소가 알지 못했던 것은, 조주는 이미 황소의 미친 듯한 공격을 더 이상 막아낼 힘이 점점 없어져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진주성의 수비병사들 중 전사자가 늘어나고, 전투력도 예전만 못했다. 조주는 이미 여러번 샛길로 사람을 보내어 주변의 번진에 원군을 요청했다. 다만 주위의 번진에서는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원군이 계속 오지를 않으니 조주는 어쩔 수 없이 황소의 진격을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마음 속으로는 계속하여 원군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도했다.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버리지 않았다. 조주가 목을 빼고 기다리던 원군이 마침내 883년 연말에 출동한다. 선무절도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주전충(朱全忠), 충무절도사 주급(周岌)과 무녕절도사 시부(時溥)의 3명이 군대를 이끌고 황소를 향해 진격해왔다. 녹읍에서 황소의 수천 인마를 격패시키고 그 기세를 이어 박주(亳州)를 함락시킨다. 세명의 번진 절도사는 초전에 대첩을 거두었다.

 

일찌기 황소의 부하 장수였던 주온(朱溫)은 이제 신분을 바꾸어 대당의 선무절도사 주전충이 되었다. 전쟁터에서 예전의 부하와 전우들을 만났을 때 주전충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러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주전충은 자신의 어렵게 얻은 선무절도사의 지위를 지키고, 대당조정에서 더 많은 권리와 이익을 얻어내기 위하여 옛날에 목숨을 아까지 않고 혈전을 벌이던 용기를 내어 황소와 싸웠다.

 

"백족지충(百足之蟲), 사이불강(死而不僵)이라는 말이 있다. 황소의 지금 수하인 장병들은 모두 백전노장이다. 예전에 중원을 종횡할 때 번진을 하나하나 무너뜨렸다. 이제 한 명이 반도(주온)와 그다지 이름이 유명하지 않은 번진장수 두 명을 앞에 두고 황소는 그들을 눈아래 두지 않았다. 진주를 예전처럼 매일 공격했고, 이들 원군도 그냥 두지 않고, 군대를 보내어 막게 했다. 위세가 여전히 남아 있던 반군은 용감하게 싸웠다. 주전충, 주급, 시부는 계속 밀렸고, 세 명의 절도사는 공동으로 장안전투에서 공을 세웠던 하동절도사 이극용을 부른다.

 

이극용의 사타군(沙陀軍)이 등장하자 전황은 일변한다. 당군은 먼저 태강에서 나중에는 서화에서 두번의 전투에서 모두 황소의 정예부대를 격패시킨다. 사타군에 대한 두려움으로 황소는 마침내 진주성에서 철수한다.

 

2. 이극용이 다시 변주(汴州)를 원조하고, 다시 황소를 격패시키다.

 

진주는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지만, 이어서 긴장해야하는 것은 주전충이 되었다. 이극용의 추격을 피하기 위하여 황소는 변주로 향한다. 변주는 바로 선무진의 치소이다. 즉, 주전충의 근거지이다. 자신의 근거지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듣고, 주전충은 쉬지도 않고 변주로 달려간다. 그리고 급히 대군을 내보내 황소의 부대를 맞이한다. 황소는 자신의 반도를 철저히 없애버리기 위하여, 제일대장 상양(尙讓)에게 정예대군을 이끌고 변주를 공격하게 한다. 혼자서 버티기 힘들어진 주전충은 다시 이극용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소방대원' 이극용은 힘든 것도 마다하지 않고 다시 황소군을 향해서 달려온다. 황소는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급히 군마를 돌여 변주에서 철군하여 중모(中牟)로 간다. 반란군은 왕만도(王滿渡)에서 선박을 대거 빼앗아 보무당당하게 강을 건넌다. 강의 중간쯤 이르렀을 때, 생각지도 못하게 이극용과 주전충이 돌연 공격을 개시한다. 그리하여 옴짝달싹못하고 반란군은 사상자를 많이 내게 된다. 전투에서 죽임을 당한 자, 강에 빠져서 죽은 자, 아군끼리 서로 죽인 자등 부지기수였다. 황소는 궤멸하는 과정에서 겨우 목숨을 건져 왕만도를 건넌다. 그러나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이극용이 추격해 왔다. 사타군은 이미 예봉이 꺽인 반란군을 추격했고, 강철검으로 진흙을 베는 것처럼 반란군을 베었다. 하남에서 산동까지, 도망치는 길에는 도중에 모두 반란군의 시신과 수급이 널려 있었다.

 

이극용은 이렇게 황소의 고향인 원구(寃句, 지금의 하택)까지 추격한다. 이때 이극용은 자신의 병마를 점검해보고는 따르는 자들이 수백명밖에 되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대부대는 쫓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풍성한 전과를 올린 이극용은 냉정하게 계산해본다. 황소는 이제 다시 재기하기 어렵다. 그리고 자신의 병마는 이미 피로해있고, 군량도 많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회군한다.

 

이극용에게 쫓겨 원구까지 온 황소는 확실히 실패했다. 자신의 부대는 도망치는 길에 계속 참패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자신의 제일대장은 무녕절도사 시부에게 투항했다. 그리고 나머지 갈종주(葛從周), 장귀패(張歸覇) 같은 장수들도 선무절도사 주전충에게 투항했다. 황소는 혼 자 남은 셈이다. 다시 병력을 일으키고 싶어도 어렵게 되었다.

 

3. 시부가 병력을 일으켜 황소를추격하고, 황소는 자살한다.

 

무녕절도사 시부는 황소를 소탕한 제일의 공을 얻기 위하여, 황소에게 쉴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즉시 정예부대를 파견하여 원구로 향하게 한다. 이미 저항할 힘을 잃은 황소는 전투에서 바로 패배하고는 자신의 여러 친척을 데리고 처참하게 낭호곡(狼虎谷)으로 도망친다.

 

황소는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과거를 하나하나 되돌아보고는 자신의 외조카 임언(林言)을 보고 탄식하며 말한다: "내가 거병할 때는 조정의 간신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조정의 면모를 일신하고자 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최후가 이런 결말이 되었구나. 너는 나의 머리를 들고 조정에 투항하여 상을 받아라. 그렇게 해서 조정으로부터 부귀를 보장받아라. 다른 사람이 이익보게는 절대 하지 말고" 임언은 그 말을 듣고는 눈물을 처연히 흘렸다. 황소는 임언이 차마 자신의 수급을 베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보검을 꺼내어 목을 그었다. 임언은 크게 곡을 하면서 황소의 수급을 벤다. 황소의 여러 형제들과 가족들은 황소가 이미 죽은 것을 보자, 스스로 세상에 더 이상 살기 힘들다고 여겨 속속 자살한다. 임언은 다시 그들의 머리도 베어 낭호곡을 나선다. 그리고 서주에 있던 시부에게 투항한다. 황소의 난은 이렇게 마지막을 맞이한다.

 

4. 결론

 

황소는 건부5년(878년) 거병하여 중화4년(884년) 실패할 때까지 크고 작은 전투를 수십회 격는다. 그렇게 하여 예전에 했던 "충천향진투장안(沖天香陳透長安) 만성진대황금갑(滿城盡帶黃金甲)"의 바램을 실현한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거기서 그쳤다. 황소는 비록 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칭했지만, 대제(大齊)의 강역은 기실 장안과 주변의 몇 개 성뿐이었다. 대당조정이 정신을 차리고 여러 번진이 자신을 포위공격하게 되자, 황소는 쇠망의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황소 자신은 소금장수출신이다. 비록 백성의 고통에 대하여 약간은 느꼈지만, 진정 백성들에게 용해되어 들어가는 백성을 돌보고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는 지도자가 되지는 못했다. 이렇게 황소는 안목이 좁았고, 당나라의 번진은 강대했다. 사대부가 황소를 버리고, 백서잉 황소를 포기하였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황소는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한다.

 

황소는 비록 죽었지만, 그는 대당의 천하를 철저히 교란시켰고, 조정의 위신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여러 번진과 야심가들에게 굴기할 기회를 주었다. 이후, 번진겸병이 천하대세가 되고, 대당은 분열과 혼란의 와중에 멸망의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