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태평천국)

태평천국은 사교(邪敎)이다.

중은우시 2018. 10. 18. 11:57

글: 장장림(張長霖)


중국사학계에서 가장 황당한 일은 태평천국, 의화단, 신해혁명을 가리켜 "중국근대사의 3차혁명고조(革命高潮)"라고 부르는 것이다. 신해혁명은 그저 변발을 잘라버렸을 뿐이지만, 공로는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태평천국, 의화단은 전형적인 사교활동이지 무슨 혁명성을 논할 가치가 없다.


먼저 태평천국을 얘기해보자. 필자는 1970년대말에서 1980년대초에 우연한 기회로 태평천국의 원시자료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태평천국 내부의 문건, 청왕조의 관방자료, 당시 각 계층의 견문, 일기, 그리고 외국교민의 목격자료, 태평군 장군들이 포로로 잡힌 후의 심문기록등등이 있었다. 대량의 원시자료를 읽어본 후, 나는 깜짝 놀랐다. 태평천국은 무슨 혁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말 그대로 사교폭동에 불과했다. 태평천국의 사교의 모든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태평천국 정권은 중국역사상 가장 반동적인 정권이다. 1982년, 필자는 연구성과를 논문으로 써서, <태평천국정권의 반동성을 논한다>로 쓴 다음 스승인 왕매(王邁) 선생에게 가르침를 청했다. 왕매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너의 글은 절대적으로 옳다. 그러나, 당시의 중국에 이런 글을 발표할 곳은 전혀 없을 것이다. 과연 필자는 5부를 써서 여러 간행물에 보냈지만, 모두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3차혁명고조"는 '혁명영수'가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확실히 도전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태평천국이 사교라고 하는 것은 그가 사교의 모든 특징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교는 한명 혹은 일련의 야심가가 인민의 불만정서를 이용하여, 개인야심을 실현하고자 한다. 홍수전은 원래 과거낙방한 수재이다. 양수청등 탄광우두머리들과 사귀며, 인심을 고혹(蠱惑)하여 폭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일단 그들이 약간의 권력을 잡자 마자 신속히 부패한 것도 아주 정상적인 일이다. 모든 사교는 세계종말론을 선전하며, 백성의 공황정서를 이용하여 폭란을 일으킨다. 홍수전 일당도 그러했다. 일체의 사교는 모두 일부 종교의 교의에서 일부 내용을 훔쳐온다. 그래서 그럴싸한 엉터리 내용으로 사람들을 농락한다. 홍수전이 만든 배상제교는 바로 이런 엉터리였다. 이론도 없고, 철학도 없다. 그저 상제라는 이름만을 빌려서, '평등'을 구호로 내세워 백성을 농락했다. 모든 사교는 신격화된 교주와 교내이 핵심인물이 자신을 신의 화신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신도를 농락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홍수전 일당은 아주 두드러진다. 홍수전은 자신이 상제의 아들이고, 예수의 형제라고 한다. 양수청은 홍수전이 너무 많은 이득을 가져가는 것을 보자, 자신이 천부(天父)의 대변인이라고 말하며 심지어 홍수전을 질책하고 때린다(당연히 이것은 양수청이 죽게된 원인일 것이다). 소조귀도 이들을 보고 배워서 자신은 천형(天兄)의 대변인이라고 말한다. 일체의 사교는 모두 반인류적이다. 태평천국은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파괴시킨다. 태평군이 통치하는 지방에서는 "남자는 남항으로 여자는 여항으로 보낸다(男歸男行 女歸女行)" 부부가 별거하며, 군사화관리를 한다. 이와 동시에 고위층은 사치와 향락을 누린다. 천왕(天王)은 81명의 어처(御妻)를 가지고 있었고, 동왕 양추청은 64명의 처를 가졌다. 이렇게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방식은 욕을 얻어먹어야 당연하다.


태평천국이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손중산이 가장 먼저 얘기했고, 나중에 모택동이 <중국혁명과 중국공산당>에서 명확히 '3차혁명고조'를 애기하면서 정설이 된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손중산은 청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모택동은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이런 말을 한 것이다. 모두 원인이 있다. 다만 비역사학자인 지도자가 내린 결론을 토론조차 허용하지 않는 금기로 여기는 것은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해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