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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태평천국)

태평천국의 "보물"은 어디로 갔는가?

by 중은우시 2018. 10. 11.

글: 상한(桑寒)


자련유독(自憐幽獨)

상심인별유회포(傷心人別有懷抱)


이는 신기질의 <청옥안.원석>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사의 원래 뜻은 사랑에 빠진 남녀의 가까운 듯 먼 듯한 관계를 말한다. 깊은 뜻으로는 작자가 시대의 조류에 따라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애원(哀怨)이다. 시사라는 것은 왕왕 가상(假象)을 쓴다. 완곡하게 심중의 슬펌과 불만을 뱉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또 한명의 사람이 같은 애원을 느꼈다. 그는 원래 역사의 조류 속에서 황금을 건진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홍수전이다. 그의 실패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싸워서 얻은 부를 하루 아침에 날려버리게 된다. 상심이라는 각도에서 보자면, 이것은 바로 가련하고 홀로 조용한 곳에 처해 있는 마음이다. 인생의 가장 슬픈 경지를 얘기하자면, 그것은 바로 사람도 잃고, 돈도 다 써버린 것일 것이다. 석양이 다시 들판을 덮을 때, 태평천국의 의사들도 지는 해처럼 점점 멀어져갔다. 수도인 천경은 지금의 남경이다. 상군의 공격에 궤멸해 버린다. 비바람이 몰아친 후에 이 표면의 재물도 모두 약탈당한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홍수전이 거부였다고 말하고, 천경성을 함락시킨 후 땅을 삼척이나 파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수수께끼로 남는다. 도대체 보물은 어디로 갔을까?


1. 보물의 도구 "성고제도(聖庫制度)"


어떤 사람은 홍수전이 거액을 재물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표한다. 그래서 우선 '성고제도'부터 얘기하기로 하자. 이 제도는 1851년의 '금전(金田)의거'에서 만들어 진다. 규정에서는 의거에 참가한 이사는 모두 재물을 성고에 납입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의 소비는 모두 성고에서 지출한다. 사적으로 재물을 가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기면 중벌을 받고, 중대한 경우에는 참수한다. 설마 조그만큼의 재물도 안된단 말인가? 그들은 다섯 냥의 은자를 한도로 했다. 다섯 냥이 넘으면 죄로 처벌했다. 성고제도는 아주 엄격했고, 재물을 긁어모으는데 유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취보분(聚寶盆)과 같다. 태평군이 어디를 함락시키면, 거기의 재물은 모조리 이 취보분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보면 당시의 당시의 성문 거지라고 하더라도, 태평군이 아주 부유한 군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성고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물이 들어 있었을까? 객관적으로 말해서 홍수전에게는 거액의 재물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관적인 각도에서 말해보자. 홍수전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이런 보물을 모을 수 있었을까? 홍ㅅ전은 원래 광동의 보통 백성이었다. 사숙에 입학하여, 과거시험에 응시하였다. 과거합격을 통해서 조상을 빛내는 것을 꿈꿨다. 그러나 꿈은 꿈이었고, 4번이나 응시하지만 매번 낙방했다. 무협소설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이때가 바로 강호출도할 시기이다. 어떤 사람은 소람사로 가서 무공을 배우고, 어떤 사람은 무당산으로 가서 장문인이 된다. 어떤 사람은 산으로 가서 신선이 되고자 한다. 등등. 그러나 홍수전은 실패후 한바탕의 심리적 고뇌와 일종의 인생미망의 시기를 거친 후, 이게 안열리면 다른 걸 열겠다는 생각으로 '배상제회'를 창립하여 전도자가 된다. 나중의 태평천국의 기반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말하자면, 그는 제대로 된 백성도 아니다. 몇년간 공자맹자의 책을 읽었지만, 사회에서 아무런 지위도 차지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태평군이 전투를 벌일 때, 문화에 관련되는 것이라면 모조리 겁난을 거치게 된다. 그는 농민출신의 독재자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런 농민과 독재성은 계급적인 한계성을 드러낸다. 천경을 수도로 정한 후, 홍수전은 욕망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계급관념이 아주 심했다. 봉건의식의 군권사상도 강했다. 게다가 북벌의 후방물자조달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실패는 피하기 어려웠다.


2 보물은 어디에 있는가?


상군이 천경을 함락시킨 후, 증씨의 상군은 성을 모로지 뒤진다. 그리고 동치제에게 보고한다. 완곡하게 게릴라식의 보고를 올린 후, 가볍게 결론을 내린다: 본거지에 재물은 없었습니다. 정말 예상밖이었다. 그리고 황제에 천왕의 옥새를 올린다. 동치제가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태평군은 중국의 절반을 휩쓸었는데, 돈이 없다니 누가 믿겠는가. 분명히 일부 대신들이 증씨의 상소문을 공격했을 것이다. 매년 전쟁을 벌이다보니, 청나라정부는 자금이 필요했다. 이 피로해진 제국을 돌리기 위하여. 동치제는 비록 마음이 급했지만, 여러번 조사를 벌여도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다만 그는 증국번을 크게 신뢰했다. 청나라조정의 보물찾기는 성과없이 끝나고, 보물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버린다.


그렇다면 증씨형제는 그 보물을 독차지한 것일까? 아니다. 첫째,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둘째, 증국번은 "화이치가(和以治家)"를 종지로 "근이지가(勤以持家)"를 강조했다. 생활이 검박하고, 졸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셋째, 드러나지 않는 비밀은 없다. 만일 누군가가 보물을 챙겼다면, 아무리 얼마의 돈을 집어주고 입을 막았다고 하더라도 모두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넷째, 일부 야사나 필기를 보며, 누군가 증씨형제가 태평천국의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혹은 증국전이 호남에서 돌아와서 삼백척의 배로 물건을 운송했는데, 바로 그 보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방적인 의견일 뿐이다. 증씨형제는 모두 충성스럽고 사적으로 거액의 재물을 끌어모으지 않았다. 어찌 천하의 금기를 어기면서 재물을 챙겼겠는가. 억울하게 사람을 잡으면 안된다. 재물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면 아마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성을 수색하면서 과연 일부 재물을 찾기는 했다. 그러나 거액의 보물과는 차이가 많고 보물이라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태평천국의 보물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미 죽은 홍수전이나, 포로로 잡힌 이수성같이 고위지휘부만이 보물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같다. 다만 홍수전의 머리에 있는 보물은 이미 그의 육신과 파괴된 꿈과 함께 지하에 묻혀 버렸다. 이수성의 증언은 아주 완곡하지만 국고에 돈이 없었고, 집안창고에도 돈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증국번에게 말한다. 네가 믿지 못하겠으면 스스로 찾아보아라. 상군은 땅을 삼척씩이나 파고서도 전설상의 금은보화를 찾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발견되지 못한 보물은 민간에서 신화로 전해진다. 특히 생활이 궁박하고 관료로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들 보물을 찾기만 한다면, 평생 잘먹고 잘살며 걱정없을 수 있다. 혹은 몇 대를 써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보물의 행방에 대한 소문이 와전되고 또 와전된다. 그리고 일부 전설의 보물찾기 이야기도 나타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보물을 찾기 위하여 피와 눈물과 생명까지도 날린다. 여기에서 하나하나 열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쓸데없는 사례들은 이런 수수께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전설도 좋고 소문도 좋다. 이 보물은 결국 찾지 못했다.


3. 도대체 보물은 있는 것일까?


천경의 보물은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는 보물이 없을까?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좌군주장 익왕 석달개가 대도하에서 패번하기 전에 보물을 숨겼다고 한다. 당연히 숨긴 물건을 사람들이 찾으려 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한다. 당연히 천경의 보물이건 아니면 석달개의 대도하 보물이건,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없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그저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형님은 이미 강호에 없지만, 강호에는 형님의 전설이 남아 있다.


도대체 보물이 있긴 있었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있었다고 본다. 석달개의 보물에 대하여는 이들 군대가 금은보화를 많이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낮다. 첫째, 대량의 금은보화를 가지고 가는 것은 행군에 불편하다. 둘째, 석달개는 대도하에서 패전하였는데, 이미 아주 곤란한 지경이었다. 아무리 장소를 잘 찾아서 숨겼다고 하더라도, 후인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셋째, 태평군은 이미 패전하기 전에 사람도 떨어져 나가고 재물도 다 써버렸다.


지금은 천경의 보물이라는 중요한 의문점만 남아 있다. 주관적인 각도에서 보자면, 성고제도는 백성들의 돈을 바닥까지 긁어모은 것이다. 누구도 알고 있다. 홍수전은 거부라는 것을. 다만 홍수전은 이미 죽었다. 보물의 행방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천경이 포위되고, 성안에는 양식이 부족했다. 상군이 천경을 함락시키고도 보물을 찾지 못했다. 설마 대명자자한 태평천국의 수도 천경이 그저 하나의 귀성(鬼城)이었단 말인가. 엣날에 병력을 이끌고 전투를 벌였던 사람이라면 모두 병법에 어느 정도 정통하다. <삼십육계>에 성동격서라는 계책이 있다. 당당한 반란군지도자로서, 작전전략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중국의 절반을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그는 재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성고제도는 바로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이제 우리가 아주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많은 재물을 가졌다면, 그것을 집안에 둘 것인가?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혹은 숨겨두거나 혹은 뭔가를 살 것이다. 그렇다면 홍수전은 아마도 재물을 다른 곳에 두었을 것이다. 적이 정말 쳐들어왔을 때 재물을 모조리 빼앗긴다면 자신은 재기할 밑천도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 그는 출신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므로 농민계급의 한계가 있다. 천경을 수도로 정한 후, 지도층의 생활은 방종했다. 계급특권사상으로 서로 물어뜯으며 내분에 휩싸여 정국이 혼란되었다. 성고안의 금은보화도 횡령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내외혼란을 틈타 재물이 흩어졌을 수 있다. 혹은 지도층이 이들 재물을 나누어주어 정국을 안정시켰을 수 있다. 돈은 써도 다시 모이니까.


마지막으로 보물을 어디에 숨겼든지간에, 태평천국은 실패했다. 설사 그의 보물이 누군가에게 발견되더라도, 그것은 과거식이다. 더 이상 시대와 관련이 없다. 다만 깊이 숨겨진 보물은 세상사람들의 침을 흘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