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태평천국)

태평천국을 말한다

by 중은우시 2016. 8. 23.

글: 양혜왕(梁惠王)


오늘의 웨이보에서 정부는 다시 태평천국을 칭송했다. 네티즌들은 적지 않게 태평천국을 욕했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필자는 몇 마디 하고 싶다.


중국의 역사교과서에 나오는 태평천국은 모두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나도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야, 일부 간행물 잡지를 읽으면서, 비로소 태평천국, 그리고 이자성, 장헌충이 모두 일반백성들에게 거대한 재난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중에, 필자가 보는 문화계는 마치 이런 기풍이 형성된 것같다. 문인들이 글을 쓸 때 '농민반란'을 얘기하면, 반드시 이자성, 장헌충, 홍수전을 욕한다. 그들이 살인마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마치 컨센서스를 이룬 것같다. 즉 당시의 정부는 그래도 최소한의 기본은 지켰는데, 반란자들은 최소한의 기본도 지켜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말에 숨은 의미는 반란자들은 천생 요마이며, 죽일 놈이고, 반란은 철두철미한 폭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


한 정부의 치하에, 대규모의 천하를 석권하는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통치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주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중국인은 아주 인내심이 강하다. 그들은 무슨 인권자유도 원치 않는다. 만일 먹을 게 없거나 막다른 골목에 몰리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깃발을 들고 일어서지 않을 것이다. 일단 깃발을 들면, 각양각색의 뜻을 품은 호걸이 접근한다. 진승, 오광은 대택향에서 반란을 일으킬 때, 항우, 유방은 먹을게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을 게 없거나 제대로 못먹는다는 것을. 이들 가난뱅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고 한다면, 폭력이라는 도구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명나라말기, 천하는 적지천리(赤地千里)였다. 만일 사람들이 편안히 먹고 살 수 있었다면, 이자성, 장헌충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복왕(福王)을 붙잡고 그를 솥에 던져넣고 삶아먹었는데, 만일 큭도의 원한과 분노가 없다면 어찌 그렇게 하였겠는가? 광서의 광산노동자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목숨은 개미취급을 당했다. 만일 잘 먹고 따스하게 입을 수 있었다면, 누가 홍수전, 양수청, 풍운산을 거들떠보기나 하겠는가? 이들은 선의의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일단 수중에 무기를 가지면, 그들이 무슨 원칙, 규율을 지킬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가는 곳은 자연히 관병과 마찬가지로, 모조리 쓸어갔다. 그들이 정말 청정부에 비하여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것일까? 아마도 표면적으로 보면 그럴 것이다. 다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전국정권을 빼앗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신의 말이 맞다. 장헌충은 사천에 있으면서 그다지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실패할 상황에 처하자 더 이상 신경쓸 일이 없어진 것이다. 중국의 어떤 왕조도 건립전에는 모두 피를 강물처럼 흘렸다. 그러나 그들이 정권을 건립하는데 성공하면, 우두머리는 무슨 조(祖) 무슨 종(宗)이 되고 사서에는 무슨 인의의 군대로 쓰여지고 백성은 자식처럼 사랑한다고 쓰여진다. 그러나, 이런 말은 바보들이나 믿을 것이다. 당연히 정권이 건립된 후에 는 질서있는 통치를 위하여, 주기적으로 수혈하기 위하여, 자연히 규칙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것만으로 그들이 반란군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서에 나어는 "적래상가(賊來尙可), 관래살아(官來殺我)". 반란군이 오면 그래도 괜찮지만, 관군이 오면 나를 죽인다. 이런 현상이 절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태평천국시기에, 필자가 본 자료에 따르면 관병의 잔혹함은 실로 반란군과 거기서 거기이다.


그리고, 관건은 만일 우리가 이렇게 농민반란을 보아, 그들이 모두 나타나서는 안될 마귀라고 생각하면, 그럼 단순히 이자성, 장헌충, 홍수전만 정의롭지 못한 것이 아니라, 진승, 오광부터 시작하여, 역대왕조의 의거자들은 모두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진말한초의 사람들은 원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진승오광이 아니면 진초의 거록대전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항우유방의 팽성대전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신안의 그 이십만 진군이 산채로 매장되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 휴수는 왜 그 이십만 한군을 수몰시켰겠는가? 인구는 왜 3분의 2로 삭감되었겠는가? 집안에 몇 말의 식량도 남아있었다면, 분명히 하늘과 땅을 욕하고, 진승을 욕하고, 오광을 욕하고, 유방을 욕하고, 항우를 욕했을 것이다. 오월의 사대부들이나 백성들이 홍수전을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의 사회에서 일부분의 사람들이 장기간 비인간적인 탄압을 받고, 큰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가난의 경계선에서 사망의 경계선에 놓여 있게 되면, 잠시 먹고 입는데 문제없는 이웃들도 계속 못본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어서 띠집에 앉아서 죽기를 기다려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만든 것은 당시에 권력을 잡고 거대한 자원을 장악하고 있는 정부이다. 그들이 무수한 주구를 길러서, 자신이 피를 빨아먹는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포학하고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사치와 음일을 위하여, 연민이 뭔지도 모른다. 그들이야말로 이 재난의 직접적인 근원이다. 반란자들을 욕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마 너에게 천재지변이 닥쳐서 빈털털이가 되어서 어디 호소할 곳도 없고 먹을 것 입ㅇ르 것이 없어지면 부득이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죄악의 탄생은 책임에 주요한 것과 부수적인 것이 있다. 누구의 능력이 크면 클수록 그의 책임이 더욱 크다. 어떤 시대에도 정부의 능력이 가장 컸다. 그러므로 그의 책임이 가장 크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태평천국을 욕한다고 하여, 청정부를 욕하지 않아야 하는 것응 아니라고. 그러나 내가 보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저 태평천국만 욕하고, 청정부의 증국번, 좌종당을 얘기할 때는 칭찬해 마지 않는다. 하물며 필자는 태평천국을 욕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지만, 청정부를 욕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렇게 선택적으로 욕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이 책을 좀 읽어보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문인들의 생각을 따라간다는 것인데, 필자가 느끼기로는 아주 가소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