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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중기)

경태제(景泰帝) 주기옥(朱祁鈺)은 황태자를 교체하기 위해 어떻게 하였는가?

by 중은우시 2018. 9. 20.

글: 두문자(杜文子)


황제가 되면 모두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싶어한다. 경태제 주기옥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사정이 그다지 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대명에는 이미 황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위는 이러했다. 명영종 주기진(朱祁鎭)이 오이라트와 싸우다가 포로로 잡힌다. 손태후는 최대한도로 자기 아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기옥을 황제로 앉히면서 동시에 명영종의 아들인 주견심(朱見深)을 황태자로 앉혔다.


황태자를 바꾸려면, 주기옥으로서는 3가지 관문을 넘어야 했다. 첫째는 적장자계승원칙이다. 이건 어떻게 뚫을 것인가. 둘째, 손태후이다. 어쨌든 그녀의 숨은 세력은 상당하다. 셋째, 여론관이다. 만일 황태자를 바꾼다면 여론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한 태감이 경태제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아이디어를 낸다. 먼저 내각의 각신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들이 떠들지만 않는다면 처리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하여 경태제는 대학사들에게 "각각 백금1백냥"을 하사하여, 입을 막았다. 여러 각신들이 모두 받았다. 다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먼저 나서서 황태자를 바꾸어야한다고 청하지 않았다. 모두 '난신적자(亂臣賊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태제는 운이 괜찮은 편이었다. 광서에서 사람을 죽인 도지휘사(都指揮使) 황굉(黃紘)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경테제에게 황태자를 교체하자는 상소를 올리게 된다. 경태제는 그의 상소문을 본 후에 아주 기뻐하며, 이 말을 계속 내뱉는다: "만리 바깥에 이런 충신이 있었구나!" 그리고는 조서를 내린다: "이는 천하와 국가의 중대사이다. 여러 관리들이 논의하여 보고하라." 그리고는 황굉을 석방하도록 명한다.


조정의 여러 대신들은 황굉의 상소문을 보고 깜짝 놀란다. 사정을 알고 있는 각신이 뇌물을 받은 후 암중으로 수를 쓴 것이라고 여긴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시랑(侍郞) 강연(江淵)이 암중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여겼다.


논의를 하면서 모두 이런저런 말을 했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황태자교체에 찬성하지도 못하고, 감히 반대하지도 못했다. 며칠동안 논의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때 사례감태감 안흥(安興)이 황태자교체를 주장하는 조서를 대신들에게 내밀면서, "이 일은 더 미룰 수 없다. 원치 않으면 서명하지 않으면 된다. 망설일 것이 뭐가 있느냐?" 바로 실명투표를 하자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분위기는 바로 안정되고, 모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속속 서명한다: "부친이 천하를 가졌으면, 반드시 아들에게 전해야 한다. 이것은 삼대가 나라를 오랫동안 유지한 이유이다. 폐하께서 하늘의 명을 받아 나라를 중흥시켰으니, 대통을 아들에게 잇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


경태제가 원한 것이 바로 이런 결과였다. 조정신하들이 공동으로 올린 상소가 어전에 도착했을 때, 속으로 기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즉시 내신에게 분부하여 이를 손태후에게 보고하라고 명한다.


이때의 손태후는 조정의 문무대신들이 모두 서명한 상소문을 받았는데, 또 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아들 주기진이 못나서 황제 자리를 잃어버렸는데, 그녀가 혼자서 여인의 몸으로 조정대신 전부를 상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녀도 할 수 없이 동의하고 만다.


경태제는 손태후의 동의를 받자마자 바로 조서를 내린다. 예부로 하여금 구체적인 황태자교체업무를 준비하게 한다. 예부상서 호영(胡濙)은 풍파를 거쳐온 노신이다. 곧바로 새 동궁 관속관리의 명단을 준비하여 경태제에게 올린다. 경태제가 대외에 선포한 신 동궁관속관리의 명단을 보면, 공신에서 일반 정신(廷臣)까지 무릇 황태자교체에 동의한 사람은 모두 관직과 작위를 올려주었다. 관직과 작위를 올려주었을 뿐아니라, 다른 혜택도 적지 않았다. 급여도 올려주었다. 경태제는 또한 가장 반대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동궁에 속한 왕직, 우겸등 내각, 부원대신 18명에 대하여 공로가 크다는 점을 높이 사서 두 배의 급여를 내린다. 그리하여 왕직등이 관례에 따라 사직을 청했을 때도 경태제는 끝까지 동의하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경태제는 또 다른 공로가 있는 신하들을 생각해낸다. 즉 동궁 수시집사관기장군 64명에 대하여도 상을 내린다.


그런데 골치아픈 일도 있었다. 경태제3년 오월 초하루, 신태자를 책봉하는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내정은 사전에 준비한 바대로 아침 일찍 향정(香亭)을 명황궁의 봉천문(奉天門)에 놓아둔다. 목적은 다음 날 책봉대전때 쓰기 위해서 일찌감치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할 일을 하느라 바쁠 때, 한 남자가 손에 붉은 색의 나무몽둥이를 들고 돌연 밖에서 뚫고 들어온다. 마치 무인지경처럼 직접 향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입에서는 계속하여 "선타동방갑을목(先打東方甲乙木)"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한편으로 중얼거리면서 한편으로 향정을 내려친다. 부근의 환관들은 졸지에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속속 달려가서 그 남자를 붙잡았다. 이 일은 경태제에게 보고된다. 경태제는 비록 젊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전통문화에 대한 지식은 있었다. 상대방이 동궁책봉건 때문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후천팔괘중에서 진괘(震卦) 갑을목은 동방에 위치한다. 이 남자가 동궁책봉일 때문에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무엇때문이겠는가.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은 황제에게도 좋을 게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주기옥은 명을 내려 나무몽둥이를 들고 향정을 내려친 남자를 금의위로 넘겨서 처리하게 하고, 동궁의 책봉대전은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게 한다.


이 일을 처리한 후, 주기옥은 우울한 심정으로 궁안으로 돌아갔다. 막 자리에 앉자마자 그의 황후인 왕황후(汪皇后)가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듣기로 폐하께서 곧 태자를 바꾸신다면서요. 그러나 신첩이 생각하기로 폐하는 감국의 지위에서 황제자리에 올랐는데, 이것만 해도 엄청난 행운입니다. 돌아가신 후에는 마땅히 황통을 황형의 집안에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조카의 황태자 자리는 일찌감치 확정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천하에 알렸습니다. 어찌 가볍게 그것을 바꾼단 말입니까?" 원래 마음 속이 좋지 않던 경태제는 이 말을 듣자 더욱 불쾌해진다. 그러나 왕황후는 계속하여 말을 했다. 그러자 경태제가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게 된다: "너는 어떻게 팔이 밖으로 굽는가. 짐이 생각해보니 네가 낳은 것은 모두 공주이다. 아들 주견제(朱見濟)는 항비(杭妃)가 낳았다. 이제 짐이 그를 태자로 앉히려니 너는 마음 속으로 질투를 하는 것같다. 너는 선덕제때 우리 조상의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짐이 너에게 얘기해 주겠다. 호황후는 자식이 없었고, 스스로 나서서 황후 자리를 내놓았다. 이런 사례도 있는데, 너는 그것을 본받으려 하지는 않고 오히려 짐을 막으려 하는구나!" 말을 마치고 그는 떠나버렸다. 바로 항비의 궁으로 갔다. 한바탕 통곡을 마친 왕황후는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알고는 궁녀를 불러서 쓰게 한다. 황후의 자리를 항비에게 양보하겠다는 글이다. 경태제도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경태3년 오월 초이틀, 주기옥은 항씨를 황후로 책봉하고, 주견제를 황태자로 책봉한다. 그리고 주견심은 기왕(沂王)으로 봉한다. 그리고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린다. 그리고 황태자의 명의로 문무대신들에게 하사금을 내린다. 그러므로, 경태제와 신하들 간에 이루어진 이 거래는 거의 모두가 승자였다. 오로지 명영종부자만이 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