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합합아웅(哈哈阿熊)
역사에 관해 아주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고대에 가장 위험한 직업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황제가 1위에 올랐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중국역사 5쳔년간 매 왕조의 황제는 모두 힘들었다. 개국 혹은 멸망시기의 황제는 가장 힘들었다. 심하면 목숨이 날아가고, 가벼우면 포로가 되어 모욕을 받는다. 중간에 황제를 하면 행복할까? 기실 더욱 무섭다. 황위계승에 수반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도광검영(刀光劍影)이다.
여기에서 소개할 황제는 바로 황위계승전에서 가장 잘 참은 황제이다. 비록 망국으로 모욕을 참은 것은 아니지만, "와신상담"같은 류보다 훨씬 변태적이다. 이 황제는 당선종 이침이다.
당선종의 부친 당헌종(唐憲宗)이 죽은 후, 황위는 계속 돌고 돌았다. 문종, 무종과 목종을 거친다. 당목종은 이침의 형이다. 문종, 무종은 그의 조카들이다. 이침은 궁녀소생이기 때문에, 그의 지위는 아주 비천했다. 아무도 이 '서자'를 신경쓰지 않았고, 황위가 그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형제, 조카가 즉위한 후에 하마터면 피살될 뻔했다.
이침이 어떻게 고비를 넘겼으까? 바로 바보흉내를 낸 것이다. 그러나 조카인 당무종은 그가 정말 멍청하다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시험을 한다. 예를 들어, 고의로 이침이 말을 타다가 떨어지게 하기도 하고, 계단을 오를 때 발을 걸기도 하고, 심지어 눈사태를 이용하여 이침을 묻기도 했다. 매번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도 당무종은 역시 믿지 않았고, 화가난 나머지 그를 똥통에 던져넣으라고 한다. 이침은 그래도 시험을 견뎌내다. 똥통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똥통모욕을 가한 후, 당무종도 더 이상 그에게 재미를 잃는다. 나중에 환관 구공무(仇公武)의 도와주어 이침은 똥통에서 나오고, 구공무는 이침을 절로 보내어 스님이 되게 한다. 당연히 여기에도 구공무는 속셈이 있었다. 나중에 당무종이 죽은 후 이침을 황제로 올려서 당나라를 장악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계획은 절반만 성공한다. 나중에 당무종이 병사하고, 이침은 확실히 황위에 오른다. 그러나 생각지 못했던 것은 이침이 원래 바보흉내를 낸 것이라는 것이다. 이침이 황제에 오른 후 처음 한 일은 바로 환관집단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후 이침은 자신의 재능에 의지하여, 국내경제를 대거 발전시킨다. 곧 멸망할 만당(晩唐)에 초당(初唐)의 휘황함이 재현된 것이다. 그리하여 당나라는 멸망하기 전에 다시 한번 빛난다. 역사상 이는 "소정관(小貞觀)"이 된다.
이침(810-859), 당선종이고 당나라 16대황제이다(무측천과 당양제 이중무를 제외하고). 그는 당헌종 이순(李純)의 열셋째 아들이다. 당목종(唐穆宗) 이항(李恒)의 이복동생이다. 첫이름은 이이(李怡)이고, 장경원년(821년) 광왕(光王)에 봉해진다.
회창6년(846년) 당무종이 죽은 후, 이침은 환관 마원지(馬元贄)등이 옹립하여 황제로 등극한다.
이침은 정무에 근면했고, <정관정요>를 즐겨 읽었다. 재위기간동안 관료사회를 정돈하고, 황친과 환관을 제한하여, 감로지변에 죽은 사람들 중에서 정주(鄭注), 이훈(李訓)을 제외한 백관 모두를 명예회복시켜준다. 대외관계에서, 토번을 격파하고, 하황(河湟)을 수복하고, 새북(塞北)을 안정시키고, 안남(安南)을 평정한다. 특히 하황을 수복한 것은 안사의 난 이후 당나라가 토번에 대하여 거둔 중대한 군사승리중 하나이다.
이침의 재위기간은 당나라가 회창중흥이후 다시 한번 안정되고 번영한 시기이다. 역사상 이 시기를 "대중지치(大中之治)"라 부른다. 이침은 성격이 자세히 살피고 조용히 결단하며, 법을 적용함에 사심이 없었고, 건의하는 것을 잘 들었으며, 근검절약했다. 그래서 당나라가 망할 때까지 백성들은 그를 그리워했고, 그를 "소태종(小太宗)"이라고 불렀다.
대중13년(859년), 팔월, 이침은 장생약을 복용하다 중독되어, 대명궁에서 붕어한다. 향년 50세이다. 재위13년이다. 시호는 성무헌문효황제이고 묘호는 선종이다. 정릉(貞陵)에 묻힌다. 나중에 시호를 원성지명성무헌문예지장인신총의도대효황제로 추가한다.
이침은 시를 잘 지어서 <전당시>에 그의 시 6수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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