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역사상 진실한 무송(武松): 간신 채경의 아들을 죽이고 옥사하다

중은우시 2018. 7. 25. 20:08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수호전>의 무송 이야기는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다. "경양강에서 무송이 호랑이를 잡다." "사람머리로 무이랑이 제사를 지내다." "무송이 취하여 장문신을 때리다." "무송이 비운포에서 소란을 피우다." "장도감이 원앙루를 피로 씻고, 무행자는 밤에 오공령을 지나다."...무송이 나오는 장면들은 모두 인구에 회자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소설가의 말이다.


<임안현지>, <서호대관>, <항주부지>, <절강통지>등 사료에는 모두 북송시기 항주지부(杭州知府)의 제할(提轄) 무송이 용감하게 민중을 위하여 악을 제거한 협의의 장거를 기록하고 있다. 위의 사료에 보면, 무송은 원래 강호를 떠돌면서 매예인(賣藝人)이다. "용모기 기위(奇偉)했고, 일찌기 용금문 밖에서 기예를 보여주었다." "도둑이 아니다." 항주지부 고권(高權)은 무송의 무예가 고강하고, 재능이 출중한 것을 보고 그를 지부로 받아들여 도두(都頭)에 임명한다. 얼마후, 그는 제할로 승진한다. 이리하여 항주지부 고권의 심복이 된다. 나중에 고권은 조정의 고관에게 밉보여서 간신의 무고로 파면된다. 무송도 이에 연루되어 아문에서 쫓겨난다.


후임으로 온 항주지부는 태사(太師) 채경(蔡京)의 아들인 채윤(蔡鋆)이었다. 그는 간신이다. 부친의 권세를 믿고 항주에 부임한 후 백성들을 수탈하여 원성이 자자했다. 사람들은 채윤을 "채호(蔡虎)"라고 불렀다. 무송은 이 간신을 뼈에 사무치게 미워한다. 그리고 그의 목숨을 거두어 백성을 위하여 해악을 제거하겠다고 결심한다. 하루는 몸에 날카로운 칼을 품고, 채부(蔡府)의 앞에 숨어 있다가, 채윤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화살처럼 앞으로 돌진하여, 채윤을 몇번 찌른다. 채윤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 관병이 벌떼처럼 몰려와서 무송을 포위하고, 무송은 중과부적으로 관병에 체포된다. 나중에 중형을 받아 옥에서 죽는다. 현지의 백성들은 그의 덕에 감사하여, 항주의 서령교반(西泠橋畔)에 묻어준다. 후인들은 비석을 세워서, "송의자무송지묘(宋義士武松之墓)"라고 쓴다.


이는 진실한 기록이다. 아마도 시내암(施耐庵)도 보았을 것이다. 그 중의 몇 개 부분을 충분히 이용하여 소설 속의 무송으로 거듭난다. 무송의 최후에 대하여, <수호전>에서는 그가 청충조사(淸忠祖師)가 되어 천수를 누린다. 이는 실로 백성들이 바라는 바를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처리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