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관우)

관우가 형주를 지킬 때, 그의 문신무장(文臣武將)은 누가 있었을까?

중은우시 2018. 7. 21. 17:41

글: 이치아(李治亞)


유비(劉備)가 형주를 차지한 후, 서천(西川)을 칠 때, 제갈량(諸葛亮)으로 하여금 형주를 지키게 한다. 당시 형주에는 많은 명장이 있었다. 제갈량이 형주의 수비총사령관이고, 관우(關羽)는 양양(襄陽)의 요충지를 지키고 있었다. 장비는 영사군순강(領四郡巡江)이었고, 조운(趙雲_은 강릉(江陵)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 몇명은 모두 대단하다. 나중에 방통(龐統)이 서천을 공격하다가 죽고나서, 유비는 제갈량을 보낸다. 이때부터 형주를 지키는 일은 관우의 몫이 된다. 이때도 관우의 수하에는 많은 장수가 있었다. 문관으로는 마량(馬良), 이적(伊籍), 향랑(向朗), 미축(糜竺)이 있고, 무장으로는 미방(糜芳), 요화(廖化), 관평(關平), 주창(周倉). 기실 대단한 인물이 또 한 명이 있다. 반예(潘睿)라고 한다.


반예라는 인물은 아주 대단하다. 사서에도 기록이 있다: 반예, 무릉(武陵) 한수(漢壽) 사람이다. 나이 어렸을 때, 왕찬(王粲)이 보고는 기이하고 고귀하다고 여긴다. 서른이 되지 않아서, 유표(劉表)의 강하(江夏從事)가 되어 일할 때 부하가 지저분한 일을 해서 죽여버린다. 이로 인하여 군내에서 이름을 떨친다. 나중에 상현령(湘縣令)이 되고, 잘 다스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유비가 형주를 차지하고 나서, 반예를 치중종사(治中從事)로 삼는다. 나중에 유비가 촉으로 들어가면서, 형주에 남는다. 관우가 죽은 후에는, 손권이 반예를 보군중랑장(輔軍中郞將)에 임명한다. 손권이 황제를 칭할 때, 반예를 태상(太常)으로 삼는다. 그는 손권의 중용을 받고, 그와 사돈이 된다. 동오에서 여일(呂壹)의 난정때, 손권에게 극력 권하여 여일을 주살케 한다. 그리고 손권은 그를 "성지군자(誠摯君子)"라고 부른다. 이런 인물이 관우의 수하에서는 무명으로 지낸다.


이 반예를 제외하고 나머지 몇 몇도 간단치가 않다.


첫째는 마량이다. 그는 양양의 명사이고, 마속(馬謖)의 형이다. 마량형제 5명은 모두 재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다. 마량은 그 다섯 명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는데, 마량의 눈썹에 하얀 털이 있어서 고향사람들은 모두 "마씨오상(馬氏五常), 백미최량(白眉最良)"이라고 하였다. 유비는 마량을 좌장군연(左將軍掾)으로 삼는다. 그는 제갈량과 관계가 특히 밀접했다. 나중에 유비는 그를 동오에 사신으로 보낸다. 손권도 그를 매우 높이 평가한다. 아쉽게도 그는 관우의 곁에서 오랜 시간동안 머물지 못한다. 그가 떠나자 관우는 팔 하나를 잃은 것과 같았다. 그러나 관우는 무장을 좋아하고, 문관을 좋아하지 않는다. 관우는 강퍅자용하여 자신이 춘추도 읽어서 천하를 내려다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적이다.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나중에 오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손권은 그가 말을 잘한다는 것을 듣고, 대화하면서 그를 누르고자 했다. 이적이 손권을 배알하면서 배읍지례(拜揖之禮)를 행할 때, 손권이 묻는다: "노사무도지군호(勞事無道之君乎)" 그 뜻은 무도한 군주를 위하여 일을 하느라 힘들지 않느냐는 것이다. 손권이 말하는 무도한 군주는 바로 유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이적이 즉시 대답한다: "일배일기(一拜一起), 미족위로(未足爲勞)" 그 뜻은 그저 절 한번 하고 일어났을 뿐이니 힘들 것도 없다는 말이다. 이적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는데, 졸지에 무도한 군주는 유비가 아니라 손권이 되어 버렸다. 손권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또한 놀라마지 않는다. 속으로 이적의 재능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큰 재능은 없었던 것같다. 일찌기 제갈량, 법정(法正), 유파(劉巴), 이엄(李儼)과 공동으로 <촉과(蜀科)>를 편제했다. 이적말고 그 몇몇 인물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셋째는 미축, 미방이다. 이들은 유비의 처형들이다. 당시에 중요한 인물이다. 제갈량이 이런 인물을 관우의 아래에 남겨둔 것을 보면 관우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관우는 미방과 같은 황친국척까지 반란을 일으키게 만드니, 정말 능력있다고 할 수 있다.


넷째는 향랑이다. 향총(向寵)의 숙보이다. 학문에 능했고, 사마휘의 제자이다. 서서, 방통과 관계가 아주 좋았다. 자연히 제갈량의 심복이다.


다섯째는 요화이다. 빌고 촉국에 대장이 없어서 요화가 선봉에 선다는 말이 있지만, 요화는 아주 능력있는 인물이다. 용맹하고 과감하기로 유명하다. 요화는 삼국연의에 위, 촉, 오의 전체 흥망성쇠과정을 목격한 극소수의 인물중 하나이다. 요화는 처음에 관우의 주부(主簿)였다. 패전한 후 오나라의 포로가 된다. 그러나 계책을 써서 도망쳐 돌아왔고, 유비를 따라 오나라정벌에 나선다. 나중에 광무독(廣武督), 음평태수(陰平太守)를 맡는다. 여러번 북벌활동에도 참여한다. 말년에는 전공으로 우거기장군(右車騎將軍)에 올라, 강유를 따라 위나라장수 등애(鄧艾), 종회(鍾會)의 공격을 방어한다.


여섯째는 관평, 주창인데,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관우의 오른팔, 왼팔이다.


이를 보면, 제갈량은 관우로 하여금 형주를 지키게 하면서 남겨둔 이들은 모두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유비의 심복이고, 어떤 사람은 제갈량이 친구이고, 어떤 사람은 관우 자신의 사람이다. 그러나 관우는 사람을 잘 쓰지도 못하고, 약점을 피하고 장점을 발휘할 줄도 몰랐다. 그러니, 어찌 나중의 화가 닥치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