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치아(李治亞)
관우는 촉한명장이고 유비와는 형제와 같이 가까운 사이이다. 자료기록에 따르면, 관우에게 딸이 있었고, 손권은 사신을 보내어 아들과의 혼인을 청했다. 관우는 대노하여 말한다: "한마디 더 말하면 네 목을 자르겠다. 나의 호랑이딸이 어찌 개아들에게 시집보내겠는가?" 손권의 구혼을 그 자리에서 거절하였다. 관우가 이렇게 한 것에 대하여 모주석은 이렇게 말했다: "관운장은 대체로 통일전선을 몰랐다. 그는 고명하지 않고, 동맹군에 대하여도 관문주의(關門主義)를 취했고, 정책을 몰랐다." 기실, 이 말은 검토할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당시 손권은 여동생을 유비에게 시집보낸 바 있고, 손부인의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우가 딸을 손권의 아들에게 시집보내지 않으려 한 것은 분명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첫째, 딸이 인질이 될까봐 겁이 났다. 당시 오촉은 비록 동맹군이기는 하지만, 동오가 촉을 멸망시키겠다는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온문이아(溫文爾雅)한 화평파군대인사인 노숙도 여러번 형주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바 있다. 만일 딸이 동오에 시집간다면 수시로 손권이 자신에게 형주를 내달라고 요구하는 카드가 될 것이다. 일단 딸이 손권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자신은 피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무정하다고 하여 진짜 호걸이 아니다(無情未必眞豪傑), 아들을 아낀다고 하여 어찌 사나이가 아니겠는가(憐子如何不丈夫)
둘째, 관계가 대등하지 못하고, 집안이 서로 상당하지 않는다. 손권의 지위는 오후(吳侯)이고 강동의 영수이다. 자신은 비록 형주의 수장이지만, 자신은 주인이 아니다. 동오와 사돈을 맺으려면 반드시 유비의 명령이 있어야 한다. 비록 유비의 답변이 없기는 했지만, 관우의 오만한 기세로 보면 자연히 강사탈리(强詞奪理)하여 자신의 체면을 세우고자 했을 것이다.
셋째, 유비와 사돈이 되고 싶어했다. 유비의 아들 유선은 아직 성혼하지 않았다. 당시 관계를 보면 반드시 수하장수의 딸과 결혼을 시켜야 했다. 하나는 관우이고, 다른 하나는 장비이다. 유비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면 자신의 곁에서 잘 보살펴 줄 수 있다. 당시의 발전상황으로 보면, 일단 유비가 황제을 칭할 때, 자신의 딸이 일단 유비의 아들에 시집가면 분명히 황후가 될 것이다.
넷째, 과전이하(瓜田李下)의 혐의를 피하려 했다. 손권이 관우에게 혼인을 쳥하는 것은 유비와 관우를 이간질하려는 혐의가 있다. 누구도 알고 있다. 당시 관우는 형주을 책임지고 가절월이고 또한 형주목이다. 권력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정도이다. 권력이 커지면 쉽게 의심을 받는다. 만일 관우가 손권과의 혼인을 허락하면, 유비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유비는 큰형이고, 손권도 큰형이다. 관우가 손권과 결혼하게 되면 유비와 대등한 관계이다. 형제간에 불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관우가 욕을 한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손권이 나와 결혼하려면 나의 큰형과 얘기해라. 손권의 이 조치는 유비와 관우를 이간질시키려는 혐의가 컸다. 관우가 애매하게 거절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욕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유비의 귀에 들어갔을 때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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