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헤드리크 스미스의 <러시아인>과 현재의 중국

중은우시 2018. 7. 17. 11:17

글: 주효휘(周曉輝)


최근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친척과 전화통화를 할 때, 그로부터 공장철거이전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현재 중국의 관리들은 공개적으로 뇌물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계속 미루기만 한다. 그의 공장은 5년을 끌었지만, 철거이전에 진전이 없다. 방법이 없어서,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돈을 쓰고 사람을 찾아서 부탁했다. 친척이 언급한 중국관리의 태만, 나태와 복지부동은 최근 몇년간 드물게 보는 현상이 아니게 되었다. 북경의 고위층이 여러번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4개의식"을 제기하고, 이데올로기선전을 강화하고, 관리들로 하여금 충성을 맹세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내의 압박과 관리의 대수혈에도 불구하고 중국 각급관리의 "양면적인 얼굴"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가중되는 추세이다. 한편으로 분명히 마음 속으로는 중국공산당의 선전을 믿지 않으면서, 입으로는 모두 크게 따라서 떠들고, 당중앙 및 핵심과 입장을 맞춘다.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고, 적지 않은 구역질나는 선전도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구체적으로 일을 할 때는 말은 많이 하고 행동은 적게 한다. 그리고 몇 가지 유형의 관리가 있다: 하나는 수준미달이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경우, 하나는 기득이익을 유지하기 위하여 부패척결에 반감을 품고 암중으로 저항하는 경우; 등등이 있다. 최근에 드러난 금융리스크방비는 그저 금융부문만 고전분투하고 있고, 다른 부서에서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것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중국관리는 이런 때 도대체 어떤 심리상태를 취하는가? 필자는 30여년전 헤드리크 스미스(Hedrick Smith)라는 미국인이 쓴 책 <러시아인(Russians)>이 떠오른다. 스미스는 1971년 모스크바로 파견되어 <뉴욕타임즈> 모스크바주재사무소의 소장이 된다. 당시 소련은 브레즈네프시기였고, 대내적으로 엄격하게 통제하며 반대파를 진압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확장을 통해 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소련사회는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고, 부패가 창궐했다. 이런 분위기하에서, 스미스는 미세한 관찰력과 소련일반백성등과의 접촉을 통하여 소련사회의 진실된 일면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4년후 미국으로 귀국한 후 이 베스트셀러를 썼다.


책에서 스미스는 소련관리들의 기묘한 심리상태를 묘사했다. 그는 발견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실제로 믿는 사람은 이미 거의 없었다. 소련지도자 자신들조차 믿지 않았다. 사실이 그러했다. 소련이 해체된 후, 브레즈네프의 질녀인 류바가 쓴 회고록을 보면 스미스의 관찰이 정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레즈네프는 자신의 동생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고 한다: "공산주의는 무슨 그건 모두 백성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헛소리이지."


그렇다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는 소련지도자들은 왜 계속 민중들에게 이를 반복해서 말했을까? 스미스는 한 모스크바 과학자를 인용하여 이를 해석했다.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 작용을 한다. 혹은 하나의 상징이고 혹은 하나의 이론이다. 양자는 겸할 수가 없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그것을 일종의 상징으로 썼다. 다른 사람들이 충성하는지 판단하는 일종의 벙법이었다. 다만 그것은 그들이 몸소 이행하는 이론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이론이 아니었다."


바꾸어 말해서, 소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은 선전을 통하여 몇 사람이 믿지 않는 이데올로기를 선전했다. 목적은 바로 그들이 충성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서이다. 각급 관리, 각종 체제내의 인물은 비록 관방인 이데올로기는 믿지 않지만,  심지어 내심으로는 반감이 충만하지만, 모든 사람은 계속하여 공개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도자를 지지하고, 지도자가 말한 상투적인 말들을 반복해야 한다.


이는 당금의 중국과 너무나 닮았다. 물어보고 싶다. 마르크스주의를 소리높여 선전하고, 초심을 잃지 말자고 하는 중국의 고위관료들중 몇명이나 진심으로 믿고 있을까? 단지 수중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것이고, 기득이익을 지키려는 것뿐이다. 이를 통하여 자유민주와 헌정을 부정하고, 중국인들이 계속하여 중국공산당의 발아래 굴복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각급관리와 각종 체제내의 인물들의 절대다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비열함과 죄악을. 다만 숨어서는 공산당을 욕하면서도,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박수치며 환영하는 것이 그들이다.


원인은 여전히 수중의 기득이익을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중국공산당이라는 이 난파선이 침몰하기 전에, 재산을 최대한 긁어모아서 해외로 이전하고 가족을 해외로 내보낸다. 이것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재미있는 것은 스미스의 책에서는 소련관리들의 전형적인 유형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이 없는 견유(犬儒)식의 기회주의자. 이런 관리는 모순의 복합체이다. 그들은 한편으로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시정을 비판하고, 부패를 공격한다. 보기에는 개혁가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다시 본국의 정치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권력접단에 들어있다는데 대하여 자신만만하다. 그들은 한편으로 스탈린시대의 공포를 알면서,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스탈린이 강력한 권력으로 방대한 홍색제국을 건립한데 큰 자부심을 갖는다. 그들ㅇ느 한편으로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상해방을 나타내고, 관방의 교조를 아예 믿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개인의 견해를 숨기고, 당내에서 발언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자부심을 갖는다. 스미스는 이를 통하여 결론내렸다: "개인은 복종하고 말을 잘 들으면, 그리고 공개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도전하지 않으면, 믿든 안믿든 상관없다. 모두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당금 중국공산당의 위로부터 아래까지의 관리들을 보면, 누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한편으로 중국공산당 일당독재는 부패의 근원이라고 의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체제를 극력 옹호한다. '핵심'을 따르고, 이익을 민중에게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편으로 공포스러운 모택동시대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으면서, 한편으로 모택동의 공적과 공헌을 찬양한다. 그들은 한편으로 사적인 장소에서는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면서, 한편으로 공개적 장소에서는 계속하여 위군자(僞君子)가 된다. 시간이 오래되면, 그들은 이미 어떻게 해야 진정한 '사람'이 되는지를 잊어버린다. 이렇게 몇 개의 얼굴과 입을 가진 중국관리들은 이데올로기에 도전만 하지 않으면, 계속하여 체재내에서 생존할 수 있다. 다만 동시에 이렇게 고귀한 영혼이 결핍되고, 기회주의를 신봉하는 관리들은 중국공산당을 매장시킬 수도 있다.


1991년 소련해체시, 신앙이 없고, 기회주의를 신봉하는 소련의 절대다수 관리들은 방관을 선택했다. 그리고 소련공산당이 붕괴되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아무도 일어나서 항거하지 않았다. 역사는 어떻게 이렇게 닮았을까? 지금 이런 관리들이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중국은 아마도 마찬가지의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어떤 사건으로 해체될 때, 누군가 나서서 이 당을 지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핵심'에 충성한다고 여러번 맹세했지만. 그것이 중국공산당의 숙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