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옹정제)

옹정은 세 아들을 어떻게 차별했는가?

중은우시 2018. 6. 27. 16:44

글: 독력견문(讀歷見聞)


옹정은 강희와 비교했을 때 자식이 훨씬 적다. 그의 생전에 성년이 된 아들은 홍시(弘時), 홍력(弘曆), 홍주(弘晝)의 세 명뿐이다. 이 삼형제가 옹정에게서 받은 부친의 사랑은 천양지차라 할 수 있다. 홍력이 후계자가 된 것을 제외하고, 홍시, 홍주의 두 형제는 모두 옹정에게 비참하게 버려진다.특히 빨리 성년이 되고 성격이 직설적이었던 홍시는 직접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


옹정4년(1726년), 25살의 홍시는 부친 옹정에게 버림받는다. 옹정은 이 해에 성지를 반포하였고, 그 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홍시는 사람됨이 절대로 궁중에 남겨둘 수가 없다. 그래서 윤사(允禩)의 아들로 보낸다."


윤사는 강희제의 여덟째 아들이고, 옹정의 동부이모의 동생이다. 홍시의 숙부이다. 즉 드라마 <옹정왕조>에서 윤진(胤禛)과 가장 심하게 싸운 팔아거(八阿哥) 윤사(胤禩)이다. 윤진이 즉위한 후 윤사는 먼저 이름을 "윤사(允禩)"로 개명한다. 나중에 다시 "아치나(阿其那)"로 개명한다. 확실히 윤사는 옹정의 사적(死敵)이다. 옹정이 그를 손본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왜 아들 홍시를 이 '원수'의 아들로 보냈을까?


이런 한 가지 견해가 있다. 옹정이 홍시를 제거한 것은 홍력을 위하여 황위계승에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한 것이라고.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런 견해는 성립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당시 옹정은 겨우 50살이었고, 황제가 된지 겨우 4,5년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홍력도 겨우 15살이다. 새로운 후계자문제가 이정도로 긴장되어 아들 하나를 죽이고, 다른 아들을 올려야할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홍시의 죽음에는 분명 다른 말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는 바로 옹정이 왜 이 아들을 원수인 윤사에게 보내어 둘을 같이 묶어서 처리했느냐는 것이다.


홍시가 옹정4년 윤사의 아들로 가라는 명을 받았을 때, 윤사는 이미 옹정에게 철저히 응징을 당한 후였다. 관직과 작위를 박탈당하고, 연금되었으며, 황대(黃帶)도 빼앗기고, 옥첩(玉牒)에서도 제명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옹정이 이 아들을 윤사에게 보낸 것은, 윤사와 함께 벌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인정으로 보나 도리로 보나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정으로 보자면, 홍시는 옹정이 친아들이다. 아무리 그를 처벌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그를 모욕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도리로 보자면, 윤사도 이미 자신의 아들이 있다. 홍시가 그의 아들로 가는게 무슨 의미인가.


한발 물러서서, 설사 옹정이 당시 비밀리에 홍력을 이미 태자로 세웠다고 하더라도, 홍시를 제거하는 것이 홍력을 위하여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직접 그를 가두어 죽이면 된다. 왜 하필 자기의 아들에 대하여 이런 불필요한 단계를 거쳤단 말인가.


비교적 합리적인 해석중 하나는 홍시가 부친 옹정이 숙부 윤사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친의 편에 서지 않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숙부들의 편에 서서 불만을 표시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청사(淸史)의 태두인 맹삼(孟森)은 일찌기 이 사건을 전문적으로 고증해본 바 있다. 맹삼은 바로 건륭이 해녕진씨의 아들이 아니라는 점을 극력 입증하려 했던 그 유명한 청사학자이다. 그는 홍시의 진정한 사인을 추론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세종(옹정)이 형제들을 처형하는데 너무나 혹독해서 여러 아들들도 옳지 않다고 여겼다. 홍시는 조심스럽지 못하여 이를 드러낸다. 고종(홍력)은 조심스러워 시기를 기다렸다."


이를 보면 사실의 진상은 아마도 옹정이 황위에 앉아서 안정된 후, 예전에 황위를 다투던 형제들에게 너무 악독하게 대했다. 홍시가 부친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나이가 아직 어렸던 홍력, 홍주도 마음 속으로 다르게 생각했다. 그러나 유독 홍시는 '나이가 어리고 방종하여 행동이 조심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자주 마음 속의 불만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동생인 홍력은 계속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조용히 시기를 기다렸다. 이런 상황하에서 옹정은 머리를 내미는 홍시를 골라내서,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아마도 진실한 상황에 근접한 원인일 것이다. 생가해보라 젊은 홍시는 성격이 직선적이고, 언행에서 자주 숙부 윤사의 편을 들었다. 그려먼 옹정의 성격으로 봐서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네가 윤사의 아들을 해라. 그를 따라 같이 죽어라."


홍시를 죽여버린 효과는 아주 컸다. 나중에 홍력은 과연 법도를 잘 지키는 좋은 청년으로 자란다. 그리하여 순조롭게 후계자가 된다. 그러나, 또 다른 아들인 홍주의 상황도 이상적이었다. 그는 비록 황당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소년으로 자라기는 했지만, 그의 불량한 정도는 기껏해야 자신을 위하여 장례를 치른다든지, 제삿음식을 먹는다든지 하는 정도이다. 그러니 옹정이 그를 놔두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그를 후계자로 고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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