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효휘(周曉輝)
최근 들어 중국의 헌법개정 특히 국가주석,부주석의 임기제한을 취소한 것에 대하여 국내외에서는 큰 파장이 일었다. 정부측에서는 이 조치가 중국공산당의 '삼위일체'지도체제의 일치성을 유지하는데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시진핑이 5년임기후 제3차로 중국의 당, 정, 군의 일인자로 연임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런 암시는 자연히 이중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한편으로 '찬당탈권자'들의 막후에 있는 인물과 추종자들에게 손쓸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다른 한편으로, 적지 않은 민중들은 우려와 두려움으로 중국을 떠나는 행렬이 가속화된다.
그러나, 홍콩 <명보>의 분석에 따르면, 시진핑이 이번에 헌법을 수정하면서 임기제한을 삭제한 것은 장래에 군권(軍權)을 다시 국가주석에게 돌려주게 되면 그거은 아마도 국가주석의 권력이 실질적으로 될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제'로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 시진핑이 종신제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하여 지금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이런 추측도 우리는 배제할 수 없다. 원인은 일찌감치 중공19대이전에 유사한 말이 해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중국행정체제개혁연구회 부회장, 국가행정학원 교수인 왕위카이(汪玉凱)는 싱가포르 <연합조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지금 "역사적 대변혁의 최전선"을 가고 있다. 만일 진정으로 인민들의 인정을 받고, 국제사회에서 대체로 인정받는 제도를 설계하고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숭 ㅣㅆ다면 고위층은 반드시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중국이 미래에 국가주석제도를 대통령제로 변경해야한다고 하는게 형식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관건은 제도설계의 과학성과 합리성이다. 설사 중국의 정치체제가 대통령제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중국의 정치생태를 보면 반드시 '계통적 개혁"이어야 한다.
7월, 왕위카이는 매체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중국이 대통령제를 추진하는 의제를 얘기했다. 그리고 9월 10일, 중국의 SNS '판공실비서'에서는 민감한 웨이보글이 올라왔고, 대통령제를 언급했다.
국가행정학원은 국무원에 예속되어 있어서, 국무원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다. 왕위카이가 해외에서 돌연 이런 이슈를 던진 것은 배후에 분명 원인이 있다. 그외에, 청화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쑨리핑(孫立平)도 일찌기 "집단지도체제에서 쌍수장제(雙首長制)로"라는 제목으로 발표ㅏㄴ 바 있다. 글에서는 중국의 '집단지조체제'는 내부투쟁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가장 유효한 체제는 대리관계를 명확히 한다는 전제하에서 '수장책임제'라고 하였다. 대통령제가 아마도 그 중의 선택가능한 옵션중 하나일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과거 5년간, 중국의 최고위층은 부패척결을 소리높여 외쳤고, 여러 부패한 고위관리를 낙마시키는 동시에, 부득이하게 날로 커져가는 망당(亡黨)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여기에 당내 고위층간의 투쟁이 끊이지 않는다. 위기를 해소하는 출로를 찾는 것이 현재의 급선무이다. 19대에서 시진핑은 고도의 권력집중으로 '시진핑사상'을 당장에 넣었다. 금년 양회에서 시진핑이 주도하여 헌법수정안을 통과시키고, 주석,부주석의 임기제한을 없앴다. 마치 이것이 바로 그가 찾은 촐로라고 말하는 것같다. 다만 미래의 방향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주목할 점은 왕위카이가 2016년 9월 관영매체인 인민논단에 <개혁은 '낙지(落地)'해야 하고, '공전(空轉)'해서는 안된다>는 글을 싣는다. 이 글에서 그는 "전면적으로 개혁을 심화하는 것은 의미깊은 역사적 변혁이다 다만 이 변혁이 심수구(深水區)로 들어갈 때, 뼈를 씹어야 할 때, 그 개혁의 난도, 리스크, 저항도도 확실히 상승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이 '공전'하는 것을 막으려면 개혁책략의 선택을 아주 중시해야 한다." 그리고 두 가지 핵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개혁에 대한 저항세력을 배제하고 와해시키는 것, 둘은 치명적인 잘못이 발생하는 것읆 막는 것."
중국의 당장수정 및 중국공산당영도를 헌법에 집어넣는 것으로 보면 그 목적은 '치명적인 잘못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리고 장쩌민가족, 장쩌민일당등 '기득이익집단의 방해"와 "정부자신의 개혁에 대한 숨은 저항"을 배제하기 위하여, 시진핑은 과거 몇년간 대량의 장쩌민파 당,정,군의 고위직과 경제계의 '대리인'들을 끌어내렸고, 관료사회의 판을 새로 짜고, 기구를 조정하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왕위카이이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 아마도 사전에 고위층의 의도를 슬쩍 흘린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2016년 '양회' 기간동안, 소식통에 따르면, 중공정책연구실 주임인 왕후닝이 40여명의 고위층 지낭(智囊)을 모아서 북경 서산전략연구실에서 민주제도와 매커니즘개혁에 관한 비밀세미나를 개최했다고 한다.
분명히 고위층의 투쟁이 격렬하기 대문에, 19대의 결과는 배후에 평범하지 않은 타협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왕위카이가 언급한 제도설계와 효과적인 제도구조는 감찰위원회의 설립이 금년 양회에서 정식으로 확인되고 이미 서막을 열었다. 미래에 어디로 갈 것인가? 아마도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변수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옛날 소련의 국가수뇌체제가 형식적으로 집단원수체제의 영수이나 실질적으로 총서기였던 것에서 대통령제로 변화한 것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의 소련은 표면적으로 집단원수체제를 취한다. 즉 최고소비에트주석단이 소련의 집단원수였다. 다만 실제정치생활에서는 20년대중반부터 특히 30년대이후에 최고소비에트 및 그 주석단은 전체 권력체제에서의 지위가 단지 명목상의 것이고 상징적인 것일 뿐었다. 소련공산당은 실질적으로 국가권력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주요한 책임자이며, 직접적으로 국가의 각종 사무를 결정했는데, 소련공산당의 최고지도자인 중앙총석가 국가의 최고의사결정권자였다. 소련이 취한 것은 실제로 총서기를 위주로 하는 개인원수체제였다.
고르바초프가 취임한 초기에, 소련의 일부 법학자와 정치학자는 공개적으로 서방의 '삼권분립'학설을 연구하고 거기에서 유용한 성분을 흡수해야 한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당시에 호응을 거의 얻지 못했다. 1988년 소련공산당 19차대표대회가 개최되기 전날, 소련에서 다시 누군가가 국가정치체제를 대통령제로 하는 구상을 내놓는다. 그러나 역시 호응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소련공산당 19대에서 고르바초프는 '법치국가'와 '법률지상'을 주장하고, 소련학술계는 서방의 삼권분립학설에 대한 연구를 추진한다. 고르바초프가 소련최고소비에트주석을 맡은 후 총서기의 권한은 최고소비에트로 권력이 분산되고 이전되기 시작한다. 얼마 후, 고르바초프는 다시 소련은 새로운 국가와 사회관리체제를 건립해야한다는 구상을 내놓는다. 옐친등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은 소련이 대통령제를 실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고르바초프는 여러번 사람을 서방에 보내어 비밀리에 고찰한다. 일부 학자와 고르바초프의 고문들은 속속 글을 발표하여 소련이 대통령제를 실시해야할 필요성에 대하여 논증한다. 1990년 2월의 전체회의에서, 고르바초프는 처음으로 소련에 대통령제를 건립해야한다는 건의를 공개적으로 내놓는다. 대통령에게 일체의 필요한 권력을 부여하여 개혁정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회의에서는 행동강령을 통과시킨다. 회의가 끝난 후, 고르바초프는즉시 소련최고소비에트주석단회의를 개최하여 만장일치로 "소련에 민주대통령제정권을 건립"하는데 찬성한다. 그리고, 즉시 소련최고소비에트회의와 소련제3차비상인민대표태회를 개최하여 정식으로 대통령제실행을 결정한다.
2월 14일 먼저 개최된 소련최고소비에트회의에서 400여명의 대표들은 347표의 찬성, 24표의 반대, 43표의 기권으로 소련에 대통령제를 건립하고, 헌법의 관련조항을 수정하는 결의를 통과시킨다. 동시에 3월에 소련비상인민대표대회를 개최하여, 대통령제를 확립하는 문제를 토론하기로 결정한다. 그후에 개최된 비상인민대표대회에서 1817표의 찬성과 133표의 반대, 61표의 기권으로 <대통령직위설립과 소련헌법 및 보충법수정에 관한 결의>를 통과시킨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통령제를 확립하고 제1대 대통령을 선출한 후, 제3차비상인민대표대회에서는 두 개의 대통령에 예속된 기구를 설치한다. 대통령위원회와 연방위원회.
대통령제의 확립은 최고권력이 대명사가 변화한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더욱 정치제도의 심각한 변화를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공산당은 더 이상 합법적인 권력을 가지고 독재정치를 할 수 없고, 국가와 정부의 조직은 이전에 만능이든 공산당기구와 정식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1년후 소련공산당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된다.
만일 시진핑이 헌법수정후 국가주석권력을 강화하려고 하면, 최종적으로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중국공산당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전세계에 큰 충격과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당장 내지 헌법에 다시 중국공산당영도를 강화한다는 점과 외부에서 시진핑과 장쩌민이 비밀협의를 했다는 것을 보면, 이런 방향에 대하여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같다. 다만, 중국공산당의 역대 지도자들은 항상 정해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중국공산당의 공과를 잘 알고 있고 세계발전의 주류가 무엇인지 모르지도 않는다. 내외에서 심각한 곤란에 처하게 되면, 이런 방향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은 이런 방향만이 위기국면에서 벗어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출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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