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문화/중국의 풍속

상화(賞花): 중국 고인은 어떻게 꽃을 감상했는가?

by 중은우시 2017. 7. 23.

글: 예방육(倪方六)


봄이 오면 꽃이 핀다. 베이징의 많은 유명한 풍경지역은 모두 "꽃이 바다처럼 피어 있고, 사람은 밀물처럼 밀려든다(花如海, 人如潮)" 상화는 자고이래로 봄날의 아름다운 일이다. 고대에는 상화시에도 따지는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어떻게 "색(色)"을 볼 것인가? 어떻게 향(香)을 감상할 것인가? 어떻게 "자(姿)"를 감상할 것인가? 어떻게 "운(韻)"을 감상할 것인가? 그외에도 전문적인 "화력(花曆)이 있어 서로 다른 달에 어떤 꽃을 감상해야 하는지를 적은...


색(色)


고인들은 상화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꽃의 색깔을 보는 것이다. 매괴(장미)의 빨강, 국와의 노랑, 옥란의 하양....이는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래서 고인들은 이를 "양안(養眼)"이라고 불렀다. 


명나라때의 원굉도(袁宏道)는 <병사(甁史), 품제(品第)>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지색지절자(故知色之絶者), 아미미면부수(蛾眉未免俯首), 물지우자(物之尤者), 출호기류(出乎其類)"(원래 이 문구는 조비연의 미모가 뛰어나서, 형부인 윤부인도 황제의 총애를 받지만 조비연과 같이 가면 그저 빛이 바래게 된다는 내용인데, 여기에서의 의미로 개략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그래서 색이 가장 뛰어난 자가 있으면, 다른 미인들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보통이 아닌 물건은 모두 같은 류에서 발군이다.) 어떤 색의 꽃이 가장 아름다울까? 고인들은 "염(艶)"이라는 글자로 개괄했다. 그럼 무엇이 "염"인가? 그것은 색채가 선명하다는 것이다. 봄에는 꽃의 염은 홍색이다. "만자천홍총시춘(萬紫千紅總是春)"(온갖 붉은 꽃들이 피니 봄이로다), 가을에 꽃의 염은 황색이다. "국황해비추정농(菊黃蟹肥秋正濃)"(국화가 노랗게 피고 게가 살이 찌니 가을이 깊었다). <억강남(憶江南).강남호(江南好)>라는 시에서 당나라시인 백거이는 "일출강화홍승화(日出江花紅勝火)(해가 뜨니 강가의 꽃이 태양보다 붉다)"한 것을 보고 완전히 반해서, "능불억강남(能不憶江南)". 강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감탄한다. 


꽃의 가장 아름다운 색까른 "국색(國色)"이라고 부른다. 어떤 꽃의 색깔이야말로 국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당나라때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은 이렇게 생각했다: "유유모란진국색(唯有牡丹眞國色), 화개시절동경서(花開時節動京城)"(오로지 모란을 국색이라 부를 수 있다. 모란이 피는 시절이 되면 경성이 흔들린다). 당시 수양제 양광은 벽지 이백리를 서원(西苑)으로 만들어 조서를 내려 전국에서 화훼를 바치도록 한다. 당나라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의 글인 <해산기(海山記)>에 따르면, "역주(易州)에서 24 가지 모란을 바쳤는데, 자홍(赭紅), 자목(赭木), 배홍(紅), 천홍(淺紅), 비래홍(飛來紅)....." 대부분은 홍모란이다. 다만 고인들이 좋아한 홍색은 순홍색이 아니었다. 분홍색에 홍색을 띈 것을 좋아했다. '분홍'색계열가운데, 다시 '도홍(桃紅)'은 고대여성들이 가장 좋아했다.


도홍(桃紅)과 유록(柳綠)은 봄날에 가장 아름답게 여겨지는 두 가지 색채이다. 중국인들이 도홍을 좋아하는데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선진(先秦, 진나라의 천하통일이전)인들은 특히 이 색을 좋아했다. <시경.주남>의 <도요(桃夭)>의 첫수는 이렇다: "도지요요(桃之夭夭), 작작기화(灼灼其華)" 고인들은 왜 도홍을 좋아했을까? 혹은 여인과 관련이 있을까/ 청나라때의 이어(李漁)는 <한정우기(閑情偶寄)>에서 이렇게 말한다: "복숭아로 접을 붙이지 않은 경우에 그 색이 가장 예쁘다. 마치 미인의 얼굴과 같다. 소위 "도시(桃,복숭아빛 뺨)"라든지 "도엽(桃, 복숭아빛 보조개)"이라는 것은 모두 자연 그대로의 접붙이지 않은 것을 말한다."


도화(桃花)를 제외하고, 고인들이 좋아한 분홍계열로는 "행홍(杏紅, 살구빛 빨강)", "매홍(梅紅, 매화빛 빨강)"이 있다. 북송시인 임포(林逋)는 <행화(杏花)>에서 이렇게 말한다: "배뢰기초혈점건(蓓蕾枝梢血點乾), 분홍시협노춘한(粉紅頰露春寒)"(가지끝의 꽃봉오리는 한점 핏방울이 마른 것같고, 분홍빛 뺨은 봄날의 차가운 바람에 드러나있다)


"향(香)"


고대에 꽃은 "구품(九品)"으로 나누었다. 


꽃의 아름다움에는 "색"도 중시했지만, "향"도 중시했다. 소위 "국색천향"에서 그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안된다.


고인들은 꽃향(花香)을 중시했는데, 이는 "향기양성(香氣養性)"의 관념과도 관련이 있다. 고인들은 향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해서, "양구(養口)", "양비(養鼻)", "양목(養目)"등 서로 다른 유형으로 나누었다. 꽃향은 "양비"류에 속한다. <순자.예의편>에는 이렇게 말한다: "도량오미(稻粱五味) 소이양구야(所以養口也); 초란분신(椒蘭芬), 소이양비야(所以養鼻也); 종고관현(鐘鼓管弦), 소이양이야(所以養耳也); 각루문장(刻鏤文章), 소이양목야(所以養目也); 소방상제기석(疏房床第幾席), 소이양체야(所以養體也)" 


봄에는 매향(梅香)이 있고, 여름에는 하향(荷香)이 있고, 가을에는 계향(桂香)이 있고, 겨울에는 서향(瑞香)이있다. 꽃의 향기의 극품은 "천향"이라고 부른다. 생래적으로 타고나서, 아름답기가 천연스럽다. 모란의 꽃향, 매화향, 계화향등 꽃향은 모두 '천향'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당나라때의 중서사인 이정봉(李正封)의 명구 ""국색조감주(國色朝酒), 천향야염의(天香夜染衣)""에서 묘사한 것은 모란의 꽃향기이다. 당나라때 시인 송지문(宋之問)의 싯구인 "계자월중락(桂子月中落), 천향운외표(天香雲外飄)"에서 쓴 것은 계화향이다.


서향은 모란과 마찬가지로, 고인들의 눈에는 길상화(吉祥花)이다. 서향은 아주 향기롭다. 화분 하나를 방에 두면, 온 방안이 향으로 가득찬다. 서향은 "수향(睡香)"이라고도 불린다. 송나라때의 도곡(陶穀)의 <청이록(淸異錄), 백화문(百花門)>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산(廬山)의 서향화(瑞香花)는 유래가 이렇다. 한 비구니가 낮에 반석에서 잠을 자다가 꿈 속에서 꽃향기가 강렬한데 뭐라고 이름붙일지 몰랐다. 잠에서 깬 후에 그 향을 찾아나섰다. 그래서 이름을 "수향'으로 붙인다. 사방에서 이를 기이하게 여겨서, 꽃중에서 상서(祥瑞)라고 불렀고, 서향을 맡으면 잠이 잘 들었다."


다만 고대문인이 가장 숭상한 꽃향은 난화(蘭花)의 향기이다. 명나라때의 장겸덕(張謙德)이 <병화보. 품화>에서 꽃을 구품으로 나누었는데, 난화는 일품(一品)중의 우두머리였다.


난화향은 북송때 "향조(香祖)"라고 불렀다. 송나라때의 도곡은 <청이록.초목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난은 비록 꽃 하나를 피우지만, 방안에는 향기가 가득차서 사람들이 맡을 수 있고, 계속 향기가 난다. 그래서 강남사람들은 난초를 '향조'라고 불렀다." 공자는 <의란조>를 쓸 때 이렇게 생각한다. 난초의 향기는 "마땅히 왕자(王者)의 향이 되어야 한다". 선진인들은 난초를 "국향"으로 봉한다. <좌전.선공3년>에 이렇게 말한다: "난을 국향으로 삼았다. 사람들이 난초를 사랑하는게 이와 같았다." 


왜 고인들은 난화향을 숭상했을까? 그 묘함은바로 "난향불가근문(蘭香不可近聞)" 난초의 향기는 가까이서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향기가 그윽하여, 고인들은 이를 "유향(幽香)"이라고 불렀다.


자(姿)


"꽃은 형세를 제일로 한다(花以形勢爲第一)"


임포는 시에서 이렇게 쓴다. "소영횡사수청천(疏影橫斜水淸淺), 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 맑은 물이 흐르는 위로 성긴 그림자가 비스듬히 자라고, 닭밝은 밤이면 그윽한 향기가 흘러다닌다. 


꽃을 감상하는데는 색깔과 향기뿐만 아니라 꽃의 자태도 중요했다, 그래서 고인들은 꽃과 나무를 감상할 때, 자태와 조형을 중시했다. 아름다운 꽃이 자태는 가희 늦게 피었다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명나라때의 진도복(陳道復)은 시에서 이렇게 쓴다: "취엽분피화만지(翠葉紛披花滿枝), 풍전요요학저수(風前裊裊學低垂), 장근작일개무수(墻根昨日開無數), 수설추래소염자(誰說秋來少艶姿)" 푸른 잎이 꽃이 가득한 가지를 덮고, 바람앞에 흔들리며 고개를 숙일줄 안다. 담장 아래에 어젯 밤 몇 송이나 피었을가. 누가 가을에는 예쁜 자태를 보이는 꽃이 없다고 말했던가. 


꽃의 자태에는 횡(橫), 사(斜), 곡(曲), 직(直), 수(垂), 현(懸)으로 나뉜다. 각각 특징이 있다; 마치 묘령의 여자의 자태가 같다; 횡자는 염정(恬靜)하고, 사자는 호방(豪放)하며, 곡자는 완약(婉約)하고, 직자는 장중(莊重)하고, 수자는 경유(輕柔)하고, 현자는 표일(飄逸)하다. 각종 꽃의 자태는 활짝 피는 계절에 더욱 풍류스럽다. 예를 들어 오대(五代)의 문인 서현(徐鉉)은 <유지사십수(柳枝詞十首)>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춘화류경방자(新春花柳競芳姿)" 새봄에 꽃과 버드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를 다투고 있다.


꽃의 사자곡세(斜姿曲勢)는 더욱 고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런 자태는 매화의 자태를 가장 전형적인 것으로 한다. 스스로, "매처학자(梅妻鶴子)"라 불렀던 북송시인 임포는 매화의 색, 향, 자태에 대하여 모두 독특한 관찰력을 지녔다. 그는 <산원소매(山園小梅)>에서 이렇게 쓴다. "소영횡사수청천, 암향부동월황혼" 소영횡사, 암향부동, 이런 광경에는 정말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명,청 이래로 사람들은 사자곡세의 매화를 사랑하는 것이 거의 병적으로 된다. 청나라때 공자진의 <병매관기(病梅館記)>를 보면, 당시 강소,절강 사람들의 상매관(賞梅觀)은 "매화는 굽은 것(曲)을 아름답다고 보았고, 곧으면(直) 맵시가 없다고 보았다; 기운 것을(欹) 아름답다고 보고, 바르면 모양이 없다고 보았다; 성긴 것(疏)을 아름답다고 보았고, 빽빽하면(密) 자태가 없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화장(花匠)들은 "바른 가지는 잘라내고, 그 곁에 있는 가지를 기르고, 빽빽하면 잘라내서 그 어린 가지를 키우고, 곧은 것은 잘라내고, 생기를 막았다." 공자진은 이런 것을 "병매(病梅)"라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고인들의 꽃의 자태에 대한 심미관을 엿볼 수 있다.


운(韻)


운치는 꽃의 품질과 정신이다.



고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꽃의 운치(花韻)를 모르면 고아(高雅)한 경지에 이를 수가 없다." 화운은 '양심(養心)", "이신(怡神)"할 수 있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느낄 수 있다. 기실, 화운은 곧 꿏의 기품이고 자질이다. 화운을 감상하는 것은 바로 꽃의 상징을 보는 것이다. 


자주보는 화웨의 운(韻)은 다음과 같다: 매표청골(梅標淸骨), 난정유방(蘭挺幽芳), 도유수엽(桃有羞), 이사농장(李謝濃粧), 행교소우(杏驕疏雨), 국오엄상(菊傲嚴霜), 수선빙기옥골(水仙氷肌玉骨), 모란국색천향(牧丹國色天香), 단계표향월굴(丹桂飄香月窟), 백합여의안강(百合如意安康)....


모란은 이미 남북조에 이미 명화로 감상하는 대상이 된다. 수,당시기에 모란은 더더욱 '화왕(花王)'이 된다. 그 '국색천향'의 명예는 당나라때부터 시작된다. 왜냐하면 모란은 용용화귀(容華貴)하여, 부귀화(富貴花)라는 별칭도 있다. 남송의 주돈이(周敦)의 <애련설(愛蓮說)>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것이다."


모란은 비록 귀하지만, 고인들이 가장 숭상한 화운은 난화의 운치이다. 난화의 운치는 고결(高潔)하다. 전아(典雅)함의 상징이다. 선진때 공자는 난화를 군자에 비유한다. 후인들은 난화를 매화, 대나무, 국화와 함께 "사군자"로 칭했다. 이 네 자기 꽃은 모두 고결하고 오세(傲世)한다. 풍상과 엄한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 운치와 맛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난화가 전아함과 탈속함을 고인들은 왕왕 여성의 기질과 나란히 언급했다. 혹은 난초를 "미인"에 비유했다. 예를 들어, 북송의 소동파는 <제양차공춘란(題楊次公春蘭)>에서 이렇게 말한다: "춘란여미인(春蘭如美人), 불채수자헌(不採羞自獻). 시문풍로향(時聞風露香), 봉애심불견(蓬艾深不見)" 춘란은 미인과 같다. 혹은 묘희(妙姬), 여인(麗人)으로 비유했다. 남조의 송포조의 <부성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동도묘희(東都妙姬), 남국여인(南國麗人), 혜심환질(質), 옥모강순(玉貌絳脣)"


화력(花曆)


고인들은 꽃을 감상하는데 시기를 중시했다. 어떤 계절에 어떤 꽃을 볼 것인지. 원굉도는 <병사.청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릇 꽃을 감상하는 데에는 장소와 시간이 있다(有地有時)." 서로 다른 달에는 서로 다른 꽃을 감상하는데, 전문적인 <화력>(花月令)에서 이렇게 찾아볼 수 있다: 봄이 되면 매화, 해당, 여름이 되면 모란, 작약, 석류, 가을이 되면 목서(木), 연꽃, 국화, 겨울이 되면 납매(臘梅)."


청나라 도본준(屠本畯)이 편찬한 <병사월표(甁史月表>에서는 각 달의 꽃에 대하여 더욱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음력삼월에는 "화맹주(花盟主): 모란, 전다(滇茶), 난화, 벽도(碧桃); 화객경(花客卿), 천견(川鵑), 이화(梨花), 목향(木香), 자형(紫荊); 화사령(花使令), 목필(木筆), 장미, 사표(謝豹), 정향(丁香), 칠자매(七姉妹), 욱리(郁李), 장춘(長春)."


화기(花期) 외에 상화에는 "양신(良辰)" 즉 좋은 시간도 선택해야 한다. 양신이 맞아야 '아름다운 경치'가 된다. 같은 종류의 화훼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감상하면, 소위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답설심매(踏雪尋梅). 눈을 밟고서 매화를 찾는다. 눈이 꽃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그래서 별다른 운치가 있다; 비를 맞으며 정원을 찾아가는 것은, "이화대우(梨花帶雨)"가 더욱 맛이 있다; 그래서, 원굉도는 <병사.청상>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한화(寒花), 의초설(宜初雪), 의설제(宜雪霽), 의신월(宜新月), 의난방(宜暖房); 온화(溫花), 의청일(宜晴日), 의경한(宜輕寒), 의화당(宜華堂); 서화(暑花), 의우후(宜雨後), 의쾌풍(宜快風), 의가목음(宜佳木蔭), 의죽하(宜竹下), 의수각(宜水閣); 양화(凉花), 의상월(宜爽月), 의석양(宜夕陽), 의공개(宜空階), 의 태경(宜苔徑), 의고등참석변(宜古藤巉石邊)"


고대문이들은 좋은 시기에 꽃을 감상하는 묘미를 알았다. 예를 들어, 명나라때의 풍류재자 당백호는 "월야간화(月夜看花)"를 좋아했다. 그의 <화월음효연주체십일수>의 4에서 이렇게 썼다: 격화규월무다영(隔花窺月無多影), 대월간화별양자(帶月看花別樣姿), 다소화전월하객(多少花前月下客), 연년화월취화지(年年和月醉花枝)"


그리고, 꽃을 감사하는 장소도 잘 선택해야 한다. 반드시 경치가 좋은 곳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도화를 보는 경우, 청나라때의 이어는 반드시 유명한 정원에 가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유향촌이락지간(惟鄕村籬落之間), 목동초수소거지지(牧童樵叟所居之地) 능부유지(能富有之)" 시골의 담장 다이에 목동과 나뭇꾼이 사는 곳에 많이 있다. 이어는 건의한다: "도화를 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교외로 나가서 머무는 곳이면 된다."


당연히, 시간과 장소 외에, 고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꽃을 감상하는데에는 마음도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