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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수호전

무송과 노지심은 누구의 주량이 더 셀까?

by 중은우시 2018. 3. 7.

글: 유전록(劉傳彔)


<수호전.은 바로 술을 마시는 역사이야기이다. 무송은 경양강에서 연이어 18사발의 술을 마셨는데, 이것은 그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일 뿐이다. 노지심은 구운고기를 가지고 이삽십사발을 마셨다. 정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도대체 누구의 주량이 더 세다고 할 수 있을까?


수호전에서 술은 노주(老酒)와 촌주(村酒)로 나뉜다. 술의 품질로 봐서는 고급술과 하급술이다. 실제로는 사람을 귀족과 평민의 두 등급으로 분류하는 것이나 같다. 자연스럽게 노주와 촌주의 칭호가 나타났다.


촌주는 일종의 증류를 하지 않은 소주(小酒)이다. 품질이 낮다. 일반적으로 시골에서 팔거나 자기 집에서 마시는데 쓴다. 대명부(大名府) 양중서는 양지를 파견하여 생신강을 압송하게 하는데, 채경의 생일축하를 위하여 양지 일행은 황니강에 도착한다. 그 십여명의 군인들은 백승이 통을 하나 메고 가는 것을 보고 묻는다: "너의 통 속에는 뭐가 있느냐?" 백승은 대답한다: "백주(白酒)입니다." 여러 군인들은 즉시 기운을 차린다: "우리는 덥기도 하고 목도 모른데, 왜 사서 마시지 않느냐. 더위나 풀자." 아마도 더위를 푸는 술이라면 아마도 오늘날의 미주(米酒)일 것이다. 노지심이 오대산에서 소란을 피우며 마신 것이 바로 촌주이다. "노지심은 그 두 통의 술을 모두 정자에 들고 올라가서 덮개를 열었다. 그저 국자로 차가운 술을 퍼서 먹었다. 얼마 되지 않아 두 통의 술에서 한통을 다 마셔버렸다." 아마도 알콜도수가 비교적 낮아서 1통을 다 마시고서야 취한 것같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마시는 것은 바로 촌주이다. 오는날 말하는 증류하여 이루어진 백주는 아니다. 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주(素酒), 황미주(黃米酒), 훈주(葷酒), 혼백주(渾白酒)는 모두 촌주이다.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알콜도수도 상대적으로 낮다.


수호전의 노주는 <송사.식화지>에 따르면, 송나라에서 대주(大酒)라 불렀다. 이런 술의 알콜도수는 비교적 높다. 술의 품질(색, 향, 맛)도 모두 '소주'보다 뛰어났다. 생산에서부터 음주에 이르기까지 근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격은 비싸다. 공량(孔亮)의 청화옹(靑花瓮)이 바로 노주이다. "가게주인이 한 통의 청화옹술을 들고 나왔다. 진흙두껑을 열고, 대백분(大白盆)에 붓는다. 무행자(武行者)가 몰래 훔쳐보았을 때, 단지에서 나오는 것은 좋은 술이었다. 바람이 불자 향이 밀려온다. 무행자는 그 향을 맡으려 참지를 못했다. 목구멍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한다. 일어나서 빼앗아먹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무송은 술을 아는 사람이다. '빼앗아먹고 싶다'는 말에서 그것이 좋은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송은 금방 취한다. 그는 작은 계속을 따라 언덕을 가다가 똥개가 미친 듯이 짓는 것을 본다. 무송은 왼손으로 검집에서 계도를 뽑아들고, 한칼로 베어간다. 힘을 너무 많이 주어서, 머리부터 계곡물에 꼬라박힌다. 송강은 비파정에서 대종, 이규를 접대하는데, 술집주인이 두 통의 옥호춘(玉壺春)이었다. 이는 강주(江州)의 유명한 상급술이다. 송강이 심양루(潯陽樓)에서 술에 취해서 '반시(反詩)'를 쓴다. 그때 마신 것이 바로 교풍월(橋風月)이라는 좋은 술이다. 도수가 높은 노주이다. 송강은 술에 취한 후에 비로소 '반시'를 썼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결국 사람들이 그를 행형장에서 데려나왔고, 어쩔 수 없이 양산에 오른다.


당시에는 양조기술이 발달되지 못했다. 제조기간도 짧고, 술이 품질도 좋지 않았다. 술을 다 만들고 나면 왕왕 지꺼기가 남아 있었다. 마실 때는 먼저 걸러야 했다. 백거이의 <문유십구>라는 시에서 말하는 "녹의신배주(綠蟻新醅酒)"에서 가리키는 것은 바로 걸르지 않은 술이라는 말이다. 송나라때의 <광운>에서는 '배(醅)'자에 대하여,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술을 아직 걸르지 않은 것이다(酒未漉也)" 술을 걸르면 맑아진다. 품질도 좋아진다. 그래서 '청주(淸酒)"라고 부른다. 걸르지 않은 술은 바로 명나라때의 양신(楊愼)이 말한 "일호탁주희상봉(一壺濁酒喜相逢)"에 나오는 그 '탁주'이다. 다른 한편으로, 통상 술을 제조할 때 알콜도수가 10도에 이르면, 효모균은 번식을 중지하고, 발효과정이 정체된다. 그래서 발효과정만을 거친 술은 알콜도수가 10도정도를 넘지 못한다. 무송이 경양강에서 호랑이를 때려잡기 전에 마신 그 18사발의 술은 이런 류에 속한다. 저도의 미주이다(아마도 물도 탔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사발로 벌컥벌컥 마실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공자가 마신 술이건, 한무제가 마신 술이건, 아니면 조조, 이백, 소동파가 마신 술이건 성질상으로는 모두 '삼완불과강'과 같다. 알콜도수가 낳았다. 그래서 고인들은 호쾌하게 마실 수 있었던 것이다.


무송이 마신 18사발의 "투병향(透甁香)"은 바로 촌주중에서 정품(精品)이다. 관료들이 마시는 노주보다 맛이 있었다. 일종의 알콜도수가 낮은 저도주이다. 노지심이 오대산에서 마신 술은 분명 소주(小酒)이고, 그저 알콜음료에 해당한다. 무송은 술을 마신 후에 호랑이를 때려잡고, 장문신을 이긴다. 그러나 노지심은 술에 취해서 산문을 부술 뿐이다. 술을 마신 후의 행동이라는 각도에서 보면, 무송의 주량이 노지심보다 대단한 것같다.


노지심과 무송이 술을 가장 많이 마셨을 때를 보면, 무송이 취하여 장문신과 싸우러 가는 노중에  열두세개 주점에 들러 세 사발씩을 마신다. 개략 3,4십사발가량이다. 물론 술의 질은 가장 낮은 것이다; 노지심은 도화촌에서 마신 1호의 혼주와 이삽십사발의 보통주에도 맑은 정신을 가지고 소패왕(小覇王)을 마구 때려준다. 원저의 문자로 보자면 아마도 노지심은 이삼십 사발이 통상적인 주량인 듯하고, 두 사람의 주량은 비슷했던 것같다. 다만 수량으로 보면 노지심이 조금 더 많이 마신 것같다. 


양산호한 중에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적지 않다. 무송, 노지심, 임충, 이규와 송강등등이 모두 술고래이다. 모두 술을 마시고나서 경천동지할 일을 이룬다. 송강은 술을 마시고 반시를 썼고, 임충은 술을 마시고 산신묘에서 세 명을 죽인다. 이런 장면들은 모두 수호전에서 잊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다만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은 무송이 호랑이를 때려잡는 것과 노지심이 도화촌에서 취해서 소패왕을 패는 것일 것이다. 이 두 사람만이 양산에서 주량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도대체 누구의 주량이 더 센지는 시내암 선생에게 물어봐야 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