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문학/수호전

양산호한(梁山好漢)들은 왜 대부분 처자식이 없는가?

by 중은우시 2014. 10. 24.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양산호한들에게는 괴이한 현상이 하나 있다. 대부분 처가 없다는 것이다. 양산박의 3대 두령은 하나같이 모두 '홀아비'이다. 탁자에 둘어앉아 의사결정을 내리는 집단의 또 다른 몇몇 인물인 노준의, 오용, 공손승등도 모두 하나같이 홀아비들이다. 송강, 노준의 그리고 임충등은 이전에 부인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여인이 죽은 후 자녀는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이 다시 다른 여인을 취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다시 단신족으로 돌아온 것이다. 화영, 주공등은 부인이 있다. 그러나 작자는 소설에서 그저 한 마디 하고 지나갔을 뿐이고, 그들의 후손에 대한 묘사는 더더욱 적다. 이들 반란을 일으킨 인물들의 나이가 모두 어려서일까? 그것도 아닌 것같다. 무송이 형수를 직일 때 이미 25살이다. 송강은 무송보다 나이가 많다. 조개는 송강보다 나이가 많다. 무송보다 나이가 많은 두령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무송과 비슷한 나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일찌감치 처자식을 두었을 나이이다. 이규와 완씨형제는 가난뱅이여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양산호한의 대다수는 돈과 지위가 있던 사람들이다. '불효에 세 가지가 있는데 후손을 두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는 고대에 이들은 왜 대부분 처자식을 두지 않았을까?

 

이것은 한 가지 현상을 반영한다. 녹림호한은 거의 처를 두지 않는다. 가정과 가업이 있는 사람은 집과 일을 버리고 나와서 반란에 가담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이것은 하나의 현실이다. 즉 녹림호한의 현상이다. 가정도 있고 재산도 있고 처자식도 있는 사람이 집과 일을 모두 포기하고 반란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양산박에 모인 최초의 4명은 두천, 송만, 왕륜과 주귀이다. 그들은 모두 처가 없다. 이처럼 아무런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는 사람들만이 한다면 하는 것이고 간다는 가는 것이다. 현실상황을 볼 때, 집안에 가업이 있으면 굳이 산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상황은 그러하다. 양산박의 상황도 그러하다. 그때 대송천하는 이미 '도적'이 온천지에 널렸다. 양산호한과 연락이 되는 곳만도 소화산, 도화산, 이룡산, 백호산, 청풍산, 황문산등등이 있다. 이들이 그저 창과 방망이를 휘두르기 좋아하고, 여색은 그다지 밝히지 않기 때문에 처를 두지 않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역사상의 녹림호한은 남의 처나 딸을 빼앗아 '압채부인(壓寨夫人)'으로 삼는 일이 있었다. 양산호한같은 '충의'의 지사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점이 있다. 왕영은 유고의 마누라를 빼앗았는데, 그녀는 송강을 해친 여인이다. 왕영은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소패왕 주통은 유태공의 딸을 강제로 취하려 한다. 유태공이 동의하든 말든 그것은 신경쓰지도 않았다. 이것은 충분히 설명해준다. 그들에게도 혼인과 자녀생육의 바램이 있었다. 단지 이런 상황은 '상산(上山)'이후에 일어난 것이다  반란을 선택할 때 처가 있느냐 없느냐는 차이가 매우 크다. 조개등 7명은 모두 처가 없다. 그들이 함께 모여서 생진강을 강탈한다. 사건발생후에는 그냥 도망쳐 버린다. 아무 것도 걸리적 거리는 것이 없고, 발목을 잡는 것도 없었다. 송강은 달랐다. 그는 원래 양산에 올라가려고 했는데, 늙은 부친이 있었다. 늙은 부친이 충효를 하라고 당부하는 바람에 양산에는 올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강주의 그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주공은 송강과 관계가 밀접하다. 뇌횡을 풀어준 후 원래는 그와 함께 양산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처가 걸려서,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것을 선택한다. 뇌횡이 송강의 명을 받들어 그에게 양산에 오르자고 말할 때 그가 말한 것은 "시비가 일어날 수 있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알 수 있다. 처가 없는 호한은 대부분 시원스럽게 양산을 오른다. 그러나 처가 있는 두령들은 대부분 한바탕 곡절을 겪은 후에 오른다.

 

이런 사람들은 후대를 두어서는 안된다.

 

주류사회의 인식에서 양산의 두령이 스스로 자신이 인의충효하다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도적이라는 이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간신 고구, 동관이든 아니면 충의의 화신인 후대의 관승이든 그들이 양산에 오면 모두 "적(賊)"이라고 욕하는 것이다. 보통백성들의 인식이 바로 그러했다. 주통이 유태공의 딸을 강제로 처로 취하려 할 때, 스스로 생각한다: "내가 너희 집의 사위가 되는 것은 너를 손해보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태공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재산이나 현재 지내는 생활을 기준으로 보면, 주통은 확실히 유태공보다 훨씬 낫다. 유태공은 왜 원치 않은 것일까? 아주 간단하다. 네가 지금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여전히 도적이다! 설사 조정에서 영원히 너를 소탕하지 못하여, 네가 평생 산적두목으로 산다고 하더라도, 너의 자식은 여전히 '도적'이라는 이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정상사회의 견해를 볼 때, 이들은 후손을 두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아무도 산적에게 딸을 시집보내지 않으려 하는 이유이다. 노지심은 주통에게 혼사를 포기하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유태공에게는 단지 이 딸만 있어서 평생을 봉양해야 한다. 네가 딸을 빼앗아가버리면 그 노인네는 의지할 곳이 없다" 이것은 주통의 말과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기실 주통은 그저 스스로가 처를 강취해 오기 위하여 이유를 댄 것이다. 그도 잘 안다. 그가 그 딸을 빼앗아 오면, 유태공은 '의지할 곳이 없게 된다'는 것을.

 

양산박은 비록 작자가 이상적인 왕국으로 묘사하였지만, 하나하나 현실에서 온 사람으로서, 자신의 그런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여인은 그들의 '압채부인'이 된다면 바로 천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후, 그녀들은 그저 항상 불안하게 살아야 한다. 정상인의 생활이라고든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바로 녹립호한들이 강탈혼을 할 수밖에 없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혼인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면, 작자의 가장 간단한 처리방법은 바로 이들 두령들에게 최대한 처를 두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환경하에서 여자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양산의 환경은 그들이 시시때때로 창검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여성이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현실의 환경에서, 만일 여인이 '압채부인'이 된다면, 그저 산적두목을 따라 이러저리 떠돌아다녀야 한다. 그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고대수, 손이낭등 양산에 몇몇 안되는 여장들은 그저 민간전설에서 몇몇의 유성처럼 흘러간 여자 '산적두목'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역삿아 몇몇 안되는 건괵영웅과는 다르다. 그녀들은 정상사회상태에서 특정한 환경하에서 아주 드물게 출현하였다. 이미 사회에서 유리된 양산박의 두령이 아니다. <수호전>은 소설이다. 그러나 그것은 먼저 역사소설이다. 작자가 먼저 고려애햐 하는 것은 역사의 진면목에 따라 쓰는 것이다. 이런 전통문화 속에서 현실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은 현대의 일부 영화드라마와는 다르다. 매표수입을 위해서는 그 어느 것도 신경쓰지 않는.

 

이것은 작자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수호전>은 역사소설이다. 소설로 만들어지기 전에, 많은 양산호한에 관한 이야기와 화본이 민간에 전해지고 있었다. 의문의 여지없이, 작자는 이들 이야기의 성분을 받아들이고, 이들 이야기가 포함하고 있는 사상인식을 받아들였다. 이들 소위 호한은 살인방화, 멸문도성, 단도절로, 투계모구한다. 원래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을 인물들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탐관오리를 죽이고, 불의지재를 빼앗고, 서로 만나면 형제처럼 지내고, 천하의 불공정한 일을 만나면 바로잡는다. 이것은 인간세계에서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나쁜 사람을 다 죽여야 실현될 수 있는 이상은 그저 남성인 호한이 실현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누구도 이를 벗어날 수 없었다. 화목란이 왜 남자로 분장했겠는가. 그녀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시대의 요구는 그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