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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수호전

수호전: 양산박의 파벌분석

by 중은우시 2012. 9. 19.

글: 송승리(宋勝利)

 

양산박의 최대파벌은 의심할 여지없이 송강(宋江) 자신의 파벌이다. 송강의 적계는 3부분을 구성된다.

첫째는 그의 적계의 적계이다. 여기에는 송강이 양산박에 들어가기 전의 친구형제인 화영(花榮), 오용(吳勇), 주동(朱仝), 뇌횡(雷橫), 그의 친동생인 송청(宋淸), 그리고, 강주감옥에서 생사를 함께 한 대종(戴宗), 또한 그를 따르는 이규(李逵)가 있다. 또한 그의 제자인 공명(孔明), 공량(孔亮)도 있다. 여기에 그의 신변호위인 여방(呂方), 곽승(郭勝)이 있다. 둘째는 송강에 의존하는 소계파이다. 주로 청주(靑州)의 항장(降將)인 진명(秦明), 황신(黃信)이 있다. 그중 진명은 화영과 처남매부간이다. 이 관계로 진명은 송강의 직계의 직계로 분류할 수도 있다. 청풍산(淸風山)의 연순(燕順), 왕왜호(王矮虎), 정천수(鄭天壽), 여기에 나중에 왕왜호에 시집간 호삼낭(扈三娘)이 있다. 게양진(揭陽鎭)의 이준(李俊), 이립(李立), 목홍(穆弘), 목춘(穆春), 장횡(張橫), 장순(張順), 동위(董威), 동맹(董猛), 설영(薛永), 후건(侯健)이 있다. 황문산(黃門山)의 구붕(歐鵬), 장경(蔣敬), 마린(馬麟), 도종왕(陶宗旺)이 있다. 이들은 모두 송강이 직접 초모(招募)한 자들이다. 셋째는 간접적으로 송강파벌에 투신한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스스로 투신해온 석용(石勇), 대종이 초모한 양림(楊林), 이규가 초모해온 탕륭(湯隆), 초정(焦挺), 포욱(鮑旭), 주부(朱富)등이 있다. 합계 38명이다. 이는 양산박 조직의 1/3이다. 여기서 언급할만한 점이라면 이준을 우두머리로 하는 게양진파벌은 합계 10명인데, 비록 송강에 의탁하였지만, 단독으로 독립하더라도 상당히 실력있는 파벌이 될 것이다.

 

양산박의 제2대파벌은 노지심(魯智深)의 삼산(三山)계통이다. 삼산은 원래 이룡산(二龍山)의 노지심, 양지(楊志), 무송(武松), 시은(施恩), 조정(曹正), 장청(張靑), 손이낭(孫二娘); 도화산(桃花山)의 주통(周通), 이충(李忠); 그리고 백호산(白虎山)의 공명, 공량을 가리킨다. 다만, 공명, 공량은 송강의 제자라는 관계가 있고, 두 사람은 양산박에서 송강의 신변호위를 맡기도 했으므로, 송강의 적계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소화산(少華山)의 사진(史進), 주무(朱武), 진달(陳達), 양춘(楊春)은 노지심과의 관계가 더욱 밀접하다. 그래서 삼산은 이룡산, 도화산과 소화산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파벌에는 13명이 있다. 그중 무송은 송강과 관계가 깊다. 일찌기 시진의 장에서 무송은 송강에게 회유된다.

 

양산박의 제3대파벌은 원래 양산박의 조개(晁蓋) 계통이다. 조개가 죽은 후에는 임충(林沖)이 이 파벌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들은 송강이 양산박에 올랐을 때 왼쪽에 앉아있던 그 두령들이다. 임충, 유당(劉唐), 완소이(阮小二), 완소오(阮小五), 완소칠(阮小七), 두천(杜遷), 송만(宋萬), 주귀(朱貴), 백승(白勝)이다. 그중 주귀는 송강 적계인 주부와 형제간이다. 이 파벌은 양산박의 가장 원로들이고, 양산박에 대한 공헌이 가장 큰 파벌이다. 그중 유당과 삼완은 모두 오용과 함께 생신강을 강탈한 생사형제로 송강과도 관계가 깊다. 임충은 삼산계통의 우두머리인 노지심과 생사지교이다. 이 파벌은 모두 9명이 있다.

 

양산박의 제4대파벌은 항장(降將)파벌이다. 주로 여러번에 걸쳐서 양산을 토벌하거나, 양산이 적극적으로 정부군을 공격할 때, 양산박에 항복한 정부군의 군관들로 구성되었다. 임충, 진명, 화영등은 비록 전 정부군 군관출신이지만, 양산박과 관계가 깊다. 일찌기 가입했으므로 항장계통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 파벌은 비교적 느슨하다. 명목상의 영수는 대도 관승(關勝)이다. 그리고 3개의 소파벌에다가 쌍창장 동평(東平)이 추가된다. 3개의 소파벌은 호연작(呼延灼)파벌, 관승파벌, 그리고 장청(張淸)파벌이다. 호연작파벌은 주로 양산박이 고당주를 격파한 후 제1차로 조정이 파견한 토벌군의 군관으로 호연작, 한도(韓滔), 팽사(彭사), 능진(凌振)의 4명이다. 관승파벌은 비교적 큰 파벌인데,주로 양산 대명부때 조정이 파견한 두 번의 토벌군 군관이다. 모두 관승, 선찬(宣贊), 단정규(單廷珪), 위정국(魏定國) 에 관승이 복속시킨 대명부 상교단장 색초(索超)의 6명이다. 장청파벌은 양산이 동창부를 칠 때 받아들인 동창부의 정부군 군관이다. 장청, 공왕(龔旺), 정득손(丁得孫)의 3명이다. 이 느슨한 항장파벌은 합계 14명이다. 다만 개별 파벌의인수가 비교적 적고, 전체적으로 연결이 긴밀하지 않아서, 필자는 이를 제4대파벌로 놓는다.

 

양산의 제5대파벌은 노준의(盧俊義) 파벌이다. 노준의는 양산박에 들어온지 시간이 얼마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래도 자신의 파벌은 있다. 주요 구성원은 충성심이 가득한 연청(燕靑)과 북경에서 감옥에 있을 때 생사지교를 맺은 석수(石秀, 석수와 노준의의 관계는 대종과 송강의 관계에 비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를 도우는 채복(蔡福), 채경(蔡慶) 형제가 있다. 양웅(楊雄), 시천(時遷)은 석수와 일체이다. 그래서 석수의 관계로 이 두 사람도 노준의 파벌에 포함시킬 수 있다. 노준의 파벌은 모두 7명이다.

 

이외에, 양산박에는 소파벌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손립(孫立)의 등주(登州)파벌이 있다. 이들은 삼대축가장때 양산에 의탁한 해진(解珍), 해보(解寶), 손립, 손신(孫新), 추연(鄒淵), 추윤(鄒潤), 고대수(顧大嫂), 낙화(樂和)등 8명이다. 이 파벌의 인원은 적지 않으나, 중량급의 인물이 없어서, 소파벌에 머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파벌은 공손승(公孫勝)파벌이다. 주요 인원은 망탕산의 번서(樊瑞), 항충(項沖), 이곤(李袞)의 세 사람이다. 공손승이 번서를 제자로 거두어, 망탕산의 일파는 공손승의 휘하로 들어간다. 공손승은 오용 및 조개파벌과 관계가 깊다. 본인도 기인이사이다. 비록 양산의 지위는 높지만, 본인이 수도인이고, 조용히 지내기 때문에 이 파벌은 아주 조용한 편이다.

 

그리고 음마천(飮馬川)파벌이 있다. 모두 배의(裴宜), 등비(鄧飛), 맹강(孟康)의 세 명이다. 이 파벌은 송강의 적계의 적계인 대종이 양산박으로 끌어들였다. 송강적계에 의탁한 소파벌로 보아도 좋다.

 

또한 이가장(李家莊)의 이응(李應)과 두흥(杜興)이 있다. 비록 2명이지만, 소파벌로 볼 수 있다. 이 파벌의 두흥은 노준의 파벌의 양웅과 연원이 깊다. 이응 본인의 배경과 처지는 노준의와 아주 비슷하다. 그래서 이 소파벌은 노준의에 가깝다. 억지로 우겨넣는다면 노준의의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는 비교적 독립적인 10명의 호한이다. 그들은 시진(柴進), 서녕(徐寧), 소양(蕭讓), 김대견(金大堅), 안도전(安道全), 왕정륙(王定六), 이운(李雲), 황보단(皇甫端), 욱보사(郁保四), 단경주(段景住)이다. 그러나 고립된 것은 아니다. 시진은 강호에 이름을 떨치고, 많은 흑도분자들에게 은혜가 있다. 양산박에서 그의 은혜를 입은 자들만도 송강, 임충, 무송의 3명 중량급인물이 있다. 그래서 그의 지위는 아주 초연하다. 서녕은 사촌동생 탕륭에게 속아서 양산으로 왔다. 본인은 전 정부군 군관이다. 항장파벌과 비교적 가깝다. 소양과 김대견은 대종이 양산으로 데려왔다. 이 두 사람은 송강적계와 관계가 상대적으로 가깝다. 안도전과 왕정륙은 장순이 양산으로 데려왔다. 그중 왕정륙은 스스로 원해서 왔고, 안도전은 협박을 받아서 왔다. 이운은 주부가 이규와 함께 협박해서 양산으로 오게 만들었다. 황보단은 장청이 데려왔다. 그래서 항장파벌과 관계가 비교적 좋다. 욱보사는 원래 양산의 적이다. 그런데 자신의 보스에게 배신당하고 양산의 유혹에 넘어와 양산에 가입한다. 단경주는 자신이 스스로 양산에 투신한다. 이 10명은 비교적 독립적인데, 전문기술인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서녕은 구겸창(鉤鎌槍)의 기술전문가이다. 소양은 서예전문가이다. 김대견은 전각(篆刻)전문가이다. 안도전은 의사이다. 황보단은 수의사이다. 단경주는 상마(相馬)전문가이다. 이 각도에서 보자면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인문들은 비교적 파벌에 관여를 하지 않는 편이고, 이들 전문기술자들은 조직에서 필요로 하지만, 지위는 그다지 높지가 않다. 이 점은 양산박 시대부터 그러했고, 지금의 군대계통에서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