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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초기)

아오바이(鰲拜)(2): 성공의 수수께끼

by 중은우시 2018. 2. 27.

글: 기련해(紀連海)


우리는 앞에서 여러분에게 소개했다. 아오바이가 팔기의 호군통령으로 있던 이 관건적인 시기인 1643년 9월 21일에 51세의 홍타이시가 갑자기 사망한다. 홍타이시가 급사한 후, 누가 홍타이시의 자리를 계승할 것일가, 누가 대청왕조의 후계자가 되느냐를 놓고 두 사람의 후보자가 떠오른다. 한 사람은 양황기 계통의 홍타이시의 장남인 35세의 숙친왕 하오거(豪格)이고, 다른 한 사람은 양백기 계통의 홍타이시의 동생인 나이 32살의 도르곤(多爾滾)이다. 이번 투쟁에서, 팔기, 장령, 황친국척은 3개의 파로 나뉜다. 일파는 아오바이, 소니 등으로 하오거를 지지했다. 다른 일파는 도도(多鐸), 아지거 형제 2사람므로 그들은 모두 도르곤과 모친이 같은 친형과 친동생으로 도르곤을 지지했다. 셋째는 다이샨, 지르하랑등의 사람으로 방관자이다. 그들은 어부지리를 노렸다. 아오바이는 이 결정적인 순간에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소니 등과 하오거를 지지한다. 그리고 맹세한다. 생사를 같이 하겠다고. 그들은 속속 하오거의 집으로 달려가서 하오거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반드시 하오거를 황제로 옹립하겠다고 한다.


그들의 이런 음모에 대하여 겉으로 드러낼 수없는 것은 말하지 말기로 하고, 직접 1643년 9월 26일로 넘어가자. 이 날은 음력 팔월 십사일이다. 이 날에 제왕대신의 회의가 열린다. 황위계승자를 논의하는 회의이다. 바로 숭정전(崇政殿)에서 개최되었다. 아오바이는 팔기의 호군통령으로 모든 팔기호군에 명령할 권한이 있었다. 숭정전을 둘러싸고 활과 화살로 무장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팔기호군은 아오바이의 지휘를 들었다.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아오바이와 소니등이 먼저 나서서 말한다. "황자를 세워야 한다" 그러자 그들은 도르곤의 질책을 받는다. 이곳은 친왕, 군왕들이 회의하는 장소이다. 너희가 나설 곳이 아니다. 내려가라. 아오바이등은 내려왔다. 그러나 이곳은 팔기의 호군외에도, 양황기의 군대가 이미 모두 와서 숭정전을 포위하고 있었다. 형세는 하오거에게 아주 유리했다. 양백기는 그래도 말에서는 약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간담이 서늘한 상황이었다. 도도, 아지거 두 사람이 속속 일어나서 자신의 형제인 도르곤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이샨은 말했다. 그래도 하오거를 세우는게 좋지 않을까. 하오거는 황제의 장남이다. 이렇게 다시 공은 하오거에게 넘어간다. 하오거는 이때 수하에 3개의 기가 있고, 다이샨 수하의 2개 기가 있어서 5개 기를 확보했다. 이미 우세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겸양의 말을 한다. 그러나, 그는 제대로 겸양하지를 못했더 것같다. 그래서 그의 겸양의 말이 바로 상대방에게 약점으로 잡힌다. 그래서 형세는 아주 긴장되게 된다.


이때 아오비이가 보니 형세가 좋았다. 이미 5개 기가 하오거를 지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니와 아오바이는 눈짓을 한 후에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선다. 그들 둘이 앞으로 나서기 전에 전체 양황기도 앞으로 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선제에게 먹을 것을 받았고, 선제에게 입을 것을 받았고, 선제가 우리에게 베푼 은혜는 하늘보다 크다. 만일 선제의 아들을 후임 황제로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차라리 죽어서 선제를 따르겠다."


그들이 죽겠다고 한 것은 절대로 그들 자신이 자살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죽여버리겠다는 말일 것이다. 이때 다이샨은 형세가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느꼈는지, "나는 나이가 많아서 안되겠다. 집으로 돌아가겠다. 너희들이 논의해서 결정해라. 나는 더 못버티겠으니 집으로 가겠다. 논의가 끝나면 나에게 알려줘라." 이때 지르하랑이라는 방관자가 나선다. 내가 한 가지 제의를 하겠다. 선제의 아들 중에서 푸린을 황제로 세우면 어떻겠느냐. 이때 도르곤은 동의하고, 쌍방이 타협을 본다. 그리고 이때 도르곤과 지르하랑이 섭정왕이 된다. 


이렇게 되니 아오바이에게 재난이 닥칠 날이 멀지 않았다. 도르곤은 아마도 전력으로 아오바이를 처리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아오바이를 죽이지 못하게 하니, 도르곤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왜 그런가? 천하가 어지러워진 것이다. 이때 북경성이 이자성에게 함락된다. 순식간에 대청에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1644년 도르곤은 군대를 이끌고 산해관을 들어간다. 그 후 아오바이는 도르곤의 형인 아지거의 부대에 참가하여, 이자성을 공격하여, 호광일대까지 내려간다. 1645년에는 북경으로 돌아와서 보고를 한다. 1645년 천하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때, 처왕조는 청왕조가 중원을 차지하는데 공을 세운 아오바이를 일등앙방장군으로 승진시킨다. 이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군대에서는 최고직위까지 오른 것이다. 이때 도르곤은 아오바이를 처리하려 했지만, 전투는 역시 바투루였다. 바투루가 없이는 싸우기 힘들었다.


1646년, 아오바이는 다시 나선다. 숙친왕 하오거를 따라 군대를 이끌고 장헌충의 대서농민정권을 토벌한다. 하오거는 한중에서 먼저 이자성의 잔여부대 혁진(赫眞)을 격패시킨 후, 장헌충의 부대가 이미 사천 서북의 서충(西沖)일대로 들어갔다는 것을 안다. 당시 장헌충의 부대는 아오바이가 이미 사천까지 쳐들어온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아오바이는 하오거의 소식을 알았고, 하오거는 아오바이등에게 모든 대군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선두부대만 이끌고 신속히 서충으로 공격해 들어가도록 한다. 당시 장헌충은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었고, 아오바이는 다시 선봉을 맡는다. 앞장서서 공격한다. <청세조실록>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아오바이 등이 분전하여 대파했고, 장헌충을 적진에서 참한다. 즉, 직접 장헌충을 참살한 사람이 바로 아오바이인 것이다. 아오바이는 이번에도 최고의 공을 세운다. 장헌충의 부대를 격파한 후, 아오바이는 즉시 북경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사천 귀주일대에 머물면서 장헌충의 잔여부대를 소탕했다. 그의 칼에 죽은 농민정권의 대소관리가 1천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아오바이는 정말 사람을 죽이면서 눈하나 깜짝않는 사람이다. 보통의 사병은 계산에 넣지 않고, 관리만 천여명에 달한다. 기본적으로 사천일대의 농민군은 말살된 것이다. 이런 공을 세웠다면 아오바이가 아마도 계속 승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틀렸다. 그에게 재난의 날이 다가온다. 우리는 알고 있다. 농민반란군을 진압한 것으로 대청왕조 내부의 양황기와 양백가간의 갈등의 격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푸린이 황제에 오른 후, 도르곤은 섭정왕이 된다. 아오바이는 하오거를 지지한 가장 주력이다. 그렇다면 그는 도르곤에게 처리되는게 이젠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이때의 아오바이는 도르곤이 전력을 다해서 치려는 대상이 된다. 만일 핑계거리를 찾으려면 너무나 쉬운 일이다. 이때를 전후하여 아오바이는 3번이나 큰 타격을 입는다. 제1차는 1645년이다. 1645년이 무슨 해인가? 바로 아오바이가 이자성을 격패시킨 해이다. 그리하여 일등앙방장경에 올랐을 때이다. 바로 이 때 하나의 아주 자그마한 일이 벌어진다. 그리하여 아오바이는 이전의 모든 공로에도 불구하고 관직을 삭탈당하고 일반잭성으로 강등될 뻔한다. 무슨 일인가? 도르곤의 형인 아지거는 순치제의 숙부이고, 도르곤의 친형이다. 그는 매일 수하들과 얘기하면서 황제를 언급할 때는 황상을 황상이라고 부르지 않고 다르게 불렀다. 뭐라고 불렀느냐고? 어린애라고 불렀다. 소유자(小孺子). 내 생각에 역사서에 기록한 것은 아마도 곡필일 것이다. 그가 실제로 불렀던 것과 비교하면 훨씬 듣기좋은 말로 적었을 것이다. 아마도 실제로 불렀을 때는 훨씬 더 듣기 거북한 칭호로 불렀을 것이다. 그 젖도 안뗀 놈이 뭘 알겠어와 같이. 나중에 이 일을 도르곤이 알게 된다. 나의 형이 황제를 어린애라고 부르다니 그건 안될 말이다. 그래서 즉시 명령을 내린다. 당시 탄타이(譚泰)는 아직 도르곤에게 투항하지 않은 상태였다. 뭐라고 명령했는가? 아지거 수하의 탄타이와 아오바이에게 회의를 주재하라고 한 것이다. 전군을 상대로 한 회의이다. 그리고 이 전군의 앞에서 여는 회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 아지거로 하여금 반성문을 읽게 하는 것이다. 황제에게 이렇게 불경한 일을 저질렀으니 반성한다는 것이다. 황제를 어린애로 부른게 잘못되었으니 반성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반성회인가. 이건 '이곳에 은 삼백냥을 묻지 않았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원래는 네가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는데서 황제를 어린애라고 불렀는데, 이제 전군을 모아놓고 그 말을 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게 무슨 반성화인가. 그래서 아오바이는 이런 반성회는 할 수 없다고 여긴다. 이것은 황상에 좋지 않다. 그리고 아지거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숙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성을 한다고 하여 그게 무슨 큰 차이는 없다. 소니등 3사람은 상의를 한 후에 이런 반성회를 할 수 없다고 여기고 명령을 집행하지 않는다. 그러자 도르곤이 찾아온다. 내가 보낸 명령을 왜 집행하지 않는 것이냐라고 하면서 탄타이의 관직을 박탈하고, 아오바이의 관직을 박탈한다. 그리고 각각 은 1백냥의 벌금을 매긴다. 나 아오바이가 얼마나 힘들게 싸워서 얻은 관직인가. 이자성을 이긴 것은 목숨으로 바꿔온 것이다. 그런데 반성화를 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런 공들이 다 없어진단 말인가? 이것이 제1차이다.


다행히 그때는 도르곤이 사천에 장헌충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는 이자성만 치고나면 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아오바이를 처리하려 한 것이다. 나중에 발견한다. 사천에 또 하나가 있는 것이다. 장헌충이라는 자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오바이에게 다시 하오거를 따라 장헌충을 정벌하도록 시킨다. 그래서 장헌충을 토벌하고 돌아오자 제2차 타격이 시작된다. 이 제2차 타격은 무엇인가? 연속하여 세번의 주먹을 날린다. 세 가지 타격이 한꺼번에 날아와서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게 된다. 먼저 1648년, 아오바이가 장헌충의 농민군을 진압하고 개선한다. 북경에 도착하자 역사에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다. 한 가지는 이렇게 말한다. 노구교에 도착하자마자라고 하고, 다른 한가지는 북경성에 들어가자마자라고 하는데, 하오거는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주석에서 처형된다. 우두머리가 처형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하오거가 죽고나서, 하오거의 부하인 참령(參領) 시르량(希爾良)은 누군가에 의하여 공을 사칭하여 상을 받으려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다. 공로는 없고 삭탈관직하여 보통사병으로 강등시킨다. 그후에 100냥은자를 벌금으로 내게 한다. 그외에 또 누가 관련되는가? 아오바이이다. 그에 대하여는 뭐라고 했는가? 감찰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이유이다. 그래서 관직을 박탈당하고 100냥의 벌금을 낸다. 아오바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백냥은자를 납부한다.


1달이 지나서, 다시 일이 터진다. 당시의 한 패자(貝子)가 있었다. 패자는 패륵의 아들이다. 툰치(屯齊)라는 사람인데, 정친왕(鄭親王) 지르하랑이 옛날에 엄친왕 하오거를 옹립했고, 나중에도 하오거의 여러가지 죄상을 비호했다고 고발한다. 그 결과 도르곤은 조사를 명한다. 조사를 해다나가보니 아오바이까지 이른다. 아오바이가 하오거를 옹립한 것으로 인하여 고발을 당했고 그 죄는 사형이다. 결국 도르곤이 최종 결정한다. 죽이지는 말라. 벌금 다시 100냥을 내라. 그리고 이번에는 삭탈관직하여 일반백성으로 된다.


그 후에 다시 1달도 지나지 않아, 보통 시위인 궈부소(廓步梭)라는 자가 고발을 한다. 9월 26일 회의할 때 아오바이가 임의로 병력을 움직여 문을 지키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황제의 부하이고, 황제가 죽어서 아무도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텐데, 그는 천명을 보내어 문을 지키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도 사형에 처할 죄명이다. 이게 도대체 언제적 얘기인가. 모두 터무니없는 모함이다. 그러나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죄를 묻겠다고 마음먹으면 무슨 죄든 못지어 내겠는가> 결과로 이번에도 다시 관직을 박탈당하고, 사형은 면한다.


그래도 그 후에 다시 기회가 온다. 1650년, 이 해는 도르곤이 죽기 얼마 전이다. 사람이 죽기 전에는 발버둥을 치는 법이다. 도르곤이 부상을 입어서 다리에 상처를 입고 움직이지 못한다. 그는 집에서 치료하고 있었다. 그 결과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의 집이 북경에서 비교적 멀었다. 지금의 하북 난평(灤平)에 있었다. 매일 황상을 만날 수가 없었다. 원래 북경성에 있을 때는 신하들이 구름처렴 그의 곁에 모여 있었고, 수하들이 달을 받드는 별들처럼 우글거렸으니 지금은 아무도 없다. 거기에서 쉬고 있더라도 천하는 계속 돌아가야 했다. 사람들은 모두 황상을 둘러싸고, 황태후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상심한다. 그래서 그는 한 사람 시한(錫翰)이라는 사람을 부른다. 시한은 누르하치의 동생인 바야라(巴牙喇)의 아들이고, 그도 하오거를 지지했던 인물이다. 나중에 도르곤의 편이 된 사람이다. 


도르곤은 시한을 불러서 이렇게 말한다. 황상은 나를 보러 오지도 않는구나. 내가 그를 그렇게 오랫동안 보좌했고, 황상이 되었는데, 내가 여기서 부상을 치료하고 있으니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이것은 백안낭(白眼狼)이 아닌가. 말을 마치고서 시한에게 당부한다. 절대로 황상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시한은 알아들었다. 황상에게 말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건 황상에게 말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바로 황상에게 달려가서 말한다. 황상! 숙부가 화가 났습니다. 빨리 보러 가셔야 겠습니다. 빨리 난평으로 그를 보러 가십시오. 과연 황상은 난평으로 찾아간다. 도르곤은 황상을 보자 격동하다. 그러나 겉으로는 매우 화가 난척하면서 책상을 내려치며 소리친다. 아오바이 넌 어떻게 한 거냐. 생각해보라 아오바이는 이미 보통사병이 되었는데, 이 일이 아오바이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분명히 시한이 황상에게 말한 것이 아닌가. 이 일로 인하여 아오바이는 더욱 철저히 내쳐진다. 그는 병사로도 지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원래는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다보니 그러지는 못하고, 철저히 아오바이를 관직에서 내쫓은 것이다. 그래서 아오바이는 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는다.


1650년 12월 31일, 도르곤이 사망한다. 순치제가 친정을 시작한다. 이때 일찌기 억압받던 양황기 귀족과 지르하랑을 우두머리로 하는 남기(藍旗)세력이 다시 중요지위를 차지한다. 이때 순치제는 도르곤의 수하를 모조리 제거한다. 죽일 사람을 죽이고, 유배보낼 사람은 유배보내고, 감금할 사람은 감금했고, 내쫓을 사람은 내쫓았다. 순식간에 순치제의 마음이 편안해 진다. 싫은 놈은 하나도 없어졌다. 그러다보니 일할 사람도 없어졌다. 생각해보라 당시 조정의 사람들은 모조리 도르곤이 뽑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들을 모조리 내보내고 나니, 천하를 누구와 다스릴 것인가 사람이 없었다. 이때 그는 아오바이를 떠올린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아오바이, 소니등은 그 곤란한 상황에서도 계속 그를 지지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명을 내려 아오바이를 발탁한다.


1651년 봄, 아오바이는 의정대신(議政大臣)이 된다. 군공으로 일등후(一等侯)의 작위를 받는다. 1년후인 1652년, 아오바이는 다시 이등공(二等公)으로 승진한다. 후도 삼등으로 나뉘고, 공도 삼등으로 나뉜다. 이와 동시에 1652년 봄, 순치제는 유지를 내린다. 시한등을 사형에 처하고 가산을 몰수하도록. 이렇게 하나를 죽이고, 하나를 승진시키는 것에서 우리는 알 수 있듯이 정국이 중대한 변화를 맞은 것이다. 당연히 이런 정국의 중대변화는 팔기내부모순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은 모두 서막이다. 정식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오바이는 마침내 다시 돌아왔다. 그는 일생에서 가장 휘황한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그가 어떻게 해야 순치제로부터 더욱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인가? 그후 아오바이는 확실히 순치제에게 전심전력을 다한다. 매일 언제든지 순치제의 곁에서 국가의 여러가지 일들에 직접 참여하고,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관리한다. 태후와 순치제의 갈등을 조화시킨다. 그리고 아오바이는 바투루이다. 팔기자제는 천하를 얻는데 공을 세웠다. 이제는 태평성대에 사는 것이 아니니 군대는 더욱 훈련에 매진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는 대열이강무(大閱而講武)를 제안한다. 무엇이 대열이강무인가. 바로 대열병식이다. 전국의 열명을 통하여 팔기자제는 모두 훈련하고 누가 가장 뛰어난지를 보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통하여 아오바이는 일을 잘 처리했고 순치제로부터 신임을 얻는다.


1656년 아오바이는 옛 병이 도져서 병석에 누워 일어나지 못한다. 당시 순치제는 가슴이 아파서 직접 그의 집으로 그를 보러 간다. 병이 나은 후 1657년 효장황태후의 병이 위중해지고, 아오바이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은 밥조차 제때 먹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아오바이가 날로 황제의 신임을 얻고 지위가 계속 상승되는 때인 1661년 2월 5일 순치제가 양심전에서 병사한다.


순치제의 죽음을 얘기하자면 여러가지 설이 있다. 여기서는 간단히 얘기하기로 하자. 어떤 사람은 그가 출가(出家)했다고 한다. 기실 그는 확실히 출가하려고 한 적이 있다. 1657년부터, 순치제는 효장황태후의 병을 돌보게 되는데, 효장황태후는 원래 독실한 불교신자이다. 그래서 효장황태후의 곁에는 불교도들이 있었다. 이렇게 하여 순치제는 이때부터 불교의 고승을 접촉한다. 나방에서 온 불교의 고승 감박총(憨璞聰)을 만난다. 이때 순치는 출가할 생각을 한다. 나중에 순치제는 출가를 잊어버린다. 왜 그러냐교? 이때 그는 후궁에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다. 동악비(董鄂妃)이다. 나중에 동악비는 아들까지 낳는다. 그러나 이 아들은 백일도 못되어 죽어버린다. 이 일은 우리가 기억해야 하다. 뒤에도 이 일을 얘기해야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동악비는 이 해에 죽는다. 1660년 20살도 안되어 죽어버린다. 당시의 순치제는 이 소식을 들은 후 비통해하며 살고싶지 않아 한다. 명을 내려 30명의 태감과 궁녀를 배장하도록 한다. 이는 중국역사상 역대황제의 최후의 배장이다. 마지막으로 산 사람을 배장한 것이다. 그 후에 경산에 수륙도량을 건립하여 장례식을 거창하게 치른다. 조회는 5일간 열지 않고, 모든 일에 흥미를 잃는다. 당시 순치제는 이런 명령을 내린다. 묘계삼(茆溪森)이라는 고승을 찾아 머리를 깍고 중이 되려 한 것이다. 당시 묘계삼은 그의 머리를 깍아주지 않는다. 당신은 황상이라며 끝까지 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순치제가 워낙 고집을 피우니 결국 머리를 깍아준다. 그런데, 머리를 다 깍은 후에 태후가 알게 되었다. 어찌할 것인가? 보기에 묘계삼으로는 안될 것같다. 그래서 즉시 남방에서 묘계삼의 스승인 옥림수(玉林琇)를 부른다. 옥림수가 북경에 온 후에 장작을 한 무더기 북경성에 쌓는다. 그리고 장작 위에 묘계삼을 올려놓고 불을 지른다. 그리고는 황제에게 묻는다. 출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 정말 출가하겠다면 그는 여기서 불에 타 죽을 것이다. 황상은 정말 불을 붙이고, 묘계삼이 불더미속에 있는 것을 보고는 출가하지 않겠다고 한다.


순치제는 천연두를 앓았다. 천연두는 전염되는 것이다. 동악비는 바로 천연두로 죽었다. 그는 매일 동악비를 돌보다가 자연히 그에게도 전염이 된다. 천연두를 얻은 지 이틀만에 앞뒤로 합쳐서 7일만에 순치제는 죽는다. 죽기 전에 순치제는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도 죽고 싶어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도 죽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비도 죽었다. 그는 이미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스스로 죽고 싶어하면 그의 목숨을 살린다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그는 이미 자신이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정한다. 그 후에 4명의 보신(輔臣)을 임명한다.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겨 내대신 소니(索尼), 수커사하(蘇克薩哈), 어비롱(遏必隆), 아오바이가 바로 4대신이다. 너희는 모두 훈구중신이고, 짐의 심복이니 일을 맡기니 충성을 다하여 어린 황제를 보좌하여 정무를 처리하라.


당시 4명이 명을 받은 후, 우리 네 명의 이성(異姓) 대신이 황상을 보좌한다고. 그게 어찌 가능한 일입니까. 대청의 법도에 따르면 역대 이래로 모두 종실, 어린 황상의 숙부, 어린 황상의 어른이 관장했습니다. 우리가 보정을 한다는 것은 안될 일입니다. 그리하여 몇번을 사양한다. 그러나 순치제도 고집하고 효장황태후도 고집하니, 결국 방법이 없었다. 순치제가 죽은 후 소니, 수커사하, 어비롱, 아오바이의 4명은 대광명전의 앞에서 선서를 한다: 선황제께서 소니, 수커사하, 어비롱, 아오바이가 용열함에도 유조를 내려 어린 황제를 보좌하게 하였으니 소니등은 충성을 맹세하고 생사를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것이 앞부분이다. 그리고 뒤에는 7가지 '불(不)' 즉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맹세한다. 첫째, 불사친척(不私親戚). 자신의 친척과 결탁하여 사리를 도모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둘째, 불계원구(不計怨仇). 네 사람의 원한을 푸는데 권력을 쓰지 않겠다. 셋째, 옆에 있는 사람이나 형제 자질의 교사하는 말을 듣지 않겠다. 서로를 이간질시키는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넷째, 불의한 부귀를 추구하지 않겠다. 다섯째, 제왕 패륵의 집에 사적으로 왕래하여 선물을 받지 않겠다. 여섯째, 결당하지 않겠다. 일곱째, 뇌물을 받지 않겠다. 그리고 그 뒤는 이런 말이 덧붙는다. 만일 맹세를 어기게 되면 하늘이 나를 징벌할 것이며, 잘 죽지도 못할 것이다.


아오바이는 마침내 그의 일생에서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아오바이는 강희제와 직접 대면해야 했다. 그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