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

정격안(梃擊案): 동림당(東林黨)의 고육책인가?

중은우시 2018. 2. 20. 17:42

글: 정만군(程萬軍)


명나라 만력13년 즉 1615년, 대명의 궁중에 전국을 진동시킨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역사에서 "정격안(梃擊案)"이라고 불리는데, "정"은 몽둥이라는 뜻이고, "격"은 친다는 말이다. 소위 "정격안"은 궁궐로 뛰어들어 몽둥이로 습격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하여 <명통감(明通鑒)>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오월(五月), 기유(己酉) 유각(酉刻). 이름을 모르는 남자가 대추나무방방이를 들고 자경궁문(慈慶宮門)으로 뛰어들어서, 수문내시(守門內侍) 이감(李鑒)을 때려서 부상을 입히고, 전전(前殿)의 처마 아래까지 가서, 내시 한본용(韓本用)등에게 붙잡히고, 동화문(東華門) 지휘사(指揮使) 주웅(朱雄)에게 인계한다.


이 기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월 초나흘 황혼무렵, 이름을 모르는 남자 한 명이 대추나무몽둥이를 들고 자경궁으로 난입한다. 자경궁은 어떤 곳인가? 현재 고궁에는 이미 이 건축물이 없다. 다만 당시 대명의 황궁에는 이곳이 대표적인 건물이었다. 통칭 동궁(東宮)이라 불른다. 즉, 황태자의 거주지이다. 궁으로 뛰어든 이 남자는 힘이 셌던 것같다. 한번에 문을 지키던 몇몇 내시태감을 물리치고, 자경궁 즉 동궁의 전전까지 간다. 결국 중과부적으로 여러 시위들에게 붙잡히고, 수성부대에 넘겨져 구금된다.


이 사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간단하고, 유경무험(有驚無險)의 동궁난입사건이지만, 이어서 전개된 조사는 뭐가뭔지 모르는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렇다면, 난입자는 즉시 붙잡혀 압송되었고, 엄히 문초를 받았는데, 처음에 어떤 진술을 했을까? 혐의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장차(張差)라고 한다. 농민이다. 토호열신(土豪劣紳)들이 못살게 굴어서 북경으로 올라와서 고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처음에 경성을 오다보니 어디로 가서 고발해야할 지를 몰랐다. 그래서 계속 돌아다니다가 황궁의 동화문 앞에 이른 것이다. 거기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대추나무 몽둥이를 들고 뛰어들어가면 황제에게 고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대추나무 몽둥이를 들고 뛰어든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가 나의 억울한 사건을 수리해줄 줄 알았다. 그래서 황궁에 잘못 뛰어든 것이다.


이상의 진술을 보면, 우리는 대체로 두 가지를 추단할 수 있다:


첫째, 이 사람은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것이다.

둘째, 이 사람은 머리가 좋지 못하다. 그냥 막무가내로 덤비는 타입이다. 그는 백성이 황궁에 난입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평민백성이 황궁에 난입하면 어떤 법적 책임을 부담하게 될 것인가? 이 점에서 역대 봉건왕조는 대부분 놀랍도록 일치했다: 사죄(死罪)! 대명의 율법도 예외는 아니다. 무기를 들고 내궁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십악(十惡)의 죄에 속한다. 모역(謀逆)과 같이 참형에 처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하에서 장차가 한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사면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어찌되었건 그는 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다만, 사정이 이렇게 간단한 것일까? 모든 일은 연상을 한번 하게 되면 무섭다. 일단 연상해보면 간단한 일도 간단하지 않은 일이 된다. 음모론이 나오는 것이다. 간단한 하나의 형사사건, 사법사건이 왕왕 정치사건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당시의 대명왕조는 후계자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주상락(朱常洛)의 황태자 지위는 계속 위협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대명의 정치는 이미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여러 신하들은 정견과 이익에 따라 여러 당쟁집단을 형성한다. 동림당(東林黨)을 제외하고, 절당(浙黨), 제당(齊黨), 초당(楚黨), 선당(宣黨), 곤당(昆黨)의 각 당파가 있었다. 그래서 조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풍취초동(風吹草動)하면 각 당에서는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싸운다. 각 당은 자기가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얻기 위해서.


"정격안"에 대하여, 동림당 관리들은 흉수 장차는 동궁으로 뛰어들어 범죄를 저질렀으니, 모살의 목적은 아마도 황태자 주상락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귀비(鄭貴妃)가 계속하여 만력자에게 폐장입유(廢長立幼)를 종용했다. 자신의 아들이 주상락의 황태자 보좌를 차지하도록 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동림당 관리들은 흉수 장차의 막후배후자는 분명히 정귀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림당 대신이 먼저 나서서 소리친다. 그들의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 이때는 '동림선생' 고헌성이 이미 작고했고, 동림서원의 제2대 산장인 고반룡(高攀龍)이 핵심 우두머리였다. 그와 조남성(趙南星)등은 비록 오랫동안 재야에 있었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 천하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조정내의 동림당 대신들에 대한 영향력이 아주 컸다.


그리하여, 동림당 원로들의 부추김으로, 동람당의 한 중간층 관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준주심관(準主審官)이 되어 장차에 대하여 특별심문을 시작한다.


이 관리는 바로 형부주사(刑部主事) 왕지채(王之寀)이다. 


왕지채는 섬서 대려현(大荔縣) 사람이고, 만력29년에 진사가 된다. 초임은 지방의 지현(知縣)이었고, 청렴하며 일을 잘했다. 공정하게 법처리를 하여,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치수를 잘 해결해서 백성들로부터 옹호를 받는다. 그리하여 현지백성들은 그를 위해 사당을 지어 기념하기도 했다. 나중에 중앙정부로 전근되어 형부주사를 맡아 계속하여 강직한 일처리 스타일을 보여준다


정격안이 발생하자 왕지채는 다시 나선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하여 일찌감치 의문을 품고 있었다. 형부의 정직한 관리로서, 그는 스스로의 책임이 무겁다고 여긴다. 반드시 진상을 밝혀내겠다고 생각한다.


왕지채는 혐의자의 반대편에 서서 혐의자에게 특수한 형벌을 가한다.


무슨 형벌인가? 바로 아형(餓刑)이다. 굶기는 것이다.


먼저 장차가 먹고 마시지 못하게 한다. 며칠동안 굶겨서 이 장차가 거의 굶어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사람을 시켜 맛있는 요리를 한 상 차려서 장차의 앞에 놓아둔다. 말하라. 네가 말하면, 이 맛있는 음식은 네가 먹을 수 있다. 이 장차는 이리 굶어서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였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보자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적 반응이 나타난다. 그래서 진술을 시작한다. 제2차진술이다. 이때 그는 무슨 말을 했을까?


<명사기사본말>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장차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 이름을 모르는 노공(老公)이 나에게 말했다. 일을 성공시키면 너에게 몇무의 농사지을 땅을 주겠다고. 한 노공은 나에게 밥을 주면서 말했다; 너는 먼저 밀고 들어가라 하나를 만나면 하나를 죽여라. 죽이면 우리가 너를 구해주겠다. 그러면서 나에게 대추나무몽둥이를 주었다. 내가 받아서 궁뭉으로 갔고, 문을 지키는 사람이 나를 막았다. 나는 때려서 땅에 스러뜨렸다. 이미 노공이 많아졌고, 그래서 붙잡혔다. 소야(小爺)는 복이 많다."


이 사료는 무슨 뜻일까? 장차는 고용되어 이 사건을 저지른 것이란 말이다. 그럼 어떤 사람에게 고용되었는가? 노공이다. 누구를 죽이라고 했는가? 소야이다. 소야는 황태자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노공'은 어떤 인물인가? 이 '노공'은 현재의 여자들이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그때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고대에는 태감을 가리킨다. 장차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누군가 이름을 모르는 태감이 나에게 가서 황태자를 죽이라고 했다. 일이 성공하면, 나에게 밭뙈기를 몇무 떼어 줄 것이니 너는 동궁으로 가서 죽이면 된다고 했다. 만일 네가 성공하면 공로가 큰 것이고, 만일 네가 붙잡힌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방법을 써서 구해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말한대로 궁문에서 일을 저질렀는데, 동궁을 지키는 태감이 너무 많아서 나는 중과부적으로 결국 붙잡혔다. 이 태자는 확실히 명이 길다.


그렇다면, 장차를 고용한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 사건은 어떤 사람과 연관되어 있을까? 사서 <명계북략>은 나아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장차는 "마삼도(馬三道)가 방(龐), 유(劉) 두 태감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고, 말하는데 정국태(鄭國泰)를 많이 언급했다."


이 사료에서 기록한 것은 더욱 상세하다. 이 세 사람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1. 마삼도. 길에서 만난 사람으로 강호인이다. 2. 방,유 두 태감. 이는 정귀비의 근시태감(近侍太監)인 방보(龐保)와 유성(劉成)을 가리킨다. 궁안의 인물이다. 3. 정국태. 이 사람은 정귀비의 친동생이다. 정귀비의 집안사람이다. 이 심문결과는 조정내외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이 사건에 관련된 정국태는 즉시 스스로 변명한다. 나는 장차라는 자를 아예 알지 못한다. 이 자는 머리가 잘못되었나보다 아무렇게나 말하고, 죽기전에 아무나 무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항이나 과정에 대하여 장차는 왕지채 한 사람 앞에서만 진술하려고 하지 않았고, 여기에 사건관련인물들이 모두 극구 부인하고 있으므로 왕지채는 황제에게 각부를 소집하여 "삼사회심(三司會審)"을 하여 대질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 .


그렇다면, '삼사회심'은 무엇인가? 이는 삼당회심(三堂會審)이라고보 부르는데, 고대의 특대사건에 대한 최고의 심판방식중 하나이다. 3대 사법기관이 공동으로 심문하는 것이다. 이 3대 사법기관은 형부(刑部), 도찰원(都察院), 대리시(大理寺)를 가리킨다. 만력제는 왕지채가 올린 글을 읽고는 이 사건이 비교적 골치아프게 되었다고 여긴다. 삼사회심은 일을 너무 크게 만드는 것이다. 궁정내외가 시끄러워질 것이고, 황실의 체면이 깍일 것이다. 그래서 그냥 눌러놓고 회신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일은 집밖으로 나가지 않지만 나쁜 일은 천리를 퍼져가는 법이다. 어떤 사람이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다는 소문이 급속히 퍼져간다. 조정내외에 모두 퍼지고, 경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막후의 배후자를 찾아내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특히 동림당의 인물들은 삼당회심을 강력히 요구한다.


이런 와중에 또 한 명의 동림당 간장(干將)이 등장한다. 공과급사중(工科給事中) 하사진(何士晋)이다. 그는 연이어 세번이나 상소를 올려 황제를 힘들게 만든다. 그의 상소문은 정의감에 넘쳤다.


"이제 장차의 진술도 갖추어지지 않고, 형부의 상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정국태가 태감들을 종용하여 마음대로 사건을 종결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의심을 풀려면 오로지 궁중의 일을 밝히는 것뿐입니다. 황상께서 속히 장차가 진술한 방보 유성을 사법기관에 보내어 심문하게 해주시고, 만일 정국태가 주모자라면, 대역죄인이므로 신등이 법을 집행하여 역적을 잡겠습니다. 이는 궁중에서 비호해줄 수도 없는 일이고, 황상께서 비호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하사진의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혐의자의 진술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니, 모든 사건관련 인물들은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변명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만일 진상을 밝히려면 반드시 삼당회심을 하여, 모든 사건관련자들이 법정에 오도록 하고, 혐의자와 대질하여야 한다. 만일 혐의자가 누가 막후배후자인지를 명백히 증언하면, 후궁도 그 자를 비호해줄 수 없고, 황제도 그 자를 비호해줄 수 없다.


하사진의 이 말은 대담하다. 일개 공과급사중이라는 낮은 칠급관리가 어떻게 감히 황실에 대하여 이렇게 대담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성격적인 원인을 제외하고, 그가 맡은 직무와 대명의 정치적 배경도 원인이 된다.


하사진이 맡은 직무인 급사중은 직급이 높지는 않으나 역할은 적지 않다. 전문적으로 황제를 대신하여 육부(六部)를 감독하여, 황제에게 의견을 올리는 언관이다. 그렇다면 이들 급사중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가?


주요 업무방식은 비판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이들은 직업비판꾼이다. 전문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공격한다. 명나라때는 이들 언관들이 매일 비판하는 일을 했다. 누구든지 이들 언관에게 빌미를 잡히면 욕을 얻어먹어서 체무완부(體無完膚), 구혈분두(狗血噴頭)가 된다. 그들은 그들이 간신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욕할 뿐아니라, 그들은 혼군이 출현할 것을 우려하여 감히 황제도 욕한다. 황제의 잘못을 지적하고, 황제에게 잘못을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황경하에서, 여러 저명한 매서(罵書)가 등장한다. 당시 대명은 바로 이런 분위기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이 하사진도 당시에 유명한 언관이었다. 비록 이때 그는 동림당을 대표하였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정귀비와 정국태가 주모자라고 지적한 것이다. 만일 삼사회심을 하지 않으면 그 혐의를 벗어날 수 없을 것라고 한 것이다. 이제 황제도 물러날 곳이 없었다. 만력제는 압력을 못이기고 결국 삼당회심을 결정한다.


삼당회심의 관리들은 방보, 유성 두 태감을 법정에 오도록 했고, 장차와 대질하고자 한다. 방보, 유성의 두 태감은 어쩔 수 없이 출정하고, 결과적으로 장차는 법정에서 그들 둘이 맞다고 지목한다. 바로 이 두 사람이 나에게 황태자를 모해하라고 시켰다고 말한다. 다만 방보, 유성 두 사람은 극력 부인한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다. 이 미친 놈을 우리는 모른다. 삼사관리는 사건에 관련된 국구, 정귀비의 동생 정국태를 출정하도록 한다. 그러나, 정귀비가 황제의 앞에서 온갖 수단을 써서 동생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도록 한다. 결국 정국태는 법정출석을 거부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삼당회심은 유산되었다. 다만 태자를 보호하려는 동림대신들의 뜻은 더욱 굳어지게 된다. 이번 '정격안'은 하나의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음모가 있었고, 황태자에 대한 정치적 암살시도였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진상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사건의 맥락을 따져보면 필자는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하여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첫째 가능성. 오타오당(誤打誤撞). 실수로 난입한 사건이다. 즉 장차의 제1차진술과 마찬가지로, 그는 농촌에서 북경으로 올라와서 자신의 억울한 점을 호소하고자 했고, 호소할 곳이 없는데, 경성의 무뢰배가 그에게 엉뚱하게 알려준 것이다. 몽둥이를 들고 황궁에 들어가면, 누군가 너의 억울한 사건을 들어줄 것이다. 그 후에 그는 그 말을 믿고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런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한 농민이 몽둥이를 들고 난입한다고 하더라도 동궁으로 난입할 수 있겠는가?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필자의 생각에 이런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어떤 곳에서는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삼엄하지만, 기실 헛점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쉽게 뚫고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사례도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냉전시기에 미소 양대 수퍼파워의 국방은 얼마나 삼엄했는가. 그러나 1980년 붉은광장사건이 발생한다. 19세의 남자로 독일의 아마투어 비행애호가인 루스트는 임차하 민간용 소형비행기를 몰고 장거리 비행을 하여, 소련의 붉은광장에 순조롭게 착륙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대국의 영공방어가 허수아비같았던 것이다. 소련 국방부장관등 여러 명이 고위관료가 이로 인하여 물러나야 했다. 루스트는 겨우 40시간의 비행기록을 가졌지만 당시 세계 초강대국의 방공망을 돌파한다. 그렇다면 고대의 한 농민이 아무 것도 몰라서 겁이 없다면 레이다 경보장치도 없는 황궁으로 뛰어든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크게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첫째 가능성으로 오타오당이다.


둘째 가능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고용살인'이다. 그 사람이 정말 정귀비가 보낸 수하 태감이 찾은 킬러인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일거에 주상락을 제거하여 자신의 아들인 주상순(朱常洵)이 황태자에 오르게 하는 것이다.


당연히 정귀비를 위하여 변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수단이 너무 졸렬하다는 것이다. 정치암살을 꾀하면서 이런 농민을 사용하다니 게다가 흉기가 몽둥이라니. 그리고 혼자서 일을 진행하게 만들다니. 이런 것은 정치적인 IQ가 너무 낮은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 이것만 가지고는 정귀비의 혐의를 배제하기에 불충분하다고 본다. 성격이 외향적이고 아들을 황태자에 올리고 싶어했던 정귀비가 한 행동중 멍청해 보이지 않은 일이 있었던가. 정치를 하는 여인이라고 하여 모두 뛰어난 인물이고 무측천같은 인물은 아니다. 사실은 증명한다. 정귀비는 탐욕이 지나치고 지혜는 부족한 여인이다. 이런 여인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고, 돕는다고 한 일이 오히려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셋째 가능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고육계(苦肉計)이다. 재장함해(栽贓陷害)이다.


고금중외의 정치투쟁에서 이런 고육계는 수도없이 많이 나타난다. 후보자가 사람을 고용하여 자기를 공격하게 한다. 왜 이렇게 하는가? 왜냐하면 선거민이 동정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고, 후보자가 이렇게 피해를 입으면 오히려 인기는 올라가게 된다.


예를 들어, 2009년말, 이탈리아 정계에서 이런 후보자습격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이탈리아 총리를 맡고 있던 전설적인 인물인 베를루스코니는 의회이 파면동의를 당한다. 총리자리가 위태로워졌다. 바로 이때, 베를루스코니가 한 정치집회에 참석하는데, 돌연 남자 한 명의 공격을 받는다. 단단한 조각으로 베를루스코니의 얼굴을 내려친다. 늙은 베를루스코니의 얼굴은 그 자리에서 핏물이 흐르고, 코뼈가 부러진다. 그리고 의치 2개도 날아간다. 입안과 바깥에 모두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원래, 베를루스코니는 탄핵을 받아 곤경에 처해 있었고, 많은 민중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그의 파면을 요구했었고, 즉시 하야할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습격사건이 발생한 후, 여론조사결과는 달라진다. 베를루스코니의 화는 복이 되었고, 지지율이 몇퍼센트 올라간다. 그리하여 총리 자리를 지킬 수 있었고, 다시 삼년간 총리직을 지낸다. 그래서 사후에 누군가 베를루스코니가 정교하게 기획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를 통하여 동정괴 지지를 끌어내려 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황태자 주상락에게도 일어났을까?


당시 다른 당파의 대신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동림당에서 주상락을 돕기 위해서 벌인 짓이라고. 그들이 사람을 보내어 장차를 찾고, 그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한 것이라고. 장차는 진상을 모르고 시킨대로 진술한 것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이사건의 책임을 동림당에 돌리는 것이 합당한가?


주상락이 이런 '고육계'를 설계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본다. 다만 필자는 동림당이라면 다르다고 생각한다. 개략 재장함해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도량을 추측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초기의 동림당은 주류가 그래도 정인군자(正人君子)가 대다수였다. 정치적인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당연히 절대로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모'가 있는 인물이 동림진영에 가담해서 당동벌이(黨同伐異)'로 이런 일을 설계했을 수도 있다.


이상이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한 세 가지 가능성이다.


오타오당, 고용살인, 고육계. 이 정격안은 도대체 어디에 속할까? 쟁국본(爭國本)과 마찬가지로, '정격안'에 대해서도 대신들은 두 파로 나뉜다. 하나는 동림파(東林派) 하나는 후당파(后黨派)이다. 후당파는 정귀비를 우두머리로 하는 후당세력과 정귀비와 관계가 밀접한 절당 등의 대신이다. 동림파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황태자암살사건이다. 막후의 배후자는 정귀비이다. 그러나 후당파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동림당이 주상락을 도와서 벌인 짓이다. 고육계이다.


만력제는 어떻게 인정했을까?


그에게 있어서 이 사건을 끝까지 조사해서 막후의 배후자를 밝힌다면, 그것이 정귀비이건, 정국태이건, 아니면 내궁태감이건, 심지어 주상락 황태자이건, 모두 집안의 부끄러운 일이 속한다. 만력제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는 일들이다. 그래서 만력제는 이 사건을 크게 확대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스캔들을 마무리지을 것인가? 오랫동안 황제로 지내온 그에게는 역시 수완이 있었다. 그는 한바탕 연극을 펼친다. 그럼 어떤 연극이었을까?


<명사기사본말>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만력제가 수레를 몰아 자녕궁으로 가서, 백관을 부른다.... 내시에게 명하여 삼황손을 석급(石級)으로 불러오게 하고는 말한다: '짐의 여러 손자들이 이미 상정했는데, 더 말할 게 무엇인가?' 그리고 황태자에게 묻는다; '너는 할 말이 있으면 여러 신하들에게 숨기지 말고 말하라.' 황태자가 말한다: '이 미친 사람의 일은 여기에서 끝내는 것이 좋겠고, 연좌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우리 부자는 얼마나 사이가 친한데, 외정에서 여러 말들이 많은 것인가. 너희들은 무군지신(無君之臣)이나 나를 불효지자로 만들었다.' 황상은 여러 신하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황태자의 말을 들었느냐?'


이 사료에서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 이십여년간 조회에 참석하지도 않은 만력제는 '정격안'을 위하여 파격적으로 자녕궁에서 백관을 만난다. 자녕궁이 어떤 곳인가? 바로 황태후(皇太后)의 침궁이다. 만력제의 친어머니이자 태자 주상락의 친할머니인 이태후(李太后)의 거처이다. 이때 노태후는 이미 죽은지 1년이 지났다. 자손들이 모두 이 곳에 모인 것이니, 감정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만력제는 사람들에게 주상락의 세 아들 즉 자신의 세명의 황손을 데려오게 하여 계단에서 끌어안는다. 그리고는 신하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보았느냐. 나의 세 손자가 이렇게 컸다. 그런데 내가 무슨 다른 생각을 하겠는가. 우리 일가는 가족간에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 이 말을 마치고는 황태자에게 물어본다. '정격안'에 대하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러자 이때 황태자 주상락이 보인 태도도 재미있다. 그는 부친이 왜 그렇게 묻는지를 잘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사건종결의견을 낸 것이다: 이 혐의자는 내가 보기에 그저 미친 놈입니다. 미쳐서 나를 죽이겠다고 덤빈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까지 연루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머리를 돌려서 주상락이 곁에 있던 신하들에게 말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 부자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순전히 유언비어이다. 너희는 다음부터 더 이상 입을 놀리지 말라.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나를 불효자로 만드는 것이다.' 만력제는 큰 아들의 이런 태도표명에 아주 만족한다. 그리고는 여러 신하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황태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지?


이렇게 하여 황제와 황태자의 지시하에 형부는 미친 간도(奸徒)로 취급하여, 장차를 능지처사(凌遲處死)에 처한다. 그리고 방보 유성 두 태감은 궁안에서 비밀리에 처결한다.


사서 <선발지시>의 기록에 따르면, 장차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같이 일을 꾸몄는데, 일이 실패하니, 나만 죽는구나 그런데 관리들은 묻지도 않는다."


장차가 죽기 전에 한 말은 이러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이 일을 모의했는데, 일이 일어나니 나만 속죄양이 된다. 그리고 심문하는 관리들은 그것을 물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많은 관련자들은 책임추궁을 당하지도 않다니, 대명의 사법은 너무나 엉망이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격안'은 이렇게 서둘러 마무리되고, 끝이 난다. 그러나 도대체 누가 진정한 막후의 흉수인지는 영원히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