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반초(班超)는 어떻게 서역(西域)을 종횡할 수 있었을까?

by 중은우시 2018. 2. 1.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동한(東漢)때 반초가 서역에 사신으로 나가서, 서한(西漢)의 장건(張騫)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중국과 서방을 잇는 통로를 개척한다; 그리고, 서역을 30여년간 지켜낸다. 이렇게 하여 서역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한나라에 신복(臣服)한다. 반초의 이런 공적은 그의 이름이 영원히 역사에 기록되게 하였을 뿐아니라, 후세에 널리 칭송받게 만들었다. 반초가 서역에 사신으로 나간 이 역사를 되돌아보면, 반초가 어떻게 서역에서 큰 공을 세웠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뿐아니라, 거기에서 한가지 교훈도 얻게 된다: 국약무외교(國弱無外交), 사약교불성(使弱交不成). 나라가 약하면 외교도 없고, 사신이 약하면 이뤄지는 것도 없다.


반초는 자가 중승(仲昇)이다. 동한때 부풍 안릉(지금의 섬서성 함양시 동쪽) 사람이다. 부친은 반표(班彪)이고, 형은 반고(班固)이며, 여동생은 반소(班昭)이다.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다. <한서>는 비록 반고의 이름으로 출간되었지만, 실제로는 반표, 반고, 반소 및 같은 고향의 마속(馬續)까지 4사람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반초는 일찌기 형인 반고와 함께 난대영사(蘭臺令史, 난대영사는 6명이고, 봉록은 100석인 관직이다. 도서, 주장과 각종 문서를 관리한다)를 지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의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당한다.


한명제 영평16년(73년), 반초는 대리사마(代理司馬)라는 관직으로 봉거도위(奉車都尉) 두고(竇固)가 흉노를 정벌하러 나설 때, 군대를 따라 이오(伊吾, 지금의 신강성 동북부)까지 간다. 포류해(蒲類海, 흉노지명)전투에서 흉노를 여럿 참살하고, 승리를 거두고 개선한다. 두고는 반초의 능력이 뛰어난 것을 보고 조정에 보고한다. 조정은 그리하여 반초와 종사관(從事官) 곽순(郭恂)을 함께 서역에 사신으로 보낸다.


반초가 선선국(鄯善國, 지금의 신강성 약강 부근)에 이르렀을 때, 선성왕이 반초 일행을 접대하는데 예절을 잘 갖추었다. 그런데 그 후에 돌연 태만해진다. 반초는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수행원에게 말한다: "너희는 선선왕의 접대에 차이가 많아졌다는 것을 못느끼겠는가. 이는 분명히 고의로 우리를 멀리하는 것이다." 수행원이 말한다: "호인(胡人, 오랑캐)들은 예절에서 무슨 법도같은 것이 없으니 사람을 대하는데 항상 일정하지가 않으니 어떤 때는 열정적이다가 어떤 때는 냉담해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닌 것같습니다." 반초는 말한다: "아니다. 분명히 북흉노의 사신이 온 것이다. 선선왕이 그래서 망설이는 것이다. 어느 쪽을 따르는 게 좋을지를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총명한 사람이라면 일은 싹이 날 때부터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하물며 현재의 상황은 이미 명확해지지 않았느냐." 그리하여 반초는 한나라사신들을 접대하는 호인 시자(侍者)를 불러서 일부러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겁을 준다. "흉노사신이 온지 이미 며칠이 지났다. 그들은 현재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호인은 과연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말한다: "이미 온지 삼일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삼십리 떨어진 곳에 거처하고 있습니다." 반초는 이들 호인 시자를 모로지 가두어버린다. 그후에 수행원 36인을 모조리 집합시켜서 함께 술을 마신다. 술을 한창 마셨을 때, 반초는 이들 수행원들을 격분시키기 위하여, 일어나서 말한다: "여러분은 모두 나와 고향을 떠나 멀리 절지로 들어왔다. 현재 북흉노의 사신이 온지 며칠이 되었다. 선선왕은 예교를 모두 버리고 우리들에게 태만하게 대한다. 만일 선선왕이 우리를 붙잡아 흉노인들에게 바친다면, 우리의 시신은 영원히 이곳에서 늑대와 승냥이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수행원이 모두 말한다: "지금 우리는 위험한 지경에 처했습니다. 생사는 모두 사마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반초가 말한다: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새끼를 잡을 수 없다(이 말을 오늘날까지도 전해진다)" 현재의 방법은 단지 밤을 이용하여 흉노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그들은 우리가 몇명인지 모르고, 놀라서 정신을 못차릴 것이다. 우리는 어지러운 틈을 타서 그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원들이 말한다: "이 일은 반드시 종사관 곽순과 상의해야 합니다." 반초는 아주 화를 내며 말한다: "길흉이 오늘 결정되는데, 곽종사관은 문관이다. 이 말을 들으면 반드시 놀라서 어쩔 줄 모를 것이고, 만일 이 계획을 누설하기라도 하면, 죽어도 이름을 남길 수 없다. 이는 장사가 할 행동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의 말에 호응했다: "좋습니다!" 그리하여 반초의 계책대로 진행한다.


초경때, 반초는 모든 수행인원을 이끌고 흉노인의 거처로 간다. 하늘도 그를 도왔다. 그날 저녁에 큰 바람이 불었고 반초는 열명을 불러서 북을 가져가게 했다. 그리고 흉노인의 거처 뒷편에 숨어있으라고 했다. "큰 물이 일어나면 너희는 즉시 북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라" 나머지 사람은 모두 병기와 활을 들고, 거처의 양측에 매복해 있었다. 반초는 바람을 따라 불을 지른다. 바람으로 불의 기세가 커져갔고 일시에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는다. 거처의 전후에는 모두 북을 치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흉노인들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도 모르고 모두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 반초는 친히 3명의 흉노인을 격살하고, 수행인원들도 흉노사신과 수행원 삼십여명을 죽여버린다. 나머지 100여명은 모조리 불에 타서 죽었다. 다음날 돌아와서, 반초는 이 일을 곽순에게 얘기한다. 곽순은 대경실색한다. 반초는 그의 뜻을 알았다. 책임 지는 것은 두렵고, 공로는 차지하고 싶은 것이다. 반초는 손을 들며 말했다: "종사관께서 이번 행동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공로는 있습니다. 반초는 공로를 절대 독차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곽순은 그제서야 기뻐하기 시작한다.


반초는 선선왕을 불렀다.. "반초는 그리하여 선선왕 광을 불러와서(召來) 흉노의 수급을 보여주었다. 온나라가 공포에 떨었다."(<후한서.반초전>, <자치통감.한기삼십칠>). '소(召)'라는 글자를 보면 선선왕을 불러온 것이고, 모셔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더구나 배견한 것은 아니다. 선선왕이 온 후에는 흉노사신의 수급을 그에게 보여준다. 그리하여 선선국은 온나라가 크게 놀란다. 반초는 그 기세를 이어 한나라의 위엄과 덕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다시는 북흉노와 왕래하지 말도록 명한다. 선선왕은 반초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한다: "한나라에 귀순하겠습니다. 이후로 절대 두 마음을 먹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반초에게 넘겨서 한나라의 인질로 보낸다. 반초는 돌아온 후에 두고에게 보고한다. 두고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조정에 반초의 공로를 보고한다. 그리고 조정에 다시  다른사신을 서역에 보낼 것을 청한다. 그러자 한명제는 보고를 받은 후에 이렇게 말한다: "반초같은 관리를 왜 보내지 않는 것인가. 다른 사신으로 바꿀 필요가 있는가. 지금 반초를 군사마(軍司馬)로 승진시켜서 계속 이전의 공로를 이어가도록 하면 되지 않느냐."


그리하여 반초는 군사마의 신분으로 다시 서역으로 가는 사신에 임명된다. 이번에 사신으로 간 곳은 우전국(于闐國, 타림분지 남쪽 지금의 화전, 묵옥, 우전등을 포함함)이다. 봉거도위 두고는 반초에게 수행병력을 늘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반초는 원래의 36명만을 데려가겠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 "우전국은 클 뿐아니라, 멉니다. 만일 수백명을 데려가면, 실력은 증가하겠지만 좋은 점은 없습니다. 만일 불측의 사태를 맞더라도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걸리적거립니다." 이때 우전국은 서역남로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나라는 흉노에서 파견된 사신이 감호(監護)하고 있었다. 반초가 우전국에 도착한 후, 국왕 광덕(廣德)은 한나라사신에 대한 예의를 대충대충했다. 아예 반초일행을 무시했다. 이 나라의 민속은 무술(巫術)을 숭상하는데, 무사(巫師)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천신이 노했다. 천신이 말하기를, 왜 한나라에 투항하려 하느냐. 한나라에서 온 사신에게는 검은 입을 가진 누런말이 있다. 빨리 잡아서 나에게 제사지내라!" 그리하여, 국왕 광덕은 국상(國相) 사래비(私來比)를 보내어 한나라사신에게 말을 내놓으라고 한다. 반초는 일찌감치 이 일을 파악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래비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내놓겠다. 다만 무사를 데려다주면 말을 내놓겠다. 얼마후 이 죽을지 살지 모르는 무사가 정말로 왔다. 반초는 즉시 무사를 붙잡아 목을 벤다. 그리고 사래비는 채찍질을 수백번한다. 그 후에 무사의 수급을 광덕에게 보낸다. 그리고 그를 질책한다. 국왕 광덕은 원래 반초가 선선에서 흉노사신을 죽인 적이 있다는 것과 한나라에 투항했다는 것을 들었다. 이번에는 더욱 크게 놀라서, 즉시 명을 내려 우전국을 감호하는 흉노사신을 죽이고, 한나라에 투항한다. 반초는 우전왕이하의 여러 신하들에게 큰 상을 내리고, 이를 통해 그들을 다독인다. 그리하여 서역각국의 국왕은 속속 자신의 아들을 한나라에 인질로 보내어 귀순을 표시한다. 이제 서역과 한나라는 65년간 단절되었던 왕래가 다시 회복된 것이다.


반초가 두 번의 외교행동에서, 놀라운 특수수단으로 큰 공을 세우게 된 것은 첫째, 동한초기의 강성한 국력과 한나라군대가 서역에서 형성한 태산압정의 기세때문이고, 둘째 자신의 심시도세(審時度勢)하고 임위불란(臨危不亂)한 일처리능력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국약무외교, 사약교불성"의 이치를 그대로 말해준다고 할 것이다.


그후에, 반초는 계속 서역에서 활동한다. 한화제 영원3년(91년), 한나라는 서역에 서역도호부를 다시 세우고, 조정은 반초를 서역도호로 임명한다. 영원7년(95년), 조정은 명을 내려 반초가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현도(縣度, 옛산이름, 지금의 신강 타스쿠르칸 서남 사백리)에 이르른 것을 칭찬한다. 전후로 22년간, 서역의 여러 나라들은 한나라에 모두 신복한다. 멀리 떨어진 외방(外邦)도 모두 한나라와 화목하게 공존했다. 한나라에 특별한 공을 세운 반초를 기리기 위하여 황제는 반초를 정원후(定遠侯)에 봉하고, 식읍 천호를 내린다.


한명제 영평16년(73년)에서 한화제 영원14년(102년)까지 반초는 전후로 서역에서 삼십여년을 지니며 3명의 황제를 모신다. 다만 시종 고향으로 돌아온 적은 없다. 영원14년, 나이가 들어 고향이 생각난 반초는 황제에게 글을 올려서 살아서 옥문관을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여동생 반소도 황제에게 간절한 편지를 써서 나이많은 둘째오빠를 살아있을 때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한화제는 이에 감동을 받아 ㄱ반초를 돌아오도록 명한다. 영원14년 팔월, 반초는 낙양으로 돌아와서 사성교위(射聲校尉)가 된다. 그리고 구월에 병으로 사망하니 나이 71세이다.


반초가 조정으로 돌아오기 전에, 후임 도호인 임상(任尙)과 업무인수인계를 할 때, 임상은 반초에게 어떻게 일을 해야하는지 물어본다. 그러자 반초가 이렇게 대답해준다: "너는 성격이 비교적 엄격하고 조급하다. 이것은 주의해야 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가 살지 않넌 법이고, 정책이 너무 엄격하면 아랫사람들에게 옹호를 받을 수가 없다. 모든 일들은 번잡하게 하지 말고 간단히 하며, 작은 과실에는 관용을 베풀어라. 큰 방향만 옳으면 된다." 반초가 떠난 후, 임상은 심복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반초에게 분명히 뛰어나 기묘한 계책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아주 평범한 말들 뿐이었다." 반초의 충고에 임상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하여 일처리를 잘못하여 얼마후에 변방에서는 전쟁이 다시 발발한다.


이를 보면, 같은 조건하에서, 사람을 제대로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