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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진시황)

형가(荊軻)의 진시황 암살이 실패한 진정한 원인은...?

by 중은우시 2018. 2. 1.

글: 자금산(子金山)


두 사람은 청동기둥을 돌면서 쫓고 쫓겼다. 진왕은 여러번 위험한 지경에 처한다. 한 어의(御醫)가 수중의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지고, 형가가 시간을 끄는 사이에, 진왕은 마침내 장검을 뽑아들 수 있었다.


서사의 기록에 따르면 위급한 시기에 여러 신하들 중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고함쳤다고 한다: "왕부검(王負劍)! 오왕부검(吾王負劍)!"

'부검(負劍)'이라는 것은 왼손으로 검집의 입구가 아래로 내려오도록 잡고 왼손을 몸 뒤쪽으로 평행이동하여, 오른손으로 검을 뽑기 편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진왕이 그 말을 듣고, 여기에 어의 하무차(夏無且)가 약주머니를 던져서 형가를 맞춰서 시간을 벌어주는 바람에, 진시황은 마침내 검을 검집에서 뽑아들 수 있었다.

진왕이 들었던 장검은 진나라의 청동장검이었을까?

진나라 병마용에는 사병들이 수중에 청동장검을 들고 있다.

진시황 병마용 제1호 제2호 갱에서 출토된 청동검은 유엽(柳葉)형의 검신을 가지고 있어 가늘고 길다. 길이는 약 81-94.8센티미터로 전국시대 다른 제후국의 보검보다 훨씬 길다. 이를 보면 전국말기, 진나라의 청동검주조기술은 이미 다른 중원제국을 훨씬 넘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토된 청동검은 전혀 부식되지 않았고, 마치 새것처럼 빛나고 검날도 날카롭다. 시험을 해보니, 18장의 종이를 한꺼번에 벨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의 표면에는 정교하게 갈고 광을 냈다. 그래서 아주 편평하고 빛이 난다. 가장 불가사의한 일은 연구원들이 측정한 결과 검의 표면에 10밀리미터두께의 크롬염화합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크롬염산화'처리방법은 근대에야 비로소 나타난 선진적인 기술이다. 독일에서는 1937년, 미국에서는 1950년을 전후하여 특허를 신청했다. 그리고 사실은 증명한다. 중국의 조상들은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이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청운(馬靑雲) 선생은 <동거마어관용패검에 대한 나의 견해>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진시황 병마옹 1호갱의 제11과동을 정리할 때, 이 청동검이 무게 150킬로그램의 도용에 눌려 있었다. 사람들이 도용을 옮긴 후에 좁고 얇은 청동검이 순식간에 펴지면서 직선이 되는 것을 보았다. 자연히 회복한 것이다.

청동검도 이렇게 강한 인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일까> 그 제작의 미스테리는 현대인들도 곤혹스럽게 만든다.


형가이 비수는 진왕의 장검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진왕의 일검이 형가의 왼쪽다리에 격중하고, 형가는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비수를 던져 진왕을 향해 곧바로 날아갔다.


기실 진왕의 패검에 관하여 사서에는 명확히 기재하고 있다. 진나라 승상 이사는 <간축객서>에서 이렇게 썼다. 진왕 영정은 "곤산지옥(昆山之玉)을 가지고 수화지보(隨和之寶)를 가졌으며, 명뤌지주(明月之珠)를 늘어뜨리고, 태아지검(太阿之劍)을 차고 있다"

태아는 바로 태아검(泰阿劍)이다. <월절서>에 기록된 저명한 철검(鐵劍)이다. 진왕이 외국의 사신을 접견할 때라면 예의상으로나 심리상으로 당연히 천하의 보물인 태아지검을 차고 나왔을 것이다.


진왕은 가볍게 형가가 던진 비수를 피하고, 비수는 기둥에 격중한다. 진왕은 기둥의 측면에서 튀어나와 형가를 연속 공격하고, 형가는 몸에 8번의 상처를 입는다.

진왕이 손을 흔들자, 대전 밖에 있던 무사들이 밀려들어와 형가는 장과(長戈)와 대극(大戟)에 둘려싸여 마구 찔리게 된다.


쇠로 된 장검과 청동단검의 대결은 볼 것도 없다. 무기로 보자면 청동은 쇠만 못하고, 단검은 장검만 못하다.

두 명의 펜싱선수에게 각각 장검과 비수를 들게 한 후 모의결투를 시키면, 확실히 비수를 든 선수가 열세에 처한다.

이는 지도에 감아서 들고 들어갔던 비수라면 길이가 20센티미터 이내일 것이다. 진왕의 태아검은 야사의 기록에 따를 때 길이가 삼척육촌이다 진왕은 검이 너무 길어서 뽑지 못했다는 것을 보더라도, 분명히 이 숫자를 넘어설 것이다. 실험을 해보면, 단검과 장검의 대결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비수를 든 사람은 장검을 든 사람에게 접근할 수가 없다.

전문적인 펜싱선수에게 비수를 들게 하고, 다른 일반인에게 장검을 들게 하고 실험을 해보면 비수가 여러번 이길 수 있다.

이는 훈련을 거친 전문선수와 경험이 없는 보통사람이 대결한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를 보면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형가가 뛰어난 검술을 지녔더라면, 진왕의 목숨은 아마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노구천의 지적이 맞는 것같다.

기술이 성패를 결정했다. 형가의 검술은 용기만큼 뛰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진왕암살행동은 결국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만일 그의 검술이 뛰어났더라면 역사는 다르게 쓰여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