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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진시황)

형가자진왕(荊軻刺秦王)때 누가 진시황의 목숨을 구했는가?

by 중은우시 2017. 2. 22.

글: 원재예(袁載譽)

 

나는 하무차(夏无且)라고 하는 시의(侍醫)이다. 주상은 그 이름도 유명한 진시황(秦始皇)이다. 진시황은 순식간에 동방육국을 멸망시키고, 천하에서 가장 권세가 있는 남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는 그저 보잘 것없는 시의에 불과하니까.

 

진시황의 곁에서 모시고 있다보니, 매일 낮에는 허수아비처럼 그냥 서 있어야 한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돼지처럼 단잠에 빠지는 '퇴폐'적인 생활을 한다. 원래 역사는 나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매우 인색하고, 우리같은 사람이야 바람따라 왔다가 바람따라 가고 인간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다만 나는 아주 운이 좋았다. 두 명의 사학가가 나를 기록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와 유향의 <전국책>에 모두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시점에 내 이름이 나온다.

 

그날도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진시황의 곁에서 나무토막처럼 서 있었다. 밤에 퇴근할 때까지 견뎌야 했다. 그런데 돌연 대전의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연나라 사절 형가가 알현을 청합니다." 두 명의 우락부락하게 생긴 거한이 궁안으로 걸어들어왔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바닥에 깔려있는 석판에서는 탁탁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땅과 산이 흔들리는 것같았다.

 

약간 피로했던 나는 이들의 기세에 약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음 속으로는 "역시 변방의 나라에서 온 자들이로고. 힘이 장난이 아니군" 그러나 금방 이런 압박감은 사라진다. 진시황이 손을 들어 표시를 하자, 곁에 있던 진나라 무사들이 "헛핫!"하고 고함을 질렀고, 그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진무양(秦舞陽)이라는 연나라 사절은 그 자리에셔 놀라서 몸이 굳었다. 또 다른 사절인 형가(荊軻)는 그 모습을 보고 급히 그의 소맷자락을 끌어당기면서 동시에 진시황에게 절을 하며 사죄한다: "북쪽 오랭캐의 땅에서 온 보잘 것없는 자들이라 천자를 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놀랐사오니, 대왕께서는 용서해 주십시오."

 

진시황은 그 모습을 보고 아주 만족한다. 진무양의 실태를 용서해준다. 그리고 형가, 진무양으로 하여금 자신의 앞으로 와서 가지고 온 예물인 "연독항지도(燕督亢地圖)를 바친다. 그런데 이때 나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불안감을 느꼈다. 특히 진무양이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고는 분명히 무슨 속임수가 있다고 느꼈다.

 

과연, 진시황이 경계심을 풀고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을 때, 형가는 지도를 마는 축(軸)안에 숨겨둔 비수를 끄집어낸 다음, 맹열하게 진시황을 향해서 찔러간다. 돌연한 변고에 나를 포함한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은 놀라서 멍해졌다.

 

다행히 진시황은 평소에 무술을 익히는 습관이 있어서, 찔러오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형가는 계속 쫓아왔고, 진시황은 황급히 도망치면서 나중에는 나에게 달려왔다. 나는 급한 나머지 손에 쥐고 있던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고, 약주머니는 기적처럼 형가를 맞추고 형가는 땅바닥에 쓰러진다.

 

진시황은 시종이 일깨워주자, 허리에서 장검을 꺼내어 형가를 찌른다. 그 후에 대전아래에 있던 시위들이 몰려와서 형가를 격살한다. 그후에 나는 무의식중에 약주머니를 던진 것때문에, 진시황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60근황금을 하사받았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후세 사학가들이 이 일을 중요하게 기록했고, 나의 이름까지 거명해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별볼일없는 시의인데 나는 대다수의 보통사람들보다 운이 좋았다. 나의 이름은 역사서에 기록되었고, 천여년이 지나서까지도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