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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방)

유방은 한신의 죽음에 희비가 교차했을까?

by 중은우시 2018. 2. 1.

글: 임염청추(林炎淸秋)


유방은 일찌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릇 장막 안에 앉아서 천리밖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데는 내가 자방(장량)만 봇하고, 국가를 채우고, 백성을 다독이며, 군량미를 조달하여 끊기지 않게 하는데는 내가 소하만 못하며, 백만대군이라도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데는 내가 한신만 못하다. 이 세 명은 모두 인걸(人傑)이다. 내가 이들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포의(布衣) 출신의 유방은 자연히 그의 독특한 매력이 있었고, 그의 수하에는 인재들이 많았고, 능력있는 신하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성공한 후에 유방은 점점 정치가의 냉혹과 무정을 드러낸다. 한신은 그가 가장 꺼리는 인물이 되어버린다.


한신은 소하의 추천으로 유방의 동량이 된다. 한신의 입신양명의 길을 기구하고 험난했다. 항씨숙질에게 갔으나 중용되지 못해서 유방에게로 투신한다. 그래도 기껏 하급관직밖에 얻지 못한다. 사람을 접대하는 업무가 아니면, 물자나 조달하는 업무였다. 이때 소하가 한신을 뒤쫒아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소하는 한신의 백락이고, 한신을 죽인 음모자중 한 명이다. 소위 성공한 것도 소하때문이고, 망쳐진 것도 소하때문이다(成也蕭何, 敗也蕭何).


소하의 추천으로, 한신은 유방의 중용을 받아, 대장군이 된다. 한신은 병법을 잘 알았고, 스르로 병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 유방을 따라다니며 관중을 취하도록 돕는다. 초한전쟁때, 한신은 위(魏)를 평정하고, 다시 대(代)를 격패시키며, 연(燕)의 항복을 받아낸다. 한신은 그의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발휘해서 백전백승했으며, 천하를 종횡한다. 일대전신이라고 하기에 전혀 부끄럼이 없을 정도이다. 역사상의 많은 전술에 관한 고사성어도 한신에게서 나왔다. 예를 들어, 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渡陳倉), 임진설의(臨晋設疑), 하양투도(夏陽偸渡), 목앵도군(木罌渡軍), 배수위영(背水爲營), 발치역치(拔幟易幟), 사면초가(四面楚歌), 십면매복(十面埋伏)등등. 그의 용병지도는 역대 병법가들이 숭상하느 것이다.


초한지전에서 유방의 실력은 근본적으로 항우에 미치지 못했다. 이 적은 수로 많은 적과 싸우는 투쟁에서 한신은 유방의 승리에 큰 공로를 세운다. 그 동안 유방은 한신을 제왕(齊王)에 봉한다. 기실, 제왕에 봉한 것은 한신 자신이 싸워서 얻어낸 것이다. 당시 유방은 초나라군대에 형양(滎陽)에 포위되어 있었는데, 위급한 중에 한신이 보낸 사자가 보내온 서신을 받게 되는데, 유방에게 자신을 대리제왕(代理齊王)에 봉해달라는 것이었다: "제는 잘 속이고 변화가 많으며 여러번 번복한 국가이다. 남쪽의 초나라도 가왕(假王)을 세워서 이를 억누르지 않았다면 그 세력이 안정되지 못했을 것이다. 원컨데 가왕으로 일처리하게 해주십시오." 유방은 화를 벌컥내며 크게 욕한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몰려있는데, 아침저녁으로 달려와서 나를 구하려하지는 않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하다니!"


이때 장량, 진평이 옆에서 말을 해주는 바람이 분노를 삭이게 된다: "한이 현재 불리한데 차라리 한신을 왕으로 세우는게 어떻겠는가. 왕으로 세워서 잘 대해주어서 스스로 지키게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유방은 그제서야 확연히 깨닫고, 은인자중을 선택하여 한신에게 이렇게 회신한다. 아주 호탕하게 말한다: "대장부가 제후를 정하면 진왕(眞王)이 되어야지, 가왕이 뭔가." 그리하여 장량을 보내어 한신을 제왕으로 봉한다. 그리고 그에게 병력을 가지고 초를 치도록 한다. 한신에게 병력을 이끌고 해하(垓下)로 내려가서 초나라군대를 포위섬멸하게 한다. 이렇게 하여 항우는 오강에서 자결하고, 천하는 한나라의 것이 된다.


천자심(天子心), 해저침(海底針). 아마도 한신이 이번에 제왕을 달라고 한 것때문에 유방의 마음 속에는 그림자를 남겼을 것이다. 이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마음 속에서 풀리지 않는 앙금으로 남는다. 한신도 자신의 비참한 결말의 화근을 심은 셈이다.


기원전202년, 서한이 시작되고, 미앙궁에서는 가무와 술과 음식이 벌어진다. 유방은 여러 신하들을 초청해서 승리를 경축한다. 보좌에 앉은 유방은 마음이 무거었다. 부하들이 마음껏 즐기고 하고 싶은대로 굴며, 심지어 자신의 존재마저도 무시하는 것을 본 것이다. 유방은 돌연 의식했다. 전쟁의 승리로 그가 천하를 다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고무상의 권력과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아마도 더욱 복잡하고 더욱 어려운 과정을 거챠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진나라이후, 전국에서는 군현제를 시행했다. 서한도 이 제도를 승계한다. 다만 서한은 군현제를 시행하면서 동시에 봉국제(封國制)도 시행했다. 이런 군국(郡國)이 병존하는 제도는 군국제라고도 부른다. 초한전쟁때, 유방은 형세상 어쩔 수 없어서, 8명의 이성왕(異姓王, 유씨가 아닌 왕)을 봉하게 된다; 각각 양왕 팽월, 초왕 한신, 조왕 장이, 회남왕 영포, 연왕 장도, 장사왕 오예, 연왕 노관, 한왕신. 그들의 봉지는 풍성했고, 영지는 광활했다. 그리고 많은 병사들을 가지고 있었다. 서한의 나라 안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주군의 위엄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중앙정건에 큰 위협이다. 이것이 바로 유방이 우려하는 것이었다. 정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자신의 역량을 공고히 해야 했고, 유방으로서는 자연히 이들 왕이 밖에서 자신을 견제하도록 놔둘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유방은 이성왕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제후소멸과 국가건설을 동시에 진행한 것이다.


이들 이성왕중에서 한신은 공고개주(功高蓋主), 거족경중(擧足輕重)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연히 유방이 처음 상대해야하는 목표가 된다. 일찌기 초한지전때 한신의 모사인 괴통(蒯通)이 한신에게 스스로 왕이 되라고 권한 바 있다: "옛말에 이르기를 하늘이 주는데 받지 않으면 오히려 화를 당하고, 때가 도래했는데 하지 않으면 오히려 재앙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기회는 놓쳐서 안되고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현재가 바로 그 시기입니다. 장군이 좋은 시기를 놓쳐버리면 나중에 후회하실 것입니다." 이런 애기들은 유방의 한신에 대한 의심을 강화시킨다. 마침 바로 이때, 어떤 사람이 한신이 모반을 꾀한다고 고발한다. 유방은 이 기회를 틈타 그의 병권을 박탈하려 했고, 그를 회음후(淮陰侯)로 강등시킨다. 한신은 실망이 컸고, 마음이 상했다: "과연 사람의 말이 맞구나. 토끼가 다 죽으면 개는 삶아먹고(토사구팽), 새를 다잡으면 활은 창고로 들어간다(조진궁장). 적국을 무너뜨렸으니 장수는 필요없다. 천하가 이미 안정되었느니 나는 이제 팽당하겠구나"


한신이 회음후로 강등된 후, 자주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오지 않거나 유방을 수행하지 않았다. 진희(陳豨)의 모반에 한신도 연루된다. 한신의 반란을 막기 위하여, 기원전196년, 당시 유방은 바깥에 출정나가 있었는데, 여후와 진평, 소하가 같이 계책을 꾸며서 한신을 미앙궁으로 속여 유인한다. 그리고는 주살한다.


유방이 돌아온 후, 한신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들었다. 절반은 기쁘면서, 절반은 슬펐다. 그는 여후에게 묻는다. 한신이 임종때 무슨 말을 했는지. 여후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는 예전에 괴통의 건의를 듣지 않은게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유방은 바로 괴통을 잡아오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괴통에게 진술을 얻어낸다: "십년전에 한신에게 스스로 왕이 되라고 권한 적이 있으나 한신이 거절했습니다. 당시 한신이 말하기를 '한왕은 나에게 잘 대해주었다. 그가 타는 가마에 나를 태웠고, 그가 입는 비단옷을 내게 입게 해줬으며, 그가 먹는 음식으로 나를 초대했다. 내가 듣기로 다른 사람의 수레를 타면 그와 환난을 함께해야한다고 들었고, 다른 사람의 옷을 같이 입으면 그의 걱정을 같이 나눠야 한다고 들었고, 다른 사람이 내 배를 불려주면 그를 위하여 죽기를 다해서 일해야한다고 들었다. 내가 어찌 견리망의(見利忘義)할 수 있겠느냐."


이때, 유방은 탄식한다. 원래 한신은 나를 배반하지 않았구나. 한신이라는 중국군사사상 '모전파(謀戰派)'의 대표인물은 소하에 의하여 '국사무쌍(國士無雙)'이라고 칭송받던 군사천재는 마지막에 황권통치하의 희생물이 된다. 다른 이성왕들도 한신과 같은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방은 모든 이성왕을 제거하고난 후에 왕국의 수뇌부는 모두 유씨로 만들어 버린다. 유방이 보기에, 혈연관계야말로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이고, 가장 신뢰할만한 관계인 것이다.


역사상 대통일을 이룬 왕조는 전쟁이 끝나고 마면 효과적으로 중앙집권을 공고히 하고 제국을 더욱 잘 괸라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는 역대제왕이 끊임없이 연구했던 과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