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진사황(秦四晃)
젊었을 때의 유방은 곁에 한 무리의 술친구들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제대로 일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들은 모두 여복이 만만치 않았다.
유방 자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홀몸으로 있을 때 하루봉일 무뢰한으로 지냈지만, 여러 여자들은 그를 찾았고, 그와 놀았으며, 욕하기도 하고 즐기기도 했다. 적막한 과부는 심지어 스스로 나서서 그에게 몸을 바쳤다. 그 중에서도 유방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은 패현의 원근에 이름난 호신(豪紳) 여공(呂公)이 자신이 여러해동안 남에게 시집보내기 아까워하던 아름다운 천금 여치(呂稚)를 유방에게 그냥 줘서 처로 삼게 해버린 것이다. 마치 부탁하는 것처럼. 딸로 하여금 밥하고 청소하며 모시게 할테니, 제발 싫다고 하지 말아달라고 하면서. 유방은 아마도 멍해졌을 것이다. 이게 무슨 복이란 말인가?
번쾌는 풍읍의 개를 잡아 고기를 파는 일을 했다. 온몸에 기름때가 젖어 있었다. 통상적인 이치대로라면 절대로 괜찮은 여자를 취할 수 없다. 유방의 친구였고, 죽어라 유방을 쫓아다니면서 싸웠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황후의 여동생을 부인으로 취하게 된다. "여후의 동생 여수를 처로 취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것은 보통의 귀한 여인을 처로 취한 것이 아니라, 당금 성상의 동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 중에서 가장 친했다." 물어볼 것도 없이 그와 유방의 관계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기실 유방의 평생 가장 좋은 친구는 장이(張耳)이다. 장이는 개봉(대량) 사람이다. 왜냐하면 사건을 저질러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상구(商丘) 민권(民權)(外黃)으로 도망친다. 패현은 외황과 아주 가깝다. 유방이 한량으로 지낼 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장이의 집으로 가서 놀았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고, 어떤 때는 한번 가면 몇달씩 머물곤 했다.
장이가 미인을 처로 취한 이야기는 실로 현재의 홀아비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방식이었다.
외황에 부잣집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태어나면서 남달랐고, 아주 예뻤다.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소에 집안에서 남편을 마치 종부리듯이 부려먹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이별의 말도 없이 그냥 떠난다. 혼자서 부친의 친구집으로 가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의 불평과 불만을 쏟아낸다. 부친의 친구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말한다: "네가 반드시 좋은 남편을 찾겠다면, 장이를 따라가라." 그녀는 한번 듣고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겠다고 한다. 그호 이 부친의 친구는 그녀를 도와서 이전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해주고, 장이와의 혼인까지 성사시켜준다.
외황에서 상가집 개처럼 지내던 홀아비 장이는 별다른 노력없이 아름다운 부인을 얻는다. 마치 꿈 속에서 일어난 일처럼. 장이는 가난뱅이이고 주머니에 돈이 없었다. 부인은 아름답지만 제대로 혼례를 치를 수가 없어서 고민했다. 그러자 부인이 애교를 부린다. 그건 걱정마라고. 돈은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결혼비용은 물론 이후의 창업자금까지 모조리 여자가 장이에게 주어서 해결했다. 장이는 그저 미인을 얻었을 뿐아니라, 동시에 자금을 지원받아 사방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사업을 크게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절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과거에 범죄를 저질러 도망치던 장이가 나중에 외황현령이 될 줄은.
진여(陳餘)도 개봉 사람이다. 장이와는 망년지교, 문경지교이다. 자연히 유방의 친구가 된다. 진여가 미인을 만난 이야기는 거의 장이와 같다. 버전2.0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젊고 우아한 진여는 자주 하북 정주군(고경)으로 놀러갔다. 현지에는 공승씨(公乘氏)라는 부잣집이 있었다. 거기에서 이 외지의 젊은 친구를 눈여겨 본다. 하루는 부자인 공손씨가 진여를 붙잡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집안에 딸이 있는데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다. 노부가 너를 며칠간 관찰해보니, 보통내기가 아닌 것같다. 내 딸을 너에게 처로 주고 싶은데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얼마후 공손씨는 수레에 가득 재물을 담고 딸을 대량으로 보내서 진여의 부인이 된다. 진여는 이렇게 하여 한푼도 들이지 않고 그냥 부잣집 천금을 얻게 된다.
역사는 반복적으로 증명한다. 민간의 이런 속담을..."남자가 나쁜 남자가 아니면, 여자가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이 남자가 '나쁘다'는 것은 수준이 있어야 하고, 방향이 있어야 하고, 담당할만해야 하고, 대국면이 있어야 하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복'은 택도 없다. 그저 두부지꺼기나 먹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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