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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과학

양(羊)은 괴이한 동물이다

by 중은우시 2018. 1. 9.

글: 살사(薩沙)

 

 

 

 

 

<서유기> 제44회를 보면 기괴한 요정이 나타난다. 손오공등은 차지국(車遲國)에서 세 요정을 만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양력대선(羊力大仙)이다. 여기에 호기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호랑이나 사자가 요괴로 되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의 습관상 양은 성격이 온순하고, 약간은 귀엽다. 요괴로 변신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동물로 보인다.

 

기실 양이 요괴로 변신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왜냐하면 양은 확실히 괴이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요괴라는 신분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

 

양은 온순하고 귀여운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괴이"하다는 두 글자를 갖다 붙인단 말인가?

 

우리는 양의 괴이한 점을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하자.

 

먼저, 양의 동공을 자세히 본 적이 있는가? 양의 동공은 아주 독특하다. 장방형이다.

 

자세히 보면 알아차릴 수 있지만, 양의 눈은 동그랗다. 다른 동물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동공은 거의 네모나다. 각이 져 있다. 그래서 아주 괴이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런 동공을 가진 다른 동물도 있다. 그것은 바로 문어이다.

 

문어와 양은 생물학적으로 거의 친척관계가 없다. 왜 똑같이 신기한 눈을 가졌을까. 이 일은 아마 하느님도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가축을 잘아는 사람이라면 그건 뭐 괴이할 것도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소의 눈을 보면 소의 동공도 네모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관찰했다면, 대단하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양의 두번째 괴이한 점이다. 모든 양은 바로 소이기 때문이다.

 

이런 결론을 들으면 아마도 필자가 미쳤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양이 어찌 소가 되느냐고. 샤부샤부를 먹은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다. 양고기와 소고기는 가격이 다르다.

 

그러나, 생물학의 각도에서 보자면 양은 우제목(偶蹄目) 우과(牛科)에 속한다. 그래서 모든 양은 소과인 것이다.

 

이 일은 필자가 영양(羚羊)의 분류를 볼 때 발견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게 특별한 경우인 줄 알았다. 나중에야 발견했다. 동물학에서는 아예 양과라는게 없고, 모든 양은 모조리 소과에 들어간다는 것을. 소과의 아래에 다시 양아과(羊亞科)가 있다. 그래서 생물학자들의 눈에 양은 그저 비교적 작고 특수한 소일 뿐이다.

 

당연히 생물학자들이야말로 양보다도 더 괴이한 동물들이다. 그들의 눈에, 여우는 개과이고, 사자는 고양이과이며, 하이에나는 고양이과이고 나귀는 말과이며, 침팬지는 사람과에 속한다.

 

양은 또한 집단자살을 하는 동물이다. 2014년, 신강 호도벽(呼圖璧)현 남산목촌의 44마리 양이 집단적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더욱 괴이한 일은 현지에서 여러번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2003년에도 28마리의 양이 사망했고, 2009년에는 47마리의 말이 죽었다. 이 사건에 관하여 만일 기효람(紀曉嵐) 선생이 쓴 <열미초당필기>를 숙독한 친구라면 아마도 알 것이다. 기효람 선생은 현지 언어에서 "호도"는 귀신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호도벽"은 바로 "귀신을 보다"라는 뜻이다. 만일 이 말이 진실이라면, 이들 호도벽에 있는 양들은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고서 놀라 집단자살하게 된 것일까?

 

다행히 양의 집단자살은 호도벽 일대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2005년 터키 동부의 한 마을에서는 1500마리의 양이 집단으로 절벽에서 떨어진다. 그중 450마리가 죽었다. 그들은 호도벽에 거주하지도 않고, 살아남은 양들 중에서 그 어느 것도 자신이 귀신을 봤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실 이 일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핵심문제는 집단자살하는 것은 모두 면양(綿羊)이라는 것이다. 동물학자들은 같은 양이지만, 산양(山羊)과 면양은 지력(智力)의 차이가 사람과 침팬지 수준으로 크다고 말한다. 신강농업대학 동물과학학원의 교수인 마이마이티이밍 바라티(買買提伊明. 巴拉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선두양이 무엇을 하면 양무리는 반드시 따라한다. 신강에서 현재 방목하고 있는 면양은 모두 이런 특징이 있다."

 

기실 선두양이 무엇을 하든 다른 말은 모두 따라한다. 그게 무슨 짓이든 간에. 면양은 본능적으로 주위의 면양의 행동을 따라한다. 예를 들어 한 마리의 면양이 실연을 해서 절벽에서 떨어져 죽겠다고 하면 아마도 주위의 모든 양도 따라서 절벽에서 뛰어내릴 것이다. 중국어에는 "해군지마(害群之馬)"라는 말이 있는데, 서양언어에는 이런 말이 없다. 이에 상응하는 것은 Black sheep 즉 흑면양이다. 그 뜻은 다른 면양들도 따라하는 멍청한 일을 가장 앞장서서 하는 말을 가리킨다. 면양을 방목하는 목양인과 목양견은 한편으로 면양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도 보호해야 하지만, 그들이 멍청한 일을 하지 않도록 저지하기도 해야 한다.

 

돌연 양의 또 한 가지 괴이한 점이 생각났다. 중국어의 '해군지마'는 영어로 번역할 때 양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양의 괴이한 점은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다. 양은 흉맹(凶猛)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양은 말을 잘듣는 온순한 동물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는 기실 오해이다. 고대인의 눈에, 양은 온순한 동물이 아니었다. 고대 유럽에서 공성전을 벌일 때 사용한 공성무기의 앞부분에는 거대한 양머리를 조각했다. 중국고대에도 투양(鬪羊)이 있었다.

 

양은 귀뚜라미가 아니다. 양에게 싸우라고 한다고 하여 양이 싸울 것인가.

 

당연히 싸운다. 최소한 고대의 양은 싸웠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화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상의 본능을 많이 보존하고 있었다. 가축양의 조상은 야생양이다. 야생양 예를 들어 반양(盤羊)과 같은 경우에는 짝짓기시기가 되면 격투가 아주 잔혹해진다. 왕왕 둘 다 부상을 입고 둘 다 죽는 장면이 발생한다. 지금의 양은 성격이 온순한데, 이는 인류가 여러해동안 기르면서 도태시킨 결과이다. 양이 인류에 굴종한 것이고 유순한 양은 이렇게 하여 가축이 되었다.

 

당연히 이런 순화는 어떤 동물이나 다 해당하는게 아니다. 성격이 너무 포악한 동물 예를 들어, 얼룩말(班馬)은 차라지 죽을 지언정 굴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순화시키려는 사람에게 너무 큰 위협이 되어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당연히, 개별적인 경우에 사람이 가축에 불종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그렇게 오랫동안 길렀지만, 사람은 나귀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그래서 참을 수밖에없다. "나귀고집(驢脾氣)"이라는 말도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유순한 양을 보지만 거기에서 싸우기 좋아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양에 관한 괴이한 전설은 믿을 바가 못된다. 예를 들어, 유럽의 전통문화에서, 산양의 이미지는 아주 좋지 않다. 색정과 타락의 상징이다. 이것이 어찌 가능할 것인가? 나는 친구들 중에서 양갈자(羊蝎子)를 먹고 짐승같이 바뀌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만일 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사람들이 양고기샤부샤부를 먹을 수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양은 일종의 괴이한 동물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증명이 되었을 것이다. 이 증명과정에서 우리의 양이라는 동물에 대한 습관적인 인식도 몇 가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헛소리는 아니고 모든 것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믿지 않으면 안된다. 당연히 이렇게 많은 괴이한 점이 있지만, 어떤 양 한 마리가 갑자기 뭔가를 깨달아서 수행을 거쳐 양력대선이 되는 것도 그다지 괴이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산양과 정반대로, 면양은 온순하고 아름다움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양자의 지력 차이를 생각하면, 어느 문화이든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