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백용(馬伯庸)
이전 사람들은 얘깃거리가 없으면 날씨를 얘기했다. 오늘 날씨는 어떻고 저떻고...현재는 사람들이 얘기하다가 막히면, 이전보다 풀기 쉬워졌다. 날씨 이외에 별자리(星座)를 얘기하면 된다. 별자리는 좋은 것이다. 이것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누구든지 줄줄이 얘기를 끄집어 낼 수 있다. 무슨 아무나 건드려도 좋지만 처녀자리(處女座)는 건드리지 말라든지, 사장을 찾을 때 황소자리(金牛座)는 만나지 말라든지, 실연에 대하여도 12개의 별자리는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든지...어쨌든 별자리를 얘기하기 시작하면 국면은 바로 풀어지고, 난감하게 되는 국면은 피할 수 있게 된다.
황도(黃道) 12성좌는 중국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외래품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그리스신화와 관계있다는 것만 알고 있지, 기실 그것의 원래 원산지는 고대 바빌로니아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천문학 지식은 아주 발달하였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특별히 총명해서가 아니다. 바빌로니아는 지금의 이라크인데, 지세가 평탄하여 일마평천(一馬平川)이다. 하늘의 별을 관측하기 아주 쉽다. 그들은 전체 황도를 춘분에서부터 나누기 시작하여 12등분을 하고, 하나 하나를 "궁(宮)"이라 부른다. 그들은 이들 천문기록을 <Enuma Anu Enlil(아누신과 엔릴신)>의 점토판에 써서 후세에 전해 주었다.
바빌로니아인의 황도12궁은 나중에 그리스로 전해지고, 그리스신화와 결합되어, 초보적으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별자리순서가 형성된다. 나중에 이 것은 스리스인의 손에서 다시 인도로 전해지고, 산스크리트어 불경에 흡수된다. 다시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십이성좌도 따라 들어오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12성좌가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해서, 중국에서 유행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한문자료를 보면, 가장 먼저 12성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은 수나라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나라 개황초기, 천축에서 고승이 한 사람 온다. 이름은 나련제야사(那蓮提耶舍)이다. 이 고승은 불경을 가득 가져 왔고, 친히 번역했다. 그의 손으로 번역한 경문을 <대방등일장경(大方等日藏經)>이라 부른다. 이 경문에 이런 기이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한 큰 성(城)이 있었는데, 이름이 첨파(瞻波)였다. 대왕의 이름은 대삼마다(大三摩多)라고 불렀다. 대삼마다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왕후가 욕심도 많고 색욕도 있었다. 하루는 화원에서 당나귀무리를 보게 되는데 음심이 발동하여 옷을 벗고 당나귀와 교합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임신을 하고, 머리와 귀, 입과 눈이 모두 당나귀인 영아를 낳는다. 왕후는 크게 놀라서 그를 버려버린다. 이 당나귀머리의 태자는 여신(驢神)이라고 불리는 나찰여자에게 거두어져서 길러진다. 그리고 열심히 수행하여 큰 스님이 된다. 사람들은 그를 여선인(驢仙人)이라고 불렀고, 인도제갈근(印度諸葛瑾)이라고도 불렀다.
여선인의 이름은 기이했으나, 학문은 아주 컸다. 제석천에서도 와서 친히 천문에 대하여 물어볼 정도였다. 여선인은 감추어 두지 않고, 성수(星宿)의 법을 설명해주었다. 즉, 불교이론에서 천문에 대한 인식을 설명해준 것이다. 한 달여 얘기를 했을 때 여선인은 이렇게 말한다: "구월은 사신(射神)이 주재하고, 십월은 마갈지신(磨竭之神)이 주재하고, 십일월은 수기지신(水器之神)이 주재하며, 십이월은 천어지신(天魚之神)이 주재한다. 정월에는 특양지신(特羊之神)이 주재하고, 이월에는 특우지신(特牛之神)이 주재하며, 삼월은 쌍조지신(雙鳥之神)이 주재하고, 사월은 해신(蟹神)이 주재한다. 오월에는 사자지신(師子之神)이 주재하고, 육월은 천녀지신(天女之神)이 주재한다. 칠월에는 칭량지신(稱量之神)이 주재하고, 팔월에는 갈신(蝎神)이 주재한다."
보라. 완전히 12성좌의 설정이다. 단지 이름이 약간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백양(白羊)을 특양이라고 하고, 금우(金牛)를 특우라고 했을 뿐이다. 여기서 '특'이라는 것은 웅성(雄性, 수컷)을 가리킨다. 천녀는 처녀이고, 쌍자(쌍둥이)는 쌍조로 번역했는데, 두 남자를 암시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별히 언급할 것은 마갈좌(摩羯座, Capricornus, 염소자리)이다. 번역명칭도 '마갈(磨竭)'이다. 이는 산스크리트어의 '마카라(makara)'를 음역한 것이다. makara는 인도신화에 나오는 큰 물고기이다. 긴 코와 날카로운 이빨을 지녔다. 마가라(摩伽羅)라고도 한다. 어떤 사람은 원래 악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원래 고래라고도 한다. <낙양가람기>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항하(恒河, 갠지스강)의 서안에 여래가 있었는데 마갈대어가 되어 강에서 나온다. 12년동안 고기로 사람들을 구한 곳에 탑을 세워서 기념했다. 돌에는 물고기비늘무늬가 있었다." <번역명의집축생>에는 이렇게 해석한다: "마갈, 마가라라고도 한다. 이것은 고래를 가리킨다. 수컷은 경(鯨)이라 하고, 암컷은 예(鯢)라고 한다. 큰 것은 길이가 십여리에 달한다." 당삼장은 <대당서역기>에서 이 괴물을 언급하고 있다. 어떤 상인이 불법을 경멸하였는데,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폭풍을 만나서 먹을 것을 모두 잃고 만다. 그때 돌연 바다 가운데서 큰 산이 나타난다.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산이 아니었고, 마갈어였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것이 바로 그 큰 물고기이다.
마갈좌는 그리스신화에서 가축의 신(牧神) 판(Pan)의 화신이다. 그는 천칭자리(天稱座)와 같이 선택장애증이 있다. 괴물의 추격에 물길로 갈지 땅길로 갈지를 결정하지 못한다. 그 결과 양머리에 물고기꼬리를 가진 괴물이 된다. 제우스는 이 모양이 아주 아름답다고 여기고 그것을 벽에 걸어둔다. 그리하여 하늘의 별자리가 된 것이다. 십이성좌가 인도에 전해진 후, 아마도 인도인들은 Capricornus의 모양이 너무 기괴하다고 여겼고, 번역하기 쉽지 않아서인지, 현지의 괴물로 바꾸어 부르게 된다. 마갈의 주체는 물고기이다. 그리고 상반신은 여러가지로 변신할 수 있다. Capricornus와 약간은 유사하다. 그래서 아예 Makara로 Capricornus를 대체하게 된 것이다.
나머지 11성좌의 이름은 모두 의역이다. 그런데, 오로지 이것만 음역이다. "마갈"은 중국인에게 있어서 발음하기도 어렵고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이 문제는 당나라때가 되어서야 해결된다. 개원연간에, 대당에는 스리랑카에서 중국으로 한 고승이 온다. 그의 이름은 불공(不空)이었다. 불공은 내력이 범상치 않다. 그는 불경한역의 오대자막조의 일인이고, 개원삼대사의 으뜸이다. 그는 <분수사리보살급제선소설길흉시일선악숙요경>이라는 경전을 번역한 바 있다. 간칭하여 <숙요경(宿曜經)>이라 한다. 이 경전은 불교경전이라기보다는 <10분만에 공부하는 인도 점성술>과 같은 책이다. 그 안에는 고인도의 여러가지 점성술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나중에 일본의 공해(空海)라는 스님이 이를 배워가서, 일본특색의 성요점성술을 발전시키게 된다.
이 경문에는 십이성좌가 두번 나타난다. 두번의 번역명칭은 서로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불공이 구술한 것을 두 제자 사요(史瑤)와 양경풍(楊景風)이 각각 초고와 수정을 맡았는데, 두 사람은 서로 상의하지 않아서 번역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상권에는 여전히 나련제야사의 번역명칭을 사용한다. Capricornus를 '마갈'로 번역한다. 그러나 하권에서는 '마갈(磨竭)'을 '마갈(摩羯)'로 고쳐 버렸다. 이 번역명칭은 아주 재미있다. '갈(羯)'의 글자는 원래 불알을 깐 숫양을 가리킨다. 발음은 '마갈'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리고 Capricornus가 반양(半羊)이라는 것과도 들어맞는다. 이렇게 하여, '마갈'의 발음은 고인도의 큰 물고기라는데서 나왔지만, '갈'은 숫양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어, 이 두 글자를 가지고 산스크리크어와 한어의 이중어원으로 Capricornus의 반어반양(半魚半羊)을 잘 표현하게 되었다. 이는 고금제일의 정묘한 번역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괴이한 명칭은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는 것은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 번역이 도대체 양경풍의 작품인지, 사요의 작품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이 마갈은 중국문화에 또 다른 하나의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미지는 수나라 당나라때 일종의 서수(瑞獸)로 되어, 자주 절의 조각, 용기무늬장식과 묘장조각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는 점점 용수(龍首), 수각(獸角),조시(鳥翅), 잉어신(鯉魚身)등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길상원소가 된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분야에서는 전문용어까지 나온다. 바로 마갈문, 즉 그 이름도 유명한 어룡문(魚龍紋)이다.
<숙요경> 의 12궁의 번역명칭의 이슈는 마갈 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쌍둥이자리(雙子座)는 나련제야사가 "쌍조(雙鳥)"로 번역했었다. 이것은 아마도 기관(器官)의 형상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숙요경>의 상권에는 '쌍자좌'를 기괴한 글자로 번역했다: "음(婬). <설문>에 따르면 "사일(私逸)'이라고 해석했다. 소위 '사일'은 중국의 간부들이 최근 들어 자주 범하는 범죄이다. 바로 간통이다. 이것은 '음(淫)'의 이체자(異體字)라 할 수 있다. 그저 약간 숨기는 정도라고나 할까.
<숙요경>의 원문은 이렇게 쓰여 있다: "제십일기자이족(第十一其觜二足). 삼사족(參四足), 정삼족(井三足). 진성위언(辰星位焉). 기신여부처(其神如夫妻). 고명음궁(故名婬宮). 주태임자손지사(主胎姙子孫之事). 약인생속차언자(若人生屬此言者). 법합다처첩득인애경(法合多妻妾得人愛敬). 합장호약지임(合掌戶鑰之任)"
이게 무슨 상황인가? 쌍동이자리의 기원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의 쌍동이아들이다. 어떻게 하여 남녀간의 관계로 되어는게, 어찌 "모습이 부부와 같다(神如夫妻)"고 하게 되었을까?
다시 <숙요경> 하권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제는 '음궁'이 아니라, 아예 '남녀궁(男女宮)'으로 번역했다. 더욱 직접적이 된 것이다.
두 제자의 기록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불공화상의 구술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한가지 견해로는 이 '음'은 기실 '요(媱)'라고 한다. 이 글자의 <설문>에서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곡견행모(曲肩行貌), 일왈희야(一曰戱也),미호야(美好也)" 두 아이가 서로 노는 것으로 보면 쌍동이의 모습과 유사하다. 다만 음, 요 두 글자는 너무 비슷해서 베껴쓸 때 잘못 썼을 수는 있다.
그래서 <숙요경>은 여기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후 각 경문과 기록에서는 일률적으로 남녀궁이라고 적게 된다. 그리고 해석도 남녀간의 일과 관계시키게 된다. 송나라때 <난니계습박라천설지륜경>에는 번역자가 '남녀'라는 두 글자가 너무 노골적이라고 생각해서 아예 '음양궁(陰陽宮)'이라고 바꾸게 된다.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 것이다.
이 오해는 일찌감치 명나라초기의 <명역회회천문서>에서 한번 바로 잡은 바 있다. 이 책은 아랍점성술이고, 십이궁에 관한 논술도 인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더욱 정확했다. 여기에서는 쌍동이자리를 "양동자병립(兩童子幷立)"이라고 적었다. 제대로 시정된 셈이다. 아쉽게도 전통의 역량은 너무 강했다. 나중의 <칠정추보>, <서역회회력>등의 책에서는 여전히 '음양궁'이라는 번역을 고수한다. 청나라말기까지 계속 그러했다.
유사한 경우는 '처녀자리(室女座)'에서도 나타난다. <숙요경>에서는 "쌍녀(雙女)"로 번역했다. 나는 처음에 그들이 쌍둥이자리와 처녀자리를 혼동한 것이 아닌가 여겼다. 나중에 <명역천문서>를 읽고서 처녀자라를 "부인이 두 날개를 가지고 있다"로 번역한 것을 알았다. 그제서야 처녀자리의 고성도형상(古星圖形像)에서 날개가 달린 여신이 낱알을 수확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쌍녀'는 기실 두 날개를 가진 여자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쌍녀라는 말이 이후 전해져 내려갔고, 중국고대에 처녀자리에 대한 주류의 번역명칭이 되었던 것이다.
나머지 성좌의 이름은 형상이 고정되고 간단하여 그다지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 번역상황도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었다. 양자리(白羊), 황소자리(金牛), 게자리(巨蟹), 전갈자리(天蝎), 천칭자리(天稱), 사수자리(人馬), 물병자리(寶甁), 물고기자리(雙魚)의 몇 개 이름은 모두 <지륜경>에서 먼저 번역된 것이고, 이후 바뀌지 않았다. (또 다른 한 가지 견해로는 오대의 두광정이 <옥함경>에서 최초로 번역했다고 하나, 이 책의 작자와 책이 나온 시간은 모두 의문스러워서 정설이라고 하기 어렵다)
당나라때부터, 십이성좌는 전적과 문물에서 자주 나타난다. 막고굴에서 서하왕궁까지 모두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선화에서는 요나라고묘가 발굴된 바 있는데, 묘주의 이름이 장세경(張世卿)이다. 그의 묘실의 천정중앙에는 동경(銅鏡)이 있는데, 동경의 주변에는 중판연화(重瓣蓮花)를 그렸다. 연화의 주위에는 이십팔수(二十八宿)를 그렸다. 그리고 바깥에는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이 그려져 있었다.
불경(佛經)이외에, 여러 한적(漢籍)에도 십이성좌가 기록되어 있다. 송나라대 부굉(傅肱)이라는 사람이 <해보(蟹譜)>라는 책을 써서 게에 관한 모든 기록을 모았는데, 거기에는 천문이라는 조목 아래에 <석전>을 인용하여 이렇게 썼다: "십이성궁에 거해가 있다(十二星宮有巨蟹焉)"
북송 경력연간에 증공량(曾公亮), 정도(丁度), 양유덕(楊惟德) 등이 군사저작 <무경총요>를 편찬한다. 십이성좌와 십이중기(十二中氣)를 서로 매치시킨다.예를 들어, "춘분(春分), 이월중...후삼일은 백양궁에 들어간다. 그 신은 천괴(天魁, 별이름)이다." "하지, 오월중, 후육일은 거해궁에 들어간다. 그 신은 소길(小吉)이다." 같은 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이것을 천문학범주로 보지 않고 직접적으로 <출군결승잡점범육임지법>에 넣어두었다. <자미두수>같은 책에도 모두 "가여사자위명(假如獅子爲命), 기행한도지궁(其行限到之宮), 천곡(天哭在寶甁), 대조교한지연말(對照交限之年末), 편가언사(便可言死)"라는 말이 나온다. 사자, 보병은 모두 별자리이다. 완전히 중국의 점술체계에 집어넣은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은 십이궁과 천상의 관계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십이궁을 지방과 연결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쌍어(물고기자리)는 병주(幷州)를 대표하고, 보병(물병자리)은 청주(靑州)를 대표하며, 마갈(염소자리)은 양주를 대표하고, 인마(사수자리)는 유주(幽州), 쌍녀(처녀자리)는 형주(荊州), 사자는 익주(益州)등등이다. 이 설정은 점술에서 많이 쓰지는 않지만,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많이 사용했다.
진서가(陳恕可)는 <계지향(桂支香)이라는 게를 읊은 사(詞)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서풍고국(西風故國). 기작면내황(記昨免內黃), 몽귀계곡(夢歸溪曲). 환시진성야영(還是秦星夜映), 초상추족(楚霜秋足). 여기에서 '진(秦)'은 진나라땅을 가리킨다. 십이궁으로 나눌 때 거해궁(게자리)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진성은 여기에서 게를 상징한다.
<삼국지평화>에는 맹획의 난 때, 제갈량이 유선으로 하여금 밤에 천상을 보도록 한다. 붉은 기운(赤氣)이 사자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익주에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왕벌주평화>에는 더욱 터무니없는 내용이 있다. 강상(姜尙, 강태공)이 서방의 하늘을 보고 진짜 주군이 어디 있는지 찾는다. 거해궁(게자리)에 자색 기운이 일어나서 서진의 땅에 이어진 것을 본다. 그리하여 기뻐하면서 서기(西岐)로 간다. 타임머신을 타고 너무나 멀리 간 것이다.
그리고 <동한비사>라는 책이 있는데 그 내용은 왕망이 한나라의 황권을 찬탈한 것이다. 사천감(司天監) 왕풍(王豊)이 일어나서 말한다: "신이 어제 밤에 천상을 보았는데, 하늘이 별이 서로 섞이며 자미성의 빛이 밝아지고, 나중에 이십팔수로 들어와서 사성구요의 여러 별이 모두 북궐에 임했다" 그러자 왕망이 어디인지를 묻는다. 왕풍이 아뢰기를, "쌍녀궁에 임하였으니 마땅히 초나라땅입니다. 이를 가지고 판단하면, 이미 남방의 땅에서 태어난 것입니다."라고 한다.
천천히 십이성좌는 자신의 인격과 신화적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이 일을 가장 열심히 한 곳은 도교이다. <무상황록대재입성의> 제52권에는 자미원열위성군과 천강대성만진절도성군의 명단 가운데 천칭궁존신, 천갈궁존신, 인마궁존신, 마갈궁존신....쌍녀궁존신등 12명의 존신이 있다. 그들을 12궁신성군으로 하여 도교신선으로 모셨다.
현존하는 명나라때 보녕사 수륙견화를 보면, 주로 불교,도교의 여러 신, 지옥의 귀신류이다. 화가는 아주 정교하게 그렸다. 그중에 보병, 금우, 천갈, 거해, 마갈, 천마, 천칭, 쌍녀, 쌍어, 백양, 사자의 십이궁신이 있다. 이것은 이미 완전히 중국의 신화속의 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십이궁의 현대에 유행하는 명칭을 최초로 번역해서 확정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의 이름은 아마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성은 강이고 이름은 유위. 즉 대명이 자자한 강유위이다.
강유위는 책을 하나 썼는데, <제천강(諸天講)>이라는 것이다. 이십팔세에 붓을 들어, 사후에 비로소 간행되었다.이 책의 주체는 서방의 각종 선진과학이론을 소개하는 것이다. 특히 천문학을. 이 책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책안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그는 달에 대하여 쓰면서, "달은 지구에서 갈라져 나갔고 지구와 가장 가깝다."라고 했는데, 인용한 것은 바로 영국의 천문학자 다윈이 막 발표한 달기원공진설이다. 태양계에 대하여 쓰면서, "나선형의 성운으로 되어 있고, 두 태양이 서로 접근하면 각각 그 인력으로 조류운동이 발생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미국 천문학자 몰튼(Moulton)이 막 내놓은 신무설이다. 그 때는 인터넷도 없었는데, 강유위가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기타 편에는 <지구는 다른 별이 끌어당겨 남북이 기울어 있다>, <해의 원물질>, <달의 산과 땅은 모두 환형이다>, <흑점> 심지어 <화성인>, <화성은 차가워서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데 이는 큰 오류이다> 이렇게 언뜻 듣기에 SF소설같은 글까지 모두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언급하자면, 강유위는 이 책에서, 천문학성과를 소개하는데 아주 엄격했으나, 나중에는 갈수록 허황된 얘기들까지 기록한다. 그는 현재 관측할 수 있는 우주는 하운천(霞雲天)이라고 했고, 그 후에 우주는 너무나 넓어서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다고 했다. 하운천의 밖에는 더욱 큰 천지가 이어져 있다고 하였다. 강유위는 그 때 아마도 할 일이 없었던 것같다. 모두 242급의 천지를 상상해낸다. 이것이 가장 할일없는 일은 아니어다. 그는 매 하늘의이름까지도 생각해냈다. 그중 가장 높은 하늘은 바로 원원천(元元天)이다. 강유위가 평소에 어떤 웹사이트를 자주 방문했는지 이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어쨌든 강유위는 고대 역서, 불경, 명청시대에 번역된 서방천문서적 내지 서방의 근대경전을 정리했다. 책에서 그는 명확히 얘기한다. '쌍둥이자리(쌍자좌)'는 음양궁의 정확한 번역이라고. 이전에 옛 사람들이 잘못 안 것이라고, 그 이후 일남일녀의 음양상(명나라때의 성좌의 모습을 나타낸 상)은 두 남자아이의 형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중에 천문서적은 모두 이 번역을 따랐다. 다만 조읍분의 <천지변>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쌍자좌를 "음양정(陰陽井)'이라고 번역했다. 이 우물 정자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다만 이와 동시에 강유위는 백양, 금우를 "목양(牧羊)", "목우(牧牛)"로 바꾼다. 쌍녀는 "을녀(乙女)"로 바꾼다. 마갈은 "산양(山羊)"으로 바꾼다. 뒤의 두 개는 분명 일본어 번역을 따른 것일 것이다. '실녀(室女)'라는 단어에 관하여 살펴보자면 처음에 Virgo와 연결시킨 것은 1896년 미국인 W M Hayes가 번역한 <천문게요>에서이다. 실녀라는 용어는 전아하고 함축적이므로, 그 후에 이 별자리의 표준번역어가 된다. 청나라말기에서 민국시대까지의 천문서적에는 모두 실녀좌라고 칭한다. 단지 상복원(常福元)의 <중서대조항성록>에서는 이를 열녀좌(列女座)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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