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서서(徐庶)보다 제갈량의 능력이 정말 10배나 뛰어났을까?

by 중은우시 2018. 1. 9.

글: 정순방(鄭純方)


서서가 제갈량을 추천한 장면은 <삼국연의>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중 하나이다. 그는 제갈량이 자신보다 10배나 뛰어나다고 말하면서 유비에게 친히 가서 그를 산에서 나오게 하여 보좌를 받으라고 권하고, 그렇게 하면 패업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서가 왜 다시 돌아와서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했을까? 항간에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서서가 유비에게 감동받아서, 제갈량을 추천하여 그가 유비를 도와 패업을 이루게 하고, 자신이 떠난 손실을 메우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서서가 유비를 떠나기 전에 마음 속으로 미안한 점이 있어서, 제갈량을 보상으로 추천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제갈량을 추천하지 않았더라면, 서서는 자신이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유황숙이 앞에 매복을 두고 그를 죽여버리고, 그 다음에 그 책임을 조조에게 전가시켜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너무 기이하고 심지어 악독하기까지 한데, 유비가 절대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제갈량을 추천한 것은 바로 소설가의 수법이라고 본다. 제갈량의 등장을 위하여 충분히 사전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 기실, 서서라는 인물은 제갈량이 등장하게 하기 위하여 도입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서가 비록 이 장면을 연출했지만, 그가 아무런 무게감없는 조연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나오는 것이다. 정말 서서보다 제갈량이 10배나 뛰어났을까?


필자는 단언할 수 있다. 절대 아니라고. 왜냐하면 서서가 보여준 능력을 보면, 어떤 면에서는 제갈량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 서서는 신야(新野)에서 유비를 보좌하면서 몇 번의 전투를 벌였는데, 백퍼센트 승전을 거둔다. 그리고 조조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이렇게 재능있는 모사가 어찌 유비에게 갔을까? 이런 전적은 삼국시대 모든 모사들 중에서 첫손가락꼽을 만하고, 누구도 그에 견줄 수가 없다(곽가를 포함하여). 불가일세의 조위대장 조인은 이로 인하여 번성(樊城)을 잃었을 뿐아니라, 패배하여 갑옷도 버리고 허도로 도망쳐갔다. 나중에 제갈량의 육출기산으로 조위를 북벌하면서 패전이 많고 승전은 적었는데. 이를 보면 서서의 군사재능은 제갈량보다 뛰어날 것이다.


둘째, 서서는 관우, 장비, 조운과의 관계를 처리하는데서 비교적 잘 해냈다. 온화하게 상의하고, 피차간에 존중했으며, 평등하게 대했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신뢰와 존중을 받는다. 삼고초려때, 관우, 장비는 제갈량의 오만함에 불만을 표시한다. 제갈량이 유비를 대신하여 군권을 장악한 후, 거고임하(居高臨下)의 태도로 역시 오만한 두 장군이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 바로 장군들과의 관계를 처리하면서 조화롭지 못했는데, 이를 보면 제갈량은 서서만큼 중용의 도리를 몰랐던 것같다.


셋째, 서서는 사람됨이 비교적 겸허하고 조용했다. 그는 항상 자신을 비교적 낮은 위치에 두고 제갈량을 우러러보았다. 그는 한번도 자신의 재능을 자랑한 적이 없다. 그는 일찌기 조조와 여러 문관무관들 앞에서 제갈량을 찬미한 바 있다. 나 자신은 미약한 반딧불이지만, 제갈량은 하늘에 뜬 밝은 달이다. 실제로 전투를 계획하고 모의할 때, 서서는 심시도세(審時度勢)하고 용병득법(用兵得兵), 거중약경(擧重若輕)했다. 한번 또 한번 승리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는 관우, 장비로 하여금 마음 속으로 이 군사를 인정하게 만든다. 그는 과연 신기묘산이고, 헛소리는 하지 않는구나. 그러나 제갈량은 달랐다. 자신을 내세우기를 좋아했다. 초려에 있으면서 아무런 공도 세우지 않았으면서 스스로를 관중(管仲) 악의(樂毅)에 비유한다.  비록 유현덕은 그의 말을 믿어의심치 않지만, 관우와 장비는 의심한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제갈량은 고자세로 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가장 뛰어난 엘리트로서 일반백성들은 그와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필자같아도 서서 선생을 찾아가서 묻지, 제갈량을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구고초려를 해도 만나주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서서는 문무를 겸비했다. 그는 무공을 익혔고, 일찌기 협의를 행한 적이 있다. 길을 가다가 불의한 일을 보면 손을 써서 남을 도왔다. 만일 전쟁에 나선다면 지용을 겸비한 장군이다. 제갈량은 그저 글을 많이 읽은 서생이고, 주먹과 팔을 쓰는 무술을 익힌 적이 없다. 도검곤봉을 다룰 줄도 모른다. 그저 지혜의 화신일 뿐이다.


당연히 치국이 방면에서는 제갈량이 독보적이고, 누구도 견줄 수가 없다. 확실히 제나라의 명상 관중보다 못하지 않다. 서서는 이 방면의 재능을 펼칠 기회가 없었다. 조조의 진영에 들어간 후 점점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필자의 생각에 두 사람의 재능을 비교해 보자면, 1:10의 결과는 절대 아닐 것이다. 서서와 제갈량은 다 같이 수경선생의 제자이자 친구이다. 학습능력이 그다지 크게 차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백중이라 할 수 있다. 업적으로 보자면, 두 사람은 각각 다르다. 단지 제갈량이 좀 더 나을 뿐이다. 비록 오대오로 비겼다고 할 수는 없고, 필자가 보기에 6:4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제갈량이 6, 서서가 4. 그래야 서서가 가다가 돌아와서 제갈량을 추천한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조금이라도 나아야. 다만 어떻게 평가해야 역사의 진실에 좀더 접근할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