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살사(薩沙)
<삼국연의>를 잃어본 독자라면 모두 원소(袁紹) 휘하의 곽도라는 모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아주 유명한 것은 아니지만 극도로 나쁘다. 삼국연의에 따르면 곽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주군인 원소에게 엉터리 계책만 내놓는다.
처음에는 천자를 데려오는 것을 반대하고, 나중에는 조조의 주력과 결전을 벌여야한다고 주장하고, 다시 관도전투 직전에는 저수(沮授), 전풍(田豊)등 충량인사를 죽이도록 모함한다. 그리고 오소(烏巢)를 기습당할 때는 조조군영을 공격하라고 얘기한다...
양식을 모조리 잃고, 중병을 이끌고 조조군영을 공격해서 성과가 없은 후에는 곽도가 다시 장합(張郃), 고람(高覽)이 전투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모함하여, 두 사람이 화가난 나머지 조조에게 투항하게 만든다. 이렇게 하여 원소대군의 군심이 흩어지고, 결국 관도전투에서 철저히 패배한다.
역사상 정말 곽도라는 인물이 있었을까, 그리고 그는 어떠했을까?
그는 정말 주군을 해친 인물일까?
원소도 절말 그렇게 멍청했을까? 곽도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당하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삼국연의는 소설이지 역사로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역사의 진실한 기록에서 출발하여 곽도라는 인물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보도록 하자.
곽도의 조적(祖籍)은 영천(潁川)이다. 일찌기 군(郡)에서 하급관리를 지낸다. 장부를 정리하는 것과 같은 문관업무를 맡은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점점 승진하여 영천이 소속되어 있는 기주부(冀州府)의 고위관료가 된다.
동탁의 난이 끝난 후, 원소는 기주로 간다. 연약하고 무능한 기주목(冀州牧) 한복(韓馥)은 점차 원소에게 권한을 빼앗긴다. 곽도는 신평(辛評), 구담(苟湛), 고간(高干)등과 연명으로 한복에게 상소를 올려 기주를 원소에게 양보하라고 권한다.
이때부터 곽도는 원소의 집단에 들어가서 일을 하기 시작하고 그의 휘하의 모사가 된다. 지위는 저수, 순우경(淳于瓊) 두 사람과 같았다.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영가천자(迎駕天子)" 건과 관련하여 곽도는 연의에서 묘사ㅎ나 것처럼 강력히 반대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저수등과 마찬가지로 천자를 모셔오는데 찬동했다. 단지 원소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삼국지.위지,원소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곽)도는 천자를 모셔와서 업성을 도읍으로 하자고 말하였으나, (원)소가 따르지 않았다')
이를 보면, 곽도는 확실히 능력이 있다. 그는 보잘 것없는 하급관리에서 주부의 고관이라는 위치까지 올라갔으니, 이는 온전히 자신의 능력에 의지한 것이다.
그리고, 원소집단에서도 존중을 받는다. 그가 원소집단의 고위직에 오르고 최고기밀사무에 참여하게 된 것을 보면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외에, 곽도의 전략적인 안목과 정치적인 시야도 나쁘지 않았다. 원소집단의 일체 내외사무를 다 장악하고 천하대국의 추세도 정확히 판단했다.
그러나, 곽도의 가장 대단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 그는 극히 뛰어난 원만한 처세능력을 지녔다. 그는 주공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출중했고, 그래서 원소의 신임을 받는다. 그가 원소의 총애를 받은 것은 저수, 전풍같은 '대현(大賢)'에 전혀 못지 않았다.
원소의 창업단계에 곽도는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그는 저수, 전풍, 봉기(逢紀), 허유(許攸) 4명과 함께, 원소휘하의 싱크탱크를 구성한다. 이들 인물은 호화군단이다. 조조휘하의 곽가, 순욱, 순유, 정욱에 못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원소집단은 이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나날이 발전한다. 그리하여 금방 중원일대에서 첫손꼽는 제후로 성장한다. 그러나, 사업이 전성기에 이르면서, 원소의 심리상태에 변화가 온다. 원씨집단의 문제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다. 특히 공손찬(公孫瓚)을 물리치고, 북방4주를 모조리 차지한 후, 집단의 다음 전략방향에 관하여 모사들은 둘로 나뉘어 완전히 다른 견해와 건의를 내놓게 된다.
저수, 전풍을 대표로 하는 '보수파'는 '지구전' 전략을 내놓는다. 원소로 하여금 먼저 북방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이 쉬면서 생산에 종사하게 만들어 생산력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조조에 대하여 '피로교란'전술을 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계속 소규모 정예기병을 보내어 후방을 기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조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곽도, 심배(審配)를 대표로 하는 '급진파'는 완전히 상반된 건의를 내놓는다.
그들은 가장 좋은 전략은 바로 대군을 남하시켜 승리를 거둔 기세를 몰아 조조와 정면대결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단기간내에 조조를 무너뜨려야 중원을 안정시킬 수 있고, 천하대세는 굳어진다고 보았다. 바로 이 건으로 인하여 원소집단은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한다. 그리고 곽도는 '기주오국(欺主誤國)"의 죄명을 뒤집어쓰고 일생의 오점을 남기게 된다.
나중의 결과를 보면, 저수와 전풍의 건의가 옳았다. 그들의 전략방침은 원소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양초가 충분하고, 군수조달에 걱정이 없다. 최대한도로 조조의 우세를 피할 수 있었다. 바로 정예군대. 그러나, 원소는 이와 반대되는 전략을 채택한다. 조조의 장점과 직접 부딛치는 것이다. 그 결과 스스로 참패하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다.
그러나, 다시 주제로 돌아가면 곽도는 모사로서 자연히 잔력회의에서 자신의 분석과 견해를 내놓을 의무가 있다. 이는 바로 그의 직무이자 업무이다. 그의 건의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의사결장자의 몫이다. 즉 원소가 스스로 결정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전략실패의 책임을 모조리 곽도에게 지우는 것은 불합리하다. 곽도는 그저 자신의 모사로서의 업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의 직책범위내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한 것이다. 진정 참패로 몰고간 것은 원소가 하루빨리 공을 세우려는 조급하고 교만한 심리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곽도등이 비로 원소의 이러한 심리에 '영합'하기는 했지만,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원소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지만.
이렇게 보면 곽도라는 사람이 재능에서는 저수나 전풍에 미치지 못할 수 있겠지만, 주군의 심리를 읽어내는데에 있어서는 그가 훨씬 뛰어났다. 마찬가지로 모사이면서 곽도는 원소의 내심을 더 잘 알았다. 원소의 '외관내기(外寬內忌)'의 특징을 잘 알았고, 더욱 예민하게 원소가 이전에 연속하여 대승을 거둔 기세를 이어, 큰 공을 하루빨리 이루고자 하는 강퍅자용한 심리를 잘 알았다. 그가 저수, 전풍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여 주군의 뜻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기보다는, 주군의 뜻에 따라서 주군과 같은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후의 사실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저수, 전풍은 한명은 냉대받으며 병권을 삭감당하고, 한명은 감옥에 갇혀서 처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생각해보라 만일 곽도가 그들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면 결과는 비슷했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곽도는 계속하여 우물에 빠진 이들에게 돌을 던진다. 그는 원소가 자신을 신임하고, 저수등이 '공로가 크다고 주군을 우습게 여기는' 것에 대하여 걱정하는 것을 이용하여 한편으로 동료를 악독하게 모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병권을 완전히 장악한다.
이때의 곽도는 이미 자신의 야심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후 그는 바로 원소휘하의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 된다. 이제 조조를 물리치기만 하면, 그가 세운 공로가 가장 크게 되는 것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는 바로 그의 몫이다.
그후에 발생한 일은 <삼국연의>ㅇ[서 묘사한 것과 그다지 차이나지 않는다. 오소가 피습당할 때 곽도는 중병을 이끌고 조조군영을 공격하고, 경기병만 보내어 양초를 수습하도록 건의한다. 그 결과 양초를 수습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더욱 많은 병사를 잃어버린다. 장합, 고람 두 사람은 조조의 군영을 오랫동안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한다. 이미 곽도가 내놓은 계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는 이때도 모든 책임을 장합등에게 밀어버린다. 그리하여 원래 불만을 품고 있던 장합과 고람은 부대를 이끌고 조조에게 투항해 버린다. 이렇게 하여 원소 군중의 형세가 더욱 수습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결국은 참패하여 패주하고 정예군은 전멸당한다.
하북으로 패퇴한 후, 원소는 정식후계자를 정하지도 못하고 우울병으로 죽는다. 그러나 세 아들은 멍청하지 않았고, 단결해서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서 조조대군과 대치한다면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곽도는 다시 이때 '파괴자'의 역할을 한다. 그는 원담(袁譚)을 종용하여 조조의 병력이 물러난 후 원상(袁尙)을 치도록 한다. 이렇게 하여 원씨형제간의 내부투쟁을 촉발시킨 것이다.
그 결과, 노모심산의 조조는 각개격파로 하나하나 무너뜨리고, 원씨집안의 하북은 모조리 조조에게 넘어간다. 원씨일족은 이때부터 세상에서 사라진다.
이제, 우리는 곽도라는 인물에 대하여 결론을 내릴 때가 왔다: 그는 확실히 재능이 있다. 그러나 대재(大才)는 아니다; 그는 확실히 능력이 있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아니다. 그는 아심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동료를 모함하는 방식까지 무릅쓰면서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려 했다. 그는 정치추쟁에 골몰했고, 주공의 마음을 잘 읽어냈다. 그렇지만 이런 재능을 정도에 쓰지는 않았다.
아마도, 원소집단이 멸망한 책임을 모조리 곽도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점은 곽도가 확실히 중요한 순간에, 원소집단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최소한 추파조란(推波助瀾)의 역할을 했다. 조조가 나중에 곽도를 대한 태도를 보라. 남피성을 함락시킨 후에 투항하라는 말조차 하지 않고 바로 곽도를 죽여버린다. 그리고 그의 일족도 죽여버린다.
이는 설명한다. 조조는 일찌감치 곽도가 유독소인(有毒小人)이라는 본질을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자를 남겨두면 가져올 것은 파괴성이 건설성보다 크다는 것도 알았다. 언제인가, 곽도는 원소를 구덩이에 몰아넣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를 구덩이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이런 자는 기회만 되면 바로 없애는 것이 최선이다.
기실, 곽도와 같이 야심이 큰 소인은 재능이 크면 클수록 파괴성이 더욱 커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능을 정도에 쓰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인물은 한때 명성을 떨칠 수는 있지만, 짧은 기간일 뿐이다. 최종적으로는 신수이처(身首異處)의 결말을 피해가기 어렵다. 아마도 이는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 > 역사인물 (삼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소인물(4): 허유(許攸). 탐욕에 눈이 멀어 목숨을 잃은... (0) | 2018.01.09 |
---|---|
삼국소인물(3): 고람(高覽), 저평가된 원소의 부장 (0) | 2018.01.07 |
삼국소인물(1): 고순(高順), 잊혀진 충용대장(忠勇大將) (0) | 2018.01.05 |
장비의 후손은...? (0) | 2018.01.04 |
여범(呂範): 삼국연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숨은 명장 (0) | 2017.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