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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삼국소인물(1): 고순(高順), 잊혀진 충용대장(忠勇大將)

by 중은우시 2018. 1. 5.

글: 살사(薩沙)


고순은 사료기재에 따르면 여포(呂布) 휘하의 중랑장(中郞將)이다. 연병과 작전지휘에 능톤했다고 하며, 여포를 따라 사방에서 전투를 하면서 적지 않은 공을 세운다. 일찌기 여러번 여포를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하였다. 그의 휘하에 있는 "함진영(陷陣營)"은 인원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모두 장비가 뛰어나고 전투에서 용맹했었으며, 그들이 참가한 전투에서 패전전적은 거의 없다. 삼국시대 최정예 보병부대라고 할 만하다. 고순은 사람됨이 청렴하고 기율이 있으며 위엄도 있고 통이 컸다. 병사들을 잘 보살키고 상벌이 분명했다. 생활에서도 고순은 극히 검소하며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의 선물을 받지도 않았다. 그는 완벽한 장수의 이미지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서주전투에서 여포군단이 대패하면서, 여포를 포함한 군단의 고위층인물들 예를 들어 진궁(陳宮), 고수(高順), 장료(張遼)등은 함께 조조에게 포로로 잡힌다. 포로였지만 고순은 당당했고, 여포가 조조에게 투항을 구걸한 것에 분노하여 질책하기도 한다. 자신이 심문을 받을 때, 고순은 똑바로 서서 한 마디도 내뱉지 않는다. 그리고는 조조에 의하여 참형을 당한다.


고순과 같이 능력도 있고 기개도 있는 충용스러운 장수가 이렇게 백문루(白門樓)에서 죽으니, 후인으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여러가지 수수께끼도 남긴다. 만일 고순을 참한 것이 다른 주군이었다면 몰라도, 하필 인재를 아끼고 인재를 잘쓰기로 유명한 조맹덕(조조)이었기 때문이다. 왜 장료, 장패(臧覇), 송헌(宋憲), 위속(魏續)등은 모두 거두어들이면서, 고순만 죽여버렸을까? 설마 그가 고순의 능력을 몰라봤단 말인가. 이렇게 뛰어난 장수를 거두었을 때 얼마나 큰 가치가 있을지 몰랐단 말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마도 고순이 말한마디 하지 않았기 ㄸ문에 조조는 그가 놀라서 겁을 먹은 것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마음 속으로 이런 자는 담량이 없다고 여겨 거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조조의 심문순서가 잘못되었다고. 만일 먼저 장료, 장패등을 거둔 다음에 다시 고순을 심문했더라면 분명 고순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모두 투항한 것을 보고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고. 이런 때에는 곁에서 한 사람이 말 한 마디만 거들어 주어도 된다. 관우가 장료를 위하여 부탁했던 것처럼. 그렇게 되면 대위에 앉아 있던 조조나 대아래 서 있던 고순이나 모두 명분이 생겼을 것이고, 고순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고. 아마도 그렇게 되었더라면 고순은 조조를 따라 함진영의 정예병사를 재조직하여 남북으로 다니면서 많은 전투에서 공로를 세우며 위명을 천하에 떨쳤을 것이라고.


기실 이런 것은 모두 주관적인 추측일 뿐이다. 조조가 얼마나 총명한 사람인가? 어찌 고순의 능력과 가치를 몰랐겠는가? 그가 고순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이, 하후돈, 우금같은 명장들이 모조리 고순에게 패배한 적이 있다. 복양에서 매복을 당한 것도 고순에게 당한 것이며, 하마터면 조조까지도 불에 타 죽을 뻔했다. 만일 정말 고순을 거두려고 했다면 그것은 심문순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는 것은 고순을 죽이거나 살리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고순이 만일 정말 주군을 바꾸고자 생각했고, 목숨을 남기려고 생각했다면 분명히 뭔가를 했을 것이다. 그저 대아래에서 한 마디도 내뱉지 않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일한 해석은 바로 조조가 일찌감치 고순을 죽이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고순도 자신이 이번에 죽을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몰랐을 수 있다. 그러나 조조의 곁에 앉아 있던 유비는 일찌감치 두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죽이라던지 살려주라던지 하는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이다.


먼저, 고순은 여포의 군내에서 지위가 아주 높았다. 우두머리의 명단에 모두 그의 이름이 있었다. 그는 '반드시 참해야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사료기재에 따르면, 고순은 여포의 휘하에서 '중랑장'의 직위를 가졌다. 중랑장이라는 직급은 한나라때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다만 그 직책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현재의 경호실 실장과 같은 것이다. 국가최고지도자를 호위하는 일을 맡는 것이다. 당연히, 여포는 국가최고지도자가 아니라 지방제후이다. 그의 산하의 중랑장은 호위무사와 비슷한 직무일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고순은 여포의 수하에서 가장 신임받는 장수였던 것이다. 평소에 군영을 보호하고 고위층인사를 호위하며, 전쟁에서 국면이 어려워지면 정예병을 이끌고 돌파구를 마련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뿐만 아니라, 고순은 여포의 군내에서 최고핵심업무에 항상 참여했다. 지위는 진궁과 동등했다. 두 사람은 한명이 무관 한명이 문관으로 각자의 책임을 다한 것이다. 모두 '최고의사결정층'의 일원이었다. 적절하지 않은 비유일지는 몰라도, 고순과 진영은 적인걸의 곁에 있는 이원방(李元芳)과 증태(曾泰)라 할 수 있다. 가장 신임하는 오른팔 왼팔인 것이다; 장료, 장패, 후성과 같은 "팔건장(八健將)"은 장환, 이랑등 팔대군두(八大軍頭)와 비슷하다. 그들이 하찮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고순, 진궁에 비하면 훨씬 낮은 편이다. "수악필판(首惡必辦), 협종불문(協從不問)" 우두머리는 반드시 처리하고 손발은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르면 고순과 진궁은 여포군단의 핵심인물이다. 진궁이 조조와 교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더더구나 이전에 아무런 교분도 없는 고순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으로, 고순의 사람됨이 실로 너무 강맹하고 정직했다. 이는 마이너스효과를 가져온다.


강맹정직한 것이 약점은 아니다. 다만 고순은 이런 측면에서 지나칠 정도였다. 분명히 원만하지 못하여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할 때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고순은 선물을 한번도 받지 않았을 뿐아니라 술도 마시지 않았다. 이는 삼국시대에는 정말 이례적인 인물이다. 사료와 소설을 뒤져보면, 삼국시대에 "술"에 관한 기록은 엄청나게 많다. 술을 통쾌하게 마시는 기풍은 곳곳에서 성행했다. 술을 끝도없이 마신 사람도 아주 많다. 술이라는 것은  삼국시대에 중요한 교제요소이다. 특히 군대내에서, 고위층 장수부터 하위층 병사까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특히 출정하기 전에, 술은 군대를 위로하는 것이다. 모두 호기를 나타내며 사기를 북돋우는 것이다.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도 병사들과 장수들을 아무런 절제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미친듯이 술을 마셔대는 것이다. 그리고는 전쟁터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잔다. 이것은 목숨을 걸고 싸운 장병들에게 주는 하나의 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순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는 항상 자신의 두뇌를 맑게 유지했고, 언제든지 돌변하는 적에 대응할 수 있었다. 이 점은 그 개인의 품성에서 정말 드물게 좋은 점이다. 다만 그 시대의 환경에서 보자면 그는 약간 이례적인 인물이다. 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활제이고, 그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중요한 교제수단의 하나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다른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조조는 바보가 아니다. 상대방을 연구하는데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일찌감치 고순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 고순의 평소습관과 사람됨까지도 다 알아 본 것이다. 그는 잘 알았다. 고순과 같이 지나치게 정직한 인물을 수하로 받아들이면 위험하다는 것을. 자신의 군대내의 원래의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과 마찰이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는 것을 심지어 내부갈등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바로 고순은 이전의 전적이 너무 뛰어나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조조를 너무 심하게 이겼다.


이전의 전투에서, 고순이 이끄는 함진영은 조조군의 장병들에게 너무나 깊은 원한을 심어주었다. 현재, 조조의 여러 장병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서 사상자가 무수히 났는데, 어렵사리 원수를 생포했다면, 누구나 그를 죽여서 한을 풀고 싶어할 것이다. 만일 조조가 이때 인재를 아끼는 마음에 호인 역할을 하여 그를 살펴두고 거두게 되면, 분명히 자신의 장병들을 마음이 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죽어간 형제들을 볼 면목도 없다. 그래서, 고순을 죽이지 않으면 조조군대의 사기에 영향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후에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 싸우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천하는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모두 다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포로를 대할 때 죽여야할 경우에는 죽여야하는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점은 바로 조조가 고순을 반드시 참살해야하는 이유이다. 고순도 이를 잘 알았다. 그래서 조조가 심문할 때 "침묵극"을 연출한 것이다.조조는 대위에서 참하라는 명을 내림으로써 천하에 위명을 떨치고, 장병을 안위시켰다. 그러고 난 다음에 여포, 진궁, 고순이 세 사람을 후히 장례지내준다. 이를 통해 투항한 장병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고순은 대 아래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충성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형장에서도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렇게 하여 자신은 "충신은 두 주군을 섬기지 않는다"는 아름다운 명성을 남길 수 있었다. 이런 결과는 조조, 고순 두 사람이 모두 원하는 것이다.


참고: 여포가 서주에 주둔하고 있을 때, 유비는 암중으로 여포군내의 각급 장수들을 이간시키고 매수했다. 장료를 포함해서 많은 장수들이 이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유비군과 전투할 때 왕왕 소극적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유비군대의 전투력이 여포보다 훨씬 약함에도 매번 패전하면서도 목숨을 구해서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러나 유비의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이 두 명이 있다. 가장 중요한 문무의 두 사람이다. 바로 고순과 진궁. 이를 통해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여포에게는 사람을 알아보는 재능이 있었다는 것을 최소한 그의 곁에 있던 가장 가까운 막료는 모두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졌고, 절대로 신뢰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백문루에서, 장료, 장패는 모두 투항하지만, 고순, 진궁 두 사람은 차례로 죽어간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수하들과 함께하였기 때문에, 여포는 저승에서라도 그다지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