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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역대천하제일검객명단

by 중은우시 2017. 10. 10.

글: 노철봉(蘆哲峰)


검(劍)은 백병지군(百兵之君)이고, 단병지조(短兵之祖)이다. 고대 협객(俠客)이 가장 즐겨 사용하던 무기이다. 춘추시대부터 명나라말기까지, 역대 천하제일검객은 다음과 같다:


1. 월녀아청(越女阿靑)


춘추시대 말기, 월녀 아청은 남림(南林)에 거주하며, 백원(白猿)에게 검을 배우고, 월나라사람들이 아주 잘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범려가 그녀를 초청하여 월나라 무사들에게 검술을 전수한다. 월왕 구천은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당금 세상에 월녀지검(越女之劍)을 이길 자는 없다. 월나라 무사는 이후로 천하무적이 되어, 오나라군대를 대파하고, 오나라를 결국 멸망시킨다.


월녀의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온 것은 동한 조엽(趙曄)의 <오월춘추(吳越春秋)이다. 나중에 <삼십삼검객도(三十三劍客圖)>에 수록되고, 마지막에는 김용(金庸)에 의하여 단편소설 <월녀검>으로 다시 쓰여진다. 많은 사람들은 월녀 아청이 김용이 쓴 검객중 천하제일고수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틀렸다. 아청은 내공이 없고, 특징은 빠르다는 것이다. 검법으로 말하자면, 동방불패(東方不敗)와 같은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청의 검법은 빠르다. 그리하여 월나라 무사들은 그림자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동방불패는 영호충(令狐沖), 임아행(任我行) 같은 초일류고수들 마저도 그의 신법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월나라 무사의 무공수준은 강남칠괴(江南七怪) 안의 한소영(韓小瑩)을 참고할 만하다. 한소영의 주요 무공은 월녀검법이다(당연히 이 월녀검법은 단지 아청 월녀검법의 그림자일 뿐이다). 영호충, 임아행과 같은 고수들과 비교하자면 고하의 차이가 천양지차이다. 같은 반열에 놓고 얘기할 수가 없다. 범려는 아청이 서시를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천명의 월나라무사를 배치했다. 그래도 아청은 뚫고 들어간다. 그것은 아청이 이천명의 무사를 이겨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그저 사병들이 아청을 막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청의 검법은 대체로 영호충보다는 위이지만, 동방불패보다는 아래라고 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자객이 구름처럼 많았다.담량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무공, 검법은 고명하다고 하기 어렵다. 가장 유명한 사대검객인 전제(專諸), 섭정(聶政), 예양(豫讓), 형가(荊軻)를 예로 들면, 그중 검법무공이 가장 뛰어난 사람은 섭정이다. 한번에 수십명의 위사를 격살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암살 후에는 도망치지를 못했다. 그래서 월녀아청이 춘추전국시대의 "천하제일검객"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마초(馬超)


마초는 삼국시대 촉한의 오호상장(五虎上將)중 한 명으로, 신위천장군(神威天將軍)이라 불렀다. 마초의 용맹함은 여포에 못지 않다. 말 위에서는 창을 쓰고 말 아래에서는 검을 쓴다. 스스로 검법의 출수법(出手法)을 창안하여 후세에 전한다. 일찌기 검 하나로 양주오장(凉州五將)을 상대한다. 검빛이 비치는 곳에는 선혈이 뿌려졌고, 마완(馬玩)을 베고, 양흥(梁興)을 고꾸라지게 하자, 나머지 세 장수는 각자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한다. 


진한이 통일한 이후, 협객은 무술로 법을 어기는 일이 많다보니 조정은 민간의 상무기풍을 엄금한다. 그러므로, 검객, 협객, 자객의 수량이 선진시기에 비하여 대폭 감소한다. 한나라말기 삼국시기에 이르러, 검을 잘 쓰는 고수로는 호분장군(虎賁將軍) 왕월(王越)이 있다. 긜고 조비(曹丕)의 사부인 사아(史阿)등등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천하제일검객"을 말하자면, 마초를 꼽아야 한다. 말위에서 창을 쓰는데 있어서는 여포의 다음가고, 검을 쓰는데는 천하무적이었다.


3. 배민(裴旻)


배민은 당현종(唐玄宗) 개원(開元) 연간의 장수이다. 일찌기 북평군(北平郡, 지금의 북경시)에 주둔하며 수비했으며, 나중에 관직이 "좌금오위대장군(左金吾衛大將軍)에 이른다. 그의 검법이 얼마나 뛰어났느냐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일찌기 검을 던져서 구름으로 들어갔고, 높이가 수십장에 이르렀다. 손으로 검집을 쥐고 받으면 검이 빈 곳으로 들어갔다. 시선(詩仙) 이백(李白)도 그에게 검술을 배운다. 당문종(唐文宗)때, 이백의 시, 장욱(張旭)의 글, 배민의 검을 나란히 "삼절(三絶)"이라 부른다. 당시 사람들은 배민을 "검성(劍聖)"이라 불렀다.


배민과 약간 뒤의 공손대낭(公孫大娘)은 성당(盛唐)에서 중당(中唐)에 이르는 시기에 가장 유명한 두 명의 검객이다. 다만 공손대낭이 춤추는 검은 관상성을 위주로 하고, 그다지 실전성은 없다. 배민은 달랐다. <독이지(獨異誌)>, <조야첨재(朝野僉載)>에는 모두 배민이 해인(奚人)을 북벌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호랑이를 쏜 경력도 있다. 그래서 배민의 이 "검성"이라는 칭호는 명실상부하다고 할 수 있다. 성당시기의 "천하제일검객"이라고 할 수 있다.


4. 섭은낭(隱娘)


섭은낭은 당덕종(唐德宗) 정원(貞元)연간 위박대장(魏博大將) 섭봉(聶鋒)의 딸이다. 10살때 한 여승이 훔쳐갔고, 검을 5년간 배운다. 그녀는 절벽을 날아다닐 수 있었고, 신법이 가벼워 바람과 같았다. 원숭이를 찌르는데 백번에 한번도 실수가 없었다. 호랑이와 표범을 찌르는면 목을 베고 돌아왔다. 매와 새를 찌를 때도 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 밝은 날에 사람을 찌르면 사람들이 보지를 못할 정도이다. 검술을 다 익힌 후에는 진허절도사(陳許節度使) 유창예(劉昌裔)를 도와 자객 정정아(精精兒)를 참살하고, 절정고수 공공아(空空兒)도 절묘하게 이긴다. 나중에 산림에 은거하니 표연하기가 신선과 같아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섭은낭의 이야기는 배형(裴鉶)이 쓴 <전기(傳奇)>에 나온다. 글에서 비록 명확히 나타내지는 않지만, 묘수 공공아의 무공은 섭은낭보다 뛰어났다. 다만 섭은낭은 공공아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공격하려는 부위를 잘 알았고, 그의 공격의 특징이 한방에 적중시키지 못하면 멀리 도망친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하여 사전에 대비를 하고, 마지막에는 공공아가 일격에 명중시키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멀리 도망가서 숨도록 만든다. 교묘하게 이겼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섭은낭은 중당, 만당시기의 "천하제일검객"이라고 할 수 있다.


5. 탁불범(卓不凡)


탁불범은 북송 송인종(宋仁宗) 경력(慶歷) 연간에 태어났다. 원래는 복건(福建) 건양(建陽)의 "일자혜금문(一字慧劍門)"의 고수이다. 송인종 가우(嘉祐) 5년, 천산동모(天山童姥)는 '일자혜검문'의 3대 62명을 죽인다. 단지 탁불범만이 복건에 있지 않아 화를 면한다. 장백산(長白山)으로 도망쳐 황량하고 극한(極寒)의 땅에서 검법을 수련한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선배고수가 남겨놓은 검경(劍經)을 얻고, 30년간 고된 수련을 통해 마침내 대성한다. 검술에서의 조예는 이미 등봉조극(登峰造極)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강호인들은 그를 "검신(劍神)"이라 부른다. 그는 내공이 심후하여, 3,4리 밖까지 전음술로 말을 전하면 똑똑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의 주공검(周公劍)은 순식간에 연속 4번 찌를 수 있고, 탁자 위에 "井"자를 새길 수 있고, 9개의 목판을 모두 4각의 모양으로 만들면 크기와 너비가 모두 똑같았다. 마치 자를 대고 천천히 잘라서 만든 것같았다. 연검(軟劍)을 아주 단단한 화강암 나무 기둥에 찔러넣을 수도 있었는데 깊이가 1자 정도에 이르렀다. 가장 대단한 것은 거의 검끝에는 반자 길이의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이 마치 길다란 뱀같은 청망(靑芒)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출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공을 대성한 허죽(虛竹)을 만나게 되고, 허죽에게 두번이나 검을 빼앗긴 다음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린다.


탁불범은 김옹의 <천룡팔부>에 나온다. 김용의 붓끝에서 그려진 "검신"금의 인물이다. 그의 무공은 부용선자(芙蓉仙子)와 불평도인(不平道人)보다 높고, 모용복(慕容復)보다 낮지 않다. 다만 고수들이 구름처럼 많은 <천룡팔부>에서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못했다. 만일 검법만을 따진다면, <천룡팔부>에서 랭킹 1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단예(段譽)가 수련한 "육맥신검(六脈神劍)"은 책에서는 비록 '검법'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지법(指法)'이기 때문이다. 일양지(一陽指)의 업그레이드버전 내지 강화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검신 탁불범은 북송중기의 "천하제일검객"이라고 말할 수 있다.


6. 이적(李勣)


북송 송휘종(宋徽宗) 연간에 산동(山東)의 송강(宋江), 회서(淮西)의 왕경(王慶), 하북(河北)의 전호(田虎), 강남(江南)의 방랍(方臘)은 각자 산을 차지하고 사방에 할거하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사대구(四大寇)"라고 폄하해서 불렀다. 이적은 왕경의 국사(國師)였다. 금검선생(金劍先生)이라고 불리웠다. 일찌기 형남(荊南)에서 이인(異人)을 만나, 검술을 전수받는다. 검무를 추기 시작하면 번개가 내려치는 것처럼 양산의 무공제일이라는 노준의(盧俊義)도 막아내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공손승(公孫勝)의 법술(法術)에 항복한다.


무송(武松)은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수 있었고, 무공은 소봉(蕭峰)의 80%정도 될 것이다(소봉이 7성의 공력으로 호랑이를 잡았는데 호랑이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여기에 일성을 공력을 더한 후에 비로소 호랑이를 때려죽일 수 있었다. 무송과 소봉의 무공비교에 관하여는 필자의 다른 글 <대송군영전>을 나온다). 양산의 108명의 군웅들 중에서 무송의 무공은 노지심, 그리고 임충, 관승등 5호장과 대체로 비슷하다. 단지 노준의만이 그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노준의의 무공은 소봉의 90%정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적은 노준의를 버티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를 보면 이적의 무공은 소봉보다 낮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북송말기의 "천하제일검객"이라 할 만하다.


7. 독고구패(獨孤求敗)


독고구패는 북송 송휘종 초기에 태어나서, 남송 송고종(宋高宗)시기에 종횡했다. 호는 검마(劍魔)이다. 약관이전에 일찌기 하삭(河朔)의 군웅들과 다투었고, 40세에는 천하를 종횡한다. 40세이후에는 물건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고, 풀, 나무, 대나무, 돌을 모두 검처럼 다뤘다. 점점 무검(無劍)으로 유검(有劍)을 이기는 경지에 이른다. 강호를 30년간 종횡하면서 도적들을 모조리 죽이고, 영웅들을 모조리 패배시킨다. 천하에 적수가 없었다. 평생 적수 한 명을 찾았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만다. 그가 죽은 후에는 두 명의 간접적인 재전제자가 있는데, 한 명이 양과(楊過)이고 다른 한 명이 영호충(令狐沖)이다. 각자 독고구패의 일부 검법을 가지고, 일대검협이 되어 천하무적이 된다.


독고구패는 김용의 붓끝에서 무공수준이 가장 높은 인물이다. 김용이 쓴 소설에서 무공랭킹 1위이고, 검법, 무공으로 논하자면 전무후무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남송시기의 "천하제일검객"이라 할 수 있다.


8. 동방불패(東方不敗)


동방불패는 명효종(明孝宗) 홍치(弘治)연간 일월신교(日月神敎)의 교주였다. 300년동안 아무도 수련하지 못했던 절세무공 <규화보전(葵花寶典)>(벽사검법)을 익힌다. 신법이 빠르기는 귀신과 같았고, 수놓는 침 하나로 가볍게 영호충, 임아행, 향문천(向問天), 상관운(上官雲)의 합공을 이긴다. 마지막에는 임영영(任盈盈)이 그의 남총(男寵) 양련정(楊蓮亭)을 부축하여 그녀의 마음이 흐트러지게 만들어 비로소 그녀를 죽일 수 있었다.


김용의 소설에는 무공고수가 아주 많다. 그러나 순수하게 검법을 위주로 본다면 그리 많지는 않다. 예를 들어, 왕중양(王重陽)은 전진검법(全眞劍法)을 할 수 있었고, 황약사(黃藥師)는 낙영검법(落英劍法)을 할 수 있고, 장무기(張无忌)는 태극검법(太極劍法)을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검법이 아니다. 선천공(先天功), 탄지신통(彈指神通)과 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등의 무공이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절정고수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절정검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김용의 소설에서 진정 검법을 위주로한 주인공은 대체로 영호충밖에 없다. 양과와 원승지(袁承志)는 그저 절반정도만 그럴 뿐이다. <소오강호>는 김용이 유일하게 검법을 주요무공으로 쓴 소설이다. 동방불패는 <소오강호>에서 말그대로 제일고수이다. 그러므로 명나라 전중기의 "천하제일검객"이라고 할 수 있다.


9. 섭고성(葉孤城)


섭고성은 명신종 만력연간 무공이 가장 뛰어난 6고수중 한 명이다. 남해(南海) 비선도(飛仙島)에서 왔고, 백운성주(白雲城主)라 불린다. 스스로 상승의 검도를 깨쳐서 검중지선이 되고, 대표적인 검법은 천외비선(天外飛仙)이다. 검신(劍神) 서문취설(西門吹雪)과 자금지전(紫禁之巓)에서 결전을 벌인다. 검법이 서문취설보다 빠르고, 공령유동(空靈流動)한다. 그러나 그는 세자의 찬탈음모에 참가하였다 실패하여 죽을 운명이었다. 그래서 고의로 서문취설의 검에 죽는다.


고룡은 고수의 대결을 묘사할 때, 왕왕 통상적으로 쓰지 않는다. 자주 승자를 죽인다. 그리고 패배자를 살린다. 섭고성과 서문취설은 바로 그러한 예이다. 결전이후, 서문취설은 더욱 정진하여 나중에는 무검(無劍)의 경지에 이른다. 만일 이때의 서문취설이 섭고성과 대결하여 고하를 겨룬다면 누가 이길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최소한 자금지전의 결전때는 그래도 섭고성이 더욱 뛰어났다. 그래서 섭고성은 실질적으로 명나라후기의 "천하제일검객"이다.


10. 연십삼(燕十三)


연십삼은 명나라말기의 검치(劍痴)이다. 대표적인 검법은 가전검술인 "탈명십삼검(奪命十三劍)"이다. 나중에 스스로 십사검(十四劍)과 십오검(十五劍)을 창안한다. 제십오검이 한번 시전되면 천하의 그 누구도 피할 수가 없었다. 어떤 언어로도 이 검식을 형용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단 한 글자 "사(死)!" 죽음 뿐이다. '검중제왕(劍中帝王)'이라는 사효봉(謝曉峰)과 대결할 때, 제십오검으로 사효검을 죽일 수 있는 상황하에서, 자살을 선택한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검법을 세상에 남겨서 무림에 화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연십삼과 사효봉의 결전은 다시 한번 도치이다. 승자는 죽고 패자는 산다. 연십삼은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게 분명한데도 자살을 선택한다. 검법은 자연히 사효봉보다 뛰어나다. 사효봉이 나중에 어떻게 연십삼의 "제십오검"을 파해할지를 깨달았는데, 그것은 이미 <원월만도(圓月彎刀)>에 나오는 내용이고, 이미 사마자연(司馬紫煙)의 대필이다. 고룡의 원저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토론범위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연십삼은 명나라말기의 "천하제일검객이다. 


이 글의 첨고서적

1. 김용 <월녀검>

2. 나관중 <삼국연의?

3. 이항 <독이지>

4. 배형 <전기>

5. 김용 <천룡팔부>

6. 시내암 <수호전>

7. 김용 <신조협려>

8. 김용 <소오강호>

9. 고룡 <육소봉전기의 결전전후?

10. 고룡 <삼소야의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