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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지금은 사라진 역사의 고성(古城)

by 중은우시 2017. 7. 4.

1.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상경용천부는 고대 발해국의 도성이다. 당나라 장안성을 모델로 설계하였고, 요태조 야율아보기가 천현원년(926년) 발해국을 멸망시킨 후 훼멸된다. 유적지는 흑룡강성 흥안시(興安市) 경내에 있다.


   발해국은 200여년간 존속하여 시간이 짧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남겨진 흔적은 많지 않다. 상경용천부는 한때 동북아의 저명한 대도시였으나 현재는 그저 유적지만 남아있을 뿐이다.


2. 회녕부(會寧府)


   회녕부는 북송 정화5년(1115년), 완안아골타가 황제츨 칭하고 국호를 "대금(大金)"이라 하면서 회녕부를 도읍지로 정한다. 금나라의 상경성은 북송의 도성인 변경을 모델로 건설되나 금나라말기에 몽골에 편입되고 부는 폐지된다.


  회녕부 유적지는 하르빈시 아성구(阿城區) 교외에 있다. 동북지역에는 지금도 대도시가 적지 않지만, 많은 도시들은 역사가 아주 길다. 그러나 여러가지 원인으로 역사의 지속성은 그다지 강하지 않은 편이다.


3. 통만성(統萬城)


  통만성은 섬서성 유림 정변현 북쪽 58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동진때 남흉노의 귀족인 혁련발발이 건립한 대하국(大夏國)의 도성 유적지이다. 통만성은 북송초기에 조서를 내려 훼멸시켰고, 점차 버려져서 이미 1천년에 이른다.

  

  통만성은 장안과 낙양을 본떠서 건설했고, 성벽이 견고한 것으로 유명했다. 송태종은 일찌기 주민을 이주시키고, 성을 훼멸시킨다. 나중에 서하의 통치하에 들어갔다가 다시 몽골군에 의하여 파괴된다. 이때부터 역사에서 사라진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사라진 또 다른 원인은 더 이상 풀이 자라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4. 진양고성(晋陽古城)


진양고성은 춘추 주경왕(周敬王) 23년(기원전497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하고, 북송 태평흥국7년(979년)에 훼멸된다. 진양은 이연, 이세민 부자가 거병하여 수나라에 반기를 든 곳이고, 대당의 발원지이다.


성벽이 견고하여 질시를 받았고, 조광의는 진양성 부근에 새로 성을 쌓는다. 그리고 주민을 전부 이주시킨 후 진양성을 불지른다. 그 후에 성에 물을 넣는다. 이렇게 하여 진양성을 철저히 훼멸시킨다. 유적지는 산서성 태원시 서남쪽의 원진양현이다.


5. 누란고성(樓蘭古城)


누란고성은 누란고국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비단길의 한 소국이었다. 위치는 나포박(羅布泊)의 서부이다. 누란고국은 기원전176년에 건국하여 630년에 돌연 신비하게 사라진다. 모두 8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누란고성이 돌연 사라진 것은 지금도 수수께끼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후원인 외에 아마도 전쟁, 전염병, 가뭄, 심지어 비단길의 개도(改道)도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적지는 동으로 고양관에서, 서로는 니아고성, 남으로 아르킨산, 북으로 하미에 이른다.


6. 대명부(大名府)


대명부는 춘추시대에 위(衛)나라에 속했다. 이름은 "오록(五鹿)"이다. 송인종 경력2년(1042년)에 배도(陪都)로 삼았으며 역사에서는 북경(北京)이라 불린다. 당시 대명부의 인구는 백여만에 달하였다. 명나라 건문3년(1401년 대홍수에 잠긴다.


대명부는 <수호전>에서 아주 유명하다. 양지(楊志)가 군사를 충원한 곳이기도 하고, 노준의(盧俊義)는 계속 대명부에 거주한다. 장소는 하남성 대명현의 동남부이고, 성벽은 최근에 재건되었다.


7. 업성(鄴城)


업성은 동한 말기 조조가 원소를 격패시키고, 업성을 점거하여 왕도로 건설한다. 동작대를 만들었다. 염민(冉閔)의 살호(殺胡)도 이 곳에서 발생한다. 업성은 중국의 3세기 내지 6세기때 황하유역의 정치중심지였으나 나중에 양견(楊堅)에 의해 불태워진다.


<삼국지>시리즈 게임을 즐기는 게임유저라면, 모두 업성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업성은 580년 양견에 의하여 불태워진다. 유적지의 범위는 지금의 하북성 임장현 서쪽과 하남 안양시 북쪽교외일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