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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고대 칭호의 유래: "폐하(陛下)"

by 중은우시 2017. 4. 10.

글: 매천일점고문화(每天一點古文化)


우리가 자주 보는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신하들이 황제를 "폐하"라고 부르고, 황자나 친왕들을 "전하(殿下)"라고 부르는 것을 보게 된다. 고대인들이 칭호를 쓸 때 윗사람을 높이고 아랫사람을 낮추게 되는데, 왜 신하들은 "폐하", "전하"같은 칭호로 황제와 태자(혹은 친왕)을 부르는 것일까?


원래 이들 존칭의 원래 의미를 고증해 보면, "폐하"는 원래 황제 본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전하", "각하(閣下)"도 상대방 본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폐하"의 "폐(陛)"는 실제로 황궁의 계단 섬돌을 가리킨다. 동한(東漢)의 문학가 채옹(蔡邕, 채문희의 부친)은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황제는 그의 가까운 신하로 하여금 병기를 들고 궁전의 계단 아래에 서 있게 해서 불측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에 대비했다. 그래서, 계단(陛)의 아래(下)에는 황제의 근신이 서 있었다. 채옹은 추가로 이렇게 설명한다: "폐하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신하들이 천자에게 말할 때 감히 직접 천자를 칭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게단 아래 있는 사람에게 아뢰어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비달존(因卑達尊)' 즉 낮춤으로써 올리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황제는 지고무상이다. 신하는 감히 그와 직접 얘기하지 못한다. 할 수 없이 황제의 근신에게 대신 아뢰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폐하"라고 부르는 것은 황제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계단 아래에 서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황제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말하자면, 법도라는 것은 한번 정해지면 만고불변인 것이 아니다. 신하도 절대 황상과 직접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예절은 생략할 수가 없다. 그래서, 황상과 얘기할 때 앞에 '폐하'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자신이 공경한다는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폐하"의 문제는 이렇게 해결되었다. "전하", "각하"도 마찬가지로 해결된다. 이들 존칭의 의미도 기실 모두 같다. 자신이 감히 상대방과 직접 얘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대신 전해달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나타낸다. "전하"는 일반적으로 황태후, 황후, 태자, 왕에 대한 존칭이다. 다만 역대 왕조마다 약간씩 달랐다. "각하"는 일반인에 대한 존칭이다. 그리고 외교에서 썼다. 그 외에 "족하(足下)"라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존칭이다. 다만, "폐하", "전하", "각하"의 해석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폐하"라는 호칭이 성행한 것은 진(秦)나라때부터이다. <사기. 진시황본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금폐하흥의병(今陛下興義兵), 주잔적(誅殘賊), 평정천하(平定天下), 해내위군현(海內爲郡縣), 법령유일통(法令由一統)"(지금 폐하께서 의로운 군대를 일으켜서 나머지 적들을 베고, 천하를 평정하여, 국내에 군현을 두고, 법령을 통일했다) <사기>는 사마천이 쓴 중국 최초의 기전체 통사이다. <진시황본기>의 이 기록을 보면, 서한(西漢)에 이르러 '페하'는 황제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미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폐하"라는 호칭과 상응하는 것은 "전하"가 있다. "전하"는 고대 천자에 바로 다음가는 왕 혹은 황태자에 대한 존칭이다. "전(殿)"은 "궁전(宮殿)"을 가리킨다. "전하"는 원래 궁전의 계단 아래이다. 고대 천자의 궁중은 "궁"혹은 "전"이라 칭했다. 승상부는 "전(殿)"이라고 칭할 수 있으나, "궁(宮)"이라고 칭할 수는 없었다. 한나라때 천자에 대한 칭호가 '폐하'로 되는 동시에, 제후왕에 대하여는 '전하'로 칭하게 된다. 삼국시대 이후로는 황태후, 황후에게도 '전하'라고 칭하게 된다.


그러므로 '전하'라는 칭호의 뜻은 계단 아래에 있는 신하가 당신에게 이 아랫사람의 말을 전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진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하와 폐하는 한 가지 뜻이다.원래는 천자에 대한 경칭이었다. 다만 칭호대상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한나라이후 전하는 태자, 친왕에 대한 존칭으로 바뀐다. 사장(謝莊)의 <장황태자복상지존표>를 보면, "복유화애자전하(伏惟皇太子殿下), 명양승건(明兩承乾), 원량작이(元良作貳)"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구지(丘遲)의 <여진백지서>에는 "중군임천전하(中軍臨川殿下), 명덕무친(明德茂親), 총자융중9總玆戎重)"이라는 말이 나온다. 양무제의 동생 소굉이 임천군왕(臨川郡王)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위진남북조때는 천자도 '전하'라고 칭했다는 말이 있다. <칭위녹천자>에는 "위진육조에는 전하라 칭한다"고 했다. 당나라때 이후 태자, 황태후, 황후를 '전하'라 칭한다. <사물기원>권2 에는 "한나라 이래 황태자, 여러 왕은 전하라 칭하고,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리고, 삼국시기에는 이미 황태후를 전하라고 칭한다(<삼국. 위서. 삼소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