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치아(李治亞)
유방의 수하에 많은 대신이 있었다. 이들 개국공신은 어떤 사람은 육국의 옛부하들이고, 어던 사람은 함께 혁명을 한 의형제들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일찌기 유방의 상사였던 경우도 있다. 유방은 한신을 죽이고, 팽월을 죽이고, 영포를 죽였다. 머리가 좋은 장량도 퇴피삼사(退避三舍)했다. 그러나 아무 일없이 대한의 승상을 지낸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소하이다.
소하는 일찌기 유방의 상사였다. 유방이 사수정장으로 있을 때, 소하는 현의 비서였고, 법률에 정통하여 현령이 좋은 부하였다. 그때 모두 무뢰한 출신의 유방을 무시했지만, 소하는 유방에게 잘 대해준다. 진시황35년, 사수정장 유방이 수도 함양으로 요역 1년을 하러 떠난다. 평소에 교분이 있던 패현이 관리들이 속속 그를 배웅한다. 관례에 따라, 모두 동전300봉을 전별금으로 준다. 유방이 소하의 봉투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500동전이 있었다. 300전을 주는 것만 해도 급여에 필적하는 큰 돈이다. 소하는 상사인데도 파격적으로 500을 낸 것이다. 이는 특별히 뜻을 전하는 의미이다. 이 일을 유방은 평생 잊지 않는다. 나중에 천하를 얻고 논공행상할 때도, 특별히 소하에게는 2천호의 봉읍을 내린다. 이는 점적지은(點滴之恩)을 용천상보(湧泉相報)하는 협의의 기풍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방이 나중에 대한의 천자가 되고나서도 소하에 대하여는 손을 쓰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군자지교담여수(君子之交淡如水). 유방은 계속하여 소하와 아주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유방과 번쾌, 주발, 노관등과는 달랐다. 유방과 소하는 가정교육이 달랐고, 성격과 취미도 상이했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개인적으로 술을 같이 마시고 취하는 즐거움은 없었다. 설사 같은 자리에서 술을 마시더라도 피차간에 예절을 지키는 관계였다. 그들간에는 시종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었고, 서로 인정하고, 서로 경계했으며, 서로 협력했다. 그들은 피차간에 상대방이 가지고 자신은 가지지 못한 장점을 인정했고, 그들은 피차간에 상대방의 약점도 분명히 알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 간에는 모두 서로 보완의 필요가 있었다. 유방과 소하의 교분관게는 대등한 선비간의 예절왕래였고, 약간은 물처럼 담담한 깨끗함이 있었다.
둘째, 소하는 일처리를 조용히 했고,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유방이 안심을 한다. 소하라는 사람은 대국관이 있었다. 유방의 일생에서 소하의 도움이 가장 컸다. 혁명을 시작하면서 패공이 우두머리가 되고, 혁명이 승리한 후에는 유방이 황제가 된다. 한신에게 병력을 거느리게 추천하여, 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후방을 경영하여 유방에게 걱정거리가 없게 해준다. 공로가 이처럼 크지만 사람됨과 일처리는 조심스러웠고, 공을 내세우며 자랑하지도 않았다.
셋째, 소하는 스스로를 지키는데 능했다. 초한전쟁 기간동안, 유방과 항우는 형양에서 28개월간 대치한다. 이 기간동안 유방은 전체 관중을 소하에게 맡겨서 관리한다. 이 조치는 소하에게 큰 권력을 준 것이다. 당연히 소하도 일을 아주 잘 처리한다. 한3년, 유방과 항우는 형양에서 여전히 대치하고 있었고, 유방이 여러번 사신을 보내어 소하를 위문한다.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다. 소하는 그러나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소하의 수하중 포(鮑)씨성의 문객이 그에게 일깨워 준다. 대왕이 전선에서 적을 맞이하고 있으며 풍찬노숙하고 고생이 심한데, 여러번 사신을 보내어 후방에 있는 당신을 위문한다는 것은 한왕이 이미 당신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너의 현재 개인처지를 생각하면 자손, 형제들 중에서 전쟁터에서 싸울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내보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면 한왕도 너를 신임할 것이다. 소하는 한 마디를 듣자 바로 깨닫고, 그대로 처리한다. 그의 자손, 당형제가 전선으로 가자 '한왕은 크게 기뻐한다.'
넷째, 소하는 자신의 명성을 욕되게 할 수 있었다. 유방이 전선에서 개선할 때, 백성들이 길을 막고 글을 올린다. 소상국이 민간의 전답을 강탈했는데, 그 가치가 수천만에 이른다고 말한다. 유방이 장안으로 돌아온 후, 소하가 그를 만날 때, 유방은 웃으면서 백성이 올린 글을 소하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너는 상국으로서, 백성들과 이익을 다툰단 말인가. 네가 이렇게 하는 것이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인가. 네 스스로 백성들에게 사죄하라." 유방은 표면적으로 소하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게 하며, 전답의 가격을 배상하게 하였지만, 내심으로는 기뻐했다. 소하에 대한 의심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유방은 총명한 사람이다. 자신을 잘 파악했고, 상대방도 잘 파악했다. 사람은 처마 밑에서는 부득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손후대를 위해서. 그래서 조심스럽게 행동한 것이다. 그래서 유방은 소하를 계속 좋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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