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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당태종)

당태종 이세민: 무예(武藝)의 수수께끼.

by 중은우시 2017. 7. 16.

글: 정호청천(鼎湖聽泉)


예전에 한 네티즌과 이세민의 무예문제에 대하여 토론한 적이 있다. 기억하기로 그 네티즌은 이런 말을 했다. "이세민의 무예는 말타고 칼뽑는 흉내를 내는 수준일 뿐이다. 만일 일대일로 적장과 싸운다면, 아마도 황급히 도망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어려서부터 전투에 나섰지만, 친히 나서서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는 없고, 다른 사람의 살해계획에 거의 성공할 뻔한 적도 여러번이다. 낙양전투에서는 왕세충(王世充)의 보병에게 거의 목이 잘릴 뻔하고, 유흑달을 공격할 때는 유흑달의 살해계획으로 하마터면 역사가 새로 쓰일 뻔했다. 그때가 역대 전투에서 가장 위기의 순간이었다."


당연히 이는 네티즌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왜나하면 일부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이세민의 무예는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의 군사천재에 묻힌 것이 아닐까 싶다) 절대로 그저 흉내내거나 보기만 좋은 무예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가 틀리고 누가 옳은 것일까? 그래서 이세민의 무예의 진면목을 파헤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서혜(徐惠)를 문학천재라고 한다면, 이세민은 의심의 여지없이 군사천재이다(특히 군사모략 방면에서). 여기에 대해서는 아마도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린 나이로 강적들이 둘러싸고 있는 열악한 상황하에서 절대로 이씨의 대당강산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전에 "출사미첩신선사(出師未捷身先死)" 즉 전쟁터에 나서서 승전을 하기도 전에 먼저 전사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들에게 가장 강하게 주는 인상은 바로 강한 적수를 만나면 더욱 강해지고, 기묘한 전술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다. 16살때의 안문근왕(雁門勤王)때, 완병지계(緩兵之計)와 수상개화(樹上開花)의 의병계(疑兵計)를 써서 지혜로 강대한 돌궐군대를 물리치며 두각을 보였다. 여러번의 "공수투백랑(空手套白狼)"의 절묘한 성과를 거두면서, 당나라를 건립하고 공고히하는데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그 과정에서 신속히 자신의 '전신(戰神)'이미지를 만들어간다. 그는 사병들에 솔선수범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는 빛나는 이미지로 대당인들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으며, 대당왕조의 사람들로부터 보편적으로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매번 뛰어난 역사서 <자치통감>에서 진왕 이세민의 호뢰관(虎牢關)에서의 "진왕파진(秦王破陣) 장면을 읽를 때면 부지불식간에 이 천고일제의 무공, 담량 그리고 용기에 대하여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왜냐하면 이세민의 절세무예와 기마술이 그 안에 표현되어 있기 때문인데,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세민이 500의 정예기병을 데리고, 무뢰의 동쪽 20여리로 나가 두건덕의 군영을 보았다. 가는 길에 따르는 기병들을 남겨서,이세적, 정지절, 진숙보로 하여금 각각 이끌고 길가에 매복하게 했으며, 겨우 4명의 기병을 데리고 같이 전진했다. 이세민은 위지경덕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활을 들테니, 그대는 삭(, 자루가 긴 창)을 들고 따르라. 나는 원거리공격을 그대는 단거리공격을 맡으면 백만대군이 오더라도 우리를 어떻게 할 수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적이 나를 보고 쫓아오면 상책이다." 두건영의 군영 3리되는 곳에서 두건덕의 병사들과 마주치는데 척후병으로 보였다. 이세민은 크게 소리친다: '내가 진왕이다' 그리고 활을 들어 쏘니 그중 장수 1명이 맞아 죽는다. 두건덕의 군중에서는 크게 놀라서, 5,6천명의 기병을 보내어 쫓는다. 이세민을 따르던자들은 아연실색하였는데, 이세민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동생들이 앞장서라. 나는 위지경덕과 뒤를 맡겠다.' 그리고는 말을 몰아 천천히 간다. 추격하는 기병이 쫓아오면 다시 활을 들어 쏘아 1명을 죽인다. 그러면 추격하는 자들은 두려움에 멈춘다. 멈췄다가 다시 쫓아온다. 이렇게 여러번 계속되었고, 매번 활을 맞아 죽는 자가 생겼다. 이세민이 전후로 화살을 쏘아 수명을 죽이고, 위지경덕이 십여명을 죽인다. 그러자 추격자들이 감히 가까이 따라붙지 못한다. 이세민은 이들을 유인하여 매복지점내까지 데려왔고, 이세적등이 공격하여 대파한다. 적의 수급 300개를 얻고, 그들의 맹장인 은추(殷秋), 석찬(石瓚)을 생포하여 돌아간다."


깊이 생각해보면, 매복계라는 것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오백명으로 오육천명을 포위공격한 것이다. 일대 십이다(일대 백의 사례도 그에게는 자주 있었다), 그리고 충분한 담량과 모략이 있어야 하고, 더더구나 남다른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하물며 이세민은 총사령관의 신분으로 겨우 4명을 데리고 친히 '미끼'가 되기 위해 나섰다. 이같이 특이한 전법, 이처럼 솔선수범하는 용맹하기 그지없는 총사령관은 오천년동안 불세출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봉모인각(鳳毛麟角)일 것이다. 내가 이렇게 과감하고 결론적으로 얘기하는 걸 용서해주기 바란다.


이번 전투를 잘 감상해보면, 이세민의 무공과 활쏘기가 얼마나 정묘한지 잘 알 수 있다. 이세민의 자신은 스스로의 심후한 무공조예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휘하에 그처럼 맹장들이 운집해 있으면서도 그에게 복종한 것을 보면 전신이라는 칭호가 허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중의 '현무문사건'에서 그가 쏜 첫번째 화살이 전혀 기울지도 흐트러지지도 않고 깨끗하게 그보다 10살이 많은 큰형 이건성(李建成)을 맞혀 죽인다. "적을 잡으려면 왕을 먼저 잡으라"(擒賊先擒王)는 전략의 최고봉이다. 그리고 이는 직접 사변의 최대성과를 일궈낸다. 골치아픈 교착상태에 빠지지 않게 만들어 주었고, 사변의 원만한 성공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놓았다. 이는 사변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그는 영혼이며 핵심이다. 그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위의 글만으로도 이세민의 무예가 뛰어나다는데 의심을 품지 않게 되지 않았는가? 최소한 그의 무예는 그저 멋있게 선보이는 수준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거의 군사모략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다만, 그가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은 군사총사령관으로서이지 단순한 무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출신입화(出神入化), 기정신한(氣定神閑)의 뛰어난 지휘예술에 가리었을 뿐이다. 심지어 그가 단순한 맹장으로 나서서 1대1로 싸운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들 수하무장들에게 지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기마술과 활술에 있어서는....


다시 여기서 선웅신(單雄信)이 달빛아래 이세민을 죽이려고 쫓아간 일을 얘기해보자(서한때는 소하가 달빛아래 한신을 쫓아갔는데, 여기서는 거꾸로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여기에는 약간의 신화적인 색채가 따라붙는다.


그때, 이세민은 기본적으로 이미 서부전선의 용병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바로 창끝을 동도(낙양)으로 돌려 왕세충과 일전을 벌이고자 했다.


왕세충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역사상 그 이름도 유명한 장수이다. 특히 그의 수하에는 맹장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각로영웅을 끌어모았기 때문에 이세민도 왕세충과의 대결에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서로 죽이지도 살아남지도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진다.


어느날 저녁, 밝은 달이 비치고 가을바람이 시원한 때, 단병작전을 좋아하는 이세민은 이처럼 달이 밝아서 시야가 잘 보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나가 적정을 정찰했고, 유용한 정보를 얻어낸다.


적군의 군영 부근에 이르렀을 때, 달빛아래에서 흔들리는 봉미죽(鳳尾竹)의 미묘한 호선을 미처 다 감상하기도 전에, 심지어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보기 전에, 돌연 청천벽력같은 호통이 들려온다: "어디서온 모적(毛賊)이길레 감히 군사중지까지 쳐들어온단 말이냐. 꼼짝말고 칼을 받아라!"


원래 왕세충의 휘하에 있던 맹장 선웅신이 달려온 것이다. 마침 적군의 상황을 파악하러왔던 이세민으로서는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난 격이다. 졸지에 이런 일을 당한 이세민은 상황이 좋지 않다고 보고 말머리를 돌려 도망친다.


선웅신을 얘기하자면, 그도 역사상 유명한 맹장이다. 긔고 그는 욤앵하고 싸움을 잘하는 용기와 모략을 모두 갖춘 천천후 장수이다(이런 인물들은 원래 한꺼번에 모아서 출생한다. 만일 경천동지할 싸움으로 이름을 떨치려면 인생의 적수를 잘 선택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그는 서한의 명장 이광처럼 '비장'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것은 당연히 행군이 번개처럼 빠르기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이번에 그가 만난 것은 용맹하기 그지없는 이세민이다. 당연히 멋진 장명이 예상된다.


선웅신도 두말않고 즉시 말을 때리며 쫓아간다. 이제 그를 붙잡을 수 있다면, 공로를 세울 기회인 것이다.


이세민의 보마는 하룻밤에 팔백리를 간다는 백룡신마(白龍神馬)이다. 신행태보라 할 수 있다 채찍질 한번이면 번개처럼 달려하고, 행운유수처럼 미끄러져간다. 고개를 돌려 도망치자 선웅신을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빨리 도망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선웅신은 쫓아가기 힘든 것을 보자, 자신의 말과 장비가 상대보다 못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너에게 장량의 게책이 있다면 나에게는 담장을 넘는 재주가 있다. 사람은 죽어도 방법은 살아있다. 쫓아갈 수 없다면 빠른 화살로 쫓아가겠다. 그래서 활을 꺼내어 화살을 끼운다. 그리고 이세민을 쏘아죽이려 한다. 이것도 재미있다. 왜냐하면 선웅신도 궁술의 초급고수이기 때문이다. 만일 현대에라면 절대로 양궁에서 한국선수들과 금메달을 다투었을 것이다. 이세민이 골치아파졌다.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세민에게 뛰어난 것이 단순히 백보천양의 궁술만이라면 우리같은 역사의 기술자들이 곤란했을 것이다. 어떻게 써야할지 몰랐을 것이다. 다행히 이세민은 어쨌든 진룡천자의 명을 타고 났다. 용종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과연 그는 일생동안 여러번 큰 전투를 겪었고, 그 동안 터럭 하나 다치지 않았다(모주석도 쉽게 부상당하지 않는 남자인데, 모두 신인들이다). 큰형 이건성의 독수는 하마터면 그를 천당에 데려갈 뻔했지만, 길인(吉人)에게는 천상(天相)이 있다. 어쨌든 그는 쉽게 죽지않는다. 하늘이 이미 그에게 천고일제의 중임을 맡겼으니까. 이것은 그저 생명의 긴 흐름 중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포말일 뿐이고, 일종의 자그마한 시험일 뿐이다.


마침 이 때 이세민의 말이 수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증발한 것같았다. 선웅신은 이세민이 있는 위치를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설마 이세민에게 무슨 날아서 변신하는 마술이 있는 것일까? 그래서 선웅신도 말을 타고 뛰어올라서 말등에 딱 벝어 있었다(기마술은 아주 숙련되어 평지처럼 말 위에서 놀 수 있었다. 고수이다)  말 위에서 보니 이세민과 말이 수렁 속에 있었다. 마침 선웅신의 활이 도달하는 사정거리내였다. 하하 하늘이 나를 도운 것이다. 네가 죽지 않는다면 내가 재주가 없는 것이고, 내의 궁술은 그냥 허명인 것이다. 선웅신은 말을 세우고 가가대소를 한다. 그가 활을 보름달처럼 당긴 다음에 화살이 유성처럼 날아갔다. 정상적이라면, 이번에 이세민은 목숨을 건지기 어렵다. 아마도 옥황상제가 수하를 보내어 그를 보호해준 것같다. 이세민이 화살을 맞고 황천길로 갈 상황이었는데,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나무 숲에서 돌연 백록(白鹿)이 튀어나와서 이세민의 말과 나란히 달린다. 이세민은 뒤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슈슈슉 하는 소리를 들었다. 선웅신의 화살이 자신을 향해 날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즉시 말등에 몸을 숙인다. 아마도 화살소리가 백록을 놀라게 한 듯하다. 그가 튀어오르다보니 이세민을 향해 날아가던 화살을 그가 막아내고, 영광스럽게 희생된 것이다. 그 백록은 한무더기의 피를 남기고 죽는다. 이세민은 이렇게 하여 평안하게 위기를 넘긴다. 신화도 이렇게 신기하진 못할 것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성공을 이룬 후 이세민은 이를 잊지 않았다. 물을 마시는 사람은 우물을 판 사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는 그 백록을 생각해내고 백록의 구명지은에 보답하기 위하여, 백록이 사망한 곳에 규모가 거대한 "백록묘(白鹿廟)"를 지어서 기념한다. 이세민은 은혜는 꼭 갚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부근의 마을 이름도 '백록장(白鹿莊)'으로 한다. 하남 맹진형 송장향에 있는 백록장촌은 바로 이렇게 얻은 이름이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역사전설인가? 1천년이 지난후의 본인도 이를 보고난 후 전설상의 백록장의 풍토인정과 성당지풍이 그리워졌다. 그 어런 백록이 생각난다. 그때 바람은 분명히 아주 강했을 것이다. 기회가 있다면 한번 가보고 싶다. 역사상의 중원옥토는 곳곳에 이러한 멋진 이야기나 남아 있다. 


좋다.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는 계속하여 이세민의 무예를 살펴보기로 하자.


전해지는 바로는 영과 이각(李恪)의 출신입화의 기마술과 궁술이 이세민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그것은 사부로부터 물려받은 진전이다.


그렇다면, 기마술과 궁술은 고대에 어떤 무예였을까? 그것은 고대의 중요한 군사용어와 관련된다. 냉병기(冷兵器). 일종의 지식을 소개한다는 의미로 여기에서 인용해 보기로 한다.


냉병기는 일반적으로 화약, 폭약등 열에너지타격계통, 열동력기계계통과 현대기술살상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전투에서 직접 적을 살상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무기장비를 가리킨다. 광의의 냉병기는 냉병기시대의 모든 전투장비를 가리킨다. 냉병기는 재잴로 나누면, 돌(石), 뼈(骨), 조개(蚌), 대나무(竹), 나무(木), 가죽(皮革), 청동, 강철등이 있다. 용도로 나누자면 공격성무기와 보호장구로 나뉜다. 공격성병기는 격투, 원거리, 위체(衛體)의 세 종류로 나뉜다. 작전사용으로 나누면 보병병기, 거병병기, 기병병기, 수병병기와 공수성기계등으로 나뉜다. 구조형태로 나누면 단병기, 장병기, 포사병기, 계병기, 보호장구, 기계, 병거, 전선등등으로 나뉜다.


우리는 병기를 나눌 때 기병병기와 포사병기(抛射兵器)의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세민의 무예와 아무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여기서 중점적으로 설명하기로 하자. 


신기질(辛棄疾)의 송사 "금과철마(金戈鐵馬), 기탄만리여호(氣呑萬里如虎)"같은 거대한 기세는 아마도 기마술과 궁술이라는 두 가지 냉병기시대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말타고 활쏘는 것은 냉병기시대 '작전지왕'이라고 말한다. 최소한 무장의 가장 중요한 무예라는 것이다. 말타기와 활쏘기는 아무렇게나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병이 어려서부터 각고의 장기간의 집중적인 훈련을 받아야 비로소 정확하게 활을 쏠 수 있고, 숙련되게 말을 탈 수 있다. 여기에 양자를 결합시키려면 수년 십수년의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익힐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마궁(馬弓)은 사정거리가 비교적 짧다. 겨우 오십보가량이다. 보병의 활이면 백보의 사정거리까지 늘어난다. 그래서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려면 보궁(步弓. 보병이 쓰는 활)로 익혀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난도는 더 커진다. 그래서 우수한 유목민족민이 아주 열악한 환경하에서 실패자들을 도태시키고, 최종적으로 강인하고용맹한 궁기(弓騎)를 배양해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징기스칸이 금랑군(金狼軍)은 5년간의 훈련을 거쳐서 군인이 되고, 10년이 되어야 천하무적이 된다고 한다. 이를 보면 훈련이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말등에서 사는 민족인 몽골족은 어려서부터 초원에서 탄궁(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으로 쥐를 잡는 것부터 말타기오 활쏘기를 시작한다. 몽골의 기병이 유라시아대륙을 횡행하면서 천하무적일 수 있었던 것은 냉병기의 말타기 활쏘기으 힘든 훈련을 거친 것이 가장 주요한 원인이다. 


초당의 가장 주요한 군사적수는 돌궐군대였다. 이들은 북방유목민족을 대표하는 냉병기전투의 우수한 민족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본적으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고, 아주 뛰어난 궁전수를 많이 두었기 때문이다. 마치 늑대같고 호랑이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초당때 국경지대에 사는 백성들은 물론 심지어 수도 장안에까지도 질풍처럼 달려와서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용맹한 돌궐민족에게 약탈을 당했다. 아주 피동적이었고, 이는 이연에게 큰 골치거리였다.


그래서, 천부적으로 남달리 뛰어나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이세민은 기마술을 익힌 것이다. 그것은 대업을 이루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사서를 뒤져보면, 이세민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무예를 힘들게 익였다는 내용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는 그저 기초적인 재주이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할만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관의 시선에는 들지 않은 것이다. 이세민이 어려서부터 궁마기사(弓馬騎射)를 좋아하고 뛰어난 무예를 익힌 것은 아마도 가학(家學)에서 연유하는 것같다. 왜냐하면 그의 증조부는 바로 북주의 개국공신이니 자연히 무예가 뛰어났을 것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이연도 무예가 고강한 고수였다(출신입화의 궁술로 두황후의 방심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는 분명히 아들에게 전해주었을 것이다. 그의 형제 3명은 모두 한번 보면 익힐 정도로 무예가 뛰어났다. 그래서 수시로 심심하면 화살을 들고 사냥대회를 벌였다. 누가 더 많이 사냥했는지를 겨루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무공은 자연히 크게 발전했을 것이다.


매번 싸울 때마가 그는 항상 말타기와 활쏘기의 신기로 천하무적이 된다. 가장 저명한 몇 번의 돌궐과의 조우전에서, 항상 그들의 칸과 1대대1로 말타기와 활쏘기를 겨루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것같다. 예를 들어 그가 막 정변을 일으킨 후 정권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 돌궐은 기회를 틈타 침략해온다. 백만웅병이라고 큰소리치며 이미 위하의 편교서안까지 도착한다. 그리고 활을 잡아당기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모두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이성계는 공성계를 하겠다고 하고는 성문을 활짝 열어제친다. 그리고 6기의 기병을 데리고 다리동쪽으로 가서 10만대군과 대치한다. 얼굴에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그가 대명이 자자했던 힐리칸(利可汗)과 1대1로 싸우자고 요구한 것이다. 너희 돌궐족은 기마술로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닌가. 내가 그것으로 너희와 겨루고 싶다. 오히려 힐리칸이 겁을 먹는데, 이는 허장성세에 당한 것과 같다. 앞에서 얘기한 연환계로 적을 물리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나중에 기세등등하던 돌궐이 결국 강화를 청한다. 이는 측면으로 이세민이 스스로의 기마술과 궁술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으미ㅣ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큰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걸음 물러나서 분석한다. 이세민이 위지경덕을 중시한 것은 그의 충성심이 뛰어난 것을 제외하고, 이세민이 기병을 조직하는 것을 아주 중시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위지경덕도 욤앵한 기병장수이고, 또 다른 문신인 진숙보와 진문삼걸중 1인인 정교금도 모두 하나의 예외도 없이 기마술에 뛰어났다. 그래서 이세민에게 중용된다. 진숙보는 일찌기 그의 마군총관(馬軍總管)이 된다. 유목민족이나 수나라군대 혹은 할거군벌세력들로 하여금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었던 현갑대(玄甲隊)는 바로 그가 기병을 중시했다는 유력한 증거이다.


그의 현갑대(혹은 현갑군)에 대하여 얘기를 하자면 정사에 기록된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기껏 백여자에 불과하다. 그가 발휘한 전쟁의 공능과 비교하면 균형이 맞질 않는다.우리는 할 수 없이 다른 사료들에 나오는 글에서 다시 현갑대의 역사적 모습을 환원시켜볼 수밖에 없다. 현갑대는 중국고대 최정예기병부대중 하나라고 불리운다. 또한 이세민이 개국하는데 더할 나위없이 날카로운 신검이었다. 이세민은 전군에서 천여명의 정예기병을 선발한다. 그리고 모조리 흑의흑갑을 입게 하고, 좌우대로 나눈다. 그리고 정지절, 진숙보, 위지경덕, 적장손등 맹장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했으며, "현갑대"라고 불렀다. 이세민은 일찌기 1000명의 현갑정예병사로 왕세충을 대파하고 6000여명을 참하거나 포로로 잡는다. 그리고 그는 직접 현갑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서 돌진하니 용맹함을 당할 자가 없었다. 자연히 파죽지세로 이겼다. 그의 부하들은 성격이 매우 거친데 진문삼걸인 정지절, 진숙보, 위지경덕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는 복종하지 않으면서 그에게는 복종한 것이 이유가 있다. 그의 활쏘기 말타기의 기술이 그들보다 못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마상개국(馬上開國), 마하치국(馬下治國) 즉 말을 타고 나라를 세우고, 말에서 내려 나라를 다스렸으며, 문무쌍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능력이 없다면 그런 일을 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세민의 무예는 절대로 허명이 아니다. 호뢰관에서 연속하여 활을 쏘면서 빗맞춘 것이 없었는데, 이는 백보천양(百步穿楊)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기병을 중시하며 그 이치를 잘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솔선수범하며 매번 전투때마가 거의 전면에 나서는 행위로 판단하면, 그 자신의 체력도 매우 뛰어났을 것이다. 황실체육의 우등생일 것이다. 그가 유목민족인 돌궐인들을 상대로도 1대1로 붙어보자도 덤빈 것으 ㄹ보면, 그리고 힐리, 돌리같은 맹장들도 그를 아주 꺼린 것을 보면, 그의 무예는 조예가 깊었을 것이다. 실력이 분명하다. 거기에 지모도 뛰어나고 계책도 잘 쓰니 누가 그에게 복종하지 않겠는가?


결론적으로, 이세민은 절대로 무예가 고강한 맹장이다(이 점은 모주석도 인정했다). 전해지는 바로는 그가 악비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중국고대의 5대용장중 1명이라고 하는데, 대당에서도 위지경덕만이 그와 비교할만한 첫째둘째가는 용장일 것이다. 저명한 역사통속소설인 <수당연의>에서는 그의 무공을 왜소화시켜서 별 것아닌 것으로 그렸고, 그저 군사모략을 지닌 인물로만 그렸다. 그의 가장 주요한 무예는 바로 말타고 활쏘는 것이며 그것은 출신입화 신출귀몰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가 활에 화살을 꽂기만 하면, 누구든지 맞출 수 있고, 빗나가는 것이 없었다. 그는 아주 대단한 마상황제이다. 이점에서는 한무제도 그를 따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