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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당태종)

당태종이 수양제의 처와 딸을 모두 취하였는가?

by 중은우시 2015. 1. 1.

글: 문방장궤(文房掌櫃)


수나라 개황2년 즉 582년, 13살의 양광은 12살된 소비(蕭妃)와 결혼한다. 소비는 할거정권 소규(蕭巋)의 넷째딸이다. 그러나, 생진팔자가 좋지 않아서 궁밖으로 버려져서 길러진다. 이 예쁜 소씨 넷째딸은 몸은 아가씨이나 운명은 종인 셈이다. 먼저 민간에서 형편없이 먹고 살다가, 야심만만한 양광에게 시집간 이후 다시 사람들 앞에서 숨을 죽이고 조용히 산다. 어렵사리 양광이 황제에 오르게 만들었더니, 양광은 새 여자를 찾아서 돌아다닌다. 소비는 그저 황후라는 허명만 갖고 있게 된다.


14년간 함부로 나라를 망치다가 양광은 마침내 수나라를 무너지게 만든다. 618년, 그는 반신에게 목졸려 죽는다. 소황후는 승리자의 전리품이 되어, 우문화급, 두건덕에게 차례로 넘어가고 나중에는 멀리 돌궐에 시집가있던 의성공주가 데려간다. 고모와 며느리 두 사람은 함께 처라칸, 힐리칸 두 칸을 모신다. 만일 당태종 이세민이 돌궐을 평정시켜주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소황후는 이국타향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630년, 나이 환갑이 된 소씨는 눈물을 머금고 장안으로 돌아온다. 이때 돌궐은 대패했고, 의성공주도 죽었다. 힐리칸은 생포되었다. 이치대로라면 소씨도 역시 '전쟁포로'에 속한다. 그러나 그녀는 특수한 신분으로 인하여 당나라의 우대를 받는다. 생각지도 못하게 당나라로 돌아온 후, 그녀 때문에 당태종은 시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구당서.태종본기>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4년 봄 정월 을해일, 정양도행군총관 이정(李靖)이 돌궐을 대파한다. 수나라 황후 소씨 및 수양제의 손자 정도(正道)를 얻어서, 경사로 보낸다" 소씨가 돌아오게 되자 이세민은 체면이 서게 된다. 첫째는 양집안은 '친상친(親上親)'이 된다. 양광은 이세민의 표숙(表叔)이다. 이세민은 양광의 딸을 취했다. 대양비(大楊妃). 어떻게 보더라도 소씨는 배분이 위이다. 둘째는 이세민의 지낭(智囊) 소우(蕭瑀)는 바로 소황후의 친동생이다. 그래서 신하에게도 크게 체면이 서게 되었다. 뭐 안될 것이 있는가. <북사>에는 이렇게 말한다: "(소씨)가 경사로 돌아오자, 흥도리에 집을 하사한다." 보기에 당나라는 전조의 황후를 잘 보살피려는 것같다.


항간의 문인들은 더더구나 이런저런 말을 만들어 낸다. 많은 필기에서는 비슷한 전고를 수록한다: 이세민이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소씨를 접대한다. 정관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그런 규격은 황제조차도 호화스럽다고 여길 정도였다. 이세민은 웃으면서 소씨에게 묻는다: "당신 생각에 이 연회규모가 수나라궁전과 비교하면 어떤가?"


이 수준은 수나라궁정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수나라때는 저녁 연회시 복도에 백개가 넘는 야명주를 걸었고, 전각의 앞에는 화톳불이 수십개 피워진다. 태우는 것은 모두 최고급의 단향목이다. 매일 저녁에 단향 200수레를 태웠다고 한다. 소씨는 전혀 표정을 변하지 않고 대답한다: "폐하는 기업을 열고 세운 군주이십니다. 어찌 망국의 군주와 비교하겠습니까." 이 말에 당태종은 기뻐하며, 더욱 이 파란만장한 일생을 지낸 귀부인을 잘 대접한다.


소위 '시비의 소용돌이'라는 것은 남녀간의 풍류사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전해지는 바로는 이세민이 소씨를 앙모하여 공개적으로 소첩으로 들이고 '소용(昭容)'에 봉했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의 근거없는 이야기이다. 첫째, 당나라는 개화적인 기풍을 지녔고, 이세민이 소씨를 취했다고 하더라도 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는 친형인 이건성의 처도 취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전왕조의 폐위된 황후야 취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정말 소씨를 '소용'으로 취했다면 <구당서>와 <신당서>에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을리는 없다. 관련기재를 찾을 수가 없다. 둘째, 소씨가 당나라로 돌아올 때 나이가 얼마인가? 꼬박 육십이다. 이제 막 서른이 된 대당황제가 어떤 여자를 취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육십이 된 여인을 취하다니? 기껏해야 당태종이 전설 속의 소황후를 앙모한 것이고, "시집가기 전에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는 수준일 뿐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소씨가 가장 좋아한 사람은 그래도 양광이다. 두 사람은 고귀한 청춘을 함께 보냈다. 23년. 그것은 뼛속에 새겨진 황금세월인 것이다. 지금 나라도 망하고, 집안도 무너졌다. 남편은 피살되고, 자녀도 없다. 건물은 옛날 그대로이지만, 사람은 이미 다 바뀌었다. 살아서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장안성안의 소씨는 집안에 틀어박혀 거의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으며 18년간을 고독하게 산다. 머리에 백발이 나고 바람이 분다. 그녀의 혼탁한 눈에는 순수했던 시절의 그림자가 하나하나 지나간다. 그러면서 가끔 입가에는 미소를 띄운다...


"(정관20년) 경자일, 수나라 소황후가 졸하다. 조서를 내려 그녀의 위호를 되돌리고, 시호를 민(愍)이라 하다: ----강도로 보내어 수양제와 합장하다." <자치통감.당기>에 이렇게 썼다. 소씨는 여전히 악명이 높았던 남편을 그리워했고, 그와 함께 지낸 나날을 그리워했다. 그녀는 마침내 '황후'라는 명예를 되찾았다. 양주, 하나의 천고풍류를 묻고, 하나의 교교한 달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