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순방(鄭純方)
후세에 널리 알려지기로는 동한말기의 강동미녀 대교, 소교는 한나라의 태위(太尉) 교현의 딸이라는 것이다. <삼국연의>도 그렇게 써서 거의 정설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실로 잘못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여 이렇게 잘못 전해진 것일까?
이 일은 청나라때의 인물인 심흠한(沈欽韓)과 관련이 있다. <삼국지.오서9>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대교, 소교는 "고공(喬公)"의 딸이다. 청나라때의 사람인 심흠한은 <양한서소증(兩漢書疏證)>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교공이라는 사람은 태위 교현(橋玄)이다. 한나라제도에서 삼공(三公)에 올라야 비로소 '공(公)'이라 불렀다." 심흠한의 뜻은 관직이 "삼공(태위, 사도, 사공)"에 오른 사람만이 '공'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서에서 '교공'이라고 한 것은 분명히 한나라때의 태위인 교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심흠한의 의견은 널리 인정되고 또한 많이 인용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역사적 근거는 없는 말이다.
청나라말기의 노필(盧弼)이 그가 쓴 <삼국지집해(三國志集解)>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필자는 손권이 장소(張昭)를 장공(張公)이라고 부르고, 당시 사람들이 정보(程普)를 정공(程公)이라고 부르며, 세상사람들이 방덕공(龐德公)을 龐公)이라고 부르며, <한서.가의전>을 보면, 하남군수 오공 치평이 천하제일이라고 하였다. <한서.우정국전>에는 우공이 효부의 사건을 처리하는데 군내의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다고 했다. 이것은 모두 삼공이 아닌데도 공이라고 칭한 것이다." 이를 보면 당시에 명망있고 나이있는 사람은 '공'이라고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심흠한의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노필은 <삼국지집해>에서 또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본전에서는 교공의 두 딸을 환(皖)을 공격할 때 어ㄸ었다고 하는데, <환우기>의 기록에 따르면, 교공은 서주(舒州) 회녕인이다. 즉 한나라때 여강군 환의 사람이다. <후한서.교현전>에 따르면, 교현은 양국 수양인이다. 둘은 아무 관계도 없다. 만일 교현의 딸이라면, 조조가 교현에게 말만 하면 되는 것이지 동작부를 쓰기도 전에 원하는 것을 얻어냈을 것이다. 백부, 공근이 이 여자들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후한서>, <삼국지>에 이에 대하여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으므로, 심흠한의 주장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심흠한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논증한다.
그외에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손책, 주유가 각각 대교, 소교를 취한 것은 환성을 공격해서 함락시킨 후이다. 즉 199년의 일이다. 그런데 교현은 183년에 이미 사망했고, 그때 나이가 이미 75세이다. 연령으로 보더라도, 대교, 소교의 부친이 될 수가 없다. <삼국연의>는 이화접목의 방식으로 허구의 내용을 담은 것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현을 이교의 부친으로 그리는 것은 어떤 좋은 점이 있어서일까?
좋은 점은 아주 많다. 교국로의 신분이 아주 중요하다. 첫째는 주유와 손책이 모두 존경하는 사람이니, 손권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높이 모셔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그는 오국태와 사돈간이 되므로 말하기가 좋다. 일처리하기가 좋은 조건이 된다. 교국로는 상서로운 일을 좋아해서, 진심으로 오국태를 돕고, 인질로 잡혀있던 유비를 돕는다. 손권과 주유는 화가나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감로사의 초친이라는 그 장면이 '부인도 잃고 병사도 잃는' 희비극효과를 내는 것이다. 좋은 장면에는 좋은 인물이 있어야 한다. 나관중은 그를 주목했는데, 기실 그가 주목한 것은 연결시켜주는 사람이 얼마나 눈길을 끌 수 있는 사람인가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가 재미있게 된 것이고, 교국로는 살아있는 생생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교할아버지는 아주 친근한 이미지로 그려진 것이다. 역사상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이는 역사연구의 대상이 아니다. 그 '교현'이 어떤 사람이건 무슨 상관인가.그러나 망리 나온 김에 한 마디 하자면 교현에게는 교우(喬羽)라는 아들이 있었다. 당연히 삼국시대에 그 교우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다. 현재의 시인인 교우와 이름은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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